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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런트]국세청 ‘융단폭격’에 재계 ‘냉가슴’
[커런트]국세청 ‘융단폭격’에 재계 ‘냉가슴’
  • 이윤찬 기자
  • 승인 2006.05.1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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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여개 기업 전방위 세무조사...공정위도 압박수위 높여
ⓒ박미향 기자
정상명 검찰총장은 지난 1일 대검찰청 8층 소회의실에서 열린 확대간부회의에서 ‘현대차 비자금 사건’ 등 굵직한 경제사건의 보고를 받았다.
비장한 표정을 짓던 정 총장은 이런 말을 남겼다.
“수사상 시급을 요하는 사안이 아니면 선거 전까지 국가경제와 선거에 영향을 미칠 만한 대형 경제사건의 기획수사를 자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 환율하락, 고유가 등 최악의 경제상황에 검찰수사까지 맞물리면서 골머리를 앓던 재계는 내심 환영했다.
‘숨고르기’를 할 수 있는 여유도 찾았다.
하지만 재계 분위기는 여전히 뒤숭숭하다.
‘혹 하나 뗐더니 더 큰 혹이 붙었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검찰수사가 ‘일단 정지’했음에도 재계가 긴장의 끈을 놓지 않는 이유는 국세청 때문이다.
최근 국세청의 행보에는 거침이 없다.
초강도 세무조사를 실시하고 있다는 얘기다.
현재 세무조사를 받고 있는 기업만 해도 대략 100여개. 특히 이 같은 국세청 조사가 업종을 불문하고 전방위적으로 진행되고 있어, 파장이 만만찮다.
사실 이 같은 현상은 참여정부 출범 이후 계속되고 있다.
한나라당 이한구 의원에 따르면 국세청은 2003년 1월부터 지난해 6월까지 2년6개월 동안 총 5만9천787건의 세무조사를 실시했다.
그 과정에서 11조7천319억원을 부과했다.
연평균으로 환산하면 2만3천915건에 부과 금액은 4조6천928억원. 김대중 정부 3년간(2000~2002년) 평균 건수(1만6천647건)와 부과 금액(3조1천351억원)을 훌쩍 뛰어넘는 수치다.
그만큼 국세청 세무조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검찰 ‘일단 멈춤’ 국세청 ‘계속 조사’ 최근 가장 강력한 세무조사가 실시되고 있는 곳은 식음료업계. 국세청은 지난 3월16일~5월11일까지 빙그레, 오리온, 해태음료, 롯데삼강, 한국코카콜라보틀링 등 8개 업체에 대해 세무조사를 실시했다.
이 중 빙그레 등 일부 업체는 세무조사 연장통보를 받아 긴장하는 눈치다.
국세청 세무조사의 초점이 식음료업계의 오랜 관행 ‘무자료거래’에 맞춰져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무자료 거래’란 중간 도매상에 제품을 넘기면서 세금계산서를 발급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식음료업계로선 손쉽게 세금을 탈루할 수 있는 방법이다.
반면 국세청으로선 반드시 근절해야 할 ‘구악’이다.
실제 ‘무자료거래’를 통해 탈루되는 세금은 연간 수백억 원대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식음료업계가 국세청의 세무조사 연장에 대해 신경을 바짝 곤두세우는 이유다.
식음료업계 한 관계자는 “무자료 거래는 세금탈루의 한 가지 방법이다”면서 “국세청에 의해 무자료 거래가 색출되면 식음료업계는 큰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말했다.
은행권도 국세청 세무조사로 몸살을 앓고 있다.
중소기업은행은 10년 만에 세무조사를 받고 있다.
국세청은 오는 7월까지 약 2개월에 걸쳐 기업은행에 대한 세무조사를 벌일 방침이다.
기업은행측은 “정기 세무조사이기 때문에 신경 쓸 게 별로 없다”는 입장이지만 속내가 마냥 편한 것만은 아니다.
국민은행, 우리은행, 하나은행, 신한은행 역시 세무조사를 받았거나 받을 위기에 처해 있다.
금융상품 ‘엔화스와프 예금’과 관련, 신한은행은 무려 7개월간 세무조사를 받았다.
이를 취급했던 국민, 우리, 하나은행 등 일부 유력은행들 역시 세무조사 대상에 올라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엔화스와프 예금’이란 고객이 원화를 엔화로 환전해 가입하고 은행은 만기 시 엔화를 높은 환율로 되사주는 소위 ‘선물환(先物換) 계약’을 통해 연 4% 가량의 확정수익을 보장해주는 것이다.
‘엔화스와프 예금’은 일부 고소득층으로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2004년 8월에는 예금잔액이 7조 원에 달할 정도였다.
이는 은행들이 ‘엔화스와프 예금’을 유치하는 과정에서 ‘선물환 차익’에 대해 비과세를 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세청의 시각은 다르다.
국세청은 ‘선물환 차익’을 이자소득으로 간주, 추징할 계획이다.
국세청에 따르면 ‘엔화스와프 예금’은 대표적인 공격적 조세회피 수단이다.
