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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단]'승자의 저주' 희생양은 누가 될 것인가
[진단]'승자의 저주' 희생양은 누가 될 것인가
  • 장승규 기자
  • 승인 2006.06.2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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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르푸·외환은행·대우건설 등 고가 인수 논란 … 지나친 과당경쟁이 화 부를 수도
△국민은행은 외환은행 인수를 위해 6조9천474억원을 지불하기로 했다.
ⓒ한겨레 김경호
M&A 시장에서 가장 큰 위험은 비이성적으로 높은 가격을 써내 고가인수의 덫에 걸리는 것이다.
흔히 말하는 ‘승자의 저주’(Winner's Curse)다.
경제학에서 승자의 저주와 관련해 가장 자주 언급되는 대표적인 사례는 1950년대 미국의 유전개발 과정이다.
당시 미국 정부는 유전을 개발하면서 원유 매장 가능성이 있는 지역을 골라 석유회사들을 상대로 경매에 부쳤다.
하지만 미국 정부는 영리하게도 경매 이전에는 누구도 해당지역을 시추할 수 없도록 조건을 달았다.
경매 대상 유전의 객관적인 실제 가치를 어떤 석유회사도 알 수 없는 정보 불균형 상황이 조성된 것이다.
석유회사 입장에서는 유전을 낙찰 받기위해 가장 높은 가격을 써내야만 한다.
하지만 불길하게도 경매 낙찰은 곧 자신이 유전의 실제 가치를 초과한 높은 금액을 써냈다는 말이 된다.
통계적으로, 경매에 참여한 모든 기업의 입찰 가격은 유전의 실제 가치를 중심으로 정규분포, 즉 좌우대칭의 종 모양 분포를 이루기 때문이다.
결국 실제 가치를 가장 많이 초과한 금액을 지불한 대가로 낙찰자의 ‘영광’을 차지한 것이다.
올해 최대 금융리스크는 고가 인수 승자의 저주는 섬뜩한 어감에도 불구하고 올해 들어 대형 M&A와 관련해 심심찮게 등장하는 낯익은 용어가 됐다.
외환은행 인수경쟁이 불붙자 신상훈 신한은행장은 “무리하게 과당경쟁을 할 경우 소위 ‘승자의 재앙’이 올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황영기 우리금융 회장은 LG카드 매각경쟁이 본격화 되자 “인수경쟁이 격화돼 자칫 LG카드의 내재가치에 비해 인수가격이 지나치게 올라가는 일이 생겨서는 안 된다”며 승자의 재앙을 우려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까르푸, 대우건설 등 잇따른 대형 M&A 과정에서도 승자의 재앙에 대한 우려가 어김없이 따라 붙었다.
물론 인수경쟁 당사자들의 발언은 경쟁사들을 견제하기 위한 엄포용일 수도 있다.
주목할 만한 것은 황영기 우리금융 회장이 연초에 올해 우려되는 가장 큰 금융 리스크로 적정 가격을 초과한 M&A 대금 지급을 꼽았다는 것이다.
이는 황 회장이 M&A 대상의 몸값이 지나치게 치솟는 상황을 부동산이나 금리 리스크보다 훨씬 심각한 위험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국내 PEF 관계자는 황 회장과 동일한 판단을 좀더 직설적으로 들려준다.
이 관계자는 “IMF 이후 싼 값의 매물이 쏟아져 그동안 아무 문제가 없었지만, 이제 국내에서도 비싼 가격에 인수해 망가지는 사례가 나올 시점이 됐다”며 “미국에서는 10조원에 기업을 인수했다, 결국 어쩔 수없이 큰 손해를 보고 2조원에 되판 일도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많은 기업들이 고가 매수로 인한 공포가 얼마나 무서운지 몰라 겁 없이 가격을 올리고 있다”고 덧붙였다.
고가 매입 후 대금 지금을 위해 차입한 자금의 이자를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 빠지고, 거기다 모기업의 현금흐름으로도 이를 감당할 수 없게 되면 그룹 전체가 무너지게 된다는 것이다.
이랜드는 대형 할인점 업체들을 물리치고 까르푸를 품에 안는데 극적으로 성공했다.
까르푸 인수를 위해 동원한 이랜드의 자기자본은 불과 3천억원. 전체 1조7천억원의 인수대금 중 8천억원은 까르푸 매장을 담보로 한 대출로, 3천400억원은 후순위채권으로 충당했다.
또한 나머지 2천700억원은 재무적 투자자들이 투자했다.
이랜드는 까르푸 인수에 따른 금융비용을 향후 2년간은 연 650억원, 그 이후에는 연 900억원 안팎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까르푸 노조는 “1조4천500억원에 이르는 차입금의 이자 비용만 해도 700억원(연리 5%적용)에 달한다”며 “까르푸의 연간 순이익 68억원에 불과한 상황에서, 까르푸에서 번 돈으로 이자나 제대로 갚을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우려한다.
애초 업계에서는 까르푸 인수가격이 1조2천억원을 넘어설 경우 투자금액을 회수하는 데만 수십 년이 걸릴 것이라는 관측을 내놓기도 했다.
