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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런트] 노조 전성시대냐, 혼돈의 불씨냐
[커런트] 노조 전성시대냐, 혼돈의 불씨냐
  • 황철 기자
  • 승인 2006.09.0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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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권, 복수노조 ‘뜨거운 감자’] 합병은행, 머나먼 조직통합 … 직군·채널별 분열 양상도 시중은행들이 내년 복수 노조 허용을 앞두고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인수·합병으로 점철된 금융 현실에서 이미 상당수 은행들이 두 개 이상의 노동조합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은행들은 복수노조 허용이 조직통합의 선결 과제로 인식되는 교섭 창구 단일화 작업을 원천적으로 가로막을 수 있다며 우려하고 있다.
직군별 이해관계에 따라 우후죽순처럼 노조가 생겨나, 난립 양상으로 치달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위기감을 표출하고 있다.
최근 우리은행에서 관리직 행원 중심의 노조가 출범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이들은 인수·합병 등 외부적 요인이 아니라, 직군별 이해관계에 따른 최초의 자발적 조직이라는 점에서 주목을 끌었다.
인수·합병 후 오랜 반목을 거듭하다, 어렵사리 노조 통합에 성공했던 국민, 하나은행 등도 복수노조 허용이 골칫거리이긴 마찬가지다.
이들 통합노조에서는 내부적으로 여전히 출신은행별 의견 충돌이 심심찮게 나타나고 있다.
외형적으로 노조통합을 이뤘지만, 여전히 계파 간 감성차를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복수노조 허용이 분열의 불씨로 작용할 것이란 우려가 제기 되는 것도 이런 이유다.
국민, 외환 인수로 또다시 ‘혼돈’ 복수노조 허용은 사용자와 노동조합 모두에게 뜨거운 감자다.
은행으로서는 교섭 창구가 다원화된다는 점이 부담스럽다.
노조 역시 협상력 약화와 노노 갈등을 이유로 곤란함을 표현하고 있다.
지난달 22일부터 시작한 금융권 임금·단체협약 교섭회의에서 복수노조 논의가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현재 복수노조 허용에 가장 민감한 곳은 KB국민은행. 국민은행은 국내 최대은행답게 복수 노조 설립의 거의 모든 근거를 갖고 있다.
▲통합노조의 재분열 ▲외환은행 인수·합병에 따른 양분화 ▲후선보임 등 내부 불만 세력의 독자 조직화 등의 가능성이 모두 열려 있는 셈이다.
국민은행은 옛 국민은행, 주택은행, 국민카드 등 3개 노조로 나눠져 있다가, 합병 3년만인 지난해 1월에야 단일노조가 출범했다.
이 과정에서 구 국민, 주택 노조간 주도권 싸움이 치열했고, 수적으로 열세한 국민카드 노조 역시 자신들의 입지 확대를 위해 번번이 마찰을 빚어 왔다.
노조통합이 강정원 행장 취임 후 첫 핵심 과제로 지목된 것도 이 때문. 강 행장은 리딩뱅크 선점을 위해서는 조직통합을 통한 갈등요인 제거가 필수라고 판단하고, 노조위원장 출신인 김정민 부행장을 앞세워 단일노조 출범에 적극성을 보였다.
그러나 통합 1년 8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국민은행의 단일노조는 여전히 불안정하다.
완전 통합이라기보다는 과도기적 집행 체제가 유지되고 있다.
실제로 옛 국민은행 내 3개 노조는 단일노조 출범 당시, 3년 동안 과도기를 갖기로 하고 국민지부와 주택지부가 1년씩 대표 위원장을 맡기로 하는 데 합의했다.
1년차에는 국민지부가, 2년차인 올해는 주택지부에서 통합위원장을 내는 형태다.
문제는 복수노조가 허용되는 내년도 국민은행의 상황이다.
과도 집행체제의 마지막 해인 내년에는 3개 지부 위원장이 모두 공동위원장직에 오른다.
노동조합을 이끌어갈 우두머리가 3명이나 되는 보기 드문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
그만큼 노동조합이 한목소리를 내기 힘들게 됐다는 뜻이다.
여러 사안을 두고 3개 집행부간 갈등이 표출될 경우, 채널별·출신별 분열이 또다시 시작될 수도 있다는 게 은행권의 분석.
