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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리포트]이방인 취급받는 동포의 애환 듣는 신문고
[스페셜리포트]이방인 취급받는 동포의 애환 듣는 신문고
  • 김은지 기자
  • 승인 2007.08.0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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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동포타운센터…법률상담 지원, 생활정보제공 격주간지도 발행 지난 20일 오후 3시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 다닥다닥 붙은 허름한 상점들이 흡사 80년대 시장거리를 연상시킨다.
거리를 따라 비좁게 늘어선 간체자 간판들이 낯설다.
흔히 ‘가리봉 옌벤 시장’으로 불리는 이곳엔 약 6천명의 중국동포들이 살고 있다.
지역주민의 약 30%가 중국동포로, 안산시 ‘국경 없는 마을’에 이어 두 번째로 큰 중국인 거주지역이다.
가리봉동에 중국동포들이 모여든 이유는 간단하다.
싼 방값 때문이다.
일명 ‘쪽방’이라 불리는 이곳 집값은 보증금 100만원에 월 8~16만원 안팎. 한 명만 누워도 방은 꽉 찬다.
그래도 마음만은 편하다.
여기서만큼은 더는 ‘이방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10평 남짓한 쪽방에 산다는 중국동포 유미화(가명)씨는 “다른 곳에 가면 으레 이방인 취급을 받지만 가리봉동에선 우릴 같은 지역주민으로 본다”라 했다.
유씨는 “요즘은 가리봉동 월세에 살다가 돈이 모이면 신림동이나 신대방동의 다세대주택으로 옮겨가는 추세”라 덧붙였다.
가리봉 시장입구에 다다르자, 중국의 약식 한자 글씨체(간체자)의 간판들 사이로 낯익은 한국어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중국동포타운센터’라 적힌 낡은 3층짜리 건물로 들어서자, 낯선 억양에 지친 표정의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코리안 드림’을 품고 가족을 떠나 한국에 온 중국 동포들이었다.
그 흔한 에어컨 하나 없는 80평 남짓한 사무실. 한국에 체류 중인 중국동포들의 인권과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설립한 ‘중국동포타운센터’에는 일요일인데도 20~30명의 중국 동포들이 상담을 받기 위해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7년 전 ‘한국에 가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친척의 말을 듣고 한국땅을 밟았다는 이연화(가명)씨. 위장결혼으로 한국에 들어왔다는 이씨는 불법체류자 신세다.
그는 “밤마다 눈물을 훔친다” 고 말했다.
연길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홀어머니가 자꾸 눈에 걸리기 때문이다.
"제가 집에서 셋째에요. 돈 벌러 한국에 온지 7년이 되도록 어머니 얼굴 한번 보러 갈 수 없었어요. 풍으로 쓰러지신 어머닐 생각하면 하루빨리 돈 모아서 가야 하는데… 제가 불효녀지요." 이씨는 지난해 법무부가 내놓은 동포귀국지원프로그램 공고를 봤다.
자진신고를 하면 1년 후 재입국이 가능하다는 말에 용기를 내 자진신고를 했다.
가족 얼굴만 보고, 다시 들어와 돈을 벌 생각이었다.
신고 절차는 생각보다 까다롭고 복잡했다.
우여곡절 끝에 소장전달과 혼인해소 소송도 냈다.
손꼽아 기다리던 그날. 당국에선 “소장전달이 늦어져 기간을 넘겼으니 다음을 기약하라”는 애석한 답변만 돌아왔다.
이 씨는 “답답하고 억울한 마음에 센터의 문을 두들겼다”며 눈물을 글썽거렸다.
정치적 약자이자 소수인 중국동포 현재 국내에 체류 중인 중국동포는 거의 30만명에 달하지만 여전히 정치적 소수이자 약자이다.
그들에겐 투표권도 없다.
선거전이 한창이지만 그 누구도 이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이지 않는다.
하지만 이들을 더 나락으로 모는 건 같은 동포인 한국인의 멸시와 인간 이하의 대접이다.
