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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순환출자 금지’물 건너가나
[이슈] ‘순환출자 금지’물 건너가나
  • 이정환 기자
  • 승인 2006.11.2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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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공 자본으로 경영권 보호”비판, 투자 저해한다는 논리에 밀려 A라는 회사가 B라는 회사에 30억원을 투자하고 B가 A에 30억원을 다시 투자하면 아무런 투자를 하지 않는 거나 마찬가지다.
이 경우 30억원씩 60억원의 가공 자본이 생기고 그만큼 두 회사의 부채비율도 낮아지게 된다.
그리고 A의 경영권을 확보한 주주라면 B에도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된다.
이런 상호출자는 법으로 금지돼 있다.
문제는 상호출자의 변형된 형태인 순환출자를 어떻게 볼 것이냐다.
이를테면 A가 B의 지분30%를 보유하고 B는 C의 지분을 30% 보유한다.
C는 다시 A의 지분 25%를 보유한다.
만약 누군가가 A의 지분을 5%만 확보한다면 세 회사 모두에 대해 30%씩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각각 시가총액이 1천억원, 모두 더해서 3천억원이라면 이 사람은 50억원어치의 지분으로 900억원어치의 지분만큼 세 회사에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
이경우의 결권승수는 18배다.
순환출자가 연쇄도산 불러온다? 출자총액제한제도를 두는 이유는 이처럼 가공의 자본으로 지배력을 늘려 실제 소유권보다 훨씬 많은 의결권을 행사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대주주가 소수주주의 이해를 무시하고 사익을 추구하는 이른바 도덕적 해이를 막는다는 의미다.
또한 부채비율을 인위적으로 낮추는 것을 막는 효과도 있다.
IMF 외환위기 때처럼 한 계열회사의 숨겨진 부실이 다른 계열회사의 부실과 최악의 경우 연쇄 도산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순환출자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삼성그룹과 현대자동차그룹. 삼성그룹의 경우삼성에버랜드가 삼성생명의 지분을 보유하고 삼성생명이 삼성물산과 삼성전자의 지분을 보유하는 구조다.
삼성물산과 삼성선자는 다시 삼성카드와 삼성SDI, 삼성전기의 지분을 보유하고 이 회사들은 삼성에버랜드의 지분을 보유하는 전형적인 순환출자구조를 보이고 있다.
이과정에서 삼성에버랜드의 대주주가 삼성그룹 전체를 뒤흔드는 일도 가능해진다.
또한 삼성SDI가 삼성물산을, 삼성물산이 삼성전자를, 다시 삼성전자가 삼성SDI지분을 보유하는 구조도 있다.
이밖에도 삼성카드가 삼성화재를, 삼성화재가 삼성전자의 지분을 보유하는 등 여러 단계의 순환출자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현대자동차 그룹도 현대자동차가 기아자동차와 현대캐피털을, 기아자동차가 현대모비스와 INI스틸을, 그리고 이 회사들이 다시 현대자동차의 지분을 보유하는 구조다.
출총제가 처음 도입된 것은 1986년 12월 경제력 집중을 억제한다는 명목에서다.
이법은 두 차례 개정을 거쳐 1998년 2월 폐지됐다가 2001년 4월부터 다시 시행됐다.
출총제가 새삼스럽게 다시 논란이 되는 것은 최근 정부가 규제 완화 차원에서 이 제도의 축소 또는 폐지를 논의하고 있는 가운데 공정거래위원회가 순환출자 금지라는 더욱 강력한 카드를 검토하고 있기 때문이다.
출총제의 기본 개념은 순자산의 25% 이상을 다른 계열사에 출자하지 못하도록 하는것. 공정위가 내놓은 출총제 개선안은 자산 규모 10조원 이상 대규모 기업집단의 환상형 순환출자를 금지 또는 단계적으로 줄여나가되 출총제대상을 2조원이상의 개별 기업으로 줄여주겠다는 것. 지금까지는 자산 규모 6조원 이상의 대규모 기업집단이 대상이었는데 이번 개선안으로 대상 기업이 343개에서 24개로 줄어들게 된다.
공정위가 내놓은 개선안에 전국경제인연합회를 앞세운 재계는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출총제를 남겨두고 추가로 순환출자를 금지하는 것은 이중규제라는 것. 대상 기업이 줄어든다고는 하지만 이 안에 주력 계열사가 모두 포함되기 때문에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다는 논리다.
재계는 출총제가 기업의 신규 투자를 저해하고 있다는 주장을 펴고있다.
출총제의 완화가 아니라 아예 폐지로 가자는 이야기다.
이를테면 삼성그룹의 반도체 투자가 오늘날 정보통신과 디스플레이산업을 만들었고 현대그룹의 자동차 투자가 오늘날 자동차 산업을 만들었는데 출총제가 이런 신규투자를 제한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재정경제부와 산업자원부 역시 기업의 부담을 줄여줘야 한다는 입장이다.