△외환은행 인수는 국민은행 노사관계 변화의 기폭제가 될 전망이다.ⓒEconomy21 사진
금융권에서는 이러한 상황을 반영, 내년 공동위원장 체제가 그리 오래 유지되기는 힘들 것으로 보고 있다.
내후년 초 강정원 행장 임기 종료와 함께 새 경영진이 꾸려지면, 이들에 대한 견제 때문이라도 단일위원장 선출을 서두를 것이라는 판단이다.
은행권 노조 관계자는 “내년에 3명의 위원장 체제로 가면 협상력이 줄어드는 것은 물론 또다시 분열로 갈라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며 “내후년 단일위원장 선출시 탈락한 세력들을 중심으로 복수 노조가 출범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또 “강 행장의 연임 여부를 떠나 임기 만료 전에 단일집행부를 꾸릴 가능성이 크다.
그만큼 2007년은 국민은행 노사관계의 새로운 전기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외환은행 인수가 몰고 올 파장도 만만찮을 전망이다.
외환은행 노조가 지금까지 국민은행에 대해 노골적인 반기를 들고 있고, KB국민 노조와도 갈등 양상을 보여 왔기 때문이다.
특히 외환은행 노조는 조합원 수천 명에 달하는 대형 조직이라는 점에서 혼돈의 기폭제가 되기에 충분하다.
내년 복수 노조가 허용되면 국민은행 내 노동조합은 자연스레 국민, 외환 노조로 양분화 될 가능성도 커졌다.
또 민주노총 산하의 외환카드까지 목소리를 높일 경우, 국민은행은 또 한번 혼란에 휩싸일 수 있다.
국민 노조 관계자는 “사실상 현 국민은행 내부에서 또 다른 노조가 생겨난다 해도, 조합원 규모나 위력 등이 크지 않을 것으로 본다”며 “가장 큰 문제는 외환은행 인수 시, 외환은행 노조와의 관계 악화”라고 밝혔다.
최근 법원이 국민은행의 후선보임제도에 대해 철퇴를 가한 것 역시 복수노조 설립을 부추길 요인으로 지목된다.
국민은행은 지난해 초 구조조정 과정에서 고령의 직원들에게 보직을 주지 않은 채 ‘업무추진역’으로 발령냈다.
서울중앙지법은 이와 관련, 무효 확인소송을 낸 직원 106명의 손을 들어줬다.
국민은행 내부에서는 이들을 주축으로 한 또 다른 노조가 설립될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후선 보임자들은 가해 당사자인 은행은 물론, 노조에게도 자신들의 피해를 방관했다며 날을 세우고 있다.
소외 직원군, 노조 설립 움직임 실제로 이러한 형태의 노조 설립은 우리은행에서 이미 발생했다.
지난 6월 우리은행에서는 금융권 최초로 관리직 중심의 노동조합이 설립됐다.
우리은행 관리직 노조는 일선 지점장 등 3급 이상을 조합원으로 한다.
은행권에도 직군 및 업무별로 특화된 독자적 노조가 발족한 것이다.
지난 4월에는 외환은행 일부 부점장들이 ‘독자생존을 위한 전국 부점장 비상대책 위원’를 결성하며, 노조 설립을 요구하기도 했다.
내년 복수 노조가 허용되면 이러한 현상은 더욱 심화될 것이라는 게 금융권의 분석이다.
기업 인수·합병 후에도 노조 통합을 이루지 못한 신한은행 등은 내년 이후 자연스럽게 복수노조 체제가 고착화될 것이 점쳐지고 있다.
물론 임금 및 직급 통합 등에 속도를 내고 있지만 신한, 조흥 중 어느 한쪽에 주도권을 넘겨줄 가능성은 희박한 편이다.
특히 합병 대상 은행인 조흥 노조의 세력이 상대적으로 크다는 점은 통합 노조 출범을 가로막는 한 요인이다.
은행권 관계자는 “조흥 노조가 신한 노조에 비해 조합원 수나 영향력 등에서 압도적으로 우세하다는 점은 통합노조 출범 가능성을 희석시킨다”며 “조흥 노조가 직원들의 광범위한 지지를 받는다 해도 신한을 주축으로 한 노조가 쉽게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황철 기자 biggrow@economy21.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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