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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리포트] 반독점 태풍, 공룡들의 발목 잡다.
[스페셜리포트] 반독점 태풍, 공룡들의 발목 잡다.
  • 이정환 기자
  • 승인 2006.11.0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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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위라서 괴롭다” 중국 반독점법 도입에 글로벌 기업들 긴장 세계적으로 반독점 태풍이 몰아치고 있다.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반도체 임원들이 미국에서 반독점법 위반으로 징역형을 받기도 했고 중국 정부도 반독점법을 도입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당장 마이크로소프트가 큰 타격을 받게 될 전망이다.
마이크로소프트는 내년 1월로 예정된 윈도즈 비스타 출시를 앞두고 유럽에서도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인텔도 유럽에서 반독점법 위반으로 기소될 위험에 놓여 있다.
대만에서는 야후의 반독점법 위반행위를 조사하고 있고 미국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반독점 규제를 강화하는 조건이 포함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담합 행위가 적발된 비타민 업체들은 세계 곳곳에서 천문학적인 규모의 벌금을 두들겨 맞기도 했다.
사례 1. “징역형까지 때릴 줄은 몰랐다” 미국 정부가 반독점법 위반 혐의로 삼성전자와 하이닉스, 마이크론테크놀로지, 인피니온 등 4개 반도체 업체들에 물린 세금은 모두 7억3,100만달러에 이른다.
미국 반독점법 사상 두 번째 규모다.
벌금의 규모도 놀랍지만 삼성전자 미국법인의 토머스 퀸 마케팅 담당 부사장을 비롯해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반도체 임원 7명은 징역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이들은 1999년 4월부터 2002년 6월 사이 전화와 전자우편 등으로 가격을 담합한 혐의를 받고 있는데 미국 정부의 입장은 단호하다.
미국 법무부 토머스 바넷 차관보는 "징역형이 불공정 거래 행위에 대한 가장 효과적인 억제책"이라며 "오늘 조치는 가격담합에 관여한 사람에 대해 누구든 불법행동에 따른 책임을 물을 것이란 분명한 메시지"라고 강조했다.
미국은 올해 3월 수정 발효된 테러방지법의 감청 대상에 반독점법 위반 행위를 포함시키기도 했다.
반독점법 위반이 테러만큼 미국의 이익을 심각하게 침해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나 하이닉스 등 반도체 업체들의 가격 담합 때문에 델이나 컴팩, HP, IBM 등 컴퓨터 업체들이 심각한 손실을 봤다는 논리다.
그러나 삼성전자는 징역형까지 때릴 줄은 몰랐다는 입장이다.
물론 발만 동동 구를 뿐 마땅히 해결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다.
문제는 앞으로도 수많은 소송이 계속될 것이라는 데 있다.
소비자들이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낼 수도 있고 주 정부도 연방정부와 별도로 벌금을 부과할 수 있다.
당장 뉴욕과 샌프란시스코 주 정부 등의 소송이 잇따르고 있다.
미국 법무부는 D램에 이어 S램에 대해서도 반독점법 위반 행위를 조사하고 있다.
이번에는 삼성전자를 비롯해 일본의 소니도 조사 대상이다.
미국뿐만 아니라 유럽연합(EU)도 비슷한 조사를 벌이고 있다.
마이크론을 제외한 조사 대상 업체들 대부분이 외국 업체들이라는 사실도 주목할 만하다.
사례 2. 이제 끼워 팔기도 함부로 못한다 압도적인 시장점유율을 자랑하지만 MS도 반독점법 앞에서는 쩔쩔맨다.
우리나라 공정거래위원회는 일찌감치 지난해 12월, MS가 운영체제인 윈도즈에 윈도즈 메신저나 미디어 플레이어를 끼워 파는 것은 불법이라고 판정하고 324억9천만원의 과징금과 함께 시정 명령을 내린 바 있다.
MS는 법원에 이의신청을 냈으나 기각됐고 불복 소송은 아직 진행 중이다.
MS는 올해 5월 공정위의 시정명령을 받아들여 윈도 메신저와 미디어 플레이어를 삭제한 버전과 이 프로그램들을 그대로 놔두되 네이트온이나 곰플레이어 등 다른 경쟁 프로그램을 함께 집어넣은 버전을 새로 내놓았다.
