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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승규 기자의 영업왕 열전]박은화 대우자동차판매 차장
[장승규 기자의 영업왕 열전]박은화 대우자동차판매 차장
  • 장승규 기자
  • 승인 2006.04.1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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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승규 기자의 영업왕 열전⑮/ "고객들이 저를 키웠죠" “도로에 다니는 대형트럭 종류는 다 판다고 보시면 되요.” 박은화(47) 대우자동차판매 차장은 8톤 이상 대형 트럭을 판다.
덤프트럭에서 유조차, 탑차, 레미콘차까지. 지난해에만 750대를 팔았다.
회사 내에서 단연 선두다.
33살에 처음 뛰어든 그는 지금까지 꾸준히 상승곡선을 그어왔다.
그 힘들던 IMF 시기에도 10대를 팔았다.
다른 남자 직원들은 1년 내내 한대도 팔지 못할 때였다.
사실 그는 한번도 트럭을 운전해본 적이 없다.
여자로서 쉽지 않을 일로 보이지만 그건 편견일 뿐이라고 했다.
그는 “트럭 영업이 너무 재미있다”고 했다.
33살에 트럭 영업 겁 없이 시작 지난 1993년 남편의 반대를 무릅쓰고 입사지원서를 냈을 때 딱 3년만 열심히 해 뭔가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큰 아이가 막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이었다.
26살에 결혼해 남편과 아이들만 바라보고 살다가 그는 문득 스스로 뒤처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든 도전해보고 싶었고, 그래서 트럭 영업을 자원했다.
회사 측에서는 승용차 영업을 권했지만, 그러면 그만두겠다고 맞섰다.
그는 “그때만 해도 젊었고, 겁이 없었다”고 했다.
기왕 할거라면 남들이 안 하는 일을 하고 싶었다.
자신과의 싸움을 제대로 한번 해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 처음에 가장 힘들었던 것은? “막상 부딪혀보니 보통 힘든 게 아니었어요. 우선 체력적으로 감당이 안됐어요. 트럭 업체들이 주로 서울 외곽이나 지방에 있어 걷기도 많이 걸어야 했지요. 오후가 되면 힘이 딸려서 팔이 덜덜 떨릴 정도였어요.” 그래도 악착같이 메달렸다.
하루가 시작되면 무조건 서울 남부터미널로 갔다.
거기서 시외버스를 타고 전국 곳곳으로 갔다.
내려서는 또 군내 버스를 타야 했고, 걸어야 했다.
낯선 사람을 만나 제품 설명을 하는 것도 쉽지만은 않았다.
“반겨주지 않는 고객 앞에서 돌아서 나올 때는 뒤통수가 부끄러운 건 말로 할 수 없을 정도였지요.” 하지만 여자라는 점이 도움이 되기도 했다.
“찾아가면 대부분 제 얼굴을 쳐다보고 진짜 트럭파느냐, 트럭을 아느냐고 물어요.” 당시만 해도 트럭 영업을 하는 ‘여자’가 없었기 때문에 누구든 그를 기억했다.
- 첫 차는 어떻게 팔았나? “석 달 만에 겨우 첫차를 팔았지요. 정말 어렵게 팔았죠. 만나서 견적 다 내고 다음 날 계약서 쓰기로 했는데, 찾아가려고 전화하니 다른 업체와 계약했다고 하더라고요. ‘어제 저하고 약속하셨잖아요.’ 그 말을 하는데 눈물이 막 흐르더군요. 그동안 고생한 생각이 스쳐가고. 전날 그 업체 직원이 술을 50만원어치 사줬던 거예요.” 그런데 찾아가 견적서를 보니 그 업체는 부가세를 빼고 견적을 냈다는 걸 발견했다.
반면 그는 부가세를 포함시켰던 것. 자초지정을 듣고난 고객은 계약을 해지하고 그에게 선뜻 차를 사주었다.
“그게 제 영업의 시초였던 것 같아요. 그 분이 다른 고객을 소개했줬고, 또 그 분이 새로운 고객을 소개해줬어요. 그게 지금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지요.” 그는 어차피 기동력에서는 남자들을 따라잡을 수 없다.
기계에 대한 설명도 시원시원하지 못한 게 당연했다.
대신 그는 그를 대신해 영업을 해주는 고객을 확보하는 전략을 선택했다.
- 성공 비결은? “좋은 고객들을 만났던 거예요. 그분들이 저를 이 자리에 앉혀주신 거죠. 제가 그동안 만난 고객은 다 정말 우량고객들이에요. 우량고객 주위에는 우량고객들이 모이게 마련이더군요.” 트럭은 1대 가격이 5천만원 이상하는 고가다.
그러다 보니 불량고객도 많고, 사기꾼도 있다.
하지만 그의 고객들은 한번도 할부금으로 문제를 일으킨 적이 없다.
“IMF 때 많은 영업사원들이 부실채권 때문에 회사를 그만뒀어요. 하지만 저는 그런 게 전혀 없었죠. 아마 회사 내에서 제가 유일할 거예요.” 그는 항상 고객들을 형제나 가족처럼 대한다.
새 고객이 생기면 가능하면 부인들까지 알려고 노력한다.
전화가 안 되면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게 아닌지 걱정돼 찾아가본다.
