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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런트]아파트 원가, 이미 공개되고 있다!
[커런트]아파트 원가, 이미 공개되고 있다!
  • 장승규 기자
  • 승인 2006.07.1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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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자체, 승인 권한만 활용해도 고분양가 잡을 수 있어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와 관련해 가장 큰 논란을 부른 것은 노무현 대통령의 지난 2004년 6월 발언이다.
민주노동당 지도부 간담회에서 노 대통령은 “장사하는 것인데 10배 남는 장사도 있고 10배 밑지는 장사도 있다”며 “시장을 인정한다면 원가 공개는 인정할 수없다”며 단호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후 원가 공개 문제에 대한 정부의 대응 방식은 이 원칙을 벗어나지 않았다.
2005년 3월, 그나마 원가 공개를 부분적으로 도입했지만, 공개 항목이 7개 항목에 그쳐 시민단체의 요구 수준과는 큰 거리가 있었다.
최근 2004년 원가 공개 문제로 ‘계급장을 떼고 토론하자’며 노 대통령에 맞섰던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원이 당 의장에 오르면서 원가 공개의 전면 시행 가능성을 점치는 의견이 적지 않다.
김 의장도 “그때 원가 공개를 했다면 집값을 잡을 수 있었다”고 아쉬움을 토로해 이런 관측에 더욱 힘이 실리고 있다.
원가내역, 감리자 공고문에 있어 하지만 노 대통령과 당의 미묘한 긴장 관계가 중요한 변수다.
열린우리당 관계자는 “원가 공개에 찬성하는 의원들이 적지 않지만, 워낙 민감한 문제라 공론화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의 부동산 정책 재조정은 재산세 인하로 일단락된 상황이다.
그러나 노 대통령과 건설교통부의 완고한 불가 입장과, 여당의 소극적 태도에도 불구하고 원가 공개의 가능성은 한층 높아지고 있다.
지방자치단체와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아래로부터의 원가 공개가 빠른 속도로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지난 5월 말, 58개 항목에 달하는 상세한 원가 내역이 이미 공개되고 있다는 어이없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진 게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손낙구 심상정 민주노동당 의원 보좌관은 “노 대통령이 장사 원리에 안 맞는다는 논리를 폈는데, 이미 법에 따라 원가 공개가 상세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게 밝혀졌다”며 “노 대통령이 뭘 모르고 한 말이 됐다”고 말했다.
원가 내역은 바로 지자체에서 내는 감리자 모집 공고문에 포함되어 있었다.
지자체 인터넷 홈페이지 게시판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모집 공고문에는 ‘총사업비 산출총괄표’(16개 항목)와 ‘공종별 총공사비 구성 현황표’(48개 항목)가 첨부되어 있다.
이 공고문에 따라 모집 신청을 한 감리업체 가운데 지자체장이 한 곳을 해당 아파트공사를 감리할 감리자로 지정하게 된다.
감리자를 모집하면서 공사비를 공개하는 이유는 뭘까? 황이숙 한국건설감리협회 연구조사실 과장은 “공사비는 감리 업체가 받는 감리 대가를 산출하는 기준이 된다”고 말했다.
총공사비에 일정 요율을 곱해 감리 비용이 결정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건설업체들이 감리비용을 줄이기 위해 공사비를 낮춰 신고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황 과장은 “공사비 내역의 정확성이 떨어지는 것은 분명하다”며 “현실적으로 공사가 불가능한 수준으로 터무니없이 낮게 책정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실제 아파트 분양공고 때 공개하는 총사업비와 감리자 모집공고의 사업비가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은 이 때문이다.
감리자 모집공고 때는 사업비를 낮추고, 분양공고 때는 부풀리는 것이다.
건교부, 원가 공개 사실에 당혹 황 과장은 “공사비가 커지면 당연히 감리대가도 올라가야 한다”며 “지자체에 여러 번 이 문제를 제기 했지만 분양 승인을 할 때 비교 검토하겠다는 답변만 들었다”고 말했다.
건설업체들이 금융비용 등 간접비 항목이 크게 올랐다고 나오면 감리업체로서는 마땅한 대응책이 없다.
감리자 모집 공고 때 총사업비만 아니라 세부비용 항목의 공개가 필요한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공정별로 시공사에서 요구하는 공사대금의 적정성을 검토하는 ‘기성 검토’에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황 과장은 “대개 월별로 지급되는 하도급 대금이 적정한지 감리하게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주택법의 적용을 받는 아파트 공사는 기성 검토를 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시공사나 사업자나 정확한 내역의 노출을 꺼리기 때문이다.
