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6 17:03 (금)
[커버]‘처음처럼’ 돌풍 소주업계‘태풍’으로 잇는다
[커버]‘처음처럼’ 돌풍 소주업계‘태풍’으로 잇는다
  • 정재학 기자
  • 승인 2006.05.02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난 밤에 좀 과음을 했습니다.
” 두산 주류BG의 한기선 사장(55)은 만나자마자 술 얘기부터 꺼냈다.
과음한 얼굴 치고는 나빠 보이지 않았다.
대장암으로 투병했다는 얘기까지 들은 터라 걱정도 됐다.
암으로 고생을 했는데 술을 그렇게 많이 마셔도 되느냐는 질문에 “그래도 먹고 살아야지 않느냐”며 웃었다.
한 사장은 요즘 기분이 좋다.
소주업계로 컴백한 후 공들여 만든 첫 작품이 히트를 쳤기 때문이다.
두산에서는 ‘산’ 이후 5년 만에 새롭게 선보이는 브랜드다.
돌풍은 길거리에서부터 감지됐다.
2월 중순 제품 출시와 함께 120ml 용량의 미니어처 술병을 나누어주는 행사에 젊은층의 반응이 폭발적이었던 것이다.
‘귀엽다’ ‘깜찍하다’는 소리가 나오면서 마시라고 준 술을 안 마시고 집으로 가져가 장식용으로 보관하는 사람들까지 생겨났을 정도다.
그 반응은 바로 술집으로까지 이어졌다.
술집에서 ‘처음처럼’을 외치는 주당들의 목소리가 커졌음은 물론이다.
“신제품을 발표하기 직전까지 소주 시장에서 우리 회사의 시장 점유율이 5.3% 정도였습니다.
2월 중순에 제품을 출시했는데 그달 말 점유율이 7.33%까지 올라갔죠. 20일 만에 2% 가까이 상승한 겁니다.
아직 자료가 집계되지 않은 상태인데 3월 말 기준으로 보면 9% 내외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소주의 대명사처럼 불리는 ‘참이슬’의 진로도 ‘처음처럼’의 선전에 바짝 긴장한 상태다.
‘처음처럼’이 20도의 순한 소주를 표방하고 나서면서 진로도 20.1도짜리 제품으로 맞대응하고 있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소주시장에서 두산은 진로의 경쟁상대가 되지 못했다.
진로가 전국 시장 점유율 55%, 서울 및 수도권 점유율 90%를 가지고 있는데 비해 두산은 전국 시장 5%, 수도권 시장 10%로 전체 시장에서 진로에 비하면 1/10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과 두 달 만에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졌다.
“전체 소주 시장에서 서울 경기 지역의 비중이 40% 정도됩니다.
40% 시장에서 점유율을 30% 정도 차지하면 전국적으로는 12% 정도됩니다.
강원도 시장이 일부 있기 때문에 이것을 포함하면 연내에 전국적으로 15% 시장은 점유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드라마틱한 ‘성공 스토리’도 화제 ‘처음처럼’의 돌풍에는 한기선 사장 개인의 드라마틱한 인생사도 한몫 하고 있다.
대장암으로 투병한 병력이 있는데다, 소주 시장의 경쟁업체인 진로 출신이다.
또 진로 근무 당시 참이슬을 개발한 주역이라는 점도 화제가 됐다.
자신이 만든 브랜드와 경쟁을 하게 된 ‘운명’에 처했기 때문이다.
“소주 쪽은 안 가려고 했어요. 가면 참이슬과 경쟁해야 하잖아요.” 대장암 치료를 마치고 건강을 회복하자 두산에서 오퍼가 왔다.
하지만 진로에 몸 담았던 입장 때문에 선뜻 결정을 하지 못했다.
간다고 해도 참이슬에 대항할 만한 ‘카드’가 없다는 점도 한 사장을 머뭇거리게 만들었다.
5~6개월이 흘렀다.
한 사장은 2003년 대장암 2기 판정을 받은 후 회사를 떠나 집에서 투병생활을 했다.
하루 종일 케이블 TV의 건강 채널을 끼고 살 정도로 오로지 관심사는 ‘건강’이었다.
이때 알칼리수의 효능에 대해서 알게 됐고 관련된 서적도 수십 권 독파했다.
전기 분해를 해서 알칼리 환원수를 만드는 정수기를 사다가 매일 3~4리터씩 물을 마셨는데 그 효과를 톡톡히 봤다.
한 사장은 바로 이 알칼리수라면 참이슬과 경쟁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참이슬도 정말 좋은 술입니다.
진로의 제조기술도 뛰어나고요. 10년 가까이 소비자들이 자랑스러워하면서 먹었던 술 아닙니까. 하지만 참이슬이 처음 나왔던 때와 지금은 분명 소비자의 요구가 달라졌습니다.
