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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기획]검색이 대통령을 바꾼다 ②
[집중기획]검색이 대통령을 바꾼다 ②
  • 전병국 검색엔진마스터 대표
  • 승인 2007.03.0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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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색은 과연 정직한가? 디렉토리 검색·스폰서 링크 등 문제 … 스스로 신뢰 저버리지 말아야 “미디어는 메시지, 그 이상이다.
때로는 편견이며 때로는 의도다.
” 이런 사실을 더 많은 사람들이 더 확실히 알게 된 것은 무엇보다 검색엔진 덕분이었다.
검색엔진을 통해 기존 언론들을 비교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지난 2004년 4월9일 아침, 탄핵 정국 속에서 국회의원 선거가 치러지고 있을 때였다.
MBC 라디오의 ‘손석희의 시선집중’에서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와의 전화 인터뷰가 있었다.
손 아나운서가 원론적인 답변을 하던 박 대표에게 더 깊은 대답을 요구하는 질문을 연이어 던졌다.
그러자 박 대표가 “저하고 싸움하시는 거예요?”라는 대꾸를 했다.
손 아나운서가 질문을 바꿨기 때문에 더 이상의 충돌은 없었다.
하지만 당시의 긴장된 정국과 맞물려 이 사건은 큰 화제가 되었다.
언론들이 앞다퉈 이를 보도했고 검색 포털들도 메인 뉴스에 올렸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똑같은 사건을 보도하는데도 신문마다 뉘앙스가 크게 달랐다는 것이다.
ⓒECONOMY21 사진
동아일보는 라디오 인터뷰인데도 박 대표가 ‘미소를 짓는 것’을 본 것처럼 말하면서 그의 ‘애교’까지 더했다.
반면 오마이뉴스는 그가 ‘당황’한 상태에서 ‘발끈’했다고 보도했다.
스포츠신문인 굿데이는 아예 ‘대판 싸울 뻔’했다며 자극적으로 묘사했다.
여기서 정말 중요한 것은 어느 신문이 옳은 가가 아니다.
이제는 대형 할인 매장에서 물건을 따져보듯이 언론 보도들을 비교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같은 사건을 다르게 전하고 때로는 한입으로 두말을 하는 것이 고스란히 드러난다는 것이다.
대단한 언론학자가 아니라 해도 검색엔진만 있으면 가능한 일이다.
이처럼 검색엔진 때문에 고요한 ‘성당’에서 행세하던 언론들이 근엄한 옷을 벗고 이렇게 시끄러운 ‘시장’으로 나오게 되었다.
기존 언론들 입장에서는 당혹스럽고 불쾌한 일이지만 새로운 로마의 법은 이미 달라져 있었다.
언론들은 자신들이 검색의 시대 속에서 겪고 있는 문제의 원인과 대책을 찾기에 한창이다.
검색 포털이 생산과 유통을 분리하면서 뉴스계의 월마트가 되었다는 진단도 있고, 뉴스 콘텐츠를 너무 헐값에 사간다는 불평도 있다.
다 일리 있는 말이다.
하지만 정작 놓치고 있는 (혹은 알면서도 애써 강조하지 않는) 사실이 있다.
사람들이 신문을 덮고 TV를 끄는 것은 인터넷이 공짜여서만이 아니다.
기존 언론에 대해 신뢰를 잃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성당을 벗어나면서 드러난 언론의 실상에 실망했기 때문이다.
의도를 감춘 모습, 반성하지 않는 모습에 실망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언론사 기자들조차 언론을 신뢰하지 않는다니 더 할 말이 없다.
지난해 8월 한국기자협회가 기자 3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45%가 신뢰하는 언론이 없다고 응답했다.
△네이버에서 뉴스를 보는 이유 ⓒECONOMY21 사진
'불편한 진실'까지 드러내는 정보의 시장 역설적으로 검색의 존재 의미는 바로 여기에서 시작된다.
지식의 성당이 아니라 정보의 시장이 검색의 자리다.
각자의 성당에서 호령하던 정보와 지식들이 쏟아져 나와 서로 비교되고 경쟁하면서 ‘불편한 진실’을 드러내게 하는 한복판에 검색이 있다.
모든 자칭 ‘진실’들을 ‘사실’의 시장으로 끌어낸다.
그리고 그들 스스로 자신들이 읽혀야만 할 당위성을 증명해내게 만든다.
정보 스스로 살아남고 정보 스스로 도태된다.
