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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단]공정위 VS 금감원, 시중은행 감사 '기싸움'
[진단]공정위 VS 금감원, 시중은행 감사 '기싸움'
  • 황철 기자
  • 승인 2006.06.1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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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권, 시어머니 많아 고생 … ‘절로 한숨’ 공정위 조사, 금감원도 몰랐다? … 경쟁적 고강도 감사 ‘기 싸움’ 우려
△국민은행 본점건물(좌). 한국씨티은행 건물(우). ⓒ박미향 기자 지난 주 공정거래위원회발 한파가 금융계를 휩쓸었다. 공정위가 국민은행과 한국씨티은행 등에 수십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하며, 본격적인 실력행사에 나섰기 때문. 시중은행들은 어느 때보다 강도 높은 규제에 긴장감을 감추지 못했다. “명백한 이중제재”라는 불만부터 “영업을 할 수 없을 지경”이라는 볼멘소리도 들린다. 공정위의 이번 조치는 이미 예견된 사안이었다. 지난 3월 공정위가 이미 대출금리 변칙운용이나 계열사 부당 지원에 대해 은행들에 책임을 묻겠다고 공공연히 밝혀 왔기 때문. 은행권에서는 제재 수위가 생각보다 높지만, 국민· 씨티은행에 대한 과징금 부과에 대해서는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는 반응이다. 금감원, 자존심 구겼다? 이렇게 예측 가능한 사안에 대해 시중은행들이 예상 외로 거센 반기를 드는 데는 더 큰 이유가 있다. 시중은행들이 제기하고 있는 이중규제 논란의 핵심에 공정위와 금융감독기관 사이의 보이지 않는 기 싸움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이중감사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두 기관 간 경쟁적 감사에 대한 우려가 더 크게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 시중은행 고위 관계자는 “솔직히 영업상 실수나 오류에 대해 파고들면 한도 끝도 없다”며 “현재 이들 기관 간에 보이지 않는 자존심 싸움이 있는 것 같아, 앞으로 감사 강도가 더 높아질 공산이 크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번 과징금 부과조치 과정에서도 공정위와 금감원 사이에 미묘한 신경전이 흘렀다. 공정위는 제재 방침을 발표하며, 금감원에 의견이 있으면 진술하라는 뜻을 직접 전달했다. 표면적으로는 감사 기관 간 ‘힘 겨루기로 비쳐지는 것’을 미연에 막아보자는 취지다. 김병배 공정위 시장감시본부장은 “금융감독기관에 입장을 표할 것이 있으면 회의석상에서 얘기할 것을 권했다”고 말했다. 금감원보다 한 차원 높게 진행된 이번 감사에 대한 자신감이 묻어난다. 그러나 금감원은 지금까지 아무런 공식적인 의사를 표명하지 않고 있다. 공정위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를 천명한 지난 3월, 이중규제론을 꺼내며 비판의 날을 세우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금융권에서는 이번 공정위 조사에 대해 금감원이 상당한 부담감을 느끼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하고 있다. 지난해 금감원 감사 결과 드러난 사실보다 이번 공정위 조사가 광범위하게 진행됐고, 제재 수위 또한 크게 높아졌기 때문. 금융감독을 주 업무로 하고 있는 기관으로서 자존심이 상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특히 이번 공정위 조치로 금감원의 솜방망이 처벌에 대한 논란까지 불거질 수 있어, 섣불리 입장을 표명하기도 어렵다. 실제로 금감원은 지난해 감사를 통해 국민은행과 씨티은행에 부당이득에 대한 일부 환급과 시정 조치만을 내렸다. 금융권 관계자는 “금감원이 이미 확인한 사안에 대해, 타기관이 재조사를 벌여 새로운 사실들을 알아낸다는 것 자체가 언짢은 일 아니겠느냐”면서 “어찌 보면 이번 공정위 조사로 금융당국의 처벌 수위에 대한 논란까지 제기될 수도 있다”고 전했다. 특히 공정위는 금융감독기관의 검사에 대해 불신감까지 공공연히 드러내고 있다. 이미 공정위와 금감원의 갈등이 깊어질 대로 깊어졌다는 뜻이다. 공정위의 감사작업이 금감원과의 사전 협의 없이 진행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최근 시중은행들의 수수료 담합 행위에 대한 불시점검 당시, 금감원은 당일까지 검사 사실조차 파악하지 못하기도 했다. 김병배 본부장은 “증거 확보를 위해 보안 속에 진행하는 것이 공정위 조사의 기본 방침”이라며 “금융감독기관이 묵인하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단독으로 진행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금감원 역시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공식적 입장을 내놓고 있진 않지만, 이중규제론에 불을 붙인 것은 금감원이었다. △윤증현 금융감독위원장(위). 권오승 공정거래위원장(아래).
