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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도전받는 '1주 1표 원칙' 모든 주주는 평등한가?
[커버]도전받는 '1주 1표 원칙' 모든 주주는 평등한가?
  • 장승규 기자
  • 승인 2006.04.0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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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17일 열린 KT&G 주총 맞대결은 일단 칼 아이칸·스틸파트너스연합측의 승리로 끝났다.
이날 워런 리히텐슈타인 스틸파트너스 사장은 집중투표 방식으로 치러진 투표에서 가장 많은 표를 얻고 KT&G의 신임 이사로 선출되었다.
하지만 차등의결권 제도가 있었다면 이날 주총 결과는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차등의결권 제도는 특정 주주에게 더 많은 의결권을 부여하는 것이다.
만약 KT&G 경영진이 구글처럼 1주에 10표를 행사할 수 있는 차등주를 독점적으로 갖고 있었다면 아무리 ‘월가의 상어’ 칼 아이칸이라도 KT&G를 쉽게 공격대상으로 삼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최근 외국자본의 적대적 기업 인수합병(M&A) 논란이 불거지면서 국내 기업의 경영권 방어 수단을 강화해줄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그 가운데 가장 간단하고, 확실한 방안으로 꼽히고 있는 것이 바로 차등의결권 제도이다.
똑같은 지분으로 2~10배 이상의 의결권을 갖게 된다면 웬만해서는 경영권 위협을 더 이상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바로 여기에서부터 첨예한 논란이 시작된다.
지나친 경영권 보호가 97년 외환위기 이후 가까스로 개선되고 있는 기업 지배구조의 악화를 가져올 가능성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또한 창업주든 기존 경영진이든 이들에게만 ‘특권’을 부여하기 위해서는 ‘1주 1표’, 즉 주주평등이라는 ‘신성한’ 원칙을 허물어야 한다.
△EPA 제공 ⓒ이코노미21 박미향 기자 쟁점1. 차등의결권 도입이 과연 필요한가? 의외로 외국기업 가운데는 차등의결권 제도를 채택하고 있는 곳이 적지 않다. 범유럽 지수인 ‘FTSE 유로퍼스트 350’에 속하는 유럽 대기업 가운데 3분의 1이 차등의결권 제도를 갖고 있다. 정작 주주 자본주의의 본고장인 미국에서도 이런 기업을 찾기는 어렵지 않다. 대표적인 곳이 포드와 구글, 그리고 워렌 버펫의 버크셔해서웨이를 들 수 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본다면 차등의결권은 축소되거나 폐지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봐야 한다. 스웨덴의 경우도 한때 의결권 차이가 1천배까지 나는 경우도 있었지만, 지금은 10배까지만 허용되고 있다. 더 이상 주주들이 ‘특권 주주’의 존재를 용납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차등의결권 도입에 반대하는 쪽에서는 이러한 세계적인 흐름을 거스르면서까지 우리가 뒤늦게 이를 도입해야 될 필요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최근 차등의결권의 필요성을 뒷받침하는 가장 큰 논거는 바로 외국자본의 적대적 M&A 위협이라고 할 수 있다. 전삼현 숭실대 교수는 “많은 기업들이 거대 외국자본의 공격에 속수무책”이라고 했다. 국내에서 대기업으로 불리는 곳들도 세계적인 기준에서는 여전히 규모가 작은 ‘소기업’ 정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들이 거대한 외국자본의 적대적 M&A 공세를 막아낼 방법은 사실상 없다. 더구나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에서는 오히려 출자총액제한이나 금산분리 원칙 등으로 기업의 손발을 묶어 놓고 있다는 것이 전 교수의 진단이다. 그는 “1주 1표로 대표되는 상법상의 주주평등의 원칙을 뛰어넘지 않고는 외국자본의 위협을 막을 방법을 만들어주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했다. 전 교수는 “기업들을 꼭 M&A 위협으로 내모는 것만이 기업가치를 올리는 유일한 방법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오히려 경영권의 안정이 더 높은 기업가치의 창출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뜻이다. 전 교수는 차등의결권을 법으로 금지하기보다는, 최소한 미국처럼 도입 여부를 기업들이 정관을 통해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있도록 허용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 ⓒ이코노미21 박미향 기자
반면 김선웅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장은 “국내 재벌그룹 경영자보다 더 보호받고 있는 존재가 있느냐”고 되묻는다.