또한 기존의 윈도즈 사용자들도 인터넷으로 패치 파일을 내려 받아 문제가 된 프로그램을 삭제할 수 있도록 했다.
MS는 일찌감치 2004년 EU에서도 4억9,700만유로, 우리 돈으로 6천억원이 넘는 벌금을 부과 받은 적이 있다.
그러나 앞으로 판매할 제품뿐만 아니라 이미 판매한 제품에 대해서도 문제의 프로그램을 삭제하라는 명령을 내린 것은 우리나라가 최초였다.
MS는 한때 한국 사업 철수라는 강경 카드까지 꺼내들었지만 결국 꼬리를 내리고 말았다.
공정위와 MS의 한판 맞대결은 반독점법이 어떻게 글로벌 기업의 발목을 잡을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미국이나 EU, 일본도 아니고 한국에서 감히 MS에게 시정명령을 내리다니. 이탈리아와 스웨덴 정부가 한국을 벤치마킹하고 있다는 소문도 들린다.
거침없이 성장하던 MS는 이제 세계 모든 나라에서 높은 점유율을 고민하는 상황이 됐다.
MS는 내년 1월로 다가온 윈도즈 비스타 출시를 앞두고 EU의 최고 집행기구인 유럽집행위원회(EC)와 치열한 법리공방을 벌이고 있다.
EC는 윈도즈 비스타에 MS의 인터넷 검색을 기본으로 설정한 것은 위법이라는 입장이고 MS는 기본 설정을 바꿀 수 있도록 하겠다며 눈치를 보고 있는 상황이다.
△윈도즈 비스타 출시를 앞둔 MS의 최대 위기는 세계 곳곳에서 반독점법 제소를 당하는 것이다. 사진은 빌게이츠 MS회장. ⓒ블룸버그/연합
사례 3. 반독점법으로 선발 업체 목 조르기 세계의 컴퓨터는 모두 10억대. 그 가운데 80%는 인텔의 중앙처리장치(CPU)를 쓰고 있다.
그 인텔 역시 반독점법 위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인텔은 경쟁업체인 AMD의 추격에 맞서는 한편, 세계 곳곳에서 반독점법 소송을 벌여야 하는 상황이다.
미국에서는 일단 승소했지만 EU의 상황은 결코 만만치 않다.
인텔은 유럽과 일본, 우리나라에서 반독점법 위반과 관련해 조사를 받고 있다.
인텔은 PC업체들에게 리베이트를 제공하거나 경쟁사 제품을 사지 못하도록 강요하는 등 시장 지배적 지위를 남용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일본 공정위는 이미 지난해 반독점법 위반 판정을 내린 바 있다.
인텔은 반독점법 위반을 인정했지만 과징금 납입을 미루고 있는 상황이다.
AMD는 인텔을 추격하는데 반독점법을 효과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올해 2월 미국 공정위가 인텔코리아를 압수수색했을 때 AMD는 성명을 내고 "AMD의 잠재 고객들은 가격과 성능을 기반으로 제품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없다"며 "그렇지만 않았다면 우리는 지금보다 훨씬 더 성공적이었을 것"이라고 날을 세웠다.
인텔은 곧바로 반박자료를 내고 "AMD가 아무리 화려하고 기상천외한 주장을 하더라도 AMD의 소송 목적이 가격 경쟁을 은폐하려는 의도에서 시작됐다는 점을 숨길 수는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인텔이 경쟁회사인 AMD보다 더 싼 가격에 CPU를 공급하는 것을 문제 삼는 것은 옳지 않다는 이야기다.
인텔과 AMD의 분쟁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부분은 PC 제조업체들이 인텔의 반독점법 위반 행위를 즐기고 있다는 것이다.
정보기술 전문 사이트 지디넷은 "PC 제조업체들은 대부분 가방과 배터리에서 수익을 올린다"며 "인텔이 주는 리베이트가 없으면 이들은 훨씬 힘들어질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사례 4. 마녀가 아니라는 사실 증명해봐. 대만에서는 포털 사이트 야후의 반독점법 위반 행위가 논란이다.
