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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노동법 개정안 둘러싼 프랑스의 시위 사태
[특집]노동법 개정안 둘러싼 프랑스의 시위 사태
  • 김계환/고등사회과학연구원
  • 승인 2006.03.2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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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모델의 실패인가? 탈규제·유연화 정책의 실패인가? 대학생과 일부 고등학생들의 노동법 반대 운동으로 인해 프랑스 사회가 마비상태에 빠져들고 있다.
최초고용 후 2년간 고용주의 해고 권한을 대폭강화 한 최초고용계약제(CPE) 법안이 통과되자마자 엄청난 반대에 부딪힌 것이다.
대학생들의 시위로 시작된 반(反) CPE 운동은 고등학생들에게로 확산되고 있을 뿐 아니라, 전통적인 노동운동과 결합하면서 거대한 전선을 형성하기에 이르렀다.
전국 100여 개 도시에서 진행된 시위에는 100만 명 이상의 고등학생·대학생·노동자·시민이 참여해 이번 사태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음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가족과 함께 참여하는 경우가 많은 탓에 시위라기보다는 야유회 분위기였다는 저녁시간대 주요 뉴스의 논평이 시사하듯이, 또한 이 법안에 반대하는 여론이 60% 이상이라는 여론조사 결과가 보여주듯이, 세대와 직업의 차이를 넘어서는 전 국민적 운동으로 발전하고 있는 것이다.
CPE의 직접적 당사자인 대학생이나 고등학생뿐만 아니라 이들 학생들의 부모들까지 폭넓게 이번 시위에 참여했다는 사실은 이번 노동법 개정 시도가 단지 청년 노동시장의 유연화라는 차원을 넘어 보다 근본적인 쟁점, 즉 프랑스 사회모델의 핵심을 건드리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아울러 이번 운동이 정부의 실책에 의한 일회적이고 우연적인 사건이 아니라, 최근 수년 동안 진행되어온 프랑스 사회의 지각 변동의 연장선상에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구조적 이중화’에 대한 분명한 거부 목소리 지난 2002년 대통령 선거에서 당시 ‘동거정부’의 수상이던 사회당 후보 조스팽이 중도 우파 시라크와 국우파 르팽에 밀려 3위로 전락하면서 프랑스 정치지형에 일대 충격을 준 바 있다.
당시 선거에서 극우 세력뿐만 아니라 극좌 정당이 약진한 것은 중도 좌우의 기존 정치 엘리트에 대한 유권자들의 이반이 심화되고 있음을 처음으로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이어 2005년 5월 유럽헌법안 인준을 위한 국민투표는 이러한 이반 현상을 확증하는 분기점이었다.
당시 프랑스의 집권 여당은 유럽헌법안에 대한 대대적인 찬성운동을 조직했다.
사회당 역시 당내 투표를 통해 찬성을 공식 입장으로 확정했지만, 일부 의원들은 반대 운동 세력과 보조를 맞추었다.
당시 국민투표에서 결국 유럽헌법안을 반대하는 진영이 승리한 것은 찬성 운동을 조직했던 기존 엘리트 정당과 정치인들에게 다시 한번 정치적 충격을 가했다.
당시 투표 결과에 대한 지역별·계층별 실증분석이 증명해주듯, 찬성이냐 반대냐를 가르는 분할선은 지금까지 진행되어온 탈규제·개혁의 수혜자와 피해자 사이에서 그어졌다.
지난해 가을,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대도시 외곽지역의 폭동 또한 이러한 근본적인 지각변동의 연장선상에서 이해될 수 있었다.
주로 이민자들이 모여 사는 이 도시 외곽지역이야말로 실업과 빈곤으로 표현되는, 최근 20여 년 이상 지속되고 있는 구조조정 과정의 결과가 집중되는 지역이다.
여기에 종교적·인종적 변수가 결합되면서 폭동의 형태로 폭발했던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은 최근의 반(反) CPE 운동이 프랑스 사회를 떠받치던 정치사회적 지각이 변동하는 연장선상에 있음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과연 이런 위기의 근본적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EPA 제공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의 전후 사회모델은 ‘복지국가’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70년대 중반 이후 이 사회모델의 위기가 스태그플레이션(실업률과 물가수준의 동반상승)으로 표현되기 시작하면서 다양한 해결책이 등장했다. 첫째, 실업, 연금, 의료 등 사회보장제도의 개혁, 둘째, 노동법의 개정을 필연적으로 동반할 수밖에 없는 노동시장의 유연화, 셋째, 공기업의 민영화가 그것이다. 우선 공기업 민영화의 경우, 1981년 집권에 성공한 사회당의 미테랑 정부에 의해 80년대 중반 이후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그런 점에서 오늘날 개혁과제의 핵심 쟁점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그 다음으로 사회보장제도의 개혁과 관련해서는 부분적인 개혁 시도에도 불구하고 이 제도에 대한 사회 전반의 합의가 유지되고 있는 상태이다. 따라서 전면적인 민영화를 주장하는 정치세력은 없다. 문제는 이러한 사회보장제도의 유지를 위한 재원은 결국 높은 수준의 사회보장 분담금의 유지를 가져올 수밖에 없고, 이로 인한 노동비용 상승이 비숙련 노동자 계층의 높은 실업률을 낳는 악순환에 빠져 있다는 사실이다. 