지금도 ‘쥐꼬리’만한 지분으로 그룹을 ‘황제경영’하고 있는데, 여기에 차등의결권까지 허용된다면 문제가 더욱 악화될 수 있다는 우려다.
이름을 밝히기를 꺼린 한 경제학자는 “차등의결권 주장은 무능한 경영자의 하소연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지분을 많이 갖고 있거나, 아니면 경영을 잘 하면 적대적 M&A는 일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차등의결권을 갖고 있는 유럽 기업들의 경우도 절대적인 보유 지분이 국내 재벌기업들보다는 훨씬 높다는 것이 그의 분석이다.
반면, 우리는 보유 지분 자체도 적으면서, 여기에 더해 더 큰 특혜를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민주주의의 1인 1표제가 어떻게 자리잡게 됐는지를 생각해봐야 한다”고 했다.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1표를 주는 것이 최선이 아닌 것은 분명하지만, 그보다 더 나은 대안도 없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1주 1표의 원칙이 완벽한 것은 아니지만 현실적으로 더 나은 대안을 찾기는 어렵다는 뜻이다.
김우찬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거시경제적인 측면에서 오히려 우리나라에선 적대적 M&A의 활성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그는 “경제성장률이 계속 떨어지고, 출산률도 하락하고 있다”며 “남은 대안은 이미 갖고있는 노동과 자본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런 측면에서 적대적 M&A가 노동과 자본의 효율성을 높이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차등의결권 도입은 결과적으로 창조적 파괴를 막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쟁점2. 기존 상장 기업에 도입할 수 있나? 현실적으로 차등의결권 도입에서 가장 큰 걸림돌은 기존 일반 주주들과의 형평성 문제다.
일반 주주들을 제쳐두고 창업자 가문 등 특정 주주에게만 더많은 의결권을 주는 것은 큰 반발을 부를 수밖에 없다.
단순하게 정당성 문제를 떠나 실제적인 손실로까지 이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신진영 연세대 교수는 “미국에서도 차등의결권이나 황금주, 독약조항 등 기존 대주주나 경영진의 경영권을 보호하는 장치를 도입할 경우 평균적으로 주가가 떨어지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했다.
물론 비상장 기업이나 신생 기업은 이런 논란에서는 한발 벗어나 있다고 할 수 있다.
김선웅 소장도 “비상장 회사의 경우에는 차등의결권 도입이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기존 상장 기업의 경우 문제가 간단치만은 않다.
차등의결권 제도가 없다는 것을 전제로 주식을 매입한 다수의 주주들이 있는 탓이다.
상법개정위원회에도 참여하고 있는 임영재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이 차등의결권이 현재 적대적 M&A와 관련해 문제가 되고 있는 기업들에게 큰 의미를 갖기 어렵다고 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임 연구위원은 “차등의결권을 도입해도 이미 주식을 갖고 있는 기존 주주들을 차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 때문에 모든 주주들에게 다 줘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경영권 보호의 의미는 거의 없게 된다”고 지적했다.
설사 차등의결권이 허용된다고 해도 구글의 경우처럼 앞으로 새롭게 기업공개(IPO)를 하는 기업에게만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상법개정 위원인 최준선 성균관대 교수는 “정관을 변경하는 특별결의를 하면 차등의결권 도입이 가능하다”고 했다.
현재 참석 주주 3분의 2의 찬성을 받고, 찬성수가 전체 주주의 3분의 1이 넘으면 특별결의가 가능하다.
