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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단과 분석]양돈 농가 그들이 브뤼셀로 간 이유는
[진단과 분석]양돈 농가 그들이 브뤼셀로 간 이유는
  • 류근원 기자
  • 승인 2007.11.1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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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EU FTA 협상에 반대 시위 … 돼지고기 시장 개방 확대가 주요의제 지난 9월20일, 브뤼셀에서 국내 양돈업의 몰락에 조의를 표하는 장례식이 열렸다.
장례식을 연출한 사람들은 국내에서 돼지를 키우는 양돈 농민 대표들이다.
이들이 낯선 땅 낯선 도시에서 대한민국 양돈 산업의 장례식을 벌여야만 이유는 뭘까? 수입산 돼지고기가 밀려와 국내 양돈 농가가 설 자리를 잃는 위협을 느꼈기 때문이다.
요즘 국내 양돈농가는 사면초가에 놓여있다.
이미 미국, 캐나다, 칠레, 벨기에 등 현재 17개국에서 수입되는 돼지고기의 물량은 매년 50% 이상 증가하고 있는 상태다.
국내산 삼겹살보다 더 싼 미국산 소고기 반입으로 위기를 맞았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번엔 수입 돼지고기의 직격탄을 맞을 위기에 놓였다.
그야말로 ‘겹 악재’다.
여기에 한·유럽연합(EM) 자유무역협정(FAT) 협상에서 국내 돼지고기 시장 개방 확대가 주요 의제로 다뤄지고 있어 국내 양돈농가의 기반을 더욱 위태롭게 하고 있다.
지난 11월 6일 농림부는 한-미 FAT 농업부문 국내 보완대책 추진을 위해 향후 10년간 총 20조4천억원을 투융자 지원하여 농업 경쟁력을 강화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도축세 폐지를 내년부터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보완대책은 사탕발림이라는 것이 양돈 농가의 주장이다.
어느 정도 수용을 약속했던 축산 시설 현대화 자금, 분뇨처리 시설 설치 자금, 음식점 원산지 표시제 실시, 도축세 폐지, 돈열 청정화 등 양돈 농가가 요구한 구체적인 보완 대책 중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는 한-미 FTA가 타결되자마자 한-EU FTA 협상에서 돼지고기를 협상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이번 한-EU FTA 진행과정은 한-미 FTA와 매우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한-미 FTA처럼 반미 감정도 없고, 국민이 가장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쌀과 쇠고기 부분에 대한 개방 요구가 없기 때문에 국민의 관심도 부족하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이러한 불리한 여론 속에서 한국의 양돈 농민들은 낯선 브뤼셀까지 원정을 가서 한국 양돈 산업의 장례식과 삼보일배를 통해 양돈인의 목소리를 내는 것 외에 별다른 도리가 없었다.
현재 EU 측은 그들이 경쟁력을 가지고 있는 돼지고기에 대해 22.5% 관세를 전면 철폐해 줄 것을 한국 측에 요구하고 있다.
현재 국내의 돼지고기 수입국 15개국 중 11개국이 EU 소속 국가이고, 그 물량이 전체 수입량의 44%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한-EU FTA 타결이 국내 양돈업에 어느 정도의 피해를 가져다줄지는 예상조차 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한국 협상단은 냉동육 10년, 냉장육 15년에 걸쳐 관세를 철폐하자는 입장이나, EU는 비준에 관계없이 2014년 전면 개방하게 되어 있는 한-미 FAT 수준과 동일한 수준의 개방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대한양돈협회는 EU의 요구안을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먼저 EU는 농업 보조금, 수출 보조금을 합해 750억불을 양돈 농가에 지원하고 있지만, 한국은 17억불을 지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국산 돼지고기 가격의 45% 정도인 EU산 돼지고기가 막대한 지원금을 받으면서 관세까지 철폐되어 들어오게 되면, 빠른 시일 내에 시장이 잠식되는 것은 불 보듯 뻔하다는 것이다.
대한양돈협회는 “EU의 생산비는 국내의 40%밖에 되지 않으며, 정부의 장기간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최고의 축산 시설을 자랑하는 EU와 국내 양돈농가가 시장에서 경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두번째는 불안한 국내 양돈 경영 실태이다.
양돈 농가들은 소모성 질병을 퇴치하고, 친환경 축산을 하기 위해 수천만원에서 수억원의 자금을 투자해오고 있는 실정이다.
그럼에도 제반 경영환경은 점점 불리하게 흘러가고 있다.