아파트 공사의 경우 감리업체 입장에서는 58개 항목에 달하는 상세한 사업비 공개가 큰 의미는 없는 셈이다.
어쨌든 감리자 모집 공고 때 이미 원가 공개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곤혹스런 처지에 빠진 것은 건교부다.
물론 건교부는 이러한 원가 공개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의도적으로 은폐해, 결과적으로 노 대통령을 오도한 것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펄쩍뛴다.
건교부는 감리자 모집 공고상의 공사비는 ‘예정공사비’로 흔히 말하는 ‘분양원가’와는 전혀 다른 개념이며 정확성도 떨어진다고 해명한다.
하지만 시민단체들은 건교부의 궁색한 변명에 어이없다는 반응이다.
김헌동 경실련 아파트값거품빼기운동본부장은 “건교부가 시민단체들이 마치 완성원가 공개를 요구하는 것처럼 왜곡하고 있다”며 “아파트를 짓지도 않은 상채에서 완성원가는 존재하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또한 완성원가 공개는 건설사들이 기술 개발과 경쟁을 통해 원가를 절감하려는 의욕을 떨어뜨릴 수 있어 시장경제 원리에 맞지 않다는 것이다.
김 본부장은 “공개가 필요한 것은 바로 예정가격”이라고 했다.
실제로 건설업체들은 아파트를 지을 때 정부의 ‘예정가격 작성기준’에 따라 원가를 정확하게 산출해 사업계획 승인, 감리자 모집, 입주자 모집 승인 때 지자체에 이를 제출해야 한다.
김 본부장은 “정확한 가격이 아니라는 건교부 설명은 그동안 건설업체들이 낸 엉터리 서류를 묵인해 왔다고 자인하는 꼴밖에 안 된다”고 말했다.
손낙구 보좌관도 “감리자 모집 때 건설업체들이 감리 대가를 줄이기 위해 사업비를 낮춰 신고할 유인을 갖는다는 건 분명하지만, 이런 문제를 고려하더라도 공고된 사업비 내역은 고분양가 여부 등을 판단하는 근거가 충분히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경실련은 현재 1주일인 감리자 모집 공고 게시기간을 늘려 상시 공시하도록 하고, 세부항목을 정확성도 더 높일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2003년부터 제기된 분양원가 공개 요구는 사실상 실현되는 것이다.
최근에는 고분양가 문제에 대한 지자체들의 적극적인 대응도 눈에 띄고 있다.
지난 4월 판교 신도시 분양 때 이대엽 성남시장이 입주자 모집공고 승인권을 이용해 평당 분양가를 60만원가량 낮춰 주목을 받았지만, 천안시는 아예 적정 분양가 상한을 정해놓고 이 기준을 초과할 경우 모집 승인을 아예 해주지 않고 있다.
진광선 천안시 주택과장은 “아무리 시장경제 원리가 중요하다고 해도 지나친 고분양가는 결국 서민들의 부담으로 돌아오고 경제 전반에도 악영향을 준다”며 “지난 2004년부터 자체적으로 가격 기준을 정해 지나치게 높은 분양가를 억제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 결과 천안지역 아파트 가격은 평당 분양가가 800~900만원선을 넘어선 인근 대전권이나 충북권에 비해 안정을 유지하고 있다.
현재 천안시에서 적용하고 있는 가격 상한선은 평당 655만원. 진 과장은 “건설업체들은 ‘도저히 이 가격에는 사업성이 없어 도산할 수밖에 없다’며 강하게 반발했지만, 입주자 모집공고는 서류만 내고 신고하면 끝나는 게 아니라 어디까지 승인 사항”이라며 “다른 지자체에서도 정확한 내용 검토와 검증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심상정 의원은 사업계획 승인, 감리자 지정공고 승인, 입주자 모집공고 승인 등 사업 단계별로 지자체들이 건설업체의 허위신고를 묵인했는지 밝혀달라는 취지의 감사 청구안을 감사원에 낼 계획이다.
2000년 이후 서울과 인천, 경기도에서 분양된 아파트 전체가 그 대상이다.
손낙구 보좌관은 “지자체장들이 현재 갖고 있는 권한만 제대로 행사해도 고분양가를 막을 수 있다”며 “감사 청구안에 현재 50명의 여야 의원이 서명했다”고 말했다.
손 보좌관은 실제 대대적인 감사가 이루어지면 향후 지자체들이 승인 권한을 제대로 행사하게 만드는 획기적인 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장승규 기자 skjang@economy21.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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