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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런트] 구멍 난 법 체계가 병원 폭리 불러
[커런트] 구멍 난 법 체계가 병원 폭리 불러
  • 황철 기자
  • 승인 2006.07.1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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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급여 진료비 ‘신고제’ … 과잉 청구에도 규제 수단 ‘전무’ 학교 급식 사고의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병원에서 제공되는 부실 식사 문제가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 6월 병원 식대에 대한 건강보험 급여 적용 이후, 의료기관들이 질 낮은 보험 식단을 환자들에게 제공하고 있다는 비난이 빗발치고 있기 때문. 보건복지부가 뒤늦게 전국 병·의원의 환자식 실태 조사에 돌입했지만, 의료기관의 반발이 워낙 커 부실식단 근절 여부는 여전히 미지수다.
그러면 치료의 연장선에서 충분한 영양을 공급받아야 할 환자 식단이 저질 음식으로 차려지게 된 근본 원인은 무엇일까. 의료업계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가 비급여 의료 보수를 요양기관의 자율에 맡기고 있는 현행 의료법의 허점에서 시작됐다고 입을 모은다.
병원식의 저질 논란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병원 식대의 건강보험 적용 후, 정도가 심해졌다는 게 차이라면 차이다.
국내 의료기관들은 그동안 비급여 항목의 1/5 정도를 차지해오던 입원 환자 식대를 주 수익원으로 삼아왔다.
그만큼 병원들에게는 환자 식대가 절대 뺏기기 싫은 자식 같은 존재다.
이렇게 효자노릇을 해오던 식대가 보험식으로 전환됐으니 병원들이 반기를 드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심사평가원도 못 건드린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가 산모들 식단을 볼모로 식대 인하에 항의한 것이 단적인 예다.
이들은 산모들 식단에서 미역국을 빼겠다고 엄포를 놓기도 했다.
최근 한 네티즌이 인터넷에 올려 화제가 된 자신의 초라한 병원 식단 사진 역시 의료기관의 이기주의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 식단에는 밥과 무채 국, 두부 한 쪽, 단무지 두 쪽, 상추와 김치가 전부였다.
의료업계 관계자들은 이러한 사태의 근본원인으로 비급여 진료비 책정을 신고제로 운용하고 있는 의료법의 맹점을 지목하고 있다.
비급여 항목에 대한 의료보수 산정 권한을 전적으로 요양기관에 맞기고 있는 실상을 꼬집고 있는 것. 현행 법에 따르면, 병원들이 비급여 항목으로 분류되던 식대를 과다 산정하더라도, 정부가 나서 제재할 만한 뚜렷한 명분이 없다.
문제는 이러한 관행이 의료기관의 진료비 부풀리기로 이어졌고, 치료의 연장선에 있어야 할 환자 식단이 병원의 수익원으로만 치부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또 갑작스런 식대의 건강보험 적용이 의료기관의 반발을 불렀고, 저질 식단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가 형성됐다.
서울 지역 보건소 한 직원은 “급여 부분에 대해서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등을 통해 진료비과잉 청구에 대해 심의·제재할 수 있지만, 비급여의 경우 민원이 제기돼도 마땅히 조사할 근거가 없다”며 “사실상 병원의 식대 부풀리기는 관행적으로 이뤄진 측면이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의료법 상에는 ‘의료기관이 환자 등으로부터 징수하는 의료보수에 관해서는 그 지역을 관할하는 시·도지사에게 신고해야 한다’(의료법 37조)고만 명시돼 있다.
신고만 하면 식대나 선택진료비 등 비급여 항목을 자율적으로 책정할 수 있는 것이다.
아래 한 민원 사례를 보면, 병원 식대를 이용한 진료비 과다 청구와, 법망의 허점을 이용한 과정을 단적으로 엿볼 수 있다.
지난해 모 대학병원에서 아이를 출산한 박상은(28, 가명)씨는 진료비 청구서를 보고 황당함을 금치 못했다.
21일간 입원한 신생아의 식대로 14만7천원이 청구된 것이다.
박씨는 아이의 입원기관 동안 모유 수유와 분유식을 병행해 왔다.
병원에서 제공한 분유 량은 많아야 하루에 60cc를 넘지 않았다고 한다.
시중에서 파는 분유 3스푼 이하가 제공된 것이다.
21일 동안 일반 분유 한 통도 먹지 않았다는 계산. 식사 원가는 넉넉잡아야 2만원이다.
병원 측에서는 분유 량에 관계없이 하루 7천원의 식대가 일괄 적용됐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산정 기준을 물었지만, 구체적 액수는 제시하지 않았다.
박씨는 관할 보건소에 과잉 진료비 청구로 민원을 접수했지만, 비급여 부분이어서 병원 측에 이의를 제기하기 어렵다는 말이 돌아왔다.
급여와 연관성이 있는 경우에만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등이 중재에 나설 수 있다는 것이다.
의료소비자시민연대나 공정위원회 측에 민원을 접수하는 게 오히려 낫다는 게 이 보건소의 최종 답변이었다.
박씨는 결국 복잡한 절차와 시간 낭비를 우려해 민원을 포기했다.
박씨는 “모유 수유를 주로 했고, 출생 후 초반에는 하루 분유 반 스푼조차 안 먹일 때가 있었다”며 “횟수·양에 관계없이 무조건 7천원이라는 건 말도 안 된다”고 성토했다.
또 “환자 개개인별로 식대를 산정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아이가 먹으면 얼마나 먹는다고 하루 7천원이나 책정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어른들이 먹는 일반 식단의 경우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지난해 한 시민단체의 조사를 보면 서울지역 의료기관의 일반식 식대는 3천원에서 8천원 이상까지 천차만별이었다.
그러나 질적인 차이는 그다지 크지 않았다는 게 이들의 보고. 병원 측의 설명대로 인건비와 시설 장비 투자 등에 대한 감가상각비를 감안해도 편차가 너무 크다.
의료기관들이 적절한 기준에 의해 가격을 산정하는 것이 아니라 제멋대로 식대를 받아온 것이다.
의료서비스 후진도 걱정 의료기관들은 병원 사정에 따라 가격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원가와 세부 기준 공개 요구에는 말을 돌렸다.
서울 소재 한 대학병원 관계자는 “식사 가격은 재료비, 인건비, 감가상각비, 전기료, 수도료 등 다양한 요소를 감안해, 책정하고 있다”면서 “의료기관이 자율적으로 책정할 수 있는 만큼 원가까지 공개할 이유는 없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이번 논란이 단순히 부실 식단 문제로 끝나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향후 선택진료 요금, 초음파 진단 등 비급여 항목들에 대한 폐지나 보험적용이 이어질 경우, 의료 서비스의 질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이 경우 병원의 반발이 얼마나 극심할지는 이번 식대 논란을 빗대보면 예측 가능하다는 소리도 들린다.
건강관리공단의 한 관계자는 “지금까지 식대에 대한 보험 적용을 두고 보여 온 병원들의 행태에 비춰 볼 때, 향후 비급여 항목을 더 줄여 가면 어떤 일이 발생할지 우려스러울 지경”이라고 밝혔다.
황철 기자 biggrow@economy21.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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