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6 17:03 (금)
[커런트] 패배 몰랐던 명장들의 엇갈린‘희비’
[커런트] 패배 몰랐던 명장들의 엇갈린‘희비’
  • 황철 기자
  • 승인 2006.08.21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라응찬‘쾌재’-김승유‘좌절’-황영기‘눈물’ 지난 주 국내 3대 금융지주사 수장들의 희비가 엇갈렸다.
한편의 드라마처럼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박진감 넘치게 펼쳐졌던 LG카드 인수전이 일단락되면서다.
금융권의 정신적 지주로 통하는 은행사의 산증인 라응찬 신한금융지주 회장과 김승유 하나금융지주 회장. 이들 중 승자의 역을 맡게 된 라응찬 회장은 파란만장한 자신의 자서전에 또 하나의 무용담을 곁들이게 됐다.
반면 M&A의 달인으로 통하던 불패의 명장 김승유 회장은 외환은행 인수전에 이어 거푸 쓰라린 좌절을 맛보며, 자신의 역사에 오점을 남겼다.
그러나 진짜 비운의 주인공은 따로 있다.
주연급 조연으로 참가해 더욱 드라마틱한 분위기를 연출했던, 신예(?) 명장 황영기 우리금융지주 회장이다.
싸워보기도 전에 백기를 들어야 했던 황 회장에게 김 회장의 패배조차 부러움의 대상일 뿐이었다.
라응찬, 계속되는 불패신화 그러나 이번 전투가 끝이 아니다.
승자에게도 패자에게도 숱한 과제와 또 다른 기회가 남아 있다.
외환은행, LG카드 등 대형 M&A가 마무리되는 상황에서도 금융권 빅뱅이 여전히 진행형으로 남아있는 까닭이다.
라응찬(68) 신한지주 회장과 김승유(63) 하나지주 회장은 금융권의 살아있는 전설로 통한다.
십여 년 전만 해도 일개 중소형 금융사에 불과했던 신한·하나은행을 국내 굴지의 대형 지주사로 키워낸 입지전적 인물. M&A로 점철된 국내 은행사에서 이들을 빼놓으면 할 얘기가 별로 없을 정도다.
라 회장과 김 회장은 90년대 은행장에 오른 후, 지금까지 조직의 최선두에서 여전히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다.
지주사 내에서 아직까지 이들의 권위에 도전할 세력이 없을 정도로 건재하다.
그런데 두 불패의 명장이 최근 빅뱅의 현장 최일선에서 맞붙었다.
금융권 최대 매물 LG카드를 사이에 두고, 또 한 번의 신화창조에 나선 것이다.
강력한 카리스마와 추진력이 불을 뿜었고, 번뜩이는 지략이 막판까지 숨을 죽이게 했다.
결국 혼돈 속에 있던 LG카드의 새 주인이 가려졌다.
LG카드의 매각 주관사 산업은행은 라 회장의 신한금융지주를 우선협상 대상자로, 김 회장의 하나금융지주를 예비협상자로 선정했다.
양 원로 금융인의 명암이 갈리는 순간이다.
산업은행 김종배 부총재는 “평가 기준 중 가격요소와 비가격요소 모두 신한지주가 가장 좋은 점수를 얻었다”며 “자금조달 능력 등 비가격 부분에서는 인수 후보 간 큰 차이가 없었다”고 밝혔다.
승자와 패자의 차이가 백지 한 장 정도라는 말이다.
실제로 뚜껑을 열어보기 전까지만 해도 하나금융지주는 LG카드 인수전의 승리를 확신하는 분위기였다.
주당 6만7천500원선까지 제시하며, 가격 경쟁에서 밀리지 않는다는 자신감을 공공연히 드러냈다.
인수물량도 90% 이상이어서, 이변이 없는 한 우선협상 대상자로 선정될 것으로 판단했다.
그러나 라 회장은 조용히 웃었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과감한 베팅으로 승부를 결정지었다.
김종배 부총재는 “이번 인수희망가격에 대해 110% 만족한다”고 말해 신한지주의 결단이 파격적 수준이었음을 암시했다.
금융권에서는 신한지주가 85% 지분에 대해 주당 6만8천원대 초반의 인수가격을 제안한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단순 계산으로도 총 인수가격은 7조2천억원에 달한다.
외환은행 인수가격 6조9천억원을 뛰어넘는 국내 M&A 역사상 최고가. 증권가에서 LG카드 적정 인수가로 6만1천원대를 제시한 것과 비교하면, 라 회장의 베팅 수위를 짐작할 수 있다.
