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6 17:03 (금)
[경제거꾸로읽기] 증권시장의 ‘개미군단’ 이야기
[경제거꾸로읽기] 증권시장의 ‘개미군단’ 이야기
  • 장의식 소비자가 만드는 신문
  • 승인 2007.03.12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989년 봄 증권시장은 대단했다.
코스피지수가 사상 처음으로 1천포인트를 돌파하고 있었다.
투자자들은 너도나도 증권시장으로 달려들었다.
직장인들은 직원끼리 서로 보증을 서주고, 보험회사에서 대출을 받아 주식투자를 했다.
농민은 소 팔고, 논까지 팔아 투자했다.
서민은 땅 팔고, 집 잡혀 투자하기도 했다.
어떤 중소기업은 아예 기업을 처분한 돈으로 투자를 했다.
기업 임직원은 일을 팽개치고 증권회사 단말기에 매달렸다.
점심 때 해장국 앞에서도 주식 이야기, 퇴근길 소줏잔 앞에서도 주식 이야기였다.
어느 기업이 공개를 한다고 하면 수천억 원이나 되는 청약자금이 몰려들었다.
'주식병(株式病)'이 번지고 있었다.
이때를 전후해서 새로 생긴 용어가 있었다.
‘개미군단’이라는 말이었다.
돈을 싸들고 증권시장으로 몰려드는 투자자들이 마치 개미떼 같아서 붙인 이름이었다.
이들은 거액투자자나, 상주투자자와 비교하면 자금력이 보잘 것 없었다.
그래도 숫자가 워낙 많았다.
무시할 수 없는 고객이었다.
증권회사의 약정수수료 수입을 짭짤하게 올려줬던 것이다.
그래서 이들을 개미군단이라고 불렀다.
이 개미군단이라는 말이 지금도 사용되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군단을 빼고, 개미라고 부르는 것 같다.
‘슈퍼개미’라는 한층 진화된 용어까지 나왔다.
아마도 거액을 굴리는 개미를 일컫는 용어일 것이다.
그런데 개미라는 것은 애당초 잘못된 표현이다.
‘개미와 베짱이 우화’를 보아도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개미라고 하면 부지런하고 성실한 이미지를 떠올리게 된다.
그렇지만, 증권시장에 몰려든 개미는 하나같이 ‘떼돈’을 노리는 사람이었다.
하루 종일 땀 흘려 일하는 개미일 수는 없었다.
개미는 은행 정기예금 금리인 ‘공금리’에 만족할 리 없었다.
적어도 공금리의 몇 배 정도는 노리고 주식을 샀다.
한 푼 두 푼 적금을 들고, 예금을 하는 사람이 진짜 개미였다.
그런데도 증시 주변에서는 이들을 개미라고 불렀던 것이다.
개미가 있기는 했다.
주식저축을 하거나, 펀드에 만기 때까지 돈을 잠겨두는 투자자들은 진짜 개미였다.
하지만 이런 투자자는 드물었다.
많은 투자자들은 이른바 한탕을 노렸다.
차익이 생기면 증시를 떠났다가 슬그머니 다시 나타나곤 했다.
그랬으니 애당초 개미군단이 아니라 ‘베짱이군단’이라고 했어야 옳았다.
대박을 노린 것만 따져 봐도 그렇다.
요즈음도 ‘메뚜기 거래’가 자주 일어나고 있다는 보도다.
어쨌거나, 당시 개미군단은 누구 말처럼 별 재미를 볼 수 없었다.
달아올랐던 증권시장이 한국은행의 투자신탁회사에 대한 특융(特融)을 실시할 정도로 추락하고 말았던 것이다.
1천포인트를 돌파했던 주가지수가 바닥을 점칠 수 없을 정도로 떨어지자 급기야는 한국은행이 투자신탁회사에 특별융자를 하게 되었다.
한국은행은 투자신탁회사에 직접 돈을 대줄 수 없다.
재할인기관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중은행에 돈을 빌려주고 이 돈을 다시 투자신탁회사에 대출하는 변칙적인 방법으로 지원했다.
얼마 전 주가가 사상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고 했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수익을 올렸다고 했다.
그렇지만 개미들은 오히려 손해를 본 것으로 추정되었다고 한다.
코스피지수 상승률은 8%나 된 반면 개미들이 사들인 주요 종목 가격은 0.2%가 떨어졌다는 보도였다.
그래서 돌이켜본 개미의 과거사다.
장의식 소비자가 만드는 신문 기자 www.csnews.co.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