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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창조적 사고의 벽을 넘어라!
[특집]창조적 사고의 벽을 넘어라!
  • 장승규 기자
  • 승인 2006.06.1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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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즈, 차세대 경영혁신 도구로 본격 도움 … 삼성·LS, 성과 쏟아지자 확산 서둘러 LS전선에서 생산하는 열수축 튜브는 열을 가하면 원래의 형상을 기억해 미리 정해진 비율로 수축됨으로써 전선 접속부의 절연에 사용되는 제품이다.
쉽게 말해 1㎜의 전선을 이을 때, 3㎜짜리 열수축 튜브를 씌운 다음 열을 가하면 튜브가 수축하면서 이를 감싸게 되는 것이다.
이 제품은 애초 1㎜인 튜브를 170도로 가열해 팽창시킨 직후 다시 급랭시키는 연속공정을 통해 생산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열수축 튜브는 열이 가해지면 원래 형태로 돌아간다.
문제는 제작 공정에서 열을 가하면 튜브가 직경 방향으로만 팽창하는 게 아니라 길이 방향으로도 늘어난다는 데서 생긴다.
더구나 길이 방향의 팽창 정도가 일정하지 않기 때문에, 열수축 튜브를 똑같은 길이로 잘라 쓰면 수축 후 길이가 제각각이기 십상이다.
정밀 전자제품에서는 제품 전체의 불량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는 치명적인 결점이다.
2003년, LS전선 생산기술센터 연구원들은 트리즈(TRIZ)를 적용해 이 해묵은 난제를 쉽게 해결해 냈다.
정병관 LS전선 생산기술센터 부장은 “제작 공정에서 튜브를 팽창시키기 위해서는 온도를 높여야 하지만, 온도가 높으면 길이 방향의 팽창이 일어난다”며 “온도가 높으면서도 낮아야하는 모순을 해결하는 것이 핵심과제”라고 말했다.
트리즈 이론은 모든 문제는 상반되는 요구를 동시에 만족시켜야 하는 모순된 상황에서 발생한다고 본다.
식스시그마·가치혁신에도 트리즈 ‘필수’ 이를테면, 비행기에 바퀴가 없으면 이착륙이 불가능하고, 바퀴가 있으면 고속 비행이 불가능하다.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혁신적인 발명은 바로 이러한 모순을 극복하는 데서 탄생한다.
비행기의 경우, 이착륙 시에는 바퀴를 노출하고 고속비행 시에는 바퀴를 집어넣어 시간적으로 분리하는 해결책이 특허를 얻었다.
생산기술센터 연구원들은 우선 ‘온도가 높으면서도 낮아야 한다’는 모순을 해결한 사례들을 찾았다.
그 결과 철판 압연 공정에서 표면만을 냉각시키는 방법으로 이런 모순을 해결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압연 공정을 위해서는 철판을 1천200도 이상 가열해야 하지만, 800도가 넘으면 산화 현상이 일어난다.
철판 표면만 냉각시키면 이러한 산화 현상을 피해갈 수 있는 것이다.
연구원들은 이를 열수축 튜브에 그대로 적용했다.
튜브 전체를 냉각 시키지 않고, 0.01초 동안 표면만 살짝 냉각시켰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정 부장은 “LCD용 튜브는 쓰미토모 제품이 거의 독점해왔다”며 “품질이 대폭 개선되면서 지금은 쓰미토모를 밀어내고 70~80%의 시장을 LS전선 제품이 차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2004년 1월~5월 열수축 튜브의 매출이 전년대비 23% 증가했으며, 영업이익도 155%나 뛰었다.
2002년 LG전자 생산기술연구원의 지원을 받아 처음 트리즈를 도입한 LS전선은 이처럼 가시적인 성과가 나타나면서 2003년 러시아의 트리즈 전문가를 직접 채용했다.
2004년 96시간 과정의 트리즈 전문가 교육을 개설한데 이어, 첫 단계로 연구소 연구원 전원을 상대로 트리즈 교육도 실했다.
지난해에는 트리즈 소프트웨어인 골드파이어를 구매했고, 트리즈 성과 공유회를 처음 개최했다.
현재 LS전선에서 17명이 트리즈 레벨3 국제인증을 받았다.
정 부장은 “트리즈를 생산 부문은 물론 LS그룹 전체로 확산시키기 위해 마스터플랜을 짜고 있다”고 말했다.
트리즈는 지난 1995년 LG전자 생산기술 연구원을 통해 국내에 처음 소개됐다.
벌써 10여년의 짧지 않은 역사를 갖고 있는 셈이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다.
도입 초기부터 ‘교육 받는다고 창의성이 생길 수 있느냐?’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았던 데다, 식스시그마가 경영혁신의 방법론으로 확고하게 자리를 굳히고 있었기 때문이다.
트리즈의 성과를 경험한 기업들이 기술 보안을 이유로 대외적인 공개를 꺼렸던 영향도 있다.
그동안 트리즈의 성공사례는 주로 해외 학술회의를 통해서만 간접적으로 공개되곤 했다.
