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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런트] 사채업자 향한 눈물겨운 보은인가
[커런트] 사채업자 향한 눈물겨운 보은인가
  • 황철 기자
  • 승인 2007.04.2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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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토신, 도덕적 해이‘어디까지'] 97년부터 밀월관계에 빠져…자금지원 위해 기업어음 대거 매입 한국토지신탁(이하 한토신)은 부동산 신탁시장 부동의 1위 자리를 고수하고 있는 기업이다.
96년 한국토지공사의 출자로 창립한 이래 토지신탁, 분양관리신탁, 국공유지신탁, 부동산 컨설팅 등 다양한 영역으로 업무를 확대해 왔다.
공기업인 한국토지공사는 지금까지 51%의 지분을 보유하며 대주주로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만큼 한토신의 공공적 성격을 부정할 수 없다는 의미다.
그러나 그간 한토신에서 벌어진 몇몇 사건들을 보면, 간접적 공공기관이란 말이 무색해진다.
2005년 국민은행 600억원대 위조 CD 사건 당시, 한토신은 제2의 가해자로 지목될 정도로 이 사건에 깊숙이 연루돼 있었다.
그 후 1년여가 흐른 지금, 과거 한토신이 사채업자와 맺은 끈끈한 밀월관계가 알려져 또 한 번 충격을 주고 있다.
사채업자 구출 작전 본지 취재 결과, 한토신은 태생 초기였던 97년경부터 사채업자 1인과 부적절한 자금관계를 유지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이 과정에서 수십억원대의 불법적 자금 지원이 이뤄졌고, 이에 대한 조직적 은폐 시도까지 자행됐다.
금융감독원 등에 따르면 한토신은 명동 사채업자 A씨를 지원하기 위해, 2001년부터 수년 동안 A씨가 보유하고 있던 기업어음(CP)을 비싼 값으로 매입해 왔다.
한토신이 처음 사채업자로부터 기업어음을 사들인 것은 2001년 2월. 이들은 그동안 모종의 유대관계를 유지해오던 A씨로부터 25억원어치의 기업어음을 매입했다.
A씨의 어음 유통이 어려워지자 한토신이 직접 자금 지원에 나선 것이다.
이후에도 추가적으로 20억원어치의 CP를 매입, 수년 동안 50억원 상당의 자금줄 역할을 했다.
이 같은 한토신의 부적절한 자금 지원은 2005년 7월까지 계속돼, 일평균 40억5천만원에서 50억원에 해당하는 기업어음(CP)을 보유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문제는 기업어음 매입이 한토신의 주 업무영역이 아니라는 점에서 출발한다.
이 과정에서 사업 타당성에 대한 적절한 조사도 실행되지 않았다.
이를 염두에 두면 한토신의 행위는 명백하게 사채업자 A씨만을 위한 불법 공금 유용이다.
현행 신탁업법은 기업이 자신들의 고유자산으로 사채업자와 거래하는 것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사건 직후, 한토신이 보인 은폐 시도는 더욱 조직적이다.
관련자들은 금융감독원의 검사가 시작되자 이를 숨기기 위해 신규로 양도성예금증서(CD)를 매입하고, 이를 담보로 대출을 받아 부족한 시재금을 채웠다.
한토신 감사실 역시 이를 파악하고도 적절한 조사를 실시하지 않는 등 미온적 대처로 일관했다.
이번 사건이 관련 직원만이 아닌 전사적 차원에서 진행됐다는 방증이다.
금감원은 이 같은 사실을 국민은행 CD 사건 감사 당시 파악하고 임직원들을 무더기 제재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금감원으로부터 제재를 받은 임직원은 전현직 대표이사를 포함, 19명에 달한다.
당시 대표이사였던 조창수 사장을 비롯해, 김진호, 이동진, 이광선, 한금룡씨 등 전현직 CEO들이 문책 및 주의적 경고를 받았다.
직접적 당사자인 자금운용부 부장 등 두 명은 소송을 거쳐, 법원으로부터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파면되기도 했다.
한토신, 뭘 받았길래? 그러면 한토신이 관련법을 위반하면서까지 사채업자를 도왔던 이유는 무엇일까. 보통 검은 돈 등이 오갔을 것으로 추측하기 쉽지만, 실상은 그간의 유대관계를 의식한 보은성 행위였다.
