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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T칼럼] 한일 정자상거래 물꼬 튼다.
[DOT칼럼] 한일 정자상거래 물꼬 튼다.
  • 오완영(북스포유 대표)
  • 승인 2000.11.0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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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빛과 그림자
몇년 전 호주에 간 적이 있다.
아무런 연고도 없던 터라 전에 우연히 알게 된 호주 사람 집에서 며칠 신세를 졌다.
하루이틀 지내면서 도저히 물어보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게 있었다.
도무지 신문을 구경할 수 없었다.
처음엔 호주는 1차산업 의존도가 높아(나중엔 그것도 아닌 걸 알았지만) 경제나 정치엔 별 관심이 없어서 그럴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들 부부는 호주에서 인텔리 계층에 속하는 사람들 아니던가. 남편은 경제학 교수이고 부인은 박사학위를 따려 공부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 부부 대답이 가관이었다.
“한국은 아직도 신문을 구독하는 사람이 많은가 보죠? 호주 사람들은 웬만하면 신문이나 잡지를 인터넷으로 보죠.” 그때 한국에서 인터넷을 주로 사용하는 층은 컴퓨터에 아주 능숙한 엔지니어거나 열성 네티즌 정도였다.
기성세대가 인터넷으로 신문을 읽는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었다.
나 역시도 모니터에 뜬 글을 읽는 것보다는 묵직한 책의 중량과 종이 질감을 손으로 느끼며 읽는 것이 훨씬 좋다.


정직한 독자만 내 책을 읽어라 그러나 지금 우리나라 출판계는 가히 혁명적 조짐을 보이고 있다.
종이가 아닌 휴대용 단말기를 통해 책을 읽는 전자책(eBook)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한국 전자책 시장은 아직 초창기이긴 하지만 앞으로 각광을 받을 사업임에 틀림없다.
정부에서도 전자책 활성화를 위해 향후 3년 동안 민관 합동으로 238억원을 투자하는 것을 뼈대로 한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전자책 산업 인프라를 초기에 전략적으로 확충하기 위해 멀티미디어 서적 제작에 필요한 고가 장비와 소프트웨어 등을 갖춘 공용시설물을 세우고 지원센터도 설치한다고 한다.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정작 이 혁명을 주도하고 있는 미국에서는 전자책에 대한 회의론이 대두하고 있다.
실태는 이렇다.
인기작가 스티븐 킹은 출판 사상 최초로 유통단계를 거치지 않고 자신의 웹사이트에 소설 <총알 타기>를 발표했다.
<총알 타기>는 첫날에만 다운로드 횟수 50만번을 기록해 전자책의 막강한 잠재력을 보여주는 듯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다운로드 횟수가 줄어들고, 구독료를 내지 않고 불법복제 하는 독자가 늘어났다.
미국이 이럴진데 우리나라에서 전자책으로 발표된 문학 작품에 쏟아진 반응은 어떠했겠는가. 전자책 보급을 넓히기 위해 해결해야 할 문제점은 많다.
파일 형태의 책을 읽기 위해서는 50만원이 넘는 전용 단말기(PDA)가 필요하다.
단말기 업체들이 저마다 다른 솔루션을 개발하고 있어 장기적으로 본다면 중복투자가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도 들린다.
전자책은 사실 문학장르의 장점을 100% 수용할 수 없는 매체다.
전자책은 종이책이 주는 잔잔한 감동을 전할 수 없을 것이다.
전자책은 멀티미디어 기능, 하이퍼링크 기능 등을 발휘할 수 있는 학술 부문에 유용하다는 게 일반적 인식이다.
지금 우리가 주력해야 할 부분은 국내외 학술 콘텐츠를 디지털 라이브러리화해 표준화 시대에 발 빠르게 대응하는 것이다.
전자책이 앞으로 10년 안에 출판과 유통시장에 끼칠 영향은 매우 클 것이다.
물류비용을 절약하고 종이책에 비해 최고 50%까지 가격을 낮출 수도 있어, 지식문화를 더 빠르고 더 편리하게 보급할 수 있다.
전자책을 살찌우는 것은 정부와 민간이 함께 할 몫이다.
정부는 자금을 조성할 수는 있으나 독자의 역할을 무시할 수 없다.
스티븐 킹도 정직한 독자만이 웹에서 내 소설을 읽으라고 요청했다.
저작권을 존중하는 풍토를 조성하지 않는 한 전자책의 황금시대는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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