노동시장 개혁 문제가 핵심 쟁점이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과거 사회당 정부는 주 35시간제의 도입에 의한 노동시간의 전반적 단축이라는 실업대책을 시도한 바 있고, 현 집권당은 전반적 유연화를 통해 노동시장의 개혁을 추구하고 있다. 전통적인 경기부양정책 수단인 통화정책 및 재정정책이 유럽통합 과정에서 개별 국민국가 수준을 벗어남에 따라, 이제 실업대책으로 동원할 수 있는 정책수단은 조세를 포함한 제도 개혁으로 한정되어 있다. 이런 상황에서 현 프랑스 정부는 CPE 도입으로 청년 노동시장의 전면적 유연화를 달성해 20%가 넘는 청년 실업률을 감축하고자 시도하는 것이다. 결국 현재 진행중인 반(反) CPE 운동의 근본적 원인 역시 프랑스 사회모델의 위기에 대한 대안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각 세력들간의 입장 차이에서 찾을 수 있다. 유럽통합으로 요약되는 화폐주권과 조세주권의 유럽수준으로의 이양, 그리고 이러한 제도개혁과 맞물린 자본시장의 탈규제화는 기존 사회경제 모델의 정합성에 균열을 가져왔고, 결국 사회경제 체제의 구조적 이중화로 나타났다. 이러한 구조적 이중화를 영영 제도화할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대한을 모색할 것인가가 바로 핵심 쟁점인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최근의 반(反) CPE 운동은 이러한 이중구조의 제도화에 대한 분명한 거부로 이해하는 것이 옳다. 내년 대선 핵심 쟁점으로 비화될 듯 최근 수년 동안에 걸쳐 진행된 정치사회적 지각변동 속에서 이번 운동은 다양한 운동세력을 결집시키는 역할을 맡고 있다. 대학생, 고등학생, 노조가 공동전선을 형성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여기에 사회당에서 극좌에 이르는 기존 정당들도 가세하고 있다. 또한 1년 남짓 앞으로 다가온 대선을 앞두고 정당간, 나아가 각 정당 내에서 예상 후보들간 경쟁 논리는 이번 운동의 확산과 급진화를 부추기고 있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사회경제모델의 모색을 대선의 주요한 쟁점으로 부상시키는 효과를 낳고 있다. 즉 20여년간 진행된 탈규제·자유화·유연화의 순환을 마침내 완성할 것인가 아니면 프랑스 사회경제모델, 더 나아가 유럽 전체를 아우르는 새로운 사회경제 체제를 낳을 새로운 순환을 시작할 것인가가 차기 대선의 핵심으로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파리 = 김계환/ 고등사회과학연구원(E.H.E.S.S) 경제학 박사과정 고용을 유연하게! 그리하면 고용이 창출될지어다? 우선 고용계약을 유연하게 해 청년실업을 해결하는 방식은 어려운 정책 환경이 낳은 ‘고육지책’이긴 하지만, 그 실효성에 대해서는 비관적인 견해가 많다. 과거에는 청년고용을 증진하는 방법으로 장·노년층의 조기퇴직이 광범위하게 도입되었다. 하지만 조기퇴직이 청년층의 고용증가로 연결되지 않는 경우가 허다했을 뿐만 아니라, 고령화 시대에서는 조기퇴직이 아니라 연장고용이 정책적으로 화급해진 탓에 이러한 전통적 방식은 정책적 고려대상이 되지도 못한다. 교육훈련 정책도 그리 효과적이지 못했다. 프랑스의 경우 대학 졸업자들이 넘쳐나지만 이들을 위한 고용기회는 적은 편이고, 정작 배관공이나 전기공의 경우는 인력난이 심하다. 이런 상황에서 ‘청년 실업을 해결하기 위해 이들을 보다 손쉽게 해고하도록 한다’는 다소 역설적인 최초고용계약법은 ‘고용비용이 줄어들면 노동수요가 늘어난다’는 경제학 가르침을 따른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정작 문제는, 고용 유연화가 순고용을 창출한다는 경험적 증거가 많지 않다는 점이다. 둘째로, 최초고용계약제는 이미 20인 이하 기업들을 대상으로 지난해부터 도입되었고, 이 법 때문에 부당하게 해고된 청년노동자들이 적지 않다. 이 법이 존재할 경우 사용자에게 ‘최적의 전략’은 계약기간 2년이 되기 바로 직전에 노동자를 해고하고 다른 청년 노동자를 동법에 따라 신규고용하는 것임을 시사한다. 게다가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과는 달리, 이미 프랑스나 다른 유럽국가에서는 청년노동자들이 단기계약으로 일하는 것이 ‘정상적으로’ 정착되어 있다. 프랑스의 경우, 16세에서 24세 사이의 청년피고용자 중 단기계약을 가지고 있는 비율은 20여 년 전에 25% 남짓하던 것이 2005년 현재는 절반이 넘는 54%에 육박하고 있다. 사정은 유럽연합의 다른 국가라고 해서 별반 다르지 않다. 어떤 의미에서는 청년노동시장은 이미 매우 유연한 셈이다 마지막으로, 고용과 해고가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가운데 주목할 만한 고용성과를 이룬 덴마크의 이른바 유연안정성 (flexicurity) 모델을 예로 들면서 고용 유연화가 대세임을 지적하기도 한다. 하지만 덴마크 모델의 성공에 필요한 ‘비용’에 대한 관심은 덜한 편이다. 일례로 덴마크의 경우 실업자에게 임금의 90%에 달하는 상당히 ‘후한’ 실업수당을 지불할 뿐만 아니라, 유연안정성의 성공적인 작동을 위해서는 다양한 층위의 노사관계 제도들이 잘 조정될 수 있도록 사회구조를 구성해야 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프랑스와 같이 파편적이고 분절적인 노사관계가 있을 경우에는 다양한 계층의 이해 조정을 핵으로 하는 덴마크 모델이 상당히 수정되지 않는 한 정착되기 힘들다는 얘기다. 결국 문제는 무엇이 프랑스 모델이냐 하는 점인데, 그 대답은 아직 분명치 않은 듯하다. 제네바 = 이상헌/ILO(국제노동기구) 선임연구원 lees@ilo.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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