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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경제대통령의 경제 빠진 ‘실용외교’
[커버]경제대통령의 경제 빠진 ‘실용외교’
  • 박득진
  • 승인 2008.08.1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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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s economy, stupid!" 미국 대통령 후보이던 클린턴 주지사가 한 말이다.
그의 말대로 모든 것은 ‘경제’였으며 그는 대선에서 민주당을 승리로 이끌었다.
한국에서는 참여정부 내내 ‘경제파탄’이라는 탄식이 흘러나왔고, 정치권에는 오직 ‘민생’만이 화두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경제는 밥먹는 일상과 같은 기본’이라 말하며 ‘모든 것은 경제’라는 명제에 동참했지만 이명박 대선후보는 ‘경제를 살리겠습니다’란 구호로 한나라당 집권에 성공했다.
외교 영역도 경제가 중요했다.
15세기 신항로 개척에 열을 올리던 대항해시대 이후 세계화는 이미 시작됐고, 각 지역의 분쟁과 전쟁 역시 ‘경제’가 가장 큰 축을 차지했다.
현재의 모든 외교는 경제통상과 직결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국의 경제이익을 지키기 위한 외교정책들은 날로 발전해 갔다.
유럽 통합 역시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E)’라는 경제영역에서 출발했다.
무역의 비중이 큰 우리나라 역시 외교는 상당히 중요하다.
시장을 확보하고 한국의 이미지를 높이는 것은 유·무형의 경쟁력있는 상품자원들을 개발하는 것과 함께 현대 경제발전의 가장 큰 축을 형성한다.
국가는 기업을 지원하며 자원확보와 국가간 사업에 직접 뛰어들기도 한다.
한 국가를 책임지는 대통령과 외교라인의 움직임은 곧 그 국가의 전체적인 이미지와 경쟁력을 의미한다.
대미지향 외교에 주변국 불만 대선 후보시절부터 이명박 정부는 ‘실수’로 외교를 시작했다.
지난 해 10월 이명박 후보측은 부시와의 면담을 발표했지만 결국 무산되면서 외교망신으로 끝났다.
대선 기간 중 그는 ‘한미동맹 강화와 비핵·개방 3000 구상’이라는 외교정책을 내놓으며 대미지향적인 외교정책을 표방했다.
대미지향적인 외교정책을 가진 이 후보의 당선은 중국 러시아 북한 등 주변국들을 불편하게 했다.
특히 중국은 올해 초부터 노골적인 불만을 나타냈다.
한국 정부의 ‘대미지향외교’에 대해 중국 정부는 올해 2월 한국을 제외한 ‘중·미·일 3국간 정기 고위회담’을 주장한다.
받아들여지지는 않았지만 중국을 비중 있게 다루지 않는 이명박 정부에 대한 중국 정부의 대답이었다.
하지만 한국 정부의 대미지향 외교는 바뀌지 않고 견고해졌다.
외교라인 인선과 대북 발언, MD관련 분위기 등 중국을 자극할 만한 일들이 연이어 벌어졌다.
중국 정부가 한국 정부에 극도의 불만을 표시한 것은 바로 5월의 한·중 정상회담이다.
중국 외교부는 이명박 대통령의 방문에 맞춰 ‘한·미 군사동맹은 역사적으로 남겨진 산물’이라며 한국 외교를 맹비난했다.
정상회담 아침의 극히 이례적인 이 발표는 다분히 의도적으로 진행됐다.
중국의 관영 매체들이 한국에 비판적 기사를 쏟아냈음은 물론이다.
한·중 정상회담이 진행되는 순간에도 중국 외교부 홈페이지에는 한국 대통령을 ‘노무현’으로 명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청와대는 이런 수모를 당하면서도 △한·중 관계의 질적인 발전 △경제·통상 협력 확대 등에 합의한 외교적 성과를 거뒀다고 자평했다.
이명박 정부의 대미지향외교에 대해 기분이 나쁜 것은 여타의 주변국들 역시 마찬가지다.
이명박 당선인의 첫 4강 특사외교에서 러시아 특사로 파견된 대통령의 최측근인 이재오 전 의원은 푸틴 대통령의 얼굴도 보지 못하고 귀국했다.
동북아의 가장 큰 문제이고 기회이기도 한 북핵6자회담에서도 한국은 찬밥 신세를 면치 못했고, 이번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의장성명 문제까지 터지면서 한국 외교는 아시아에서 확연히 밀려났다.
주변국과의 좋은 관계 속에서 ‘적극적인 통상외교’를 펼치는 수준이 아니라 ‘주변국과의 관계 개선’이 필요한 지경에 놓인 것이다.
