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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기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인터뷰
김용기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인터뷰
  • 장승규 기자
  • 승인 2006.04.0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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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등의결권 제도도입은 장.단기 투자자가르는 시금석" 차등의결권 제도가 왜 필요한가? = 투자 활성화와 이를 통한 고용창출이 필요한 우리 현실에서는 창업자의 기업가 정신과 장기적인 열정을 살려줘야만 한다.
문제는 기업들이 대규모 산업투자나 설비투자를 하려면 주식시장을 통해 공공으로부터 자금을 끌어들일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그런데 주식시장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면 지분율이 낮아지기 때문에 기존 소유주 입장에서는 꺼리게 된다.
유럽에서 차등의결권은 이 두가지 문제, 즉 창업자가 갖는 역할과 주식시장의 순기능을 적절하게 결합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몰론 차등의결권을 도입하면 자본금에 기여한 정도와 실제 기업 통제권 간에 갭, 즉 공정위에서 말하는 의결권 승수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공정위에서는 이러한 갭은 절대로 허용될 수 없는 것이라고 하지만, 그건 순전히 미국적인 사고방식에 불과하다.
미국은 주식이 완전히 분산된 상태에서 아무런 소유권도 가지지 않은 경영자가 황제적 경영을 하는 폐해가 많기 때문에 이걸 막기 위해 주주 자본주의가 나온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동안 성장해온 경로나 처한 상황이 전혀 다르다.
그동안 무리하게 미국식 제도를 도입한 결과가 뭔가. 맨날 외국인 2대 주주와 내국인 1대 주주가 싸움만 하고 있지 않나. 결국 소수 주주에게도 전혀 이득이 될 게 없다.
우리나라에서 주주 자본주의가 기존 국내 대주주를 괴롭히는 데는 기여했을지 몰라도 국민경제적으로는 큰 해악을 끼치고 있다.
차등의결권이 이런 문제를 바로잡을 수 있다.
물론 우리에게는 생소한 제도라 처음 도입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차등의결권 제도에 담긴 정신 자체는 굉장히 진보적인 것이다.
사회적 분배에도 기여할 수 있고, 국민경제에도 훨신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차등의결권이 훨씬 분배지향적이라는 뜻인가? = 기업의 가치는 다양한 집단의 노력에 의해 형성된 것이다.
그런데 주주 자본주의, 주주 우선주의는 그 이익을 주주가 모두 가져가는 것이 올바르다는 데서 출발한다.
기업이 망할 경우 모든 책임을 주주가 지기 때문이라는 게 그 이유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예를 들어 BMW에는 독일 국민이 가지는 장인정신이나 근면성이라는 이미지가 깔려 있다.
여기서 얻는 이득을 공동으로 향유하지 않고 특정한 집단이 가져간다면, 전체적인 유효 수요나 소비 여력이 현격하게 줄기 때문에 사회적인 선순환 구조에도 별도움이 되지 않는다.
지금 문제되는 양국화가 그런 결과 아닌가. 차등의결권 도입이 가져올 수 있는 부작용은 없나? = 기존 소유주가 실제 지분보다 훨씬 많은 권한을 갖게 되면 대다수 주주의 이익과 어긋나는 쪽으로 기업경영을 하게 될 것이라는 비판이 많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의 가설일 뿐이다.
그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차등의결권이 국민경제에는 긍정적인 효과가 훨씬 많다는 것이다.
흔히 말하는 주주들의 이익에 반하는 결정이란 게 뭔가. 결국은 모험적인 투자 같은 것들이다.
한국 경제에 가장 절실한 것이 바로 그런 모험투자다.
물론 과잉투자 문제가 있을 수 있지만, 그건 사회적으로 또는 국제적인 경쟁 등을 통해 얼마든지 조절될 수 있는 것이다.
ⓒ이코노미21 박미향 기자
1주 1표의 원칙이 최선은 아닐 수 있지만, 더 나은 대안이 없는 것 아닌가? 차등의결권을 도입하는 건 민주주의의 원칙에 어긋나지 않나? = 1주 1표는 평등이라는 개념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것이다.
주식을 많이 가진 사람이 많은 표를 행사하는 것 아닌가. 오히려 민주주의에서 말하는 1인 1표와는 반대되는 개념이다.
다시 말해 정치에서의 민주주의 원칙이 경제에서 1주 1표제로 등치되는 것이 아니다.
그 둘은 이름만 비슷할뿐 전혀 관계도 없고, 주주 자본주의가 정의로운 것도 아니다.
정의롭지 못한 결과를 가져오는데, 어떻게 정의로운 것이 될 수 있나. 유럽에서도 차등의결권이 사라지는 추세 아닌가? = 세계화로 인해 나타나는 현상이다.
세계화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투자자들의 목소리가 커진다는 것이다.
앞으로 고령화 사회로 가면 자본시장의 영향력은 더욱 커질 것이다.
론스타의 배후에 있는 것도 미국의 연기금들 아닌가. 이를테면 세계적으로 복지국가가 부분적으로 축소되고 있다고 해서, 복지국가를 포기할 수는 없는 것이다.
차등의결권 제도도 마찬가지다.
더구나 미국에서도 차등의결권 제도를 채택한 기업이 적지 않다.
심지어 실리콘 밸리에서는 차등의결권이 없는 회사에는 투자를 하지 않는다고 한다.
자신들이 초기에 많은 위험을 안고 투자한 100만원은 나중에 다른 사람들이 투자한 100만원과 다르다는 것이다.
전체적으로 보면 기존 기업에서는 차등의결권이 폐지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끊임없이 많은 회사들이 차등의결권을 가지고 새로 태어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정부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데서 멈춰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처럼 특정 지배구조를 법으로 일률적으로 강제하는 것은 옳지 않다.
기존 상장 기업의 경우에는 현실적으로 도입이 어렵지 않나? = 정관을 바꾸면 충분히 가능하다.
2년 이상 보유한 주주에게 2표의 투표권을 주는 프랑스 방식이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2년 이상 보유한 사람과 6개월 갖고 있다 팔고 나가는 사람과는 뭔가 차별성을 둬야 한다는 것이다.
외국인 투자자들도 자신들이 장기적인 투자를 할 생각이라면, 장기 투자자들이 좀더 목소리를 낼 수 있게 하는 것에 굳이 반대할 이유는 없다.
그런 점에서 보면 차등의결권 도입은 장기투자자와 단기투자자를 가르는 시금석이 될 수도 있다.
어쨌든 차등의결권을 새로 도입하면 기존의 일반 주주들은 손해를 보게 되는 것 아닌가? = 주식 보유기간을 지금부터 기산(起算)하면 된다.
그러면 아무도 손해보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사고의 전환이다.
‘주식은 분산되는 것이 좋다’, ‘모든 주식은 1주 1표인 게 좋다’, ‘그렇게 하는 것이 정의로운 것이다’ 하는 통념들을 버려야 한다.
2005년 10월경부터 1주 1표의 원칙에 문제가 있다는 걸 내가 처음 제기하기 시작했다.
아직은 우리 사회의 정확한 실상을 잘 모르고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충분히 바뀔 수 있다.
장승규 기자 skjang@economy21.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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