은행권 안팎에 ‘엔화스와프 예금과 관련, 수백억대를 추징당할 수 있다’는 우려가 파다한 까닭이다.
이 밖에도 최근 국세청의 세무조사를 받은 업종은 비일비재하다.
지난 4월 말 웅진코웨이, 청호나이스 등 정수기업체에 대한 세무조사가 마무리됐다.
신세계, 현대백화점 등 백화점 업계도 세무조사를 받았거나 받고 있는 중이다.
우리홈쇼핑, 농수산홈쇼핑 등 홈쇼핑 업체의 상황도 마찬가지. 국세청은 단계적으로 홈쇼핑 업체에 대한 세무조사를 밟을 예정이다.
외국계 투기자본도 ‘꼼짝마’ ‘법의 사각지대’에 머무르면서 기세등등하던 외국계 투기자본도 안심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다.
국세청은 론스타가 대주주로 있는 외환은행에 대한 세무조사를 시작으로 뉴브리지캐피탈에 대한 조사에도 착수했다.
뉴브리지캐피탈은 제일은행 매각으로 1조1천500억원의 막대한 차익을 올렸음에도 세금을 단 한 푼도 내지 않아 ‘먹튀’라는 의혹을 받고 있다.
매각차익을 축소해 또 다른 ‘먹튀’로 지목되고 있는 한국까르푸도 역시 국세청의 세무조사를 받고 있다.
‘외국계 기업의 편법 매각차익에 대해 좌시하지 않겠다’는 국세청의 단호한 의지가 읽히는 대목이다.
재벌가의 변칙상속 증여나 탈세행위에 대해 전방위 압박을 가하고 있는 것도 최근 국세청 조사의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다.
지난 4월 파라다이스그룹의 편법 상속에 대해 심층조사에 착수한 것은 대표적 사례다.
국세청은 또 검찰수사로 불거진 현대기아차그룹의 편법 경영권 승계과정에 대한 조사도 조만간 진행할 방침이다.
이처럼 최근 국세청의 활약상(?)이 눈에 띄고 있다.
국세청의 조사가 잇따르자 재계는 ‘혹여 괜한 불똥이 튀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는 눈치가 역력하다.
그럼에도 국세청의 세무조사는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가속페달을 밟고 있는 모양새다.
국세청 한 관계자는 “국가재정의 근간을 책임지고 있는 국세청이 강력하게 세무조사를 실시하는 것은 당연하다”면서 “법의 테두리 안에서 공정한 조사를 펼치고 있다”고 강조했다.
표적 세무조사를 일삼던 예전의 국세청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전방위 압박으로 재계의 간담을 서늘케 하고 있는 국세청. 이들의 거침없는 행보가 언제까지 계속될지 재계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윤찬 기자 chan4877@economy21.co.kr
공정거래위원회도 재계 ‘압박’
부당내부거래 가능성 큰 10여개 기업 중점관리 ‘경제검찰’ 공정거래위원회도 ‘재계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공정위는 최근 부당 내부거래 가능성이 큰 10여개 기업집단을 선정, 중점 관리하고 있다고 밝혔다.
공정위 관계자에 따르면 10여개 기업집단에는 ▲순환출자 등으로 내부거래 발생 가능성이 크거나 ▲과거 법 위반 사실이 많았던 대기업이 포함돼 있다.
공정위는 이들 기업집단에 대해 부당 내부거래 혐의가 포착되면 직권조사를 한 뒤 제재할 방침이다.
공정위의 한 관계자는 “지금은 와치(watch)하면서 정보를 수집하는 수준”이라면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면 현장조사 등을 강행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공정위는 또 참여연대가 발표한 재벌의 편법상속 실태와 관련 부당 내부거래 가능성이 있는 기업에 대한 자료도 검토하고 있다.
참여연대는 지난 4월 38개 재벌기업의 계열사 250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64곳에서 70건의 각종 편법거래가 확인됐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 밖에도 공정위는 출자총액제한제도 등 대기업집단 정책의 개편 추진을 앞두고 대기업의 출총제 위반 여부에 대한 점검에 나서고 있다.
공정위는 지난해 출총제 대상 기업집단 소속 기업들을 대상으로 순자산의 25%를 초과해 다른 기업에 출자할 수 없도록 규정한 출총제 위반 여부를 5월~6월에 걸쳐 점검할 계획이다.
출총제 대상 기업집단 소속 기업은 출총제 대상으로 지정된 이후 1년 이내에 순자산의 25%를 초과해 다른 회사에 출자한 지분을 해소해야 한다.
지난해 출총제 대상 기업집단은 현대자동차, LG, SK, KT, GS, 한화, 금호아시아나,두산, 한국철도공사, 동부, 현대 등 11개였고 이들 기업집단에 소속돼 출총제를 적용받았던 기업은 194개였다.
이에 대해 공정위 한 관계자는 “오는 7월 또는 8월에 점검 결과를 발표할 계획”이라며 “위반 기업에 대해서는 주식처분 등 시정명령과 과징금 부과 등의 제재를 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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