그런 면에서 검색은 기존의 ‘성당’ 미디어들을 포괄하는 ‘시장’ 미디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시장 미디어는 그 특성상 막힌 담이 없는 열린 미디어여야 하고,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정보를 다루려면 수작업보다는 시스템적인 기술 미디어여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 운영에 있어 투명하고 정직해야 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검색이 공정한가?”를 자주 묻는다.
도로안전용품을 생산하는 한 회사의 대표인 A씨의 경우처럼 말이다.
“우리에게 물건을 받아가는 소규모 유통업자의 홈페이지가 검색 결과에서 더 먼저 나옵니다.
때로는 부실한 업체도 있는데 이런 것은 좀 걸러줘야 하는 것 아닌가요?” 하지만 어느 쪽이 원조인지, 업체의 상황이 어떤지를 검색 포털이 일일이 검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또한 공정성이란 잣대는 각자 처한 상황에 따라 달라지기 쉽다.
그런 애매한 공정성의 잣대를 대규모의 정보를 관리하는 데 일일이 적용하는 것은 더더욱 불가능하다.
예를 들면 포털 뉴스에서 악플을 막는다며 댓글을 차단하는 경우도 그렇다.
차단할 것과 열어둘 것에 어떻게 모두가 수긍할 ‘공정한’ 기준이 있을 수 있겠는가? 항상 논란의 대상이 될 뿐이다.
정말 중요한 질문은 “검색이 정직한가?”이다.
소란스러울 수는 있지만 언제나 열려 있고, 최대한 공평하게 경쟁할 수 있는지 물어야 한다.
기존 언론은 직업적인 전문가들이 움직인다.
따라서 사람들의 편견이나 의도가 개입될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하지만 검색엔진은 시스템으로 움직인다.
그리고 ‘집단’으로서의 군중이 지능을 더한다.
따라서 일부 사람들의 편견이나 의도의 개입을 막는 기술과 신뢰가 중요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기술’은 쉽게 공개할 대상이 아니다.
영업 비밀일 뿐 아니라 완전한 검증도 어렵다.
결국 외부로 드러나는 약속과 원칙이 보다 중요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인위적으로 검색 순위에 손을 대지 않는다는 신뢰가 필요하다.
그래서 구글은 “악해지지 말자(Don’t be evil)”는 슬로건을 들고 나왔다.
상업화되는 검색, 사람 손이 개입되는 검색으로 전락하지 않겠다는 약속이었다.
물론 구글에게 페이지랭크(Pagerank)라는 탁월한 검색 기술이 있기는 했다.
하지만 사람들이 구글에게 갖는(때론 지나친) 신뢰와 열광은 기술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니다.
약속과 원칙에 대한 열광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검색 포털들은 어떤가? 구글의 기술이나 서비스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과연, 우리나라 검색은 정직한가? 불행히도 그런 확신을 갖기가 어렵다.
물론 대중들의 열광도 없다.
단지 중독만이 있을 뿐이다.
국내 검색 포털 정직성 '의문' 여러 가지 문제점이 있지만 가장 기본적인 것 두 가지만 짚어 보기로 한다.
우선 각 검색 포털에서 ‘부동산’을 검색해 보자. 그리고 디렉토리(또는 웹사이트) 검색 결과를 살펴보자. 그러면 모든 검색 포털에서 자사가 운영하는 서비스가 1위로 나온다.
디렉토리 검색은 웹사이트를 분야별로 정리한 주소록이다.
등록을 원하는 업체들은 19만8천원 내외의 비용을 내고 심사를 신청해야 한다.
그런데 어떻게 ‘부동산’ ‘중고차’ ‘대출’ 같은 검색에서는 무조건 포털 내부 서비스가 1등을 하는가?
ⓒECONOMY21 사진
강제로 순위를 조정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다.
검색 포털들은 모두 통합검색 결과 제일 위에 자사의 서비스를 소개하는 별도의 자리가 있다.
하지만 디렉토리 검색은 전혀 다른 곳이다.
웹사이트들끼리 ‘정직하게’ 경쟁을 해야 하는 곳이다.
그런데도 언제나 포털 내부 서비스가 1위를 하고 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다른 검색 결과에는 절대로 손을 대지 않는다고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는가? 이것은 기술이 아니라 가장 기본적인 원칙의 문제다.
불행히도 우리나라 검색 포털들은 몇 년째 스스로 신뢰를 저버리는 행동을 계속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검색광고 쪽에도 문제가 있다.
검색광고 명칭 문제다.
우리나라처럼 검색광고 상품이 다양한 나라가 없다.
