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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런트]출총제 폐지 ‘조건부’로 가닥
[커런트]출총제 폐지 ‘조건부’로 가닥
  • 장승규 기자
  • 승인 2006.04.2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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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는 출총제 폐지 이후 도입될 사후 규제 방안에 촉각을 곤두 세우고 있다.
지난 4월 19일 취임한 권오승 공정거래위원장. ⓒ한겨레 황석주
순환출자금지법 등 다양한 아이디어 제시...7월부터 TFT에서 본격 논의 최근 출자총액제한제를 둘러싼 논란이 ‘폐지 이후의 대안’으로 모아지고 있다.
권오승 공정거래위원장은 지난 4월19일 취임 후 가진 첫 정례브리핑에서 “출총제가 문제가 많은 제도이긴 하지만 대안이 나올 때까지 유지할 수밖에 없다”며 “현재 대안을 열심히 찾는 중”이라고 말했다.
권 위원장은 “개인적인 아이디어는 있지만 지금 얘기하기는 이르다”고 덧붙였다.
정부여당의 주요 관계자들 사이에 출총제의 문제점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는 것은 이미 여러 차례 확인된 바 있다.
지난 3월 초 강봉균 열린우리당 정책위 의장이 출총제를 기업의 자율규제 방식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한 것을 시작으로, 한덕수 경제부총리와 박승 전 한은총재도 출총제 재검토 또는 폐지 의견을 밝혔다.
지난 3월28일에는 대한상공회의소 초청 특강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출총제가 기업들에게 필요 이상의 부담을 주는 측면이 있다”며 “이를 사후적 규제로 전환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4월17일 노무현 대통령은 경제부처 장관들을 불러 비공식 간담회를 갖고 출총제 폐지 여부를 논의하기도 했다.
정부, ‘조건부 폐지’에 한 목소리 지금까지 정부쪽에서 흘러나온 이야기들은 ‘조건부 폐지’로 정리된다.
출총제는 재벌들의 순환출자를 간접적으로 억제하기 위해 자산 6조원 이상인 대규모 기업집단에 소속된 회사는 순자산의 25% 이상을 다른 회사에 출자할 수 없도록 제한한 것이다.
그동안 전경련을 중심으로한 재계는 이 제도가 기업의 투자를 저해한다며 폐지를 주장해왔다.
하지만 정부의 조건부 폐지론이 재계의 이러한 주장을 전적으로 수용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동규 공정위 경쟁정책본부장은 “출총제가 기업 투자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은 지난 2004년 공정거래법 개정 과정에서 충분히 검증된 사실”이라며 분명하게 선을 그엇다.
당시 출총제가 기업 투자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많은 실증적 분석을 실시했고, 기업대상 설문조사도 했지만 거의 부정적인 영향이 없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는 것이다.
이 본부장은 “출총제가 기업 투자를 제한한다는 재계의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고 못박았다.
정부의 출총제 폐지 검토는 좀더 복잡한 배경에서 출발하고 있다.
우선 사전적 규제보다는 사후적 행위 규제가 경제학적으로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미리 자산의 25% 이상 출자하지 못하도록 규제하는 것보다는, 소유지배구조를 왜곡시키는 행위를 할 경우 이를 사후적으로 규율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현행 출총제의 경우도, 기업들이 나름대로 합리적인 이유를 갖고 있거나 불가피한 출자를 인정해주기 위해 예외와 적용제외 조항을 계속 늘려오면서 실효성이 크게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김상조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소장은 “출총제가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게 바람직하지만 충분한 사후적 규제장치가 마련된면 굳이 폐지에 반대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재계의 주장대로 단순히 출총제 폐지로만 끝나는 문제가 아닌 셈이다.
때문에 출총제 폐지는 이를 대체할 수 있는 사후적 규제장치에 대한 논의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현재 공정거래법 강화, 순환출자금지법 도입, 사업지주회사 적용, 상법 강화 등 다양한 대안들이 쏟아지고 있다.
우선 김성조 소장은 “출총제를 폐지하기 위해서는 현행 공정거래법이 한층 강화되야 한다”고 말했다.
특수관계인 또는 계열사간 거래에서 발생하는 불공정 행위를 공정위가 충분히 조사할 수 있고, 실효성 있는 조치를 내릴 수 있는 방안이 먼저 마련되야 한다는 것이다.