이랜드는 이런 우려에 대해 까르푸 32개 점포의 리뉴얼링을 통해 내년부터 정상 영업에 들어가면 현재 바닥 상태인 까르푸 매출을 3조원대로, 영업이익은 6%로 끌어올 수 있다고 자신하고 있다.
그럴 경우 금융비용 충당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이랜드는 IMF 이후 유동성 위기로 어려움을 겪다 적극적인 M&A를 통해 재성장한 대표적인 기업이다.
그동안 저돌적인 M&A 전략이 잘 맞아떨어졌지만, 이것이 미래의 성공까지 보장해 주는 것은 아니다.
6조9천474억원에 달하는 국민은행의 외환은행 인수금액도 또 다른 논란거리다.
인수협상 과정에서 국민은행은 당초 주당 1만4천700원을 제시했고, 하나금융은 1만5천원, DBS는 가장 높은 1만6천원을 써냈다.
그러나 국민은행은 인수가격을 주당 1만5천400원으로 높여 하나금융과 DBS를 물리치고 하나은행을 차지했다.
국민은행은 외환은행을 지나치게 높은 가격에 인수했다는 지적에 불쾌하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과거 한미은행 매각 당시 주가 순자산비율(PBR)은 1.95배, 제일은행은 1.89배였던 반면, 국민은행의 인수가격은 이 수치가 1.76배로 훨씬 낮다는 것이다.
외환은행이 제일은행이나 한국씨티은행보다 규모가 크고 포트폴리오도 독점적인 부분을 갖고 있어 인수가격 자체는 오히려 예상보다 낮았다는 설명이다.
고가 인수의 덫, 줄이이 대기 금융권에서는 가계금융 중심인 국민은행과 기업금융 중심인 외환은행의 결합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하지만 정반대의 분석도 있다.
국민은행의 경우, 가계금융 위주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기업금융의 비중이 높다는 것이다.
때문에 가계금융과 기업금융의 결합에 따른 시너지 효과는 현실성이 없다는 얘기다.
오히려 지나친 조직 비대화로 인한 비효율성이 발목을 잡을 수 있다.
합병의 시너지 효과를 위해서는 필수적인 구조조정도 결코 쉽지 않은 과제다.
지난 6월22일에는 대우건설의 인수자로 금호아시아나그룹이 결정됐다.
금호아사아나그룹이 써낸 인수가격은 6조6천억원. 채권단 보유지분 72.1%를 전량 이수하는 조건으로, 입찰에 나선 5개 컨소시엄 가운데 최고가였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대우건설 인수로 단숨에 재계 8위, 건설업계 1위로 뛰어올랐다.
그러나 다음 날 대우건설 인수기업인 금호산업의 주가는 무려 8.16% 급락하며 20일 최저가를 기록했다.
같은 날 대우건설 주가도 5.26% 하락했다.
금호아시아나그룹과 대우건설의 향후 전망이 밝지 않다는 시장의 판단이 작용한 것이다.
이에 따라 고가 인수 후유증에 대한 우려가 고개를 들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만 해도 2조원대로 평가되던 대우건설 인수가는 주가 상승과, 채권단의 매각 규모 확대 등으로 2배 이상 뛰었다.
일부 증권사에서는 “출혈경쟁으로 인수가격이 당초예상보다 지나치게 높아졌다”는 우려를 내놓기도 했다.
김영진 김영진M&A연구소장은 “전체 인수대금 가운데 4조원 가량을 콘서시엄에 들어온 재무적 투자자들이 넣게 된다”며 “대개 재무적 투자자들은 연 10% 정도의 수익률이 보장되어야만 들어오는데 금호아시아나그룹이 앞으로 이 정도 수익률을 맞춰주는 게 큰 부담이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재무적 투자자들에 대한 배당과 이자로 지급해야 하는 비용만 대우건설의 1년 영업이익 4천억원을 넘는 4천~5천억원대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대우건설 인수 후 2년 동안 주요 자산을 매각할 수 없도록 돼 있는 것도 큰 변수다.
이에 따라 향후 2년간이 금호아시아나그룹에게 가장 어려운 시기가 될 가능성이 높다.
매가 제한이 풀리면, 서울역 대우빌딩과 베트남 호텔 등 보유 자산을 매각해 현금 흐름에 숨통을 틀 수 있게 된다.
과열경쟁 양상을 빚던 LG카드의 경우, 매각 방식이 공개매수로 결정될 경우 인수 가격이 더 치솟을 가능성이 높다.
M&A업계에서는 현금을 쌓아두고 있는 대기업들이 신성장동력 확보 차원에서 M&A 시장에 대거 뛰어들고, 중견업체들이 무리한 자금 동원을 통해 인수가격을 올릴 경우, 실제로 승자의 저주가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향후 진행될 현대건설, 대우조선, 대한통운, 동아건설, 쌍용건설 등의 매각 과정이 결코 순탄치 많은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장승규 기자 skjang@economy21.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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