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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업계] 폭풍 휩쓴 자리, 악몽은 계속된다
[금융업계] 폭풍 휩쓴 자리, 악몽은 계속된다
  • 이원재
  • 승인 2001.06.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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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시 불투명해 증권사 채용 주춤, 은행은 구조조정 한파로 소규모 인력수급
금융권에선 최근 증시의 주가상승 추세 지속에 대한 기대감, 대형 합병은행들의 신규채용 재개 등으로 신규채용 확대 가능성을 높이는 소식들이 잇따르고 있다.
실제로 몇몇 대형은행들이 6월 들어 뒤늦게 상반기 채용을 실시하는 등 해빙기미도 일부 보이고 있다.
지난해 대규모 신규채용이 거의 없다시피 해 절망에 빠져 있던 금융권 취업희망자들에게는 따뜻한 소식이 될 법도 해보인다.


하지만 실제로 속을 뜯어보면, 조심스런 해빙기미가 일부 엿보이기는 하지만 아직 본격적으로 채용 붐이 일고 있다고 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인크루트 조사대상 65개 금융사 가운데서도 36개사만이 6월 이후 채용계획이 있다고 응답했다.
인크루트에 따르면 채용인원을 확정한 단계에까지 이른 금융사는 26개사에 그쳤다.
금융권은 지난해 증시폭락 여파, 은행권의 대형 인수합병, 보험업계의 구조조정 한파 등 여전히 구조조정의 태풍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모습이다.
신규 인력채용은 여전히 바닥권에서 고개를 조금 든 채 주변을 기웃거리는 정도인 셈이다.
증권, 불투명한 시황·사이버 거래가 악재 대표적 ‘시황산업’인 증권업계는 IMF 구제금융 사태 이후 주식시장 붐을 타고 금융권에서는 가장 공격적으로 신규인력을 채용했다.
대형사들의 경우 한해 최고 200~300명까지 공개 채용할 정도였다.
그러나 지난해 폭락했던 주식시장이 최근 상승추세로 전환될 조짐이 보이고 있는데도, 지난해 폭락과 구조조정의 악몽에서 아직 덜 깨어난 탓인지 신규채용을 망설이고 있는 모습이다.
실제로 5대 증권사(삼성, 현대, LG, 대신, 대우) 가운데 하반기 채용계획을 분명하게 밝힌 곳은 정규직 50명을 채용한다는 LG증권 한군데밖에 없다.
해마다 신규채용을 거르지 않았던 대신증권도 “뽑는다면 100명까지 가능하지만 시황에 따라 바뀔 수 있다”며 자신없어 하는 모습이다.
삼성, 현대, 대우 등 나머지 3개사는 신규인력 채용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반응을 보인다.
증권사들의 이런 태도를 보이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보다 불확실한 시장상황에 있다.
연초 이후 주식시장이 점진적인 오름세를 타고 있는 중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하반기 경기와 주가 전망은 분석가들마다 엇갈리는 상황이다.
구조조정이나 경기와 관련해 국내의 특별한 호재도 기대하기 어려워 보이는데다 미국 정보기술(IT) 시장의 침체로 수출길마저 어려워졌다.
주가가 힘있게 오를 것이라고 자신하기에는 한치 앞이 불투명한 상황이라는 것이다.
주식시장 활황 여부에 따라 수익이 극에서 극으로 오락가락하는 증권사들로서는 신규채용을 확정짓기가 상당히 어려울 수밖에 없다.
사실 몇몇 대형 증권사들은 98년 IMF 구제금융 이후 2000년 초까지 갑작스레 찾아온 주가폭등기에 지나치게 조직을 늘려놓아, 지난해 하반기께부터 오히려 인력감축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근본적으로는 사이버거래의 폭증이 결정적으로 타격을 줬다.
선두업체들의 경우 사이버거래 비중이 80%를 넘나들고 있다.
증권사의 대 소비자 전선은 전국 방방곡곡의 지점들과 영업직원들이 아니라 사이버트레이딩 시스템이 됐다.
남아도는 인원은 개인의 자산관리를 자문해주는 금융자산관리사(FP)나 점점 수요가 늘어나는 애널리스트 등 전문직으로 돌린다지만 이에는 한계가 있다.
신규채용이 부담이 되지 않을 리 없다.
문이 좁아지는 만큼 자격도 까다로워진다.
대신증권 오행근(37) 인사과장은 “1·2종 투자상담사, 금융자산관리사, 공인회계사 등의 자격증을 갖고 있는 사람은 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요즘은 예전과 달라서 상당수 지원자들이 이미 증권 관련 자격증을 갖고 있으며, 2~3개를 따둔 경우도 심심찮게 눈에 띈다는 게 그의 말이다.
