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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거꾸로 읽기] 어학 천재 신숙주와 영어마을
[경제 거꾸로 읽기] 어학 천재 신숙주와 영어마을
  • 장의식 소비자가 만드는 신문
  • 승인 2007.01.2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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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숙주는 조선시대의‘어학 천재’였다.
중국어와 몽골어는 물론, 여진어, 일본어까지구사했다.
아랍 사람과도 말이 통했다고 한다.
당시 조선에 알려져 있던 세계 모든 나라의 말을 할 줄 알았던 셈이다.
탁월한 어학실력으로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할 때‘요동’을 13번이나 왕래한 일화도 있다.
조정에서는 신숙주의 이런 능력을 그대로 두지 않았다.
사역원(司譯院) 일을 맡겼다.
‘ 성호사설’에 이런 얘기가 나온다.
“신숙주와 성삼문이 사역원 제조(堤調)로 제수되어…한학강을 설치해 학습토록 하면서 사역원 내에서는 우리말로 담화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근세에는 이원익과 이경석이 제조로 제수되어 품의를 할 때 마다반드시한어로말하도록했다.
옛사람의 실상에 힘씀이 이와 같았다.
…” 사역원은 마치 오늘날의‘영어마을’이었다.
‘ 제1 외국어’인 중국어만 사용하도록 한 것이 그대로 닮은꼴이다.
하지만, 오늘날 영어마을에서는 영어뿐 아니라 돈도‘달러’만 쓰도록 하고 있다고 한다.
식사시간이 되면‘밥’이 아니라‘파스타’를 먹는다는 보도도 있었다.
언젠가 보도에 따르면, 전남 여수시는 영어만 사용하는‘영어 존(zone)’을 만들기로 했다고 한다.
한 지역 전체를 아예 미국이나 영국으로 만들 작정이다.
앞으로는 여수에 가면 전라도 사투리 대신 영어를 듣고 다녀야 할지도 모른다.
방학이 되면 초등학생까지 비행기를 태워 어학연수를 보내고 있다.
돈 없어서 영어를 배우기 힘든 아이들을 위해‘영어체험교육원’이라는 것도 만든다고 한다.
물론 영어를 못하면 뒤떨어지는 세상이다.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배워야 한다.
어릴 때 배울수록 좋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말도 못하는 아이에게 영어부터 가르치는 부모가 적지 않다.
이른바 조기교육이다.
그러다 보니 우리말보다 영어를 더 잘 한다는 얘기까지 가끔 들리고 있다.
그렇다면‘어학 천재’신숙주는 외국어만 열심히 익혀서 훗날 영의정까지 올랐을까. 절대로 그렇지 않았다.
“ 읽지 않은 책이 없다”고 했을 정도로 많은 공부를 했다.
하급관리 시절에는 동료의 숙직을 대신 해주면서‘장서각’에 있는 책을 모조리 탐독했다.
외국어 공부만 했으면 결코 출세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런 판에, 상당히 헷갈리는 발표가 있었다.
경기도가‘별장형 주말농장’을 지으면서 그 이름을‘클라인 가르텐(Klein Garten)’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독일어로‘작은정원’이라는 뜻이라고 친절하게 설명까지 곁들이고 있다.
이‘작은 정원’에 통나무집을 짓고, 영농이나 휴식을 할 사람들에게 빌려주겠다는 발표였다.
어려서는‘영어마을’, 나이가들면‘독일가르텐’에 가야 사람 취급받는 세상이 되고 있는 것인지. 일제 때 러시아에서 발행된 우리말 신문이 있었다.
이 신문은 이렇게 개탄했다.
“초년부터 국민적 교육을 못 받아서 내 나라가 무엇인지 몰랐나니. 그 혀가 변하는 날에는 눈도 변하게 되며, 귀도 변하게 되며, 마음까지 변하게 된다.
어린아이들은 아무쪼록 내 나라 말, 내 나라 글, 내 나라 역사를 잘 배우며, 나이 많은 사람일지라도 가나다라 수십 줄은 익히며, 본국 역사책 2권을 읽은 후에야 다른 말을 배우든지 말든지 할 것이니라. 그렇지만 어찌하리오. 고국을 돌아보니 소학교 아이들의 일어 배우는 소리뿐이오 ….”■ 장의식 소비자가 만드는 신문 기자 www.cs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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