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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피플] 세계적으로 유명한 6평빵집주인
[이코노피플] 세계적으로 유명한 6평빵집주인
  • 진희정 기자
  • 승인 2006.08.1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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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모 사장은 제과기능장이며 대한제과협회 회장으로 김영모과자점을 운영하 고 있다.
김 사장은 지난 1982년 서울 서초동의 6평 작은 빵집에서 직원 3명으로 제과업을 시작해 현재 서초 본점, 도곡타워점, 도곡역삼럭키점 등 3개 매장에서 130명의 직원들과 함께 일을 하고 있다.
도곡동 타워팰리스 앞에 자리한 도곡타워점의 경우 1일 평균 600만원, 1년 25억 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이 지역은 신세계, 신라호텔 등 대기업에서 운영하는 제과점과 파리크라상 등 프랜차이즈점 등이 입점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곳이다.
하지만 김영모과자점은‘타워팰리스 빵집’이란 별칭으로 불리며 대한민국 최고 부자들의 입맛을 사로잡아 버렸다.
제과점에‘마케팅’을 도입하다 “프랜차이즈 제과점들이 광고 및 프로모션 등 대대적인 마케팅을 벌이고 있어서 국내 시장을 대부분 점유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상은 그 반대입니다.
제과업계가 더욱 성장하기 위해서는 일반 독립점들이 작은 부분에서부터 마케팅을 도입해야 합니다.
” 김 사장은 자신의 사업이 성장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로 15년 전부터 실시해 온 마케팅을 들었다.
그는 한 가족에게 카드 1개씩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현재 2만여명의 회원을 갖고있다.
신제품이 나오면 고객DB를 통해 DM을 발송하고 기념일에는 할인 서비스 등도 제공한다.
또한 입소문 마케팅에도 철저히 신경 썼다.
지금은 일반화됐지만, 케이크를 포함한 각종 빵류 및 과자류를 선물로 포장 판매 했으며, 패키지 안에는 매장에서 판매하는 주력 상품들의 소개 전단을 삽입했다.
이를 통해 소비자들이“이 빵이 그 유명한 집 제품이라니까”하는 얘기를 주고받을 수 있도록 노력했다.
우리나라에 최초로 제과점이 등장한 것은1945년이다.
태극당 제과점을 선두로 고려당, 뉴욕제과점이 생겼다.
본격적인 체인망 시대가 열린것은 1974년 뉴욕제과가 강남점을 설립하면서부터다.
이후 제과점은 프랜차이즈 형태인 브랜드 제과점과 독립점인 윈도베이커리 두 가지 형태로 운영 돼 왔다.
대한제과협회에 따르는 국내 제과점 수는 독립제과점 1만3천여개, 프랜차이즈 제과점 2천300여개를 포함 총 1만5천여 곳이 있다.
전체 시장 규모는 대략 2조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김 사장은 독립점이 프랜차이즈점보다 훨씬 많지만, 그날그날의 매출에 급급해 장기적인 투자나 마케팅의 부족 등으로 규모가 큰 기업형 제과점으로 크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이유로 자신의 노하우를 지방 및 중소업체들에게 적극전수하고있다.
함께 잘 사는 것이 결국 업계를 성장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빵이나 과자류는 아무래도 맛과 질이 기본이다.
그는 업계 최초로 유산균 발효, 과일 발효 등 천연 발효법을 도입했다.
이 방법은 오래 전부터 있어왔던 것이지만, 실제로 적용하려면 시간이 몇 배 이상 걸린다.
일반 빵을 굽는 시간은 3시간 정도지만, 발효법을 사용하면 10여 시간이 든다.
하지만 그는 소비자들에게 최상의 제품을 제공하기 위해 어려운 공정을 마다하지 않았다.
밀가루 한 포대가 아쉬웠던 개점 초기에는 소보로 빵에 덮여야 할 소보로 180g 중2g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전량을 폐기하거나, 원래 사용하던 치즈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치즈스틱을 모두 버린 일화 등은 유명하다.
“저는 프랜차이즈를 하고 싶지 않습니다.
기계로대량찍어내다보면, 빵에정성이들어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소비자들의 건강은 물론 다양해지는 입맛에도 딱 맞는 그런 빵을 계속해 만들고 싶습니다.