야후가 경매 서비스에 수수료를 추가 부과하기로 한 것을 놓고 대만 공정위가 조사에 착수한 것. 공교롭게도 후발주자였던 이베이가 대만 시장에서 철수하기로 한 뒤 한 달이 지난 시점에서다.
독점적 지위를 활용해 가격을 높였다는 의혹을 살 만한 상황이다.
ⓒ연합
대만은 연간 3,100만달러의 매출과 3분의 1 이상의 시장점유율을 확보하고 있는 회사를 독점기업으로 간주한다.
야후도 당연히 여기에 해당한다.
반독점법 위반 행위가 인정되면 야후는 2,500만대만달러, 우리 돈으로 7억8천만원의 벌금을 내게 될 전망이다.
반독점 이슈가 세계 모든 나라로 확산되고 있음을 의미하는 사건이다.
일단 의혹이 제기되고 공정위가 조사를 시작한 이상 야후는 자신들의 무죄를 직접 입증할 논리를 개발해야 한다.
마녀 사냥이 횡행하던 중세, 자신이 마녀가 아니라는 사실을 납득시켜야 했던 이른바 악마의 입증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온갖 논리를 끌어대겠지만 여러 정황과 그동안의 경험을 보면 야후가 승소할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다.
반독점법의 규제는 크게 독점 규제와 담합 규제로 나뉜다.
미국이 담합 규제에 무게중심을 두는 반면 유럽은 독점 규제에도 적극적이다.
반독점법 위반으로 판정되면 부당이득을 전액 반환하고, 여기에 추가로 과징금이 부가된다.
유럽의 사례를 보면 로쉐와 바스프, 아벤티스의 비타민 담합 사건에는 8억5,500만유로의 벌금이 부과된바 있다.
우리나라의 제일제당과 대상도 동물성장촉진제인 라이신의 가격을 담합한 혐의로 각각 1,010만유로와 710만유로의 벌금을 부과 받은 바 있다.
세계적으로 반독점법이 확산되면서 최근에는 경쟁업체들끼리 모임이나 심지어 전화통화에도 신경 써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다.
이제는 미국이나 유럽뿐만 아니라 세계 모든 나라들에서 제소당할 가능성이 있다.
사례 5. 중국에서 불어 닥칠 반독점 태풍 무엇보다도 중국의 반독점법이 가장 큰 관심거리다.
이미 올해 6월 국무원 상무회의를 통과했고 전국인민대회 상무회의를 거쳐 올해 연말쯤 통과될 전망이다.
중국은 반독점법 채택을 12년 동안 미뤄왔는데 준비 기간이 길었던 만큼 미국이나 독일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완벽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대만에서는 야후의 반독점법 위반 행위가 논란이다. 야후는 이에대해자신들의무죄를직접입증해야한다. 사진은라스베이거스에서 열렸던 2006 소비자 전자박람회 구글 부스의 모습. ⓒ로이터/연합
중국의 반독점법은 한 사업자가 시장의 절반 이상을 점유할 때, 또는 2개 사업자가 시장의 3분의 2, 3개 사업자가 4분의 3을 점유할 때를 독점사업자로 정의하고 있다.
이 법은 담합이나 독점적 지위를 남용하는 행위, 대규모 합병 등을 규제하고 있다.
이를 어길 경우 최고 1천만위엔, 우리 돈으로 12억원의 벌금과 형사처벌까지 가능하다.
세계적으로 반독점법을 도입하고 있는 나라는 모두 82개국. 중국의 반독점법 입법은 그 중에 하나가 늘어난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이를테면 미국이나 유럽 못지않은 거대 소비시장에서 경쟁이 제한된다는 의미다.
당장 시장점유율 1위 기업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이 됐다.
특히 시장 지배적 지위의 남용이라는 부분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중국이 참조한 독일의 판례 중에는 주방기기 제조회사인 라인메탈과 WWF의 합병을 불허한 사례가 있다.