“트럭 하시는 분들은 하루종일 혼자 차 안에 있게 되죠. 그냥 전화 한 통해서 내일 비올 것 같다는데, 내일 어떤 걸 싣느냐 묻는 정도지요. 가능하면 편안하게 해드리려고 하는 거죠.” 그러다 보니 요즘에는 차주 부인들이 부부간의 문제를 상담해오는 경우도 적지 않다.
- 가장 힘들었던 때는? “지방에 많이 다니다 보니 아이들이 아프다고 해도 가줄 수가 없어요. 그럴 때 가슴이 아프고, 일이 먼저인가, 아이들이 먼저인가 혼란이 생기죠. 한번은 지방에 있는데 아이들이 열쇠를 잃어버려 집에 못 들어간다는 전화가 왔어요. 날씨는 춥고, 집에까지 가려면 2시간은 족히 걸리고. 어디든 가 있으라고 하고 걱정을 태산같이 하면서 왔더니, 큰아이가 동생을 데리고 이마트에 가서 책을 보고 있었어요. 정말 눈물이 났지요.” 하지만 그는 ‘형제 같은’ 고객들이 있어 떠나지 못하고 있다.
회사에서도 열심히 하는 그의 능력을 인정해줬다.
“관리직에는 아직 눈에 보이지 않는 차별이 남아 있지만, 영업은 그렇지 않아요. 실적이 모든 걸 말해주기 때문이죠.” 그는 월급 체계가 능력금 위주로 바뀐 2002년부터 억대연봉을 받고 있다.
그가 가장 보람을 느낄 때는 모두 어렵다고 하는 일을 해냈을 때다.
“대우차는 아예 사지도 않는 운송업체가 있었어요. 제가 한번 가보겠다고 하니까 윗분들이 시간 낭비라고 말리더군요. 그래도 저는 꼭 해내고 싶었어요.” 처음에는 한달에 한 번 그 업체를 찾아갔다.
물론 업체 사장은 그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러다 3주에 한번으로 방문 횟수를 늘렸다.
여직원들 간식으로 도너스를 사들고 가기도 했다.
사장이 있을 때는 눈치보느라 직원들도 말도 걸지 못했지만, 사장이 없을 때는 그에게 정보를 주기도 했다.
그러다 2주일에 한 번, 1주일에 한 번으로 점점 방문간격을 줄여나갔다.
그렇게 1년을 하니, 업체 사장이 윗분을 모시고 오라고 했다.
“자기는 정말 대우차에는 관심이 없는 사람이지만 이 사람의 성의가 기특해 1대만 사주겠다고 하더군요. 그렇게 시작해서 10대쯤 팔아주셨지요.” 그는 방문 업체를 선택해간다.
아무 업체나 가지 않는다는 뜻이다.
채권이 부실하거나, 할부 관리가 안 되는 곳은 스스로 발을 끊는다.
상대해서 이길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업체 현황은 아주 좋은데, 대우차를 안 쓰는 곳은 무조건 가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거칠지만 순수하고 정 많은 차주들 - 가장 기억에 남는 고객은? “참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났지요. 어떻게 이런 힘든 일을 하느냐며 항상 밥 먹고 가라고 하시는 분도 있고, 정말 자신의 사업 파트너로 인정해주시는 분들도 있어요. 그런 분들이 저를 세워주고, 키워주셨다고 생각해요.” 그는 “큰 차 하시는 분들은 정말 순수하다”고 했다.
좋은 말도 욕으로 하는 일이 다반사지만, 마음만은 화이트칼라들보다 훨씬 순수하고 정도 많다.
“간혹 오해가 생기는 일도 있지요. 그럴 때면 버럭 화를 내기도 하지만, 오해가 풀리면 먼저 미안하다고, 꼭 한번 들리라고 전화하시죠.” 그런 오해들이 오히려 고객과 더 가까워지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그는 이 일을 하려는 여자 후배들이 많지 않아 안타깝다.
“저 때문에 회사에서 여자를 뽑지 않으려 하면 안 된다는 생각에 더 열심히 했어요. 그래서 길을 닦아놓았는데, 하려는 후배들이 없어요. 트럭일 두려워 하는 건 여자나 남자나 마찬가지에요. 여자에게도 충분히 장점이 있는 일이죠.” 장승규 기자 skjang@economy21.co.kr
박 차장의 영업 비법 트럭 영업을 하려면 장거리를 뛰어야 한다. 트럭 업체들이 주로 시 외곽에 있기 때문이다. 한번 나가면 200~300km 이동은 기본이다. 거의 택시 기사와 맞먹는 수준인 셈이다. 박 차장은 항상 차에 기도 노트를 갖고 다닌다. 그러면서 하루에도 몇 번씩 펴본다. 영업은 수시로 혼자서 결정하고 판단해야 하는 일의 연속이다. 혼자 판단이 서지 않을 때면 기도 노트를 편다. 그리고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고, 쓴다. 박 차장은 “스스로 발버둥을 치는 것”이라고 했다. 기도를 쓰면서는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그는 어려서부터 기독교 환경에서 자랐다. 지금도 종로 5가에 있는 연동교회에 빠지지 않고 나간다. “제 엄청난 힘의 근원은 기도 노트에서부터 발생하는 것 같아요. 제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하느님 제가 저걸 꼭 하고 싶은데 도와주실 거죠, 할수 있게 돕는 사람을 붙여주실 거죠, 마음속으로 기도를 올리죠. 그러면서 해나가는 거예요. 그동안 혼자 그러고 다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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