지난 1년 사이 20%나 상승한 사료값은 생산비 인상으로 이어져 농가 비용구조에 큰 부담을 주고 있고, 2012년부터는 사전 대비책이나 준비도 갖추지 못한 상황에서 축산 분뇨의 해양 배출이 전면 금지된다.
김동환 대한양돈협회 회장은 “FTA 협상을 진행하려면 사전에 정부와 농가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국내 양돈업을 살리는 방안을 모색했어야 했었다”며 정부의 태도를 비판했다.
전문가들은 생산자 입장뿐만 아니라 소비자의 입장에서도 한-EU FTA 타결 이전에 제도적인 보완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수입산과 국산을 구분하기 위한 현행 음식점 원산지 표시제에서도 돼지고기는 제외되어 있고, 원산지 표시의 근거가 될 이력 추적제 도입을 강력히 주장하고 있으나, 그마저도 통과 여부가 불투명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양돈농민들은 “이는 소비자들이 원산지를 알고 선택해 구매할 수 있는 권리를 무시하는 처사이며, 법적인 제도조차 정비되지 않은 무방비 상태에서 마구잡이식으로 수입 돼지고기를 들여오는 것은 국민 건강을 위협하는 조치이다”라고 말했다.
대한양돈협회는 “FTA 협상이 피할 수 없는 대세라고 한다면, 협상으로 인해 직접적인 피해를 입게 될 당사자들과의 충분한 논의와 협의를 먼저 진행해야 할 것이라며, 한-EU FTA 협상 내용도 공개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한국 측 협상단은 연내 내지는 연초 타결을 목표로 한-EU FTA 협상에 박차를 가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제 곧 다가 올 6차 협상이 관건이다.
11월 19일부터 벨기에 브뤼셀에서 진행하는 5차 협상에서 돼지고기가 본격적으로 협상 테이블에 오르게 될 것인지 양돈인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지난 9월 브뤼셀 하늘에 울렸던 국내 양돈업을 위한 장송곡이 5차 협상 테이블에 앉은 한국 측 협상단의 뇌리에 얼마나 남아 있을지 두고 볼 일이다.
류근원 기자 stara9@economy21.co.kr
김동환 대한양돈협회 회장“국내 양돈농가를 말살하는 행위 멈춰라” ⓒECONOMY21 사진
김동환 대한양돈협회 회장은 이제 투사가 다 되었다.
전임 양돈협회회장이 “삽겹살만 먹지 말고 부위별로 골고루 드셔 달라”는 홍보 사절역할이었다면 이번에는 사정이 다르다.
김 회장이 양돈협회장을 맡은 것은 국내양돈 농가에 어둠이 드리워지면서부터다.
그의 목소리는 투박하다.
닭 이야기로만 주제삼아 현란한 어휘로 청중을 사로잡고 몇 시간을 때울 수 있는 윤홍근 제너시스(BBQ) 회장 스타일도 아니다.
김 회장은 그저 뚝심으로 우리를 지켜 내온 한 시골의 아저씨에 가깝다.
다만 그는 양돈 농가의 위협이 되는 사안이 있으면 항상 가장 먼저 만날 수 있는 인물이다.
그래서일까? 그에게선 얇게 씹히는 베이컨보다는 두툼한 생삼겹살 맛이 난다.
김 회장 역시 지난 9월 18일 한-EU FTA 3차 협상이 열리고 있는 벨기에 브뤼셀에 다녀왔다.
그는 “지금과 같은 한-EU FTA 협상은 국내 양돈농가를 말살하는 행위이다.
정부의 대책 마련 없이 그냥 끌려가면서 자동차와 맞바꾸려는 식의 협상 전략을 이대로 좌시하지 않겠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는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는 ‘막가파’식의 투사가 아니다.
그는 국내 양돈 농가가 최소한의 생존을 보장받고자 안간힘을 쓸 뿐이다.
그는 “우리가 무조건 FTA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뚜렷한 대책도 없이 진행되는 FTA는 연쇄적으로 우리 양돈 산업을 붕괴시킬 소지를 걱정한다.
또 이렇게 되면 결국 언젠가는 수입돼지고기가 천정부지로 오르는 석유값처럼 위협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또한 그는 “수입돼지고기 가격을 외국에서 갑자기 올랐을 때를 상상해보자. 쌀과 같다.
최소한으로 대비하는 국내 양돈 산업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한번 무너진 양돈 산업이 복구되려면 훨씬 큰 비용이 들고 기간도 10년 이상의 노력이 소요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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