라 회장은 입찰 종료 직전, 당초 인수가격보다 1천원선 정도 높은 가격을 써 내라는 긴급 지시를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라응찬 회장의 과감한 추진력은 또 한 번 대형 M&A를 성공시켰고, 신한지주를 새로운 도약대에 올려놓았다.
이로써 신한지주는 경쟁사 우리금융지주를 멀찍이 따돌리며, 국민은행의 독주를 견제할 막강 세력으로 부상하게 됐다.
현재 자산 규모가 207조원인 신한지주는 LG카드 인수로 총자산 218조원의 국내 2위 금융사가 된다.
외환은행 인수 후 총자산이 270조원 대에 이를 것으로 보이는 국민은행과 여전히 큰 차이를 보이지만, 합병 대상이 LG카드라는 점을 감안하면 무시할 수 없는 대상이다.
통상적으로 카드사의 자산 대비 수익 창출력이 은행의 10배 정도에 이르기 때문이다.
더구나 LG카드는 1천만명의 고객을 확보한 국내 최대 카드사. 이들이 보유한 고객정보만 활용하더라도 지주사 전체가 비약적인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다.
김승유, 치욕의 2006년 반면 김승유 회장에게 2006년은 잔인하기만 하다.
기대가 컸던 만큼 아픔도 크다.
자산 규모 122조원으로 간신히 빅4 금융사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입장에서, 마지막 기회였다는 생각이 더욱 어깨를 짓누른다.
외환은행 인수전에서 주당 가격 100원 차이로 아깝게 고배를 마신 후 벌써 두 번째다.
지주사 회장에 부임한 이후, 두 건의 M&A에서 모두 실패한 것이다.
M&A의 달인으로 통하던 예전의 명성을 무색하게 하는 대목. 무엇보다 김 회장의 경영 능력이 시험대에 올랐다는 점은 악재 중 악재다.
특히 지주사 출범 후 김종열 하나은행장과의 갈등설 등 온갖 풍문에 시달려온 상황에서, 철옹성 같았던 권위도 땅에 떨어졌다.
은행권 관계자는 “지주사 출범 후 큰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김 회장의 입지를 더욱 좁히고 있다”며 “김 회장에게 있어 LG카드 인수전은 경영 전략 이상의 의미가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회장은 98년 충청은행, 99년 보람은행을 잇따라 인수한 이후, 지난 2002년 서울은행까지 인수하며 하나은행을 국내 4대 은행으로 키워낸 인물이다.
황영기 우리금융회장 역시 김승유 회장 못지않게 쓸쓸한 여름을 보내고 있다.
내년 임기 종료를 앞두고 지주사 도약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는 기회를 한순간에 접어야 한 점이 두고두고 아쉽기만 하다.
라응찬, 김승유 두 지주사 회장의 한판 승부가 승패를 떠나 부럽기만 했던 이유다.
황 회장 역시 3대 금융지주사 수장으로서 LG카드를 두고 맞붙어볼 요량이었다.
그러나 대주주 예금보험공사의 개입으로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LG카드 인수를 포기해야 했다.
황 회장이 최근 “LG카드는 주주의 뜻에 따라 포기했고 자체 성장으로 가기 위한 투자도 어렵겠지만, 이를 돌파하기 위해 전 영업점에서 열정을 보여 달라"고 주문한 것도 이런 아쉬움의 표현이다.
그러나 이들 지주사 회장 3인방의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목소리가 높다.
금융권 빅뱅은 끝난 것이 아니라 여전히 진행형으로 남아 있다는 뜻이다.
특히 지금까지 보여 온 김승유 회장의 강력한 추진력을 볼 때, M&A를 통한 성장 전략을 포기할 가능성이 적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민영화가 예고되고 있는 우리은행과의 조합은 한 번 더 금융권 구도를 흔들어 놓을 특급 이슈다.
김승유, 황영기 회장의 행보가 여전히 주목받고 있는 것도 이 때문. 금융권 관계자는 “아직은 섣부른 전망이지만 하나지주와 우리지주의 합병은 금융권에서 공공연히 제기되고 있는 사항”이라며 “인수 주체가 어느 쪽이 됐건 이들의 조합은 국내 금융산업에 지금까지와는 다른 수준의 파장을 몰고 올 수 있다”고 설명했다.
황철 기자 biggrow@economy21.co.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