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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런트] ‘실리콘밸리’식 모델 시험 가동
[커런트] ‘실리콘밸리’식 모델 시험 가동
  • 정영일 기자
  • 승인 2007.01.2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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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처캐피탈에서 임원진 파견, 경영 참여…‘진대제펀드’가 대표적 사례 ‘벤처캐피탈 2.0시대’는 오는가. 최근 진대제 펀드가 웹 2.0 기반의 사진공유 사이트 올라웍스에 37억원(4백만달러)을 투자하겠다고 발표한 이후 벤처캐피탈이 다시 한 번 주목을 받고 있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진대제 펀드에서 올라웍스에 4명의 임원진을 파견해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는 점이다.
초기 단계의 벤처기업이 부족할 수밖에 없는 경영과 해외영업 능력을 일정 수준 이상의 전문성을 갖춘 벤처캐피탈이 지원하고 있다.
재원·실적 ‘거품’ 이전 수준 회복 창업 인큐베이터(기업 보육)의 역할을 벤처캐피탈이 본격적으로 담당하게 된 것이다.
경쟁력 있는 벤처기업들의 활성화가 시급한 우리 경제에, 전형적인 실리콘밸리식 벤처캐피탈 모델이 국내에서 처음 시도되고 있다.
‘벤처캐피탈 2.0시대’라고 이름붙일 만한 변화다.
변화의 출발은 IT 거품의 붕괴였다.
2000년대 초반, 한 차례 호된 시련을 겪은 벤처캐피탈들은 그동안 절치부심하며 관련 제도 정비에 주력해왔다.
그 결과 해마다 새로 유입되는 투자재원이나 투자실적은 벤처 거품 이전 수준을 회복해 가고 있다.
벤처캐피탈 부활의 조짐은 벤처기업들의 코스닥 등록 현황을 보면 드러난다.
증권선물거래소에 따르면 2002년 코스닥에 등록한 벤처기업 중 벤처캐피탈의 투자를 받은 회사는 50%에 불과했다.
그러나 비중은 꾸준히 증가해 2005년에는 80%, 2006년에는 81%까지 상승했다.
기업공개에 성공한 벤처기업의 수가 늘어나면서, 벤처캐피탈의 수익률도 회복세에 접어들기 시작했다.
벤처기업협회에 따르면 지난 2005년 해산한 한 조합의 경우 수익률이 270%를 넘기기도 했다.
투자재원의 규모 측면에서도 벤처캐피탈들이 과거의 부진을 씻고 안정화단계에 접어들었다.
벤처기업협회에 따르면 신규 투자조합의 재원을 보면 2000년 2조4천억원에서 2006년 11월 기준 4조7천억원으로 증가했다.
반면 창업투자회사의 경우 2000년 147개에서 2006년 104개까지 수가 줄어들고, 새로 결성되는 조합의 경우 2000년 194개에서 2006년(11월 기준)에는 40개로 줄어들었다.
창투사와 조합의 수는 줄어드는 대신 투자조합의 규모가 커진 것이다.
벤처캐피탈협회 김종술 부장은 “조합의 규모가 커질수록 대규모 투자와 복수 투자가 가능해져 위험 부담은 줄이고 투자성공률은 높일 수 있다”며 “최근의 벤처캐피탈 조성 추이는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고 말했다.
신규 투자실적도 조정기를 벗어나는 추이를 보이고 있다.
2003년 6306억원까지 떨어졌던 신규투자액은 2005년에는 7533억원까지 증가했다.
신규투자가 활발해진 만큼 IT 일색이던 투자분야도 다양해졌다.
2006년(11월 기준)의 경우 정보통신 분야가 40.2%, 엔터테인먼트 18.4%, 일반제조 15.0% 등의 분포를 보였다.
벤처캐피탈이 회복세로 접어들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정부가 2004년부터 추진해온 벤처캐피탈 활성화 대책의 영향이 크다.
김종술 부장은 “벤처캐피탈이 가장 발달한 미국의 제도가 거의 대부분 도입됐다”며 “법이 벤처캐피탈의 발목을 잡는 시대는 지났다”고 평했다.
활성화 대책은 벤처기업에 대한 정부의 직접 지원을 최소화하고 벤처캐피탈 시장의 활성화를 통해 시장 기제가 작동하게 만들었다.
벤처캐피탈이 투자한 기업에 대해 경영권을 행사할 수 있게 하고 벤처투자전문가가 자금을 모아 벤처기업에 투자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뼈대다.
진대제 펀드가 바로 활성화 대책의 수혜를 받은 대표적인 벤처캐피탈이다.
비리 예방·초기 투자 확대 필요 하지만 벤처 생태계의 선진화를 위해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도 여전하다.
