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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리포트] 30년 희생 대가가 ‘빈곤의 대물림?’
[스페셜리포트] 30년 희생 대가가 ‘빈곤의 대물림?’
  • 황철 기자
  • 승인 2007.04.1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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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위한 그린벨트 해제인가] 원거주민 주거환경 개선은 뒷전 … 쥐꼬리 보상, 도시빈민 전락‘위기’ 그린벨트는 무분별한 개발에 내몰린 대도시의 숨통을 틔어줄 마지막 보루로 통한다.
서울시의 6.5배에 달하는 광활한 녹색지대는 오랜 세월 도시민들을 위한 산소탱크로서 역할을 다해 왔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원거주민들의 열악한 생활상이 어두운 그늘처럼 드리워져 있다.
수십년간 제대로 된 보상 한번 받지 못한 채, 기나긴 인고의 세월을 견뎌야 했던 원거주민들은 그린벨트 제도의 최대 피해자다.
이들은 그동안 변변한 생활기반 시설조차 없는 낙후한 주거환경에 신음해 왔고, 몇 평 안 되는 소유지에 대한 권리까지 포기해야 했다.
특히 인근 지역들과의 개발 불균형은 상대적 빈곤감을 더욱 가중시키기도 했다.
‘기회의 땅’은 어디에 그 후 30여년이 흐른 지금, 개발제한구역에 대한 대규모 해제 방침이 속속 발표되고 있다.
정부는 도시 주변 가용 토지가 포화상태에 이르자, 개발 수요를 감당할 새로운 터전으로 그린벨트를 지목했다.
2000년을 기점으로 7개 중소도시(제주, 춘천, 청주, 여수, 전주, 진주)의 개발제한이 순차적으로 해제됐고, 전국 20가구 이상 집단취락지구에 대한 규제도 풀렸다.
여기에 국민주택임대, 지역현안 등 국책사업을 위해서도 그린벨트를 조금씩 줄여나갔다.
기존 개발제한구역의 1/4 이상에 해당하는 광활한 부지다.
이로써 그린벨트 해제 지역은 개발의 불모지에서 무한한 기회의 땅으로 다시 태어나게 됐다.
주택난 해소를 위해 가용 부지를 물색하던 정부·지자체에게도, 금싸라기 땅을 찾고 있던 부동산 투자자에게도 이 지역은 희망의 대지로 인식되기에 충분하다.
무엇보다 수십년간 개발 억제, 열악한 주거 환경, 극심한 생활고의 악순환에 시달려야 했던 해당 주민들에게는 ‘긴 가뭄 끝에 맞는 소낙비’만큼이나 반가운 소식이었다.
상식적으로 한판 축제라도 벌여야 할 상황. 그러나 그린벨트 해제 후의 삶은 당초 기대와 판이하게 달랐다.
해당 지역 주민들은 개발제한 완화가 오로지 ‘그들만의 잔치’일 뿐이라고 입을 모은다.
또 한번 특별한 희생을 강요하는 ‘독 든 사과’에 불과하다는 울분에 찬 호소까지 들려온다.
왜일까. 지난해 그린벨트 해제로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된 경기도 구리시 갈매동 일대의 현실을 들여다보면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꿈을 잃은 갈매동 주민들 구리시 갈매동은 서울, 남양주 시계와 맞닿은 ‘도심 속의 섬’같은 지역이다.
서쪽으로 서울 신내동을 끼고 있고, 동쪽으로는 남양주시 퇴계원과 경계를 긋고 있다.
△구리시 갈매동에 즐비하게 들어선 창고건물들.ⓒ임영무 기자
남향으로 고개를 돌리면 구리시의 발전상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인창동과 교문동의 번화가가 펼쳐진다.
지리적으로만 보면 수도권 중 가장 왕성한 개발이 이뤄지고 있는 구리시의 중심으로도 손색이 없다.
그러나 갈매동의 현주소는 ‘서울 인근에 이런 곳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열악하기 짝이 없다.
37년간 그린벨트, 군사시설보호구역 등 복합적인 공적 규제에 묶여 수도권의 오지로 전락한 지 오래다.