상업적인 키워드에서 검색 결과는 대부분 광고로 뒤덮여 있다.
물론 일부 검색 포털의 대응 논리는 ‘검색 광고도 결국 정보’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 변명을 애써 받아들인다 해도 더 심각한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다.
광고라고 분명하게 밝히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검색 결과 상단에 나오는 ‘스폰서 링크’라는 영어식 표현은 광고라는 것을 알렸다고 볼 수도 있다.
그래도 그 밑에서는 고개를 갸우뚱거릴 수 밖에 없다.
전혀 광고라는 것을 알려주지 않고 있다.
사용자들을 속이고 있다.
일부 사람들이 ‘검색 포털은 돈만 내면 순위를 올려준다’고 비판할 때면 검색 포털들은 오해라고 손사래를 친다.
하지만 이처럼 정보로 포장된 광고가 가득한 상태라면 그런 오해는 스스로 자초한 셈이다.
불분명한 광고 표시는 일부 언론사닷컴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심지어는 신문기사 링크와 뒤섞어 놓은 경우도 있다.
ⓒECONOMY21 사진
미국에서도 2002년에 검색 광고 명칭을 둘러싼 논쟁이 있었다.
당시 ‘추천된(recommended)’이나 ‘특별한(featured)’ 사이트 같은 이름으로 광고하던 ‘관행’에 대해서 한 소비자 단체가 검색엔진들을 제소했기 때문이다.
결국 검색엔진들이 연방거래위원회(FTC)의 권고를 받아들여 ‘후원받는’(sponsored)이라는 명칭을 쓰는 것으로 상황은 정리되었다.
눈 여겨 볼 것은 그 이후 검색광고 시장이 위축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크게 성장했다는 것이다.
검색의 시대라는 것은 검색 결과 순서에 많은 사람과 사업의 성패가 달려있다는 뜻이다.
또한 그에 따라 검색이 힘을 얻고 돈을 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나 검색 포털이 웃고 있을 수만은 없다.
그만큼 수 없는 이해관계와 압력에 직면하기 때문이다.
이번 대통령 선거만 놓고 봐도 그렇다.
벌써부터 대선 후보 지지자들이 똑같은 검색 포털을 두고도 상대 후보에 유리한 행동을 한다고 비난하는 경우가 있다.
검색은 진실성보다 사실에서 위력 그렇다면 검색 포털은 이런 상황을 어떻게 헤쳐가야 할까. 기계적인 중립을 유지해야 하는가? 아니면 외부인이 참여하는 공동 편집위원회라도 만들어야 하는가. 물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최선의 답은 애매한 공정성보다 정직성에서부터 찾아야 한다.
그것이 검색을 둘러싼 압력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며 힘을 얻는 방법이다.
“우리는 검색 순위에 손을 대지 않는다.
부족한 부분이 드러나면 원칙과 시스템으로 개선해갈 것이다.
하지만 그 어떤 순간에도 우리는 검색 순위에 손을 대지 않는다.
” 물론 일반적인 검색 결과와 메인 페이지 뉴스 편집은 운영상의 차이가 있겠지만 큰 원칙에서는 다를 것이 없다.
검색은 ‘진실’보다는 ‘사실’에서 위력을 발휘한다.
진실을 외치기보다는 거짓을 드러내서 도태시키는 쪽에서 강하다.
특히 기존의 권위와 특권을 검증하고 감시하는 역할을 부여 받고 있다.
그런데 이 영역에 사람 손이 자꾸 작동한다면 또 하나의 성당 미디어 권력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몇몇 사람이 의제 설정을 하면서 세상을 ‘선하게’ 인도할 수 있다는 자기 확신에 빠질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성당들이 욕심내는 일이지 시장의 역할이 아니다.
시장은 선해질 수 없다.
악해지지 않을 수 있을 뿐이다.
고려대 최장집 교수는 지난해 12월 한 강연회에서 “한국 언론들은 아는 것에 비해 너무 큰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럼에도 책임을 지지 않는 곳은 언론 밖에 없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런데 자본의 힘을 빼고는 아무것도 무서울 게 없는 것 같은 언론이 유일하게 염려하며 딴죽을 거는 것이 바로 검색이다.
언론 권력을 그나마 견제할 수 있는 것은 일반 대중이며 그들은 검색을 통해서 그 힘을 얻을 수 있다.
그리고 검색의 힘은 기존 언론이 힘을 잃어버린 자리, ‘신뢰’에서부터 출발한다.
검색은 정직해야 한다.
전병국 검색엔진마스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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