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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정부는 '태평' 국민은 '불감' 국제유가 폭등 '강건너 불구경'
[커버]정부는 '태평' 국민은 '불감' 국제유가 폭등 '강건너 불구경'
  • 이정환 기자
  • 승인 2006.05.0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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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럴당 100달러 전망 등 세계경제 충격 고유가 체감 못하고 유류소비량 증가세 먼저 깜짝 놀랄 만한 통계를 소개한다.
휘발유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는데 휘발유 소비가 줄어들기는커녕 오히려 늘어나고 있다.
대한석유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휘발유를 쓰는 자동차는 모두 780만여대, 1대당 평균 휘발유 소비량은 1천162리터로 2004년보다 1.5% 늘어났다.
2000년부터 5년 동안 꾸준히 줄어들던 휘발유 소비량이 휘발유 가격이 치솟았던 지난해부터 다시 늘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차량 대수가 늘어나는 것보다 소비량이 늘어나는 속도가 더 빠르다는 부분도 주목된다.
차량이 늘어난 것도 문제지만 차량 운행이 더 늘어났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다.
자동차 1대당 평균 휘발유 구매 금액은 지난해 평균 166만3천996원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대한석유협회는 보고서에서 “소비 심리 회복과 주 5일제 확산 등으로 여행을 즐기는 인구가 늘었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유가폭등 불구 휘발유소비 증가 자동차 운전자들이 이처럼 유가 충격을 몸으로 느끼지 못하는 것은 환율 하락 덕분에 휘발유 소비자 가격이 그리 크게 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휘발유 가격은 2004년 리터당 1천365원에서 2005년 1천432원으로 4.9% 올랐다.
올해 들어서는 4월 말 기준으로 1천509원까지 5.4% 더 올랐다.
2004년과 비교하면 대략 차량 1대당 연간 평균 20만원 정도 비용이 더 들어간다는 계산이 나온다.
국제 유가가 지난 1년 동안 40% 이상 오른 것과 비교하면 휘발유 가격이 10% 정도 오른 것은 그리 심각해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중대형 승용차가 부쩍 늘어난 것도 이런 위기 불감증과 무관하지 않다.
중대형 승용차의 점유율은 2000년 28.3%에서 작년에는 53.5%로 거의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한때 30%에 육박했던 경차 점유율은 3.8%까지 10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가까운 일본과 비교하면 상황이 더 명확해진다.
일본은 지난해 1984년 이후 24년 만에 휘발유 소비가 처음으로 줄어들었다.
전기 엔진을 장착한 승용차나 하이브리드카 등의 판매가 늘어난 덕분이다.
그동안 휘발유 소비가 줄어든 것은 1974년 석유 파동과 이상기온 현상을 보였던 1984년, 두 차례 밖에 없었다.
장기 불황에서 벗어나 경기가 빠른 속도로 회복되고 있는 상황이라는 걸 감안하면 일본의 휘발유 소비 감소는 더욱 놀랍다.
일본에서는 경차 점유율이 28%를 웃돈다는 사실도 주목할 만하다.
우리나라가 800CC 이하를 경차로 규정하는데 일본은 660CC 이하가 돼야 한다.
그런데도 일본의 경차 판매는 오히려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다.
프랑스는 경차 점유율이 39%로 일본보다 더 높다.
우리나라는 GM대우의 마티즈가 남아있을 뿐 현대 아토스나 기아 비스토 등은 일찌감치 모두 단종됐다.
경차가 찬밥 대접을 받는 건 세계적으로 우리나라에 국한된 현상이다.
우리나라의 국민 1인당 에너지 소비량은 소득 수준을 감안하면 세계 최고 수준이다.
에너지관리공단에 따르면 국민 1인당 에너지 사용량을 1인당 국내총생산으로 나눈 소득 대비 에너지 사용량이 우리나라는 0.05인 반면 일본은 0.018밖에 안 된다.
독일은 0.035, 프랑스는 0.036, 미국은 0.049로 모두 우리나라보다 낮다.
우리나라는 국내총생산은 세계 11위인데 석유 소비량은 세계 7위로 경제 규모에 비해 석유 소비가 지나치게 많은 편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는 마냥 태평한 모습이다.
산업자원부가 최근 내놓은 고유가 대응 방안은 정부의 문제의식의 수준을 보여준다.
사용하지 않는 조명과 컴퓨터를 끄고 승용차 요일제에 참여하자는 등의 절약 캠페인이 고작이다.
차 트렁크에 불필요한 짐을 싣지 않으면 연간 95억원, 다림질을 한꺼번에 모아서 하면 117억원, 압력밥솥을 사용해 조리시간을 단축하면 720억원을 절감할 수 있다는 등의 내용도 포함돼 있다.