정부의 개발제한구역 현황에 대한 입장
○ 개발제한구역 지정 목적 및 지정 현황 -지정 목적 도시의 무질서한 확산을 방지하고 도시주변의 자연환경을 보전해 도시민의 건전한 생활환경을 조성하기 위함 -지정 현황: ’71.7월부터 ’77.4월까지 8차례에 걸쳐 전국에 총 5397.1㎢을 지정하고, ’05.12월 현재 1355.6㎢(25%)를 해제해 4041.5㎢가 유지 ○개발제한구역 해제: 보존가치가 낮은 지역, 집단취락의 주거환경 개선, 지정목적이 달성된 지역 등에 대해 개발제한구역을 해제 -중소도시 전면해제(7개): 1103.1㎢(81.4%) -집단취락지구 해제(1,277개): 65.4㎢(4.8%) ○개발제한구역 관리에 대한 기간별 분석 -’71~’99 : ’71부터 수도권을 필두로 개발제한구역을 지정 ’99까지 유지 -’00: 개발제한구역 지정 후 최초 해제(시화 및 창원산업단지: 11.6㎢) ※’00.1.28 : 개발제한구역의 지정 및 관리에 관한 특별법 제정(해제 근거) -’01~’03 : 해제추진(1256.2㎢ : 93.6%) 특히7개 중소도시 전면 해제 -’04~’05 : 집단취락 우선 해제, 지역현안사업, 국민임대주택단지 조성 등에 대한 계획적 해제 추진(89.9㎢)
2층 이상 주택을 찾기 힘들 정도로 낙후한 주거환경, 도로·도시가스 등 변변한 기반 시설도 찾아보기 힘들다.
구리시 전체 면적의 1/10에 차지하는 넓은 구역에 병원, 미용·위생시설 등이 전무하다는 것은 이들의 궁핍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런 갈매동에 그나마 낭보가 전해지기 시작한 것은 최근 일이다.
지난 2001년 담터 지역에 이어, 지난해 도촌·협동지구에 대한 그린벨트 해제방침이 정해지면서부터. 잇따른 희소식에 주민들의 기대 또한 컸다.
무엇보다 약국, 병원, 목욕탕 등 편의시설조차 없던 주거환경이 조금이나마 개선될 수 있다는 원초적 희망에 부풀었다.
몇 평 안 되는 땅이긴 해도, 이를 기반으로 농축산 이외에 새로운 생계수단을 강구할 수 있는 여건도 조성되는 듯 했다.
그러나 희망이 크면 실망도 큰 법. 그린벨트 해제 후 1년이 지나도록 이 지역의 생활환경 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보건지소 외에 의료기관은 찾을 수 없고, 목욕이라도 할 요량이면 20분 간격으로 배차되는 마을버스를 타고 인근 도심으로 나가야 한다.
“그린벨트가 풀린 지 1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이곳은 사람 살 데가 못된다.
주민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병원, 약국 같은 기초적인 것들이지만, 지금까지 개선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갈매동 도촌마을 이모씨(29, 남)의 토로다.
이씨는 “외부에서는 그린벨트 해제로 땅값이 올라 한몫 잡을 거라 생각하지만 실제로 자기 땅이 있는 사람은 얼마 안 된다”면서 “개발도 필요 없으니, 생활환경이나 나아져 그나마 살만한 동네라도 됐으면 하는 것이 대부분 주민들의 바람”이라고 전했다.
구리시에서도 마땅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당초 구리시는 이 지역 일대를 10대 역점개발사업군 중 하나로 정할 정도로 의욕을 보였다.
그러나 1년여 시간이 지나도록 초기 로드맵에서 발전한 세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복잡한 행정절차와 중앙정부와의 지리한 의견 조율로 구체적인 일정을 잡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택지 개발이나 대단위 산업지구 조성 계획도 시재정 문제와 법률적 검토 등을 이유로 명확한 방향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구리시 관계자는 “지구단위 계획은 지자체 의지만이 아니라 관계 부처간의 협의와 다양한 검토를 수반해야 하므로 단기간에 실행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자체의 재정적 능력이므로 단계별로 추진해나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근린생활시설? 불법 건물만‘가득’ 특히 외지인들이나 일부 부유 주민들에 의해 자행되고 있는 난개발은 대다수 영세 주민들의 고충을 더욱 심화하고 있다.
그린벨트 해제와 함께 용도변경을 노린 불법 건축물 신축이 성행하고 있는 탓이다.
물론 원주민들이 축사, 우사 등의 명목으로 창고를 지어 물류센터나 공장 용도로 임대하는 행위는 그린벨트 지역 전반의 공공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린벨트 해제와 함께 이같은 편불법 행위는 더욱 심각한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
제1종 일반주거지역으로 전환되면서 원거주민뿐 아니라 외지인까지 편법적인 건축물 신축에 뛰어들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제1종 일반주거지역은 4층 이하의 단독주택과 근린생활시설의 건축이 가능하다.