불필요한 규제는 없애야 하고 계열사 투자 문제는 시장의 자율적인 판단에 맡겨 두는 것이 옳다는 입장. 청와대와 열린우리당도 못 이기는 척 재경부의 손을 들어주는 분위기다.
여기에서 짚고 넘어갈 것은 출총제가 과연 기업의 투자를 저해하느냐는 부분이다.
전경련은 329개 회원사 가운데 출자 비중이 높은 42개 기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벌인 바 있다.
결과는 92.5%인 39개 기업이 출총제 때문에 투자를 못한 경험이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전경련은 아무런 구체적인 사례를 제시하지 않았다.
공정위는출자,즉 계열사 지분을 사들이는 것과 공장 설립이나 설비 구입 같은 실물투자는 다르다는 입장이다.
한국개발연구원은 출자와 투자 사이에뚜렷한 상관관계가 없다는 조사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실제로 현대자동차그룹이나SK그룹 등은 신규 출자 여력이 아직 많이남아있는 상태다.
게다가 적용제외나 예인정이 전체 출자총액의 60%를 웃돌만큼 이미 출총제가 유명무실해진 것 아니냐는 비판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출총제 때문에 투자를 하지 못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부족하다.
출총제 폐지를 주장하는 또 다른 논리는 이들 기업의 경영권이 위태롭게 된다는 것. 당장 삼성물산과 삼성화재의 삼성전자 지분을 줄이거나 의결권을 제한 할 경우 2대주주인 씨티뱅크가 최대주주가 된다.
씨티뱅크가 10.5%의 지분으로 다른 주주들을 모아 경영권을 위협할 경우 방어할 방법이 없다는 것. 현대자동차의 경우도 내부 지분비율을 줄이면 캐피털그룹 등보다 지분 비율이 낮아지게 된다.
재벌의 경영권 보호가 해답? 문제는 경영권 위협을 막기 위해 순환출자와 가공 자본을 활용한 경영권 보호까지 인정해야하느냐는것. 더 쉽게 말하면 외국자본을 막기 위해 국내 재벌 오너 일가의 경영권을 보호해줘야 하느냐는 것이다.
논의의 핵심은 사실 여기에 있다.
출총제가투자를 저해한다거나 투기자본의 위협을 강조하는 것은 사실 재벌 오너 일가의 경영권을 잃지 않으려는 핑계일 가능성이 크다.
공정위가 순환출자 규제를 밀어붙이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전경련은 세계 어디에도 기업의 출자를규제하는 사례가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김상조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세계 어디에도 우리나라 재벌들처럼 소수 지분으로거대한 기업집단을 지배하는 사례가 없다”고 반박한다.
특수한 상황이고 그만큼 특수한 규제가필요하다는 이야기다.
김 교수는 이런 소유지배 구조의 왜곡이 소수주주나 채권자, 노동자들의 권익을 해치는 불법 부당행위로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서울시립대 경제학과 윤창현 교수는“도둑을 확실히 잡는 것은 의심되는사람을 모두 구속시키는 것이지만 도둑을놓치는 잘못보다 부작용이 크다”고 지적했다.
현실적으로 순환출자의 부작용을 인정하더라도 일괄적인 규제는 옳지 않다는 이야기다.
윤 교수는“문제가 있는 대안을 도입하기 보다는 차라리 출총제를 존속시키되 적용 제외 및 예외조항을 늘려 사실상폐지로 유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열린우리당 의원들의 입장도 대략 비슷하다.
규제완화라는 큰 방향에 맞지 않는다는 것. 김종률 의원은“출총제는 그동안 예외조항을 남발한 결과 누더기 규제로 전락했다”며“투자 활성화를 위해 조건 없이 폐지하는게 바람직하다”고강조했다.
순환출자금지도 반발이 만만치 않다.
송영길의원도“환상형 순환출자를 금지하는 것은 이중규제가 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출총제는 우리 경제의 가장 민감한 아킬레스건이다.
기업들 특히 재벌 대기업은 끊임없이 폐지를 요구해왔고 온갖 핑계를 끌어대고 있지만 그 본질은 오너 일가의 과도한 의결권을 어디까지 인정할 것이냐에 있다.
전경련이 주도적으로 나서고 있고 정부와 여당도 규제 완화라는 차원에서 기꺼이 이들 편에 서 있다.
권오승 공정위원장이 이런 압력을 이겨 내고 원칙을 지킬 수 있을 것인가가 관전 포인트다.
결국 현실적으로 공정위가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은 두 가지 가운데 하나가 될 전망이다.
첫째, 기존의 순환출자는 내버려두고 신규 출자만 규제하는 선에서 타협하는 것.둘째, 순환출자 금지는 포기하고 출총제의 대상을 축소하는데 그치는 것. 그동안 출총제가 유명무실하게 된 원인이 순환출자에 있었다는 점을 돌아보면 두 가지 대안 모두출총제의 기본 개념에서 크게 벗어나는 것이다.
이정환 기자 cool@economy21.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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