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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 타임머신]교대 시스템 위기탈출의 ‘특효약’
[이코노 타임머신]교대 시스템 위기탈출의 ‘특효약’
  • 김우일 전 대우그룹 구조조정
  • 승인 2008.01.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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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기즈칸 3교대 전쟁방식으로 ‘백전백승’ … 김우중 교대 시스템으로 비용절감 성공 김우중과 칭기즈칸의 열 번째 공통점은 Shift system(교대 시스템)이다.
기업경영학에서도 이를 사용한지 오래되지 않았는데, 무려 800여년 전 칭기즈칸이 이 개념을 통치철학에 적용했다는 게 경이롭다.
교대 시스템은 ‘한 사람이 계속해서 일하는 것보다 여러 사람이 교대해서 일하는 게 보다 능률적’이라는 논리에서 출발한다.
능률성 찾기 지름길 ‘교대 시스템’ 한 사람이 계속 일하면 야간 수당, 심야 수당 등 초과수당으로 인건비의 부담이 배가되는 경향이 있다.
특히 근로자에게 제일 중요한 것이 산업재해인데, 이를 막는 데는 한 사람에게 집중된 작업피로를 경감시키는 방법이 최선이다.
그러려면, 교대 시스템을 이용하는 수밖에 없다.
칭기즈칸은 전쟁을 하면서 상대의 적들이 무력하게 무너지는 원인을 찾아냈다.
고향과 가족을 떠나 오래 진행되는 전쟁으로 몸과 마음이 지친 나머지 전투의욕을 상실한 채 마지못해 싸움에 임하기 때문이다.
전투원에게 가족과 고향을 볼 수 없다는 격리감과 그로 인해 생긴 향수병은 내부에 존재하는 최대의 ‘적’이다.
이 감정을 적절히 통제할 수 있다면 전투원에게 있어 이보다 좋은 ‘채찍’과 ‘당근’은 없을 게다.
이를 고취하고자 칭기즈칸은 교대 시스템을 도입했다.
유목민의 숙소는 ‘게르(GER)’ 중심이다.
그런데 여기엔 교대 시스템을 적용시키는 데 없어서는 안 될 가장 중요한 포인트가 있다.
유목민이 아닌 정착민들의 경우 벽돌, 흙, 돌 등으로 땅 위에 고착된 고향과 숙소를 가지는 탓에 전쟁에 한번 징병되면 다음의 재회 보장도 없이 영원히 가족들과 생이별할 수밖에 없다.
전쟁에 동원된 군사들은 희망도 꿈도 없이 전쟁터에 수동적으로 몸을 내 던졌다.
이런 군사들로 전쟁에 임하면 백전백패의 결과임은 불 보듯 뻔하다.
칭기즈칸은 전쟁터에 참여한 군사들을 3진으로 나누었다.
그리고는 군사들의 가족이 머무는 게르를 전쟁터 후방 50㎞에 위치하도록 했다.
1진의 군사들이 7일 동안 먼저 싸운 후 바로 가족들이 머무는 게르로 돌아가 휴식을 취하고,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한 것. 그동안 다른 2진의 군사들이 교대로 전쟁터에 투입돼 싸운다.
2진들이 싸운 후 게르로 돌아오면 대기하고 있는 3진이 또다시 싸움터로 나간다.
3진이 돌아오면 휴식을 취한 1진이 교대로 전쟁터를 맡게 된다.
그러니깐 21일 만에 7일간 씩만 전쟁에 임하면 되는 셈이다.
가족들과 다시 재회하려면 반드시 살아 돌아와야 한다는 강인한 생존의식이 박히게 되고 7일 동안만 열심히 싸우면 또 다른 가족들과의 휴식이 기다리고 있으니 그 사기는 하늘을 찌를 수밖에 없다.
군사들의 사기를 돋게 하는 교대 시스템이야말로 그 당시 칭기즈칸에게 승리를 안겨준 최대의 ‘요인’이었을 게다.
김우중도 마찬가지였다.
일천한 대우그룹의 경우, 다른 경쟁자에 비해 가격이나 기술, 품질에서 열세였다.
그것은 분명한 현실이었다.
그러한 상황에서 이기는 길은 ‘비용’을 과감히 낮추고 나가는 것. 그러려면 부품의 기능혁신을 통한 부품수의 축소와 조립의 혁신을 통한 구조 개선을 꾀해야 했다.
하지만 이 역시도 단기간 내에 달성하기 쉽지 않다.
김우중 비용절감 위해 모험 단행 이 방법 외에 ‘비용절감’을 이루기 위한 차선의 방법이 생산량을 늘려 규모의 경제이익을 도모하는 길이었다.
생산량을 늘리면 늘릴수록 비용절감은 실현된다.
바로 규모의 경제이익이라는 효과로 일정한 고정비의 배부가 증대되는 생산량에 작게 쪼개지기 때문에 한 개당 비용이 적어지는 것이다.
ⓒ한겨레
그 당시 공장 설비인 캐파(CAPA)는 늘리기 힘들었다.
정부 규제로 인해 공장증설은 인허가 등의 문제로 수년씩이나 지연되며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가능하면 재벌을 옥죄려는 정부의 정책이었다.
캐파를 늘리려는 시도가 좌절당하자 김우중은 전 계열사에 삼교대에 24시간 풀가동하는 교대 시스템을 지시했다.
일부 회사에서는 24시간 가동하는 것에 대해 관리의 어려움과 낭비의 이유로 반대하곤 했지만 비용절감이라는 기업경영의 대명제를 외면하기 힘들었다.
생산량이 늘어나자 이를 출하시키고자 판매에 전력을 집중하지 않으면 안됐다.
시장이 좁은 국내보다 수출에 집중하는 것이 생산량이 늘어난 물량을 소화시키기에 적격이었다.
본래 수출에는 남이 알아주는 대우 그룹만의 역량과 힘이 있었다.
생산량이 늘어난 만큼 코스트는 다운되어 다른 기업보다 가격경쟁력 차원에서 훨씬 유리하게 해외 수출의 폭을 확대시킬 수 있었다.
이것이 90년대 초반의 세계경영이라는 대우그룹의 전성기를 이루게 된 가장 큰 원동력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달리 보면 부작용도 존재했다.
늘어난 생산량을 소화할 만한 판매시장이 뒤따라 주지 않는다면 이 또한 자신에게 되돌아오는 부메랑 효과가 될 수 있는 법이다.
90년대 후반 불어 닥친 외환위기로 인한 판매시장의 급격한 축소는 그룹의 늘어난 생산력을 커버할 수가 없었다.
외환위기가 발생했을 때 정부와 타 그룹은 활동을 중단하는 동면의 정책을 취했지만 대우그룹은 반대로 판매확장의 공격을 취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 기인한 것이다.
이 정책이야말로 정부의 정책과는 괴리가 있었다.
이는 정부 고위관료로부터 엄청난 견제와 압박을 초래했다.
정부는 움츠리는 정책을 일관, 모든 투자활동을 축소함으로써 이태백이라는 풍조어를 만들어낸 일자리 곤궁의 현 경제상황을 초래시킨 장본인이 됐다.
김우일 전 대우그룹 구조조정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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