” 김 사장은 자신의 경영철학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는 매일같이 변하는 소비자들의 입맛을 맞추기 위해 신제품 개발에도 열을올리고있다.
매달 프랑스와 일본에서 나온 제과 및 제빵 신간서적을 구매하고, 이를전문 업체에 번역을 맡겨 신제품 아이디어에 적극 활용한다.
또한 관련책을 집필하는데에도 열심이다.
그는 지난 4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린‘구어만드(Gourmand)상’시상 식에서 디저트 책부문 대상을 받았다.
요리책 분야의 세계적 권위를 자랑하는 이 시상식에서 한국인이 상을 받은 것은 최초다.
그에게 수상의 영광을 안겨준 책은 지난해 7월 미국에서 출간된 제과 및 제빵 책‘컬렉션 오브 파인 베이킹(A collection of Fine Baking)’이다.
이 책은 아마존 닷컴의 독자서평에서 호평을 받았으며, 세계적인 대형서점인 반즈앤노블즈에서 판매량 1위의 신간으로 기록된 바 있다.
이 상은 지난1995년유럽에서시작됐으며, 전세계에 1년동안 출간된 요리 및 와인책 중 가장 뛰어난 책을 뽑아 시상하고 있어‘요리책 분야의 오스카상’으로 불린다.
“처음엔‘동양인이 웬 제빵이냐?’고무시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한국적인 색채를 가미한 요리법이 서양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고 합니다.
녹차를 이용한 시폰케이크와머핀, 술빵을 찌듯 와인으로 반죽한 호밀 빵, 구운 고구마로 만든 케이크등이 바로 그것입니다.
” 디저트 책 부문의 역대 수상자를 보니 프랑스의 피에르 에르메, 이탈리아의 루치아나 폴리아티, 일본의 유키 오모리 등 제과 및 제빵계의 거장들이 있었다.
가장 한국적인 것으로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았던 것이다.
김영모 사장의 인생역정은 한 편의 드라마다.
김 사장이 태어나자마자 부모는 남남으로 갈라섰다.
그는 숙부집에 얹혀 살며10여년동안 눈칫밥을 먹어야했다.
초등교5학년 때 용기를 내 아버지를 찾아갔지만,재혼한 아버지에게는 새어머니가 있었다.
그는 계속 외로운 천덕꾸러기였다.
어린소년은 늘 배가 고팠고, 방과 후 학교 근처 빵집앞에 몇 시간이고 쭈그려 앉아있었다.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빵을 바라보기만 해도 배가 불렀고, 운이 좋은 날에는 주인이 크림빵이나 단팥빵을 한 개씩 던져주기도했기 때문이다.
“제 평생을 통틀어 그때만큼 맛있는 빵을먹어본 적은 없었습니다.
아마 제빵사의 길로 접어든 것도 그 때 먹었던 빵 때문인 것같습니다.
눈물 젖은 빵 먹고 자란 소년기 김 사장은 제빵업에 뛰어든 계기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소년이었던 그는 결국 아버지 집을 나와 친척집을 전전하다 가출했고,17세때에 제빵사 보조로 취업하게됐다.
하지만 결핵으로 직장을 잃으며 다시 좌절을 맛봐야 했다.
방황으로 얼룩진 세월을 보냈으나 군대에서 읽은 한 권의 책이 그의 인생을 수렁에서 건졌다.
이후 그는 빵 만드는 일에만 전념했다.
가진것은 아무것도 없었지만, 눈물 젖은 빵을 먹고 자란 그였기에 최선을 다해 이제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제빵사가 될 수 있었다.
그는 지금 타워팰리스에서 사는 주민이기도 하다.
빵 하나만 팔아도 타워팰리스에서 살 수 있고, 130명 직원들에게 월급 주고 필요한 직원들에게는 살 집도 제공하며 좋은 경영자가 될 수 있다는 걸 몸으로 보여주고있는것이다.
또한자신이소년시절을생각해 오래 전부터 어려운 이웃들에게 빵을 나눠주는 봉사를 해왔다.
돈을 벌었다고 쓰기에만 급급한 것이 아니라, 진정한‘나눔’을 실천하고 있는 CEO다.
진희정 기자 jhj155@economy21.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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