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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동의 주유산천기]언 땅과 햇살 가득한 강 오라, 봄이여!
[장태동의 주유산천기]언 땅과 햇살 가득한 강 오라, 봄이여!
  • 장태동 여행작가
  • 승인 2007.03.0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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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남긴 흔적을 찾아가본다.
앙상한 뼈마디를 드러낸 나무처럼 사람에게도 혹독한 계절이 있다.
다 버리고 나서야 채울 수 있는 자연의 법칙을 모른다면 야윈 겨울강가에 서보라. 오래된 나무에 돋는 연둣빛 새순이 꽃보다 아름답고 강철보다 더 강하게 보이는 이유를 생각할 일이다.
어린 시절 놀이처럼 자기편과 남의 편을 분명하게 갈라놓은 것도 아닌, 할 수 있는 한 속을 숨기고 살아야 하는 어른들의 세상이 있다 치자. 그리고 그 세상에서 어른 놀이를 그럴싸하게 했던, 이른바 잘 나가던 친구가 있다 치자. 아주 오랜만에 그 친구가 전화를 해서 같이 여행 가자고 말을 건넸다 치자. 그럴 때 나는 어떻게 할까? ‘~했다 치자’라는 ‘가정형 세상’의 이야기인 줄 만 알았던 일이 얼마 전 일어났다.
1년에 한두 번 전화로 안부나 묻던 그가 내게 전화를 해서 함께 여행을 가자는 것이었다.
전화 끝에 그는 직장을 그만 둔 지 2주쯤 됐다는 말을 덧붙였다.
위기의 세 남자 주저 없이 광주에 사는 친구에게 전화를 해서 둘이 내려가니 알아서 준비해 놓으라고 했다.
광주 친구와 나와 그는 아주 오래된 친구였으나 그와 나는 깊게 통하지 못했으므로 이번 일이 좋은 계기가 되리라 생각했다.
밤 9시30분에 광주에 도착했다.
자정 넘어야 끝난다던 광주 친구가 본인이 소개해 준 바(Bar)에 나타난 것은 1시가 조금 넘어서였다.
전남대 후문 근처 일본식 주점으로 자리를 옮겼고, 그 자리에서 새벽을 봤다.
다 취했고, 그와 나는 뜻이 통했다.
앞으로 살아갈 계획에 대해서 한 마디도 묻지 않았고, 그도 말하려 하지 않았다.
무관심한 게 아니었다.
말하지 않아도 그 심정 다 알았기 때문이었다.
광주 친구와 나는 몇 년 전에 그런 일을 겪었던 것이다.
닥쳐올 경제적 곤란은 어느 정도 늦출 수 있다.
그러나 세상에서 밀려났다는 상대적인 소외감을 극복해야 한다.
그 혼자서. 술자리에서 광주 주변 바람 좋은 곳 이야기를 하다가 곡성 이야기가 나왔고, 우리는 광주종합버스터미널에서 곡성 가는 버스를 탔다.
셋은 금방 골아 떨어졌다.
코 끝에서 술 냄새가 가시기도 전에 도착한 곳이 섬진강이었다.
겨울 끝이라지만 강바람은 쌀쌀했다.
하동이나 구례 쪽 풍요로운 섬진강만 보았던 내게 강바닥이 보이는, 야윈 섬진강이 안쓰러워보였다.
차라리 매서운 강바람이라도 불었으면, 아니 강물이라도 넉넉하게 흘러 풍요로워 보였으면, 다 털어버리지 못한 미련이 독이 되어 그의 몸에 스며들 것 같았다.
그는 강 모래밭을 거닐거나, 물 위로 드러난 앙상한 강 바위 위에 한참을 서서 담배를 피워 물고 간혹 웃기만 했다.
얕은 강물 ‘쫄쫄’거리는 소리가 귀에 익을 무렵 꽤 그럴싸한 강가 통나무집을 발견했다.
나는 친구들을 그쪽으로 이끌었고 우리는 섬진강과 보성강이 만나는 곳에 있는 그 집 방갈로를 차고앉았다.
창밖으로 마른 나무 가지와 흙에 남은 잔설이 눈에 들어왔다.
그 아래로 오후의 햇살 반짝이는 강이 보인다.
강 건너 산으로 좁은 길이 났다.
그곳에도 사람이 사는 모양이다.
식당 아줌마 말대로 섬진강에 오면 꼭 먹어야 한다는 은어와 참게 요리를 섞어 시키고 나만 밖으로 나왔다.
다 털어버리고 강가에 서다 잔설 남은 강 언덕 나뭇가지에 마른 잎 몇 개가 달려 있었다.
차라리 다 떨어뜨리고 말 것을. 마른 잎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에서 흙을 움켜쥐고 생명을 부지하려는 뿌리의 마지막 안간힘을 보았다.
