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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런트]고액연봉 받아도 껄끄러운 신세
[커런트]고액연봉 받아도 껄끄러운 신세
  • 황철 기자
  • 승인 2007.07.0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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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금융사고 방지 명목 … 계좌 입출금·신용카드 내역까지 ‘무단 조회’ 하루 수천억에서 수조원에 달하는 자금을 운용하는 은행권 딜러. 시장 변화에 따라 초 단위로 승부를 걸어야 하는 이들에겐 하루하루가 쉼 없는 전쟁의 연속이다.
과도한 업무 스트레스와 이에 상응하는 고질병 하나씩은 달고 사는 게 딜러들의 일상. 그렇다고 영 낙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들에게 고액연봉은 보장된 조건이고, 성과급만으로 수억원을 챙기기도 한다.
그러나 일반 월급생활자에 비해 두둑한 주머니 사정에도 딜러들의 마음이 편치 않다.
언제부턴가 은행들이 이들의 자금 사용 내역을 일거수일투족 감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남의 돈을 운용하는 것을 업으로 삼고 있지만, 정작 자기 돈은 마음대로 쓰지 못하는 웃지 못 할 상황에 내몰리고 있는 것이다.
딜러들은 은행이 통장 입출금부터 신용카드 사용 내역까지 일일이 감시하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A은행 한 딜러는 “간부 직원들이 수시로 법인카드뿐 아니라 개인 신용카드 사용서의 제출을 요구하고 있다”면서 “일부 은행의 경우 금융전산망을 통해 자의적으로 계좌 및 카드 사용 내역을 조회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또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대부분 은행에서 이 같은 일이 행해지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 은행들이 명백히 불법인 걸 알면서도, 무단 금융정보 조회라는 월권행위를 일삼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딜러들은 최근 몇 년 동안 자금부 직원들에 의한 대형 금융사고가 잇따르자, 은행들이 특단의 조치를 강구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실제로 은행권 딜링룸과 자금 담당 부서는 상시적인 금융사고 위험에 노출돼 있다.
은행 입장에서 딜러들은 하루 만에 수십억원의 수익을 안겨주는 효자들이기도 하지만, 막대한 자금을 유용할 수 있는 요주의 대상이기도 하다.
딜러들은 은행 자금을 이용해 실시간으로 채권이나 외환을 사고팔며 수익을 노린다.
이 과정에서 천문학적 자금이 오가고, 마음만 먹으면 비교적 손쉽게 거액을 다른 계좌로 옮길 수도 있다.
물론 은행들마다 리스크 관리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지만, 누구보다 자금 출입 경로를 잘 아는 사람 또한 딜러들이다.
은행권 관계자는 “견물생심이라고, 거대 자금을 이용해 투자를 하는 직업이다 보니 돈의 유혹에 빠지기 쉽다”면서 “무엇보다 자금 관련 부서 직원들의 횡령은 대형사고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아 은행 또한 각별히 신경 쓰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딜러들에게 고액 연봉을 지급하는 이유도 자금횡령 등 불법행위를 막기 위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딜러들은 은행들의 금융 내역 조회가 사고 방지에 전혀 도움이 안 되는 순진한 발상일 뿐이라고 일축한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횡령 사고가 가족, 지인 등 제 3자의 계좌를 통해 이뤄진 점에 비춰볼 때, 아무런 실효성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B시중은행 딜러는 “자금횡령을 결심하고 자기 (결제) 통장으로 돈을 넣는 바보가 어디 있느냐”면서 “한 번의 금융사고로 막대한 손실과 이미지 타격을 받는 은행 입장은 이해하지만, 개인 사생활까지 침해하는 것은 무리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황철 기자 biggrow@economy21.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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