새롭게 떠오르는 거대시장의 구매자들에게 한국이라는 국가의 매력이 떨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한·미 정상회담에 실리는 없었다 한미 쇠고기 협상은 분명히 통상 협상이었다.
양국의 사전 작업이 있었음은 물론일 것이다.
협상 이후 밝혀졌지만 이명박 대통령의 취임식에 앤디 크로세타 미국 축산육우협회 회장이 참석해 현 정부와 ‘쇠고기 시장 개방’에 대한 논의를 주고받았다.
국내에서 쇠고기 협상 문제가 터진 이후 대통령 취임식 당시 한나라당 참석자 바로 뒤쪽 비중 있는 자리에 앉은 미 축산육우협회 회장의 다양한 사진들은 이명박 정부를 곤혹스럽게 하기에 충분했다.
한·미 쇠고기 협상은 미국측의 요구를 대부분 수용한 것으로 한국은 이 협상에서 쇠고기 시장을 고스란히 열었다.
한국이 얻은 것은 협상 자체에는 없어 보였다.
광우병 논란을 떠나서, 한쪽만의 요구만 수용되는 이례적인 협상이 진행된 것이다.
때문에 언론들은 ‘캠프 데이비드에 가기 위한 선물’이라고까지 말했다.
그리곤 한미정상회담이 진행됐다.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은 한·미정상회담의 성과에 대해 “서로 윈윈하는 결과를 도출했다.
역대 그 어떤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해 얻은 성과보다 더 종합적이고 알찬 성과를 얻었다”고 밝혔다.
한국이 한미 정상회담에서 얻은 성과는 바로 ‘주한미군 추가감축 중단과 한국의 미국산 무기구매국 지위 향상’이다.
한국은 국내에 더 많은 주한미군을 보유하게 됐고, 더 좋은 미국의 무기를 살 수 있는 지위를 얻었다.
한편 정상회담에서 미국이 얻은 것은 △이라크 파병 연장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우리 군과 경찰의 파병 가능성 △미국산 무기 구매 증대 △방위비 분담(SMA) 증액 등이다.
경제적으로 누가 실익이 있었을까? ‘한국의 성과’에선 아무래도 국방부 관계자 중 일부가 좋아했을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한국 입장에서는 경제효과보다는 ‘비용발생’의 부분이 상당히 커 보인다.
반면에 미국은 어떨까. 미국 경제의 네 축은 자본(금융) 식량 에너지 군수산업 등으로 구분되는데 이해관계가 적은 금융기업들을 제외하면 미국의 식량관련기업(축산협회), 석유관련 기업, 군수산업 기업 등 미국 대부분의 기업들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협상이었다.
한·미 정상회담에 ‘우리 경제, 우리 실리’는 없었다.
한미 정상이 한 번 만났고, 미국은 많은 것을 얻었다.
청와대가 ‘역대 가장 큰 성과’라고 밝힌 한미정상회담은 결과적으로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을 10%대로 안착시키는 위력을 발휘했다.
공공의 적 한국? 이명박 정부의 외교라인은 종합적인 문제를 드러냈지만 주변국들과 ‘관계 개선’을 해도 시원찮을 판국에 최근 또 한 번 주변국들을 ‘적’으로 돌리는 해프닝을 벌였다.
외교부의 문서가 공개됐다.
광우병 쇠고기 문제가 한참 불거지던 지난 5월 우리 정부가 미국 정부에게 다른 나라와도 ‘같은 조건’으로 협상을 빨리 진행해 줄 것을 요청했던 것으로 드러난 것이다.
통상교섭본부가 주미 한국대사관에 보낸 공문엔 일본 대만 중국 등이 우리와 같은 기준을 수용하면 국내의 비판을 가라앉힐 수 있을 테니 협상을 빨리 해 달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한국과 미국 사이의 관계뿐 아니라 미국과 여타국과의 관계에 ‘참견’을 하고 나선 것이다.
미국과 협상해야 하는 한국의 주변국인 중국 일본 대만 정부와 국민들에게 한국 정부가 곱게 보일 리 만무하다.
한국 정부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한국 주변국가들은 미국과의 쇠고기 협상에서 그리 쉽게 자국의 시장을 내 줄 것 같아 보이진 않는다.
각국 주재 대사관의 보고에 따르면, 대만은 최근 정권이 바뀌면서 타결 수준과 시기를 장담할 수 없으며, 일본의 경우 OIE 기준과 상충돼 진통 중이고, 중국은 아예 협상 자체에 소극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경제대통령 이명박 정부의 실용외교가 의도와 달리 새로운 ‘고립주의’의 길을 걷고 있다.
박득진 기자 madgon@economy21.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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