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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런트]이젠 꿔다 놓은 보릿자루 아니다
[커런트]이젠 꿔다 놓은 보릿자루 아니다
  • 이윤찬 기자
  • 승인 2007.07.0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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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T 사외이사, 에이디칩스 인수 ‘부결’ … 주가 ‘폭락’에 개미 ‘울상’ 거수기, 고무도장, 꿔다 놓은 보릿자루…. 사외이사의 별명이다.
이사회에서 늘 침묵하기 바쁜 사외이사를 빗댄 조롱 섞인 말이다.
이런 평가를 받을 만하다는 지적도 많다.
국내 30대 상장사들의 사외이사 총 숫자는 200명 남짓. 이들이 처리하는 안건만 해도 연간 5천건을 훌쩍 넘어선다.
하지만 그 가운데 반대한 횟수는 고작 15건. 1%에도 채 미치지 못한다.
‘사외이사 무용론’이 제기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지난 6월29일, SK텔레콤 이사회 현장. 김신배 사장 등 SK텔레콤 이사진 4명은 맘 푹 놓고 이사회 의결을 기다리고 있었다.
안건은 반도체 설계회사 ‘에이디칩스’ 유상증자 참여와 전환사채 인수건. SK텔레콤은 지난 6월20일 에이디칩스의 유상증자에 275억원을 투자해 지분 25%를 확보하고, 257억원의 전환사채를 인수키로 하면서 ‘공시’까지 마쳤다.
이제 남은 것은 이사회의 승인뿐이었지만 결과는 떼어 놓은 당상이나 다름없었다.
부결될 확률이 희박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뜻밖의 상황이 연출됐다.
‘젊은 저격수’로 통하는 변대규 휴맥스 사장 등 사외이사 4명이 반대표를 던지며 부결을 이끌었던 것. 사외이사들은 부결 이유에 대해 ‘에이디칩스의 추진사업이 SK텔레콤과 연관성이 전혀 없다’는 점을 꼽았다.
에이디칩스는 비메모리 반도체칩 제조와 로봇사업을 추진하고 있었다.
예상치 못한 결과 때문일까. 이사회 부결의 ‘파고’는 높고 가파르다.
직격타는 에이디칩스가 정면으로 맞았다.
최용진 에이디칩스 이사는 “계약 해지 이유를 전혀 들은 바 없어 심기가 불편하다”며 “대응책을 내놓아야 하는데 뾰족한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개미’들도 황당하긴 마찬가지. 에이디칩스의 주가는 SK텔레콤의 ‘피인수 사실’이 공시된 20일 직후부터 가파른 상승세를 타더니 25일엔 2만6850원대까지 치솟았다.
에이디칩스의 평소 주가가 1만원대 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150% 이상 상승한 셈이다.
그러나 SK텔레콤의 인수가 사실상 좌절되면서 지난 5일 현재 9천원대로 주저앉았다.
이런 이유로 공시만 믿고 공격적으로 투자했던 개미들은 분기를 참지 못하고 있다.
주가 급락으로 피해를 본 일부 에이디칩스 주주들은 증권포털을 통해 불만을 한껏 쏟아내고 있다.
일각에선 ‘집단행동’까지 불사할 태세다.
SK텔레콤 역시 썩 좋은 것만은 아니다.
증권선물거래소는 이날 공시 번복을 이유로 SK텔레콤을 불성실 공시법인으로 지정하고 벌점 3점을 부과하겠다고 예고했다.
이에 대해 증권업계의 한 관계자는 “에이디칩스 인수건은 원래 이사회에서 최종 결정이 날 사안이므로 법적인 문제는 없다”면서도 “하지만 SK텔레콤이 이사회 승인도 나기 전 서둘러 공시부터 했던 것은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이어 “개인 투자자들도 공시만 믿을 게 아니라 이사회의 승인 여부를 꼼꼼히 살펴보는 차분함을 찾아야 할 때”라고 조언했다.
이윤찬 기자 chan4877@economy21.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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