공공적 성격의 기관이 사채업자의 은혜를 갚기 위해 불법을 저질렀다는 것 자체가 난센스다.
이 사채업자는 97년 IMF 당시 한토신이 자금난을 겪자 스스로 자금 조달책을 자처하고 금전적 도움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
이때부터 이 업자와 한토신의 끈끈한 밀월관계가 시작됐고, 결국 이들의 잘못된 만남은 불법 행위로 이어졌다.
공공적 기업이 태생 초기부터 경영난 타개를 이유로 사채업자의 돈을 끌어다 썼다는 것 자체가 문제다.
김정선 한토신 총무팀장은 “지금은 고인이 됐지만 이 업자는 IMF 당시 큰 도움을 준 것으로 안다”면서 “그것에 대한 보답 차원에서 업자가 어려움을 겪을 때 자금 지원을 위해 CP를 매입했던 것”이라고 밝혔다.
결국 사채업자의 어려움를 눈감지 못해 무리하게 CP를 매입했다는 것이다.
이후 소송 과정에서도 이들의 눈물겨운(?) 사연은 큰 힘을 발휘했다.
자금운용부장 등 2명은 공판 과정에서 실형이 선고됐지만, 한토신 직원들의 탄원으로 집행유예 형에 그쳤다.
또 이들은 금감원 감사 후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친지들의 이름으로 제3자 담보대출을 받는 등 자력으로 시재금을 메웠다.
다행스럽게도(?) 그 결과, 한토신이 직접적인 자금 손실을 입지는 않았다.
김 팀장은 “어떻게 보면 이들도 희생양이라고 볼 수 있다”면서 “회사와 사채업자와의 관계 등을 고려해, 고민 끝에 A씨를 도왔다는 점 등이 정상 참작돼 집행유예 조치를 받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한토신의 미온적 대처는 금감원 감사 이후에도 이어졌다.
경영진들까지 포함한 대단위 문책 사항과, 소송까지 가는 사안의 중대성을 따지면, 주주들에게 정확한 사실을 인지시키는 것이 필수적이다.
일반적으로 이 정도 사안이면 당연히 공시 등의 절차를 거친다는 게 업계의 시각. 그러나 한토신은 이후 단 한 번도 관련 내용을 공시하지 않았고, 몇 번의 감사보고서 작성에서도 이 사실을 누락했다.
실제로 자금 손실 등 직접적 피해를 입지 않았다는 게 이유다.
김 팀장은 “사안이 크긴 하지만, 제3자 담보대출 등으로 자금을 채워 넣었기 때문에 별다른 손실을 입지 않았다”면서 “공시와 관련된 것은 회사에서 자율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위조 CD 사건 뒷얘기 한편 2005년 발생한 위조 CD 매입 사건은 한토신 모럴 헤저드의 백미로 꼽힌다.
물론 한토신은 국민은행, 신한은행(옛 조흥은행) 등과의 위조 CD 사건과 관련한 1차 소송에서 승소하긴 했다.
그러나 당시 이들이 사건에 연루된 정황은 한토신 관리 시스템의 맹점을 그대로 드러낸다.
당시 한토신은 총 4100억원 상당의 위조 CD를 보유하고 있었다.
직접 당사자였던 자금운용 담당자는 전결권자의 결재도 받지 않은 채 CD를 매입, 600억원대 위조 CD를 보유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특히 담당 과장은 이 과정에서 CD 매입을 청탁한 전 증권사 직원으로부터 승용차 교환 등 총 469만원 상당의 부당 이득을 취하기도 했다.
한토신 역시 이러한 시스템상 맹점을 부정하지 않는다.
방대한 업무 영역에 비해 직원들이 턱없이 부족하고, 이들의 비도덕적 행위를 감시할 체계적 방책이 마련돼 있지 않다는 것이다.
실제로 현재 한토신 직원은 160여명. 그러나 이들이 한 해 동안 관리하는 신탁액은 5조원을 넘어선다.
한토신 관계자는 “워낙 인원 규모가 작다보니 업무량이 많고, 감사 시스템도 제대로 구비되지 않은 것이 사실”이라며 “이 같은 사항은 금융당국으로부터도 수차례 지적됐지만, 현재 여건상 크게 개선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황철 기자 biggrow@economy21.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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