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모델의 실패인가? 탈규제·유연화 정책의 실패인가?
대학생과 일부 고등학생들의 노동법 반대 운동으로 인해 프랑스 사회가 마비상태에 빠져들고 있다. 최초고용 후 2년간 고용주의 해고 권한을 대폭강화 한 최초고용계약제(CPE) 법안이 통과되자마자 엄청난 반대에 부딪힌 것이다. 대학생들의 시위로 시작된 반(反) CPE 운동은 고등학생들에게로 확산되고 있을 뿐 아니라, 전통적인 노동운동과 결합하면서 거대한 전선을 형성하기에 이르렀다. 전국 100여 개 도시에서 진행된 시위에는 100만 명 이상의 고등학생·대학생·노동자·시민이 참여해 이번 사태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음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가족과 함께 참여하는 경우가 많은 탓에 시위라기보다는 야유회 분위기였다는 저녁시간대 주요 뉴스의 논평이 시사하듯이, 또한 이 법안에 반대하는 여론이 60% 이상이라는 여론조사 결과가 보여주듯이, 세대와 직업의 차이를 넘어서는 전 국민적 운동으로 발전하고 있는 것이다. CPE의 직접적 당사자인 대학생이나 고등학생뿐만 아니라 이들 학생들의 부모들까지 폭넓게 이번 시위에 참여했다는 사실은 이번 노동법 개정 시도가 단지 청년 노동시장의 유연화라는 차원을 넘어 보다 근본적인 쟁점, 즉 프랑스 사회모델의 핵심을 건드리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아울러 이번 운동이 정부의 실책에 의한 일회적이고 우연적인 사건이 아니라, 최근 수년 동안 진행되어온 프랑스 사회의 지각 변동의 연장선상에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구조적 이중화’에 대한 분명한 거부 목소리
지난 2002년 대통령 선거에서 당시 ‘동거정부’의 수상이던 사회당 후보 조스팽이 중도 우파 시라크와 국우파 르팽에 밀려 3위로 전락하면서 프랑스 정치지형에 일대 충격을 준 바 있다. 당시 선거에서 극우 세력뿐만 아니라 극좌 정당이 약진한 것은 중도 좌우의 기존 정치 엘리트에 대한 유권자들의 이반이 심화되고 있음을 처음으로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이어 2005년 5월 유럽헌법안 인준을 위한 국민투표는 이러한 이반 현상을 확증하는 분기점이었다. 당시 프랑스의 집권 여당은 유럽헌법안에 대한 대대적인 찬성운동을 조직했다. 사회당 역시 당내 투표를 통해 찬성을 공식 입장으로 확정했지만, 일부 의원들은 반대 운동 세력과 보조를 맞추었다. 당시 국민투표에서 결국 유럽헌법안을 반대하는 진영이 승리한 것은 찬성 운동을 조직했던 기존 엘리트 정당과 정치인들에게 다시 한번 정치적 충격을 가했다. 당시 투표 결과에 대한 지역별·계층별 실증분석이 증명해주듯, 찬성이냐 반대냐를 가르는 분할선은 지금까지 진행되어온 탈규제·개혁의 수혜자와 피해자 사이에서 그어졌다.
지난해 가을,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대도시 외곽지역의 폭동 또한 이러한 근본적인 지각변동의 연장선상에서 이해될 수 있었다. 주로 이민자들이 모여 사는 이 도시 외곽지역이야말로 실업과 빈곤으로 표현되는, 최근 20여 년 이상 지속되고 있는 구조조정 과정의 결과가 집중되는 지역이다. 여기에 종교적·인종적 변수가 결합되면서 폭동의 형태로 폭발했던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은 최근의 반(反) CPE 운동이 프랑스 사회를 떠받치던 정치사회적 지각이 변동하는 연장선상에 있음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과연 이런 위기의 근본적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