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 시어머니 많아 고생 … ‘절로 한숨’ 공정위 조사, 금감원도 몰랐다? … 경쟁적 고강도 감사 ‘기 싸움’ 우려
익명을 요구한 금감원 고위 관계자는 “완전히 새로운 사안도 아니고, 이미 규제가 내려진 사안에 대한 재조사라면, 협의를 거쳐 조치를 취하는 게 효율적인 것 아닌가”라며 “이번 사건뿐 아니라 수수료 담합 행위 불시점검 등을 대하며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라고 불만을 표했다.
이와 관련 최근 권오승 공정거래위원장이 “이중규제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겠다”며 진화에 나섰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권 위원장의 말이 두 기관 간 조사 영역을 분명히 하자는 뜻이지 협력 체제 구축의 의미로 받아들이기는 성급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끝이 아니다. 공정위는 이달 초부터 전 시중은행을 대상으로 수수료·금리 담합 행위에 대한 기습적인 불시검문을 진행하고 있다. 이번 공정위 조사는 철저한 보안 속에 사전에 준비된 듯 치밀하게 전개되고 있다. 시중은행은 물론 금감원조차 까맣게 공정위의 검사 사실을 몰랐다. 시중은행들은 공정위의 향후 검사 태도를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공정위가 명백한 혐의점을 확보한 뒤 벌이는 기획조사라는 관측이 제기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느닷없이 들이닥친 공정위 직원들의 조사 과정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조사 의도에 대한 정확한 설명도 없어 상당히 당혹스러웠다” 한 은행 담당자의 말에서 당시 상황의 긴박함이 묻어난다.
지난 1일 시작된 공정위 조사는 국내 및 외국계 은행 모두를 포함한 11개 은행에 대해 전격적으로 실시됐다. 공정위 카르텔 조사단 직원들은 개인영업 담당 부서의 컴퓨터와 관련 문서들을 일사분란하게 조사했다. 한편에서는 수수료 관련 공문서들을 복사하고, 직원의 업무용 수첩 등도 일일이 살폈다. 자료 확보 후에는 담당 직원들에 대한 심문도 이어졌다. 공정위의 조사가 얼마나 강도 높게 진행됐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국민은행이 표적 ‘일순위?’
그런데 공정위의 고강도 조사에 유난히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곳이 있다. 바로 외환은행 인수라는 거사를 앞둔 국민은행이다. 국민은행은 공정위가 외환은행과의 기업결합심사를 진행하고 있는 상황에서, 또 다른 사안으로 고강도 처벌에 나섰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두 사안 자체의 연관성을 찾을 수는 없지만, 이번 제재 수위를 볼 때 향후 기업결합심사가 예상 외로 까다롭게 진행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사실 금감원의 대주주 자격 심사나 감사원 검사 결과 등에 대해서는 큰 우려를 하지 않고 있다”면서 “그러나 공정위의 심사가 깐깐하게 진행될 것으로 보여,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전했다.
국민은행은 이번 공정위 제재의 첫 번째 표적이 됐다는 점부터 부담스럽다. 공정위 과징금 부과의 대부분(63억여 원)이 국민은행에 몰려 있다는 점도 예사롭지 않다. 특히 국민은행은 최근 수수료,·금리 담합 행위 조사에서도 주도자로 몰릴 가능성이 크다. 그동안 국내 최대 은행으로서 금리와 수수료 산정에 있어 타 시중은행의 교본 역할을 해 왔기 때문이다.
특히 글로벌 은행으로의 재탄생 열쇠가 공정위 손에 달린 만큼 감사 당국과 불필요한 대립각을 세우는 것도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공정위의 과징금 조치 후 서둘러 “이의제기를 하겠다”며 반발했지만 추가 조치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것도 사실이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기업 재도약의 중대 기로에서 공정위 결정에 입장을 표명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며 “그러나 향후 영업을 위해서라도 확실히 선을 긋고 가는 것이 낫다는 판단”이라고 전했다.
황철 기자 biggrow@economy21.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