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경복궁 근처 갤러리의 후배 개인전시회에 들렀다가 작가 김정희를 처음 대면하게 되었다. 자그마한 체구에 커다란 안경, 맑고 큰 눈망울이 인상적이었던 작가에게서 차가우면서도 당당한 모습을 느낄 수 있었다. 뿜어져 나오는 당당함에 저절로 작가의 모습을 주위 깊게 살펴 보게 되었다. 뒤풀이 후 작가와 이별의 악수를 나누는 순간 흠칫 놀랄 수밖에 없었다. 여자의 손이 아닌 마치 공사장 인부의 손과 악수하는 느낌이었기 때문이었다.
2006년 여름 내내 3개월 동안 햇빛 내리쬐는 콘크리트 슬라브 위에서 길이 8m, 높이1.2m, 철 수세미를 한 올 한 올 촘촘히 안팎으로 엮었다는 것이다.
이원적 공간이란 주제로 두 영역의 보이지 않는 교류를 가시화시키고 있는 작가 김정희.
오랜 시간 작가 김정희는 이미 자신이 정해놓은 틀을 경계로, 또 다른 공간을 위한 작업들을 준비하고 있었다. 물성이 다른 돌이나 대리석, 브론즈, 철, 점토, 사진, 플라스틱, 철망 등을 이용, 기하학적인 모양의 "SPACE 200605" 는 원/반원기둥, 직/정 사각, 원추/타원기둥 등으로 만들어 그것들을 눕혔다간 세워보고 세웠다간 다시 눕히는 등의 반복적인 작업을 통해 작가의 조형적 공간에 대한 집요함이 엿보인다.
그러나 집요하게 작업하던 틀 속의 변화가 실증이 난 듯 꼬맹이가 놀고 있는 장난감 "SPACE 200613"이 더 재미있게 느껴진 모양이다. 조심스럽게 장난감이라는 오브제를 사각 프레임 밖에 놓아보며, 작은 변화를 즐겨본다.
다듬이 방망이를 통해 보이지 않는 소리를 조각하고 공간에 담긴 소리를 작업하는 작가에게 소리의 잔상은 바로 공간 속 대상의 존재를 완성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작가에게 두 개의 공간은 상상일 뿐이다. 내부공간과 외부공간, 보이지 않는 공간과 보이는 공간. 공간의 크기는 상대적이고 가변적인 것이다. 표현을 넘어서 공간에 대한 고민, 특히 숨어 있는 공간에 대한 연구로 이어지는 작가의 진지함. 그러기에 이원적 공간의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얼마나 많은 마음 고생을 하였을까.
이제 50줄을 훌쩍 넘겨버린 작가 김정희는 조각에 대한 철저한 장인 정신과 집요하리만치 공간에 대한 집착을 하여 예리하고 철저한 손의 움직임으로 문화공간을 미(art)로 조각화하고, 부드럽고 치밀한 분석력으로 자연(nature)이 생산한 공간(space)을 물질화 하여 공간의 구조를 다변화시킨다.
이번에 선보이는 작업은 이차원과 삼차원의 경계를 넘어선다. 미술사에서 벗어나 자연과 대적하여 공간의 문제를 해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