중국동포타운센터의 한 관계자는 “오랜 시간 공산주의 체제에서 살다 자본주의 국가로 넘어온 중국 동포에게 한국 제도나 법률은 너무 낯설을 수 밖에 없다"며 "이들이 한국 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정부가 도와줘야 하는데, 정부의 교육이나 지원은 극히 미약한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중국동포들이 집중 거주하고 있는 가리봉동 쪽방촌의 한 다가구 주택 모습 ⓒ임영무 기자
이 관계자는 이어 “중국동포 가운데 법을 잘 몰라 불법체류자가 되는 경우도 많다”며 “이들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세무사, 노무사, 변호사들이 모여 센터에서 법률구조본부를 구성해 무료로 법률상담을 제공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곳에서 만난 중국 길림성이 고향인 최병학(53)씨. 그는 얼마 전 울타리 설치 작업을 하다 2m 높이에서 추락해 허리와 다리를 심하게 다쳤다.
회사측에선 최씨가 불법체류자라는 사실을 악용, 20만원을 줄 테니 일을 그만두라고 했다.
당장 먹고살 일이 아득했던 최씨는 치료비만이라도 더 달라며 통사정했지만 회사측은 이를 묵살했다.
수소문 끝에 최씨는 중국동포타운센터의 법률구조본부를 찾아왔다.
최씨는 “법률구조본부가 ‘명백한 산업재해에 해당하며 적절한 보상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산재은폐죄로 고발할 것’이라는 내용의 진정서를 제출해서, 회사로부터 800만원의 치료비를 받을 수 있었다”며 기뻐했다.
중국동포센터에선 중국 동포를 위해 한국 생활에 필요한 정보를 알려주는 격주간지 <중국동포타운신문>도 발행한다.
“중국동포들은 한국에서 말 못할 설움을 많이 겪습니다.
주로 임금체불, 사기, 산재피해, 여성인 경우 가정폭력과 성폭력 등이지요. 꿈에 그리던 고국에 돌아와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가 된 동포들이 많습니다.
” 김용필 편집국장은 “중국동포타운신문에는 한국 생활정보나 노동법규, 피해사례를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며 “이를 보고 상당수 동포가 구제상담을 받으러 온다”고 말했다.
외국인등록증, 정체성 혼란 낳아 1년 전 한국에 왔다는 김미옥(55)씨는 “중국 동포들이 겪는 고충 중 하나는 ‘정체성 문제’”라며 “태어나서 지금껏 한국이 고국이라 여기며 살다, 막상 한국에 왔더니 자신이 ‘외국인’으로 분류된다는 사실을 알고선 큰 혼란을 겪는다”고 말했다.
실제 기자가 중국동포들이 소지한다는 신분증을 확인한 결과, ‘외국인등록증’이라 적혀 있었다.
“중국에 있을 때도 전 한국 이름을 썼어요. 다들 ‘김미옥’이라 불렀지요. 정작 한국에선 한국이름 대신 중국식 이름을 쓰라더군요. 노동부에 전화해 물어봤죠. 그랬더니 전 외국인이랍니다.
” 김씨는 외국인 등록증은 ‘취업시 보이지 않는 장벽‘과도 같다고 말했다.
면접을 보러 가면 처음엔 잘 대해주던 업주들도 신분증만 보면 “함부로 대하더라”고 서운해했다.
“그래도 센터에 오면 동향친구들도 보고, 상담사들의 따뜻한 격려도 받을 수 있어 그나마 위안이 된다” 했다.
94년 한국에 들어와 현재 중국동포타운센터에서 자원봉사를 하는 최경숙(55)씨는 “중국동포센터는 마음 둘 곳 없는 외로운 우리 동포들에게 ‘친정집’과도 같은 곳”이라고 말했다.
그리움과 동경을 안고 한국 땅에 온 이들은 서로 상처를 보듬고, 치유하는 법을 조금씩 터득해가고 있었다.
김은지 기자 guruej@economy21.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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