” 참이슬 개발 당시 소비자들이 깨끗한 소주를 원했다면 지금은 건강에 대한 요구가 커졌다는 것이 한 사장의 지적이다.
두산 측은 신제품 개발을 위해 1년 6개월간 4천6백50여 명의 소비자를 대상으로 제품 컨셉트, 맛, 제품명 및 패키지 디자인, 포지셔닝 관련에서 서른 번이 넘는 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를 바탕으로 신제품 컨셉트을 잡아나갔다.
“참이슬에 대해서는 특별히 소비자들의 불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술 자체에 대한 불만을 물었더니 가장 많이 나왔던 이야기가 바로 숙취해소였습니다.
모든 술이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문제이자 아무도 해결하지 못한 문제였던 거죠.” 알칼리 환원수로 만들었기 때문에 미네랄이 풍부하고 북어국에 많은 것으로 알려진 알라닌 성분이 알코올 분해 대사를 돕기 때문에 숙취 해소에 도움을 준다는 설명이다.
숙취문제 해결 ‘알칼리수’로 도전 “알칼리수는 보통 물에 비해 물의 입자가 25% 작기 때문에 술이 잘 넘어가고 술맛도 좋습니다.
알칼리성이기 때문에 산성 안주를 많이 먹는 우리 식습관에도 잘 맞고 위에서도 빨리 소화가 되죠.” 컨셉트가 결정되자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한 사장은 자신이 읽었던 알칼리수에 대한 책들을 마케팅팀 직원들에게 나눠주고 읽도록 하기도 했다.
첫 번째 난관은 정수기에서 왔다.
막상 알칼리 환원수를 만들려고 보니 가정용과 달리 산업용으로 사용할 만한 대용량 제품이 없었던 것이다.
“중소기업이 한 군데 있긴 했는데 제품 품질에 대해서 확신할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처음엔 가정용 정수기를 여러 대 이어서 만들 생각까지도 했습니다.
” 그런던 중 일본 기린맥주의 계열사 중 한 회사가 후지산에서 물을 받아다 전기분해 알칼리 환원수로 만들어 비싸게 판다는 얘기를 듣게 됐다.
그래서 직원을 그 회사로 견학을 보냈다.
가서 그 회사에서 사용하고 있는 정소기 모델명을 적어와 제조업체로 연락을 취해서 간신히 정수기를 구할 수 있었다.
“세 대로 시작을 했는데 예상보다 판매가 잘되는 바람에 지금 추가로 다섯 대를 주문해놓은 상태입니다.
아마 5월 중에 국내에 들어올 수 있을 겁니다.
” 제품 개발이 다 된 상태에서 막판까지 고민했던 것은 브랜드였다.
이미 알려진 대로 ‘처음처럼’은 성공회대 신영복 교수의 시에서 따온 것이다.
숙취가 없이 그 다음 날에도 몸 상태가 ‘처음처럼’ 유지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1천여 개가 넘는 브랜드 중에서 최종 선택된 것이다.
신 교수에게 브랜드 값으로 사례를 하려고 했더니 한사코 거절하는 바람에 오히려 난처한 입장이 됐던 것이다.
그런 고민을 전해듣고 학교 측에서 “그러면 학생들을 위한 장학금으로 대신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제안해 흔쾌히 받아들였다.
시 제목 뿐만 아니라 서체도 신 교수의 손 글씨를 그대로 가져왔다.
거기에서 읽기 어려운 부문만 약간 손을 본 상태다.
글씨 위에 검정색 V자 모양의 그림은 맨 처음 기쁜 소식을 전해준다는 ‘까치’와 처음 돋아나는 새싹 이미지를 형상화한 것이다.
소주 이름 같지 않은 브랜드 역시 성공요인으로 빼놓을 수 없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박미향 기자 주종 가리지 않지만 ‘소주가 좋아’ ‘처음처럼’이 약진하고 있지만 진로의 자리를 넘보기엔 아직도 격차가 크다. 전국적인 영업망에서도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열세에 있기 때문이다. 두산의 경우 서울, 경기, 강원 지역 위주로 유통망이 구성되어 있다. 한때 몸 담았던 회사와 경쟁하는 것에 대해서도 때로 불편한 점이 있지만 개의치 않고 있다. “경쟁이라는 것이 권투처럼 링 위에 올라가서 서로 마주보고 싸우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제품은 이런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소비자에게 제안하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경쟁업체와 맞부딪힐 일도 없습니다.” 한기선 사장은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대우중공업에서 처음 직장생활을 했다. 1992년 진로그룹 기획조정실로 옮겨온 후 진로 부사장, 진로발렌타인스 부사장 등을 역임했다. 2003년 오비맥주로 옮겨와 부사장을 맡다가 1년 만에 대장암으로 회사를 그만뒀고, 완쾌 후 두산 주류BG에 합류, 2005년부터 대표를 맡고 있다. 그는 소주, 맥주, 양주를 두루 거쳤지만 개인적으로 소주를 가장 좋아하고 즐겨 마신다고 한다. 대장암 발병 전에는 하루에 서너 병씩 소주를 마시고 한 달에 80여 차례 이상 술을 마신 적도 있지만 요즘들어 주량을 많이 줄였다. 달라진 것은 주량뿐이 아니다. 아프기 전에는 삼겹살 등 육류 안주를 즐겼지만 지금은 나물이나 야채 등 채식 안주를 즐긴다. 술 마케팅의 귀재로 불리면서 대부분의 주종을 섭렵했지만 기회가 된다면 제대로 된 발효주를 한번 만들어보고 싶은 개인적인 희망도 가지고 있다. 정재학 기자 jaehak@economy21.co.kr 사진 박미향 기자 blue@economy21.co.kr 처음처럼’ 마케팅 공신 미니어처 “그 작은 병 어디서 구해?” ⓒ박미향 기자
처음처럼’의 성공 이야기를 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미니어처 마케팅이다.