정부의 유가 예측은 해마다 크게 빗나갔다.
2004년에는 24달러 수준으로 예상했는데 30달러를 가볍게 웃돌았고 올해에도 55달러 수준으로 보고 전망을 잡았는데 넉 달 만에 이미 70달러를 넘어섰다.
정부뿐만 아니라 온갖 연구소의 경제 전망도 모두 빗나갔다.
재정경제부 김석동 차관보는 상황이 이런데도 “환율이 낮아 유가가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아직 제한적”이라고 말해 빈축을 사기도 했다.
변양균 기획예산처 장관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환율이 하락하면서 유가상승분이 상쇄돼 국민이 유가상승의 충격을 못 느끼고 있으나 환율이 다시 올라가는 시기가 되면 고유가 충격이 국민에게 그대로 전달된다”며 “이때를 대비, 국민들이 감내할 수 있는 범위에서 에너지 가격을 점진적으로 올리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변 장관은 일부에서 거론되고 있는 유류세 인하 주장에 대해서도 단호하게 반대 입장을 밝혔다.
산자부가 추진하고 있는 주유소 격주 휴무제 역시 본질적인 대안은 아니라는 지적이 많다.
과거에도 도입이 검토됐다가 공정거래위원회의 반대로 무산된 실패한 정책을 재탕하려 한다는 것이다.
공정거래법에 위반되는데다 무엇보다도 국민들 불편만 가중될 뿐 소비 절감 효과는 크지 않다는 우려도 있다.
승용차 요일제나 10부제 역시 구호에 그칠 뿐 제대로 지켜지는 곳이 거의 없을 정도다.
정부의 안일한 대책이 무색하게 중남미를 중심으로 자원 민족주의가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는 것도 우려스럽다.
베네수엘라와 볼리비아 등이 유전과 광산 등 천연자원의 국유화를 선언하면서 자칫 자원 전쟁으로 확산될 조짐까지 보이고 있다.
이 지역 유전 개발에 참여했던 국내 업체들은 최악의 경우 투자 비용을 송두리째 날릴 위험까지 있다.
중남미 뿐만 아니라 러시아 등도 천연자원에 대한 국가 통제를 강화하는 추세다.
무엇보다도 가장 큰 걱정거리는 역시 이란 핵 문제다.
이란은 하루 생산량이 400만 배럴에 이르는 세계 4위의 원유 생산국이다.
세계 잉여 생산량이 하루 100만 배럴 수준이란 사실을 감안하면 이란의 원유 공급에 차질이 생길 경우 세계적으로 또 한 차례 오일 쇼크가 닥칠 수 있다.
이란이 농축 우라늄 개발에 성공했다고 발표한 것이 지난 달 11일. 미국이 이에 강력히 저항하고 있어 최악의 경우 전쟁이 발발할 가능성도 있다.
이달 28일이 국제연합 안전보장이사회가 통보한 최종 시한인데 아마도 이란은 미국의 핵 개발 중단 압력을 거부할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미국이 이란을 선제 공격하거나 이란이 세계 석유 물동량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할 수도 있다.
이 경우 국제 유가가 또 한 차례 급등하는 것은 물론 세계가 걷잡을 수 없는 자원 전쟁에 휘말려 들게 된다.
세계자원연구소(WRI)에 의하면 1990년부터 2001년까지 우리나라 에너지 소비증가율은 110%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지난해 원유 수입량은 2.1% 늘어났는데 수입금액으로 보면 41.8%나 급증했다.
에너지 관련 수입금액은 667억 달러로 전체 수입금액의 25%에 이른다.
에너지의 97% 이상을 수입에 의존하는 우리나라로서는 산유국의 눈치를 볼 수밖에 다른 대안이 없는 상황이다.
정부는 뒤늦게 카자흐스탄이나 나이지리아 등 해외 유전 개발에 나서고 있지만 외국과 비교하면 아직 크게 열악한 수준이다.
우리나라의 석유 자주개발 비율은 겨우 4.1%, 일본이 10.3%, 중국이 18.0%인 것과 비교하면 얼마나 뒤처져 있는가 알 수 있다.
이탈리아와 프랑스는 이 비율이 각각 44.9%와 87.7%에 이른다.
산자부는 이 비율을 2010년까지 10%로 끌어올린다는 계획이지만 현재 수준조차 지킬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자원민족주의 확산, 산유국 눈치 심해져 만약의 사태를 대비할 유가 완충 준비금 역시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산업자원부는 이 준비금을 2008년까지 2조2천억 원으로 확대할 계획인데 올해 4월 말까지 5646억 원밖에 안 모였다.
처음 적립을 시작했던 1995년에만 해도 1천500억 원씩 적립했는데 1999년에는 500억 원으로, 2000년에는 100억 원까지 줄어들더니, 2004년과 지난해에는 단 한푼도 적립되지 않았다.