하지만 문제는 주요 대기업의 경우 대부분 절반이 넘는 지분을 외국인 투자자들이 갖고 있다는 데 있다.
이들이 차등의결권 도입에 찬성표를 던질 가능성은 비교적 낮다.
△EPA 제공
최근 KT&G 사태로 유명해진 미국의 세계적인 기관투자자 자문기관 ISS는 새로운 차등의결권의 도입에 반대표를 던진다는 원칙은 명시해놓고 있다.
그러나 최준선 교수는 ‘프랑스식 차등의결권 제도’를 새로운 대안으로 제시한다.
이는 2년 이상 주식을 보유한 주주에게 2표의 의결권을 주는 방식이다.
이렇게 되면 단기투자자와 장기투자자의 구분이 어느 정도 가능해진다.
2년 이상 보유 주주에게 똑같이 2표를 주기 때문에 형평성 논란도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최 교수는 “주식을 매각하거나 상속할 경우에는 보유기간을 다시 계산하면 된다”고 했다.
이를테면 이건희 삼성회장이 이재용 삼성전자 상무에게 주식을 넘길 경우, 넘겨받은 시점부터 보유기간을 다시 계산하게 된다는 얘기다.
최 교수는 “외국자본들도 장기투자를 한다면 똑같은 권리를 가질 수 있기 때문에 굳이 반대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또한 차등의결권을 도입하는 시점부터 똑같이 보유기간을 처음부터 새로 계산하기 시작한다면 논란의 가능성은 더욱 줄어들게 된다.
쟁점3. 1차 상법 개정 대상에 포함될 수 있나? 어떤 형태든 차등의결권 제도를 도입하려면 상법 개정은 불가피하다.
주주평등의 원칙이 현행 상법의 대원칙으로 서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주주평등의 원칙의 예외 조항으로 기업들이 정관을 통해 차등의결권 제도를 도입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주어야 한다.
이와 관련해 주목받고 있는 곳이 바로 법무부 상법개정특별분과위원회의 활동이다.
지난해 7월 출범한 개정위는 최근 올 9월 정기국회 통과를 목표로 한 1차 상법개정안을 마무리짓고 있다.
하지만 차등의결권 도입을 둘러싸고 격론이 벌어지면서 최종안 확정이 지연되고 있다.
개정위는 지난 3월24일 1차 개정 대상을 확정할 일부 위원들이 차등의결권 도입을 강력하게 요구하면서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당초 담당 소위원회에서는 차등의결권 문제를 다음 번 개정으로 미루는 것으로 의견을 모았으나, 전체회의에서 반발에 부딪힌 것이다.
최준선 교수는 “적대적 M&A는 기업들의 발등에 떨어진 불”이라며 “차등의결권을 빼놓고는 이번 상법 개정의 의미가 없다”고 했다.
법무부는 올해 1차 상법개정에 이어, 내년 상반기에 2차, 그 이후에 곧바로 3차 개정에 들어간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하지만 최 교수는 “우리 기업들의 손발은 공정거래법이나 금산법으로 꽁꽁 묶여 있는 반면, 외국인들은 아무런 제한 없이 마음대로 움직이고 있다”며 “당장 대응책이 필요한데, 이번에 못하면 최소 1년 이상 미뤄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물론 상법 개정위가 내놓은 안이 법무부의 최종안으로 곧바로 확정되는 것은 아니다.
이번 개정의 경우, 법무부 장관 자문위원회의 심의를 다시 거쳐야 한다.
게다가 공청회와 입법예고, 국무회의, 국회 논의 과정까지 고려한다면 차등의결권 제도가 도입될 수 있을지를 판단한는 것은 아직 이르다.
이제부터가 긴 논의 과정의 시작인 셈이다.
장승규 기자 skjang@economy21.co.kr
ⓒ이코노미21 박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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