김 소장은 “현재의 부당내부거래 개념은 지난치게 조건이 까다롭다”며 “경제력 집중을 억제한다는 차원에서 보다 포괄적인 개념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부당내부거래의 개념이 너무 엄격해 재벌들의 불공정 행위를 충분히 규제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 소장은 “공정위의 계좌추적권을 한시적으로 부여할 게 아니라 항구적으로 줘야 한다”며 “실효성 있는 규제를 위해서는 공정위가 강제조사권도 가져야 한다”고 했다.
순환출자금지법은 지난해 채수찬 열린우리당 의원이 처음 제기했던 방안이다.
‘A계열사-B계열사-C계열사-D계열사-A계열사’로 이어지는 환상형 순환출자를 법으로 금지하자는 것이다.
출총제가 그룹 전체의 출자 한도를 제한해 순환출자를 억제하는 방식이라면, 채 의원의 아이디어는 순환출자 자체를 직접 규제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할 경우 재계의 거센 반발을 부를 수 있다.
이승철 전경련 상무는 “가공자본을 만들거나 오너의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순환출자는 거의 없다고 본다”며 “대부분 정부정책에 순응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졌거나, 나름대로의 합리적인 이유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런 ‘순수한’ 순환출자까지 법으로 금지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반면, 김상조 소장은 순환출자금지법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김 소장은 “순환출자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연결고리의 어딘가를 끊어야 한다”며 “특정 연결고리를 지정해 출자관계를 해소하라고 명령할 수 없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고 했다.
대부분의 순환출자의 경우 상대적으로 지분율이 낮거나, 핵심업종이 아닌 계열사가 들어가 있는 경우가 많고, 재벌 입장에서는 이런 부분을 골라 끊으면 그만이라는 것이다.
또한 일부 재벌의 경우 순환출자의 핵심고리에 금융계열사가 들어가 있다.
유가증권 투자가 본업인 이들 금융계열사의 출자를 불범으로 규정해 금지해야 하는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사업지주회사 적용하면 재벌체제 와해 또 다른 대안으로 논의되고 있는 것은 바로 재벌계열사 가운데 핵심기업을 사업지주회사로 간주해 규제하는 방안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지주회사가 되려면 2가지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우선 자회사를 지배하고 있어야 한다.
두 번째로는 자회사의 주식가액 합계액이 해당 지주회사 자산의 50%를 넘어야 한다는 조건이 있다.
현재 논의되고 있는 것은 이 가운데 두 번째 조건의 대폭 완화시키는 것이다.
현행 대로라면 삼성전자는 사업지주회사가 되는 게 불가능하다.
자산 규모가 워낙 커 자회사들의 주식가액이 삼성전자 자산의 50%를 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는 다른 재벌들의 경우도 사정의 거의 마찬가지다.
김 소장은 “이들 핵심기업을 사업지주회사로 간주해 규제하는 것은 재벌체제를 근본적으로 와해시킬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방안”이라고 말했다.
지주회사가 될 경우 엄격한 규제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우선 주주회사는 부채비율이 100%를 넘어서는 안 된다.
또한 자회사 지분을 상장기업은 30%, 비상장기업은 50% 이상 소유해야만 한다.
게다가 일반지주회사는 금융자회사를 거느릴 수 없으며, 반대로 금융지주회사는 산업 자회사를 거느릴 수 없다.
금산분리 원칙을 자동적으로 따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가운데 일부라도 적용하기 시작하면 현행 재벌체제는 뿌리채 흔들 수밖에 없다.
상법을 통한 규제는 이중대표소송제 도입과 회사기회 편취금지 조항 신설 등을 포함한다.
김 소장은 “만약 회사기회 편취금지 조항이 있었다면,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글로비스는 회사를 만들 때부터 주주들의 소송 대상이 됐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러한 대안들에 대한 논의는 아직은 아이디어 차원에 머물고 있다.
이동규 본부장은 “출총제 폐지에서부터 순환출자금지법까지 극과극의 다양한 대안들이 나오고 있는데 아직은 정리된 것은 없다”며 “7월부터 재계와 시민단체, 관련정부 부처가 함께 참여하는 태스크포스팀(TFT)에서 본격적인 논의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했다.
장승규 기자 skjang@economy21.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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