주방기기 전체 시장에서 점유율은 그리 높지 않았지만 고급 주방기기만 따로 놓고 보면 이미 시장 지배적 사업자라는 이유에서였다.
만약 고급 주방기기와 일반 주방기기, 드럼 세탁기와 일반형 세탁기, LCD TV와 브라운관 TV 등으로 시장을 세분화해서 독점 규제를 강화한다면 어떨까. 더 두려운 것은 이 모든 규제의 범위를 중국 정부가 마음대로 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시장점유율을 높이려고 가격을 낮추는 것도 반독점법에 저촉될 수도 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은종학 연구원은 중국의 반독점법을 두 가지 맥락에서 이해하고 있다.
첫 번째는 중국 국유기업의 이른바 행정 독점을 깨뜨리려는 것. 두 번째는 역시 외국 기업들의 시장점유율 확대를 막기 위한 것. 은 연구원은 "어느 쪽에 비중이 실리느냐에 따라 우리 기업들의 중국 진출 기회가 늘어날 수도 있고 위축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일단 삼성전자와 LG전자가 각각 31.2%와 18.7%를 차지하고 있는 CDMA 단말기가 걱정스럽고 삼성전자의 LCD 모니터(29% 수준)와 일부 공작기계(두산인프라코어 22.8%) 등도 제재 대상이 될 수 있다.
점유율이 95%에 이르는 MS나 85%의 인텔 등도 직접적인 충격을 받게 될 전망이다.
사례 6. 밖으로 꺼내들면 공격 무기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우리나라에 반독점법 강화를 요구하고 나선 것은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미국은 대기업 집단에 공정거래법을 엄격히 적용하는 내용을 협정문에 명시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웬디 커틀러 미국 수석대표는 기자회견을 열고 "우리의 요구는 한국의 대기업이나 중소기업 모두 반독점법의 규제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시장 점유율 90%를 자랑하는 인텔 또한 반독점 이슈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후발주자인 AMD는 인텔의 이런 약점을 끈질기게 파고든다. 사진은 폰 오텔리니 인텔 사장. ⓒAP/연합
당장 전국경제인연합회나 대한상공회의소 등은 "미국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고 우리나라 기업들의 시장점유율을 낮추려는 비상식적인 요청"이라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공정위 관계자도 "우리 기업들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을 만큼 강도 높은 규제를 받고 있다"며 "미국의 인식이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당장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가 반독점법의 적용으로 시장점유율을 인위적으로 낮추게 되면 미국 기업들도 그 반사이익을 누리게 된다.
반독점법은 이처럼 한 나라 안에서는 시장경제의 질서를 바로 잡는 산업을 보호하는 수단이지만 밖으로 꺼내들면 선발 기업의 발목을 잡고 그 나라의 경제를 잠식하는 공격 수단이 된다.
이런 맥락에서 반독점법의 역외적용도 중요한 이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EU가 GE와 하니웰의 합병을 불허한 경우다.
미국 기업의 합병을 EU에서 반대하고 나선 것인데, 당장 EU 시장을 놓칠 수 없는 GE로서는 EU의 반대를 마냥 무시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이를테면 "우리나라에서 비즈니스를 하려면 우리의 요구를 따르라"는 배짱인 셈이다.
LG경제연구원 이서원 연구원은 반독점법의 확산을 또 다른 형태의 세계화라고 해석한다.
그동안 자유무역과 시장경제라는 이름으로 경쟁 우위를 차지했던 미국과 유럽이 반독점법의 역습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이른바 '사다리 걷어차기'가 통하지 않게 됐다는 이야기다.
반독점법이라는 사다리가 이제 글로벌 기업들의 기득권을 위협하고 있다.
"미국이나 유럽 입장에서는 당황스럽기도 하겠지만 반독점법을 막을 명분이 없는 겁니다.
자기들도 내내 그렇게 자기네 기업들을 키워왔으니까요. 중국도 반독점법을 최대한 활용하려고 하겠죠. 반독점법이라는 양날의 칼을 어떻게 잡고 잘 다루느냐에 따라 기업의 생존과 한 나라의 경쟁력이 좌우되는 시대가 됐습니다.
" 이정환 기자 cool@economy21.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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