김호종 킴스트리즈 사장은 “이제 인건비로 경쟁하던 시대는 끝났다”며 “창의성을 빼놓고는 중국의 추격을 따돌릴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김 사장은 창의성을 높일 수 있는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방법론으로 단연 트리즈를 꼽았다.
강병선 아이디어브레인 사장은 “트리즈는 식스시그마나 가치혁신 전략에도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식스시그마의 경우, 통계적 방법을 통해 문제를 발견하고 최적화하는 데는 큰 효과를 발휘하지만, 문제를 푸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는 구체적인 방법론은 갖고 있지 못하다.
강 사장은 “브레인스토밍이나 시행착오(Trial & Error)를 통해서는 결코 혁신적인 발명이 나올 수 없다”며 “트리즈는 창의적 문제해결의 표준화된 ‘툴’을 제공한다”고 말했다.
가치혁신 전략도 구체적인 방법론을 결여하고 있기는 식스시그마와 마찬가지다.
트리즈를 그룹차원에서 전략적으로 도입하고 있는 곳은 바로 삼성이다.
지난 5월 삼성전자를 중심으로 7개 계열사가 ‘삼성트리즈협회’를 결성하기도 했다.
이경원 한국산업기술대학 교수는 “2000~2001년 삼성전자에서 뛰어난 성과가 많이 쏟아졌다”며 “국내 기업 가운데 트리즈에 가장 적극적인 곳이 바로 삼성”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2001년 DVD 픽업 개선에 트리즈를 적용해 1천억 원의 원가절감 효과를 거뒀다.
픽업은 비디오의 헤드와 같은 역할을 하는 것으로 DVD 플레이어에서 DVD나 CD를 재생하는데 사용되는 핵심부품이다.
DVD와 CD는 서로 다른 파장의 레이저를 사용하는데, 이 둘을 합치기 위해서는 고가의 부품이 필요했다.
그러나 트리즈 연구팀은 두 개의 레이저를 합치는 대신 거꾸로 레이저 감지 강치인 포토 디텍터의 수를 2개로 늘리는 완전히 새로운 해법을 제시했다.
기존 광 전문가들의 고정관념을 깬 발상의 전환이었다.
이를 통해 DVD 픽업의 원가를 11.7달러에서 7달러로 대폭 낮출 수있게 됐다.
△트리즈 전문가과정 교육 장면. ⓒLS전선 제공
삼성, 트리즈에 미래 건다 지펠 냉장고의 독특한 홈 바 디자인도 대표적인 성공 사례다.
고급 냉장고 모델에 설치돼 있는 홈 바 도어는 양쪽의 금속 링크에 의해 지탱되는 구조를 갖고 있다.
기존 제품은 접이식 링크를 사용하거나, 양쪽에 홈을 뚫어 일자식 링크를 밀어 넣는 한 단계 개선된 방식을 채택했다.
그러나 트리즈 연구팀은 이들 두 방식과는 전혀 다른 아이디어로 원가절감은 물론 디자인 개선 효과까지 거두었다.
링크를 아예 없애고 홈 바 도어 자체가 버팀대 역할을 하도록 설계한 것이다.
이 아이디어는 현재 유럽과 일본, 중국에 특허 출원되어 있다.
PDP의 발광효율을 개선한 사례도 빼놓을 수 없다.
PDP는 간단히 말해 두 개의 전극 사이에서 방전을 일으켜 형광체를 발광시키는 구조로 되어 있다.
소비 전력을 낮추기 위해서는 전극 사이의 거리를 줄여야 하지만, 발광 효율을 높이려면 전극 사이의 거리를 늘려야 한다.
트리즈 연구팀은 자동차 엔진 점화 플러그와 유사한 형태로 전극의 마스트 패턴을 바꿈으로써 간단하게 발광 효율을 30% 높이는데 성공했다.
이 특허는 일본 업체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기기도 했다.
김호종 사장은 “삼성전자가 ‘세계 3대 특허기업’으로 가겠다는 것도 트리즈가 4~5년 정도 적용되면서 어느 정도 기반화 되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며 “삼성전자의 뛰어난 제품력은 결국 트리즈에서 왔다고까지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삼성그룹에는 6명의 러시아 트리즈 전문가가 활동하고 있으며, 모든 연구 인력이 17시간의 트리즈 온라인 강의를 필수적으로 듣도록 하고 있다.
또한 삼성생명이나 신라호텔 같은 일반 계열사들도 트리즈 도입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김효준 삼성종합기술원 전문연구원은 “삼성은 세계적으로 트리즈 활용에 가장 앞서 있는 기업으로 꼽힌다”며 “신경영을 통해 마인드 인프라가, 식스시그마를 통해 프로세스 인프라가 어느 정도 마련됐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적극 수용하고 실행에 옮길 수 있는 토대가 잘 갖추어져 있다는 뜻이다.
김 연구원은 “과거에는 외국 기술을 가져와 최적화 하기만 해도 경쟁에서 이길 수 있었지만, 이제는 삼성전자 스스로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개척해 나가야 할 운명”이라며 “창의적인 사고에 도움이 되는 것이라면 어떤 비용을 들여서라도 받아들여야만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장승규 기자 skjang@economy21.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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