올해에도 예산이 배정돼 있지 않다.
유가 완충 준비금은 전쟁이나 테러 등 비상 상황에서 정부가 유가를 강제로 동결하는 대신 정유회사나 주유소의 손실을 보전해주기 위한 것이다.
1990년 걸프전 때 국제 유가가 폭등하자 정부가 유가를 동결하고 정유회사 등에 1조1천억 원 이상을 보전해준 바 있다.
문제는 이 역시 최악의 상황에서 선택할 수 있는 임시방편일 뿐 유가 급등의 근본적인 해법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무역협회에 따르면 유가가 현재 수준에 머물러 있을 경우 수출이 52억2천만 달러가 줄어들고 수입은 122억4천만 달러가 늘어난다.
무역 적자는 174억6천만 달러, 지난해 경상수지 흑자 165억 달러를 웃도는 수준이다.
삼성경제연구소는 미국이 핵 문제로 이란을 공격하거나 경제 제재를 가하고 이란이 보복성 석유 감산에 들어갈 경우 유가가 100달러 이상으로 뛸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했다.
위기감이 확산되자 산자부는 3월 말 기준으로 1억3천980만 배럴, 111일분의 석유를 비축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또 2008년 말까지 1억4천100만 배럴(146일치)로 늘리고 비축시설 용량도 1억4천600만 배럴로 확충하기로 했다.
산자부는 향후 원유 공급이 차질을 빚을 경우 비축유 방출 등으로 대응할 계획이다.
그러나 이 역시 비상 대책일 뿐 근본적인 해법이 될 수 없다는 지적이 많다.
청와대는 몇 차례 대책회의를 가졌으나 “고유가 국면이 계속되면 거시정책 기조를 다시 점검하겠다”는 원론적인 대책만 반복했다.
당분간은 에너지 절약 등 미시적인 차원에서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다.
이정환 기자 cool@eocnomy21.co.kr
박유가 오르는데 정유회사들은 돈벼락
미국에서는 국제 유가 급등과 맞물려 사상 최대의 실적을 기록한 석유 회사들에게 초과이득세를 물리자는 논란이 한창이다.
이른바 횡제세의 개념이다.
세계 최대 규모의 석유메이저인 엑손모빌이 리 레이몬드 회장에게 4억 달러의 퇴직금을 지급하면서 논란이 더욱 확산되는 분위기다.
데니스 하스터트 공화당 상원의원은 조지 부시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내 정유회사들 폭리를 조사해야 한다고 촉구하기도 했다.
초과이득세는 이익의 50%를 세금으로 징수하는 제도. 이 제도가 통과되면 석유메이저들의 수익성은 크게 악화될 수밖에 없다.
다분히 중간 선거를 앞둔 민심 추스르기 성격이 짙지만 미국 국민들의 분노는 유난히 거세다.
이미 텍사스 남부에서는 엑손모빌을 상대로 불매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휘발유 값은 1갤런에 3달러 수준까지 치솟았는데 이들은 1.3달러로 낮출 때까지 불매운동을 계속한다는 입장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휘발유 가격은 미국과 비교해서 어느 정도일까. 1갤런을 리터로 환산하면 3.79리터. 1갤런에 3달러라면 1리터에 79센트가 된다.
환율 940원을 적용하면 1리터에 744원꼴. 미국의 휘발유 세율이 18.9%, 우리나라가 63.6%니까, 세전 가격은 미국이 603원, 우리나라는 1천509원 기준으로 549원이다.
세금을 빼고 계산하면 우리나라 휘발유 가격이 미국보다 10% 가까이 싸다는 이야기다.
물론 세금을 더하면 실제 소비자 가격은 우리나라가 미국보다 두 배 이상 비싸다.
우리나라는 1997년 가격 자율화가 이뤄진 뒤로는 정유회사들이 자율적으로 가격을 책정하고 있다.
그런데 대개는 시장점유율 1위인 SK가 가격을 책정하면 다른 정유회사들이 이에 맞추는 방식으로 결정된다.
공장 가동률이 100%가 안 되는 상황에서 SK 등은 마냥 가격을 올릴 수도 없는 입장이다.
국내 정유회사들도 폭리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정제마진과 크래킹마진이 늘어나면서 실적이 크게 개선되는 분위기다.
정제마진이란 정유회사가 원유를 들여와 정제·생산해 판매하고 남은 이윤, 크래킹마진은 휘발유와 휘발유의 원료인 벙커C유의 가격 차이를 말한다.
이 정제마진과 크래킹마진이 최근 사상 최고 수준까지 급등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한동안 정유회사들의 실적 개선 추세가 계속될 걸로 내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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