햇볕은 강에서만 반짝였다.
물결마다 산란하는 햇볕에 겨울 강이 따듯하게 보인다.
강은 그렇게 먼저 몸을 풀고 언 땅 기슭에 숨구멍을 틔우고 있을 지도 모를 일이다.
ⓒECONOMY21 사진
친구들이 있는 방갈로로 돌아갔다.
평일 대낮에 아주 오래된 친구들과 함께 섬진강 강가에 앉아 이렇게 술을 먹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열심히 일할 줄만 알았지 행복하게 쉴 줄 모르는 어른들 세상, 그곳에서 한발만 내딛으면 일보다 중요한 휴식이 있고 사랑보다 편안한 우정이 있는데 말이다.
통한 뒤로 이어진 섬진강 술자리에서 그와 나의 관계는 깊어졌다.
기억을 더듬어 옛일을 꺼내놓았다.
내가 기억하지 못한 일들이 그의 머릿속에 있었고 친구들 또한 그랬다.
기억의 파편을 모아 앳된 날의 일들을 줄줄이 엮어냈다.
우리는 그렇게 처음으로 돌아가 더 깊어졌다.
그 사이 어둠이 강으로 길을 내기 시작했고, 창밖 가로등은 우리가 있는 방갈로를 지키고 있었다.
미명이 남은 보랏빛 저녁 공기를 흠뻑 들이마시고 내뱉기를 반복했다.
아까 보았던 산으로 난 길에 듬성듬성 불빛이 보였다.
어둠이 짙어질수록 창으로 새어나는 빛은 밝았다.
하늘의 별은 강으로 쏟아져 내릴 것 같았다.
우리는 완전히 취해버렸다.
*섬진강 따라가며 즐기는 곡성역 증기기관차 곡성은 섬진강 중상류 쯤 있다.
옛 곡성역과 그 주변을 기차마을로 꾸며 놓고 ‘섬진강 기차마을’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기차마을 곡성역에서 가정역까지 약 10㎞ 구간에 증기기관차가 운행한다.
관광용 증기기관 열차는 1960년대에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운행하던 것과 똑 같은 것이다.
기차는 섬진강변을 아주 천천히 달려 섬진강과 주변 볼거리들을 충분히 즐기게 했다.
특히 봄이 되면 섬진강과 산기슭의 신록, 울긋불긋한 철쭉꽃, 그리고 그 사이로 난 기찻길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 낸다.
*곡성역 철로자전거 곡성역 철도공원 안 510m 구간 철로에서 4인승 철로자전거를 즐길 수 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이용할 수 있다.
이용요금은 3천원. 문의전화 061-360-8850 *곡성역 옆 영화촬영 세트장 곡성역 옆 빈터에 영화촬영 세트가 있다.
곡성역과 함께 오래된 풍경을 만들고 있는 세트장에서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 드라마 ‘야인시대’ ‘사랑과 야망’ ‘서울1945’ ‘토지’ 등을 촬영했다.
*가정역 자전거 하이킹 날이 풀리면 가정역 인근 자전거 대여소에서 자전거를 빌려 섬진강 강가 길을 따라 자전거 하이킹을 즐길 수도 있다.
섬진강 별미 *은어 섬진강의 은어는 향이 좋기로 유명하다.
몸에서 수박냄새가 나 향어라고도 부른다.
곡성, 구례에 은어횟집이 많다.
소금을 뿌려 구워먹기도 하고 얇게 썰어 들깻잎에 싸먹으면 그 향이 입안에 오래 머문다.
쌀을 넣어 죽으로도 먹거나 통째로 기름에 튀겨먹기도 한다.
압록유원지에 가면 은어요리집이 있다.
회, 튀김, 구이 각각 2만원~3만원. *참게 참게는 강과 바다가 만나는 지점에서 산란하는 데 섬진강에서 그런 곳이 전남 구례군 토지면 외곡마을쯤 된다.
첫서리가 내릴 무렵이면 통통하게 알을 밴 참게들이 강 하류로 내려간다.
곡성도 직접 채취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곳 중 하나이다.
곡성 가는 길 *자가용 호남고속도로 동광주IC-곡성IC-지방도 60번-곡성 대전통영간고속도로 함양IC-88고속도로-남원IC-국도 17번-곡성 *기차 서울(용산역)에서 곡성 가는 기차(전라선)가 있다.
하루에 새마을호 3회, 무궁화호 9회 운행한다.
*버스 광주까지 온 뒤 광주에서 곡성 가는 버스를 탄다.
광주에서 곡성까지 50분 정도 걸린다.
곡성버스터미널에서 곡성역(섬진강 기차마을)까지 택시요금이 2500원 정도 나온다.
글/사진 장태동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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