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네임즈 조관현 사장이 한글 인터넷 키워드라는 아이디어로 특허를 받은 때가 1998년. 그 무렵 학생이었던 조 사장은 넷피아와 특허 공유 계약을 체결한다.
넷피아의 주장에 따르면 조 사장은 그때 넷피아와 경쟁 관계의 업무를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했다.
분쟁의 발단은 2003년, 조 사장이 디지털네임즈를 설립하고 넷피아와 경쟁을 시작하면서부터다.
한글 인터넷 키워드란 인터넷 브라우저의 검색 창에 'www'로 시작하는 주소 대신 한글 키워드를 집어넣으면 관련 웹 사이트로 연결되도록 하는 서비스다.
이를테면 '이코노미21'이라고만 집어넣어도 바로 이코노미21 홈페이지로 연결된다는 이야기다.
넷피아는 한때 90% 이상의 압도적인 시장 점유율을 기록하기도 했다.
키워드 등록 · 유지 비용도 1년에 19만8천원까지 올렸고 인터넷 사용자들 사이에서는 폭리라는 비판이 쏟아지기도 했다.
넷피아와 디지털의 지루한 분쟁 이 서비스는 주소 창에서 한글 키워드가 전송될 경우 넷피아의 데이터베이스로 자동 연결되도록 설정돼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인터넷 서비스 제공업체들의 도움이 필수적이라는 이야기다.
그런데 디지털네임즈가 인터넷 서비스 제공업체들을 설득해 한글 키워드와 넷피아의 연결을 끊으면서 넷피아의 사업 기반이 송두리째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코노미21'이라고 집어넣어도 이코노미21 홈페이지로 연결되지 않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넷피아에 수십만 원에서 많게는 수백, 수천만 원의 비용을 지불하고 한글 키워드를 사들였던 사람이나 기업들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다.
넷피아를 떠나 디지털네임즈와 손을 잡은 인터넷 서비스 제공업체는 하나로텔레콤과 두루넷, 이 두 회사의 초고속 인터넷 시장점유율은 30%를 웃돈다.
넷피아는 하루아침에 30% 이상의 시장을 잃어버린 셈이다.
넷피아가 발끈한 것도 당연했다.
디지털네임즈는 등록되지 않은 키워드가 전송될 경우 하나로텔레콤의 하나포스닷컴 검색 결과에 연결해주겠다고 제안해 하나로텔레콤을 끌어들였다.
하나로텔레콤 입장에서는 사이트의 방문자를 늘려주겠다는데 굳이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문제는 사용자들인데, 이제 한글 키워드를 등록하려면 넷피아와 디지털네임즈 두 군데에 동시에 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자연스럽게 한글 키워드에 대한 신뢰도 크게 떨어졌다.
한때 "주소창에 (한글로) ○○○라고만 치세요"라는 광고가 유행했지만 이제는 대부분 네이버나 다음 등 포털 검색창에 쳐보라는 문구로 바뀐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한때 시장을 독점하다시피 했던 넷피아로서는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상황이 됐다.
두 회사는 소송에 맞소송을 거듭하면서 치열한 법정 공방을 계속하고 있다.
최근에는 두 회사 모두 업무 방해 혐의로 검찰에 기소되기도 했다.
핵심 쟁점은 결국 누구에게 특허권이 있느냐다.
넷피아는 특허 공유계약을 체결한데다 조 사장이 경쟁 관계의 업무를 하지 않겠다는 약속까지 했기 때문에 조 사장이 동종 사업을 하는 건 계약 위반이라는 입장이고 디지털네임즈는 그런 약속은 애초에 한 바 없으며 공유 계약인 만큼 조 사장에게도 사업을 할 권한이 충분히 있다는 입장이다.
두 회사는 서로의 시장 기반을 깎아먹으면서도 조금도 물러날 태세가 아니다.
블랙베리라는 스마트폰을 만드는 리서치인모션은 2003년 8월, NTP라는 회사와 특허 소송에서 패소, 한때 폐업위기까지 몰리기도 했다.
법원은 미국에서 블랙베리 판매를 금지하라는 가혹한 판결을 내렸고 NTP는 매출의 5.7%를 달라는 요구를 내걸었다.
리서치인모션은 올해 2월 대법원 판결에서도 패소했고 결국 6억1천250만 달러에 겨우 합의를 봤다.
리서치인모션은 특허 분쟁 가운데서도 가장 악랄한 사례였다.
NTP는 직원도 없고 아무런 생산활동도 하지 않는 변호사와 서류로만 존재하는 회사였다.
'특허 괴물'이라고 불리는 이런 회사들은 부도난 회사들의 특허권을 헐값에 사들여 문제가 될 만한 대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걸고 거액의 합의금을 챙긴다.
정보기술 혁명 이래 최고의 성장산업이라는 비아냥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리서치인모션에 비교하면 이베이는 그나마 운이 좋은 경우라고 할 수 있다.
2003년 9월 미국 법원은 이베이의 '바로 구매' 기능이 머크익스체인지의 특허를 침해한다고 판결하고 2천500만 달러를 지불할 것을 명령했다.
이베이는 머크익스체인지를 '특허 사냥꾼'이라고 비난하면서 이 소송을 대법원까지 끌고 갔고 올해 5월, 가까스로 승소 판결을 받아냈다.
대법원은 특허를 침해하더라도 손해배상만 제대로 하면 상품화가 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마이크로소프트나 구글 역시 특허 소송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마이크로소프트는 해마다 특허 소송을 방어하는데 1억 달러 이상을 쓰고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구글은 최근 VoIP(인터넷 전화) 사업과 관련, 특허 소송에 휘말리기도 했다.
미국 반도체 업체들은 '특허 괴물'을 규제해 달라는 입법 청원을 내기도 했다.
법원의 전향적인 태도에 발맞춰 의회도 긍정적인 검토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
정보기술 전문 사이트 '지디넷'은 정보기술 업계의 특허 남용과 관련해 꾸준히 문제제기를 해왔다.
“5천 건의 특허를 보유하고 있더라도 단 하나의 특허를 침해했다면 시장에서 철수하거나 엄청난 합의금을 물어야 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시스코 관계자의 말을 인용, "만들어 놓은 제품이 있고 하고 있던 사업이 있는데 아무 것도 할 수 없도록 금지 당한다는 건 너무나도 치명적인 보복"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세계적으로 특허 남용을 규제하는 입법이 추진되고 있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우리나라의 경우 특히 문제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추진되면서 특허와 지식재산권 보호가 더욱 강화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세계적인 추세와도 어긋나고 자칫 미국 기업들의 특허 공세가 더욱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
상대적으로 취약한 우리나라를 노려 미국산 '특허 괴물'들이 몰려올 수도 있다.
진보네트워크 오병일 사무국장은 "특허와 지식재산권 보호는 외국의 압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우리나라의 산업과 문화, 사회적 조건 등을 고려해서 우리의 필요에 맞게 규정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오 국장은 "대중적이고 조직적인 반발이 적다는 점 때문에, 미국과의 협상에서 일방적인 양보의 위험성이 큰 영역이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이정환 기자 cool@economy21.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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