우선 창투사들이 잇따라 비리 사건에 휩싸이면서 벤처캐피탈에 대한 신뢰를 깎아먹고 있다.
지난해 모 창투사의 경우 최대주주가 유상증자 자금을 무단 인출하는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았고, 또 다른 창투사는 투자를 받는 과정에서 내부거래 혐의로 조사를 받기도 했다.
벤처캐피탈협회에서는 ‘벤처 윤리선언’을 채택하는 등 부정적 사회여론의 확산을 막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정부에서도 벤처캐피탈의 도덕 경영을 위한 대책을 발표하는 등 ‘벤처비리’에 대한 감시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일부 벤처캐피탈의 경우 벤처기업에 대한 투자보다는 부실회사의 주식·채권 인수, 기업 인수합병 참여 등 이른바 바이아웃(Buyout) 투자에만 주력하는 것도 문제다.
대표적 창투업체인 A창투사의 경우 2006년 상반기 기업투자 부문에 투자한 600억원 중 약 500억원이 사모펀드를 통해 바이아웃 투자형식으로 진행됐다.
B창투사 역시 2005년 116억원, 2006년 120억원 등 매년 100억원대의 바이아웃을 성사시키고 있다.
벤처캐피탈이 바이아웃 투자에 집중할 경우 수익률은 높아지지만, 기술력 있는 벤처기업을 발굴해 자금을 지원한다는 본래의 목적은 소홀해질 가능성이 크다.
초기 기업에 대한 투자가 부족한 것도 문제다.
금융연구원 하준경 연구위원이 지난 12일 발표한 연구보고서 <최근 벤처금융의 현황과 문제>에 따르면 3년 이내의 초기단계 기업에 대한 투자가 2001년 이후 계속 하락하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잔액 기준 초기단계 기업에 대한 투자비중은 2001년 47.1%, 2003년 11.7%, 2005년 9.4%로 지속적으로 낮아지고 있다.
투자를 받는 초기단계 기업의 비중도 2001년 52.7%에서 2005년 11.9%로 하락했다.
하 연구위원은 보고서를 통해 “초기단계 벤처투자가 줄어든 것은 벤처투자 고유의 위험성에 대한 인식이 높아진 것을 반영하는 것”이라면서도 “초기단계 투자의 과도한 감소는 새로운 투자처 발굴 및 성장동력 육성에 방해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반면 벤처캐피탈협회는 이 같은 지적에 대해 사실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김종술 부장은 “연간 신규투자 건수를 기준으로 보면 우리나라의 벤처캐피탈들은 초기 단계의 기업에 30% 이상 투자하고 있다”며 “이는 미국의 17.1%보다도 높은 수준”이라고 반박했다.
신규투자 건수와 투자액이라는 기준의 차이 때문에 발생하는 논란이다.
그러나 초기 단계 업체에 대한 투자 위험을 낮추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데는 양측 모두 이견이 없다.
하 연구위원은 “벤처부문의 위험관리를 용이하게 하기 위한 펀드의 대형화가 필요하고 탐색단계의 투자 프로젝트에 대해서는 정부의 심사기능과 시장 간의 보완성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대안을 제시했다.
투자 재원의 안정성을 위해 연기금과 기관투자자들이 벤처캐피탈에 대한 투자를 늘리는 것도 중요하다.
미국의 경우 일반적인 조합의 경우 투자기간이 10년에 달해 장기간의 안정적인 투자가 가능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보통 5년에 불과해 수익률도 낮아지고 벤처기업 입장에서도 성장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특히 지난해 벤처기업 전문투자펀드에 투자하는 모태펀드가 자금 지원 역할을 톡톡히 했지만, 국민연금관리공단 등 대규모 벤처투자 출자기관들이 투자를 하지 않아 벤처캐피탈들의 아쉬움을 사기도 했다.
연기금과 기관투자가들이 장기투자를 해줘야 안정적인 투자재원 마련이 가능해진다.
벤처캐피탈이 새로운 도약을 위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벤처기업에 대한 인수합병(M&A)이 활성화되는 것이다.
벤처기업이 기업공개까지 걸리는 평균적인 시간이 8년에 이르지만, 투자조합의 경우 투자기간이 그 보다 짧아 투자자금의 회수에 어려움이 있다는 것이다.
ⓒECONOMY21 사진
정보통신연구진흥원 김정환 선임연구원은 최근 연구보고서 <벤처캐피탈 IT 투자동향>을 통해 “미국의 실리콘밸리가 벤처기업들의 세계적인 메카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나스닥이라는 세계 최고의 기술주 시장과 함께 세계적인 IT 대기업들이 건실한 중소 벤처기업들을 인수하는 M&A시장이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 정영일 기자 zeit@economy21.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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