두산 측은 제품 출시에 앞서 120ml 용량의 미니 소주병 1백50만병을 제작, 길거리 마케팅을 벌였다.
백세주 등 일부 주종에서 판촉을 위한 미니어처 제작을 시도한 적이 있지만 소주업계에서는 처음 시도됐다.
한 사장은 “술이 성공하려면 한번 마셔본 사람이 괜찮다고 느껴서 계속 마셔야 하는데 그렇게 하려면 우선 맛을 보여줘야 하는 게 아니냐”며 미니어처 마케팅을 시도한 배경에 대해서 설명을 했다.
거기엔 맛에 대한 자신감도 함께 했다.
처음에는 소주잔에 뚜껑을 단 패키지를 생각했지만 국내에서 만들기 어렵고 수입하기에는 원가 부담이 너무 커서 미니어처 소주병으로 최종 낙점했다.
미니어처 술병에 관심이 있는 주당들이라면 조만간 모든 회사의 미니어처 병을 한꺼번에 손에 넣을 기회를 가질 수 있게 될 전망이다.
5월2일~4일까지 코엑스에서 열리는 2006 서울 국제주류박람회에서 주류공업협회의 주도로 10개 소주회사의 대표 상품을 80ml짜리 소용량으로 만든 미니어처 세트를 선보일 계획이라고 한다.
진로 독주, 두산 ‘나홀로 성장세’ 전북, 경기 술 소비 크게 늘어 주류공업협회에서 지난 4월27일 집계한 자료(21% 기준)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3월 말까지 3개월간 국내 소주시장에서 진로가 54.5%를 차지, 부동의 1위를 고수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금복주(9.6%), 대선(8.6%), 무학(7.6%), 두산(6.8%) 등이 그 뒤를 이었다.
하지만 3월 한 달만 놓고 보면 판도 변화가 눈에 띄었다.
진로(54.5%), 금복주(9.3%), 대선(8.2%)에 이어 두산이 8.0%로 4위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나 신제품 출시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두산 측 관계자에 따르면 “주류공업협회 자료가 21% 소주로 환산해서 작성되었기 때문에 20% 소주들은 실제 병수로 따지면 5% 정도 통계에서 손해를 보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시장 전체로는 진로의 독주가 계속된 가운데 두산의 상승세가 두드러졌다.
진로, 금복주, 대선 등 상위권 3개사가 모두 전년 동기대비 소폭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한 반면 두산은 신제품 출시의 영향으로 2.8%의 성장세를 나타냈다.
특히 서울 지역에서 두산의 상승세가 돋보였다.
두산은 서울 지역에서 13.9%로 전년 동기대비 7.6% 성장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같은 기간 진로가 두산과 똑같은 폭인 7.6%의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해 대조를 보였다.
지역별 소주 판매비중을 보면 서울(26.9%)과 경기도(19.6%)를 합친 수도권이 46.5%로, 국내 소주 소비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경북(10.3%), 경남(8.8%), 부산(8.0%), 전남(6.7%), 충남(6.4%), 강원도(4.0%), 전북(3.6%), 충북(3.2%), 제주(1.5%)의 순으로 나타났다.
대부분의 지역이 전년대비 소폭 하락한 데 비해 전북 8.3%, 경기(6.0%) 지역은 소비가 크게 늘어난 것으로 나타나 눈길을 끌었다.
△약력 1994년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졸업 1978년 대우중공업 입사 1988년 진로그룹 기획조절실 전략기획팀장 1992년 진로 이사 1994년 진로 상무이사 1995년 진로종합유통 전무이사 1998년 진로영업총괄담당 전무이사 2000년 진로발렌타인스 부사장 2002년 오비맥주 부사장 2004년 두산 주류BG 부사장 2005년 두산 주류BG 사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