그린벨트 해제 이후 근린생활시설로 허가받은 건물의 경우 단순 창고 형태가 아니라 3~4층 이상의 대형 건축물로 시공되는 경우가 흔하다.
이 씨는 “현재 공사가 진행중인 근린생활시설들이 말그대로 주민들의 편의를 위한 공간으로 조성된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지만, 실제로 그렇게 운용될 가능성은 희박하다”면서 “실거주 주민들이 2000명(주민등록상 통계 3097명, 2006년 말 기준)도 안되는 상황에서 상점이나 대중 이용시설을 들여온다는 게 오히려2 이상한 일”이라고 말했다.
또 “매일 지나다니는 덤프트럭과 레미콘 차량으로 주민들의 안전만 위협받고 있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갈매초등학교 녹색어머니회 제공
실제로 이 지역에서 유일한 초등학교인 갈매초교 학생들은 맞은편에 건설하고 있는 근린생활시설 공사로 상시적 위험에 노출돼 있다.
등교 때마다 3미터 내외의 좁은 통학로에서 덤프트럭과 레미콘 차량을 아슬아슬하게 피해가야 한다.
특히 갈매초등학교는 소재지가 그린벨트 지역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전국적으로 확산된 스쿨존 영역에도 포함되지 못했다.
지자체 역시 초등학교 주변의 건축행위에 대해 뚜렷한 규제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구리시 관계자는 “허가된 건축행위이기 때문에 특별히 규제할 방도가 없다”면서 “행정지도를 통해 학생들의 통학 시간에는 차량 운행을 자제해 달라는 권유 정도만 하고 있다”고 말했다.
갈매동의 사례는 ‘그들만의 잔치’로 끝나고 있는 그린벨트 해제 지역의 맹점을 고스란히 집약하고 있다.
문제는 개발 제한 규제 완화가 원주민의 권익보다 정부·지자체의 정책적 필요에 의해 이뤄지고 있다는 데서 발생한다.
그 결과 제대로 된 보상 체계가 꾸려지지 못하고, 주민들의 원초적 기대였던 주거환경 개선조차 뒷전으로 밀려나게 됐다.
각종 건축물 신증축 규제가 완화되면서 개발이익을 노린 소규모 공사로 동네 곳곳이 쑥대밭이 되는 것 또한 그린벨트 해제 지역의 공통적인 현상이다.
개발에 의한 혜택도 돈 많은 외지인이나 극소수 부유 주민의 몫으로 돌아가기 일쑤다.
수십년간 이어진 개발 억제, 열악한 주거 환경, 극심한 생활고의 악순환이 그린벨트 해제 이후까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고향에만 살게 해주오” 공영개발이 진행되고 있는 그린벨트 해제 지역에서는 더욱 심각한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국민임대주택단지를 대표로 하는 대규모 국책사업은 원주민 토지의 정부 매입을 전제로 진행된다.
문제는 원주민들에 대한 보상이 새로운 생활터전을 마련하기 어려울 정도로 짜다는 점이다.
오랜 개발 규제로 인근 지역에 비해 평가절하된 공시지가가 이들의 주요 보상기준이다.
주변지의 1/3 수준에 불과한 보상금을 받고 또다시 공익사업의 희생양이 되는 것은 정해진 수순. 토지 보유량이 적은 원거주민의 경우, 수백~ 수천만원의 보상금이 전부인 경우도 많다.
공영개발 지역 주민들이 “보상도 개발도 필요 없으니, 예전처럼 고향에서 살게만 해달라”고 호소하는 가장 큰 이유다.
황영하 전국수용연대 홍보팀장은 “의정부 민락 지구의 경우 주민들 대부분이 평생 생활 터전에 대한 애착과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면서 “소유한 토지 규모도 작아, 정부 보상금으로는 새로 살 집을 마련하는 것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또 “무차별적 강제 수용이 진행될 경우, 어쩔 수없이 도시로 내몰려 새로운 빈민층을 형성할 가능성도 크다”고 덧붙였다.
그린벨트 사유지 중 40~50% 정도가 외지인의 소유라는 점 역시 공영개발의 부작용을 더욱 심화시키는 요인이다.
외지인 소유 토지의 비율이 클수록 원주민에게 돌아갈 보상액은 상대적으로 줄어들 수밖에 없다.
황 팀장은 “그린벨트 지역주민들은 30여년간 공익이라는 이름으로 재산권 침해를 당하며 막대한 손실을 입어 왔다”면서 “이들에게 공영개발에 의한 강제수용까지 요구하는 것은 이들을 두번 죽이는 일”이라고 말했다.
황철 기자 biggrow@economy21.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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