익명을 요구한 금감원 고위 관계자는 “완전히 새로운 사안도 아니고, 이미 규제가 내려진 사안에 대한 재조사라면, 협의를 거쳐 조치를 취하는 게 효율적인 것 아닌가”라며 “이번 사건뿐 아니라 수수료 담합 행위 불시점검 등을 대하며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라고 불만을 표했다.
이와 관련 최근 권오승 공정거래위원장이 “이중규제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겠다”며 진화에 나섰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권 위원장의 말이 두 기관 간 조사 영역을 분명히 하자는 뜻이지 협력 체제 구축의 의미로 받아들이기는 성급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끝이 아니다.
공정위는 이달 초부터 전 시중은행을 대상으로 수수료·금리 담합 행위에 대한 기습적인 불시검문을 진행하고 있다.
이번 공정위 조사는 철저한 보안 속에 사전에 준비된 듯 치밀하게 전개되고 있다.
시중은행은 물론 금감원조차 까맣게 공정위의 검사 사실을 몰랐다.
시중은행들은 공정위의 향후 검사 태도를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공정위가 명백한 혐의점을 확보한 뒤 벌이는 기획조사라는 관측이 제기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느닷없이 들이닥친 공정위 직원들의 조사 과정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조사 의도에 대한 정확한 설명도 없어 상당히 당혹스러웠다” 한 은행 담당자의 말에서 당시 상황의 긴박함이 묻어난다.
지난 1일 시작된 공정위 조사는 국내 및 외국계 은행 모두를 포함한 11개 은행에 대해 전격적으로 실시됐다.
공정위 카르텔 조사단 직원들은 개인영업 담당 부서의 컴퓨터와 관련 문서들을 일사분란하게 조사했다.
한편에서는 수수료 관련 공문서들을 복사하고, 직원의 업무용 수첩 등도 일일이 살폈다.
자료 확보 후에는 담당 직원들에 대한 심문도 이어졌다.
공정위의 조사가 얼마나 강도 높게 진행됐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국민은행이 표적 ‘일순위?’ 그런데 공정위의 고강도 조사에 유난히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곳이 있다.
바로 외환은행 인수라는 거사를 앞둔 국민은행이다.
국민은행은 공정위가 외환은행과의 기업결합심사를 진행하고 있는 상황에서, 또 다른 사안으로 고강도 처벌에 나섰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두 사안 자체의 연관성을 찾을 수는 없지만, 이번 제재 수위를 볼 때 향후 기업결합심사가 예상 외로 까다롭게 진행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사실 금감원의 대주주 자격 심사나 감사원 검사 결과 등에 대해서는 큰 우려를 하지 않고 있다”면서 “그러나 공정위의 심사가 깐깐하게 진행될 것으로 보여,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전했다.
국민은행은 이번 공정위 제재의 첫 번째 표적이 됐다는 점부터 부담스럽다.
공정위 과징금 부과의 대부분(63억여 원)이 국민은행에 몰려 있다는 점도 예사롭지 않다.
특히 국민은행은 최근 수수료,·금리 담합 행위 조사에서도 주도자로 몰릴 가능성이 크다.
그동안 국내 최대 은행으로서 금리와 수수료 산정에 있어 타 시중은행의 교본 역할을 해 왔기 때문이다.
특히 글로벌 은행으로의 재탄생 열쇠가 공정위 손에 달린 만큼 감사 당국과 불필요한 대립각을 세우는 것도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공정위의 과징금 조치 후 서둘러 “이의제기를 하겠다”며 반발했지만 추가 조치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것도 사실이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기업 재도약의 중대 기로에서 공정위 결정에 입장을 표명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며 “그러나 향후 영업을 위해서라도 확실히 선을 긋고 가는 것이 낫다는 판단”이라고 전했다.
황철 기자 biggrow@economy21.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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