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명한 투자자
벤저민 그레이엄 지음, 국일증권경제연구소 펴냄, 3만2천원
“뒷산을 오를 때와 히말라야를 오를 때의 준비는 달라야 한다”는 말이 있다. 멀고 험한 길엔 채비가 첨부터 달라야 할 터인데, 투자의 세계만큼 험한 여정이 있을까. 두께가 700쪽에 육박하는 <현명한 투자자>(원제: The Intelligent Investor) 같은 책은 투자의 뒷산이 아닌 히말라야에 오를 사람들의 책이다.
<현명한 투자자>는 20세기 최고의 주식투자자 워런 버핏의 스승 벤저민 그레이엄(1894-1976)이 쓴, ‘투자서 가운데 최고의 서적’(버핏의 평)이라 불리는 세기의 명저다. 1949년 초판이 나온 이래 그레이엄 생전인 74년까지 개정판이 나왔다.
2003년에 출간된 이번 판은 74년판을 기본으로, 월스트리트의 뛰어난 증시 저널리스트인 제이슨 츠바이크가 각 챕터마다 최신 사례를 담은 탁월한 논평을 붙였다. 그런데 74년과 2003년의 내용에서 30년의 격차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현명한 투자자>는 원제에서 보듯 ‘유식한’(intelligent) 투자자다. 대체 무엇을 아는 투자자가 유식한 투자자일까.
그레이엄에 따르면 투자자들이 아무리 주의하더라도 피할 수 없는 위험은 실수를 저지를 수 있다. 그래서 나온 개념이 안전마진(MARGIN OF SAFETY-저자가 대문자를 썼다). 그레이엄이 처음 제시한 이 개념은 “어떤 투자대상이 아무리 그럴듯해 보이더라도, 결코 비싸게 사지 않는 것”을 말한다.
본질가치 대비 50%선에서 투자하라는 것이다. 가치투자론은 여기서 나왔다.
그레이엄은 투자 성공의 비밀은 자신의 내부에 있다고 한다. “자신의 원칙과 용기를 개발함으로써, 다른 사람들의 분위기 변화가 투자자의 투자운명을 좌우하지 않도록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유식’하다는 것은 IQ나 투자기법 같은 지식의 영역이 아니다. 가치투자의 투자원칙을 갖고 있는 사람, 그 원칙을 위해 자기감정을 조절할 줄 아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현명한’ 투자자가 아니고 누구겠는가.
정진욱 전문위원·북 칼럼니스트 chung8888@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