전산이나 애널리스트 등 전문분야는 직종을 특정하지 않고 신규채용한 인력 가운데서 적당히 배치하게 된다.
전문분야가 급히 필요할 때는 경력직원을 공채하는 게 일반적이라 해당분야 학위 또는 자격증이 있거나, 채용과정에서 여간 강한 인상을 주지 않고는 신입직원이 원하는 분야로 바로 배치되기가 쉽지 않다는 게 인사담당자들의 얘기다.
은행, 인수·합병 회오리에 신규채용 소극적 은행권에서는 6월 들어 꽁꽁 얼어붙었던 신규채용 문이 조금씩 풀리는 모습이다.
몇몇 대형은행들이 영영 없을 것 같던 상반기 채용을 실시하기 시작했다는 소식이다.
한빛은행은 대졸사원 100명 안팎을 인턴사원으로 채용하기 위해 11일까지 원서접수를 받았다.
합병 뒤 2년 반 만에 처음으로 신규채용에 나선 것이다.
신한은행은 7~8일 이틀 동안 정규직 100명을 채용하기 위한 면접심사를 했고, 산업은행도 12일까지 신입사원 모집원서를 인터넷으로 접수했다.
그러나 하반기까지 시야를 넓혀놓고 보면, 여전히 얼음장은 거의 풀리지 않은 것 같다.
매각, 합병, 감자 등 구조조정 회오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한빛은행의 경우 “100명 채용은 한해 자연감소 인원 200~300명보다도 적은 인원”이라는 반응이다.
합병은행 출범 뒤 인원이 1만8천명에서 9900명으로 크게 줄어든 것을 감안하면 채용규모를 크게 늘려도 시원치 않을 판이지만 구조조정이라는 변수가 여전히 남아 있어 쉽게 인원을 늘리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5대 우량은행으로 꼽히는 주택, 국민, 신한, 한미, 하나은행 가운데서도 신한은행이 유일하게 다소 공격적인 신규채용을 하고 있다.
신한은행은 지난해 하반기 100명, 6월 중 올해 상반기 100명을 채용하는 데 이어, 올 하반기에도 100명을 추가로 신규채용할 방침이다.
그동안 인력을 최소화하며 수익성 위주의 경영을 하면서 우량은행으로 발돋움했는데, 이제는 덩치를 키워 다가오는 은행간 인수합병전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겠다는 야심을 품고 있는 것으로 업계에서는 풀이하고 있다.
비슷하게 덩치는 작지만 우량은행으로 분류돼온 하나은행도 오는 10월 50명을 채용할 계획이고, 한미은행도 숫자는 확정하지 못했지만 10~11월 공채를 실시할 예정이다.
그러나 주택·국민은행은 합병을 코앞에 두고 있어 채용계획을 세우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며, 매각협상 중인 서울은행, 현대 채무재조정 문제를 안고 있는 외환은행 등은 신규채용 계획이 없다.
신규채용 인력들 대부분은 소매영업 일선에 우선 배치될 것으로 보인다.
신한은행 인사부 이재영 차장은 “IMF 이후 이직과 퇴직은 많고 신규채용은 적은 현상이 이어지면서 창구실무 인력이 크게 부족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은행권 취업에도 역시 금융 관련 자격증은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인사담당자들은 말한다.
보험업계의 경우 합병 등 업계 구조조정이 가시화하고 있는 상황이라 우량기업과 비우량기업 사이에 차이가 크다.
삼성화재의 경우 올 봄 공채를 거른 대신 9~10월에 대졸 신입 135명을 뽑을 예정이고, 동부화재도 하반기에 100명을 채용할 계획이다.
프루덴셜도 30명, 삼성생명과 교보생명도 시기와 인원은 확정하지 못했지만 두자릿수 인원을 뽑는 데까지는 결정이 난 상태다.
보험사들은 생명보험과 손해보험을 가리지 않고 대부분 수시채용으로 돌아섰다.
특히 프루덴셜 등 외국계 보험사들을 필두로 전문 자산관리사 수준의 남성 대졸자들을 영업직원으로 채용하고 있다.
건설부문, 고용숨통
외환위기 이후 전무하다시피 했던 건설업체들의 신입사원 채용이 올 들어 소규모 채용을 시작으로 숨통을 트고 있다.
조사대상 25개 대형 건설업체 가운데 13개 업체가 연말까지 추가채용계획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부동산 시장이 오랜만에 꿈틀거리면서 주택건설 경기가 반등기미를 보이고 있는 게 큰 힘이 된 것으로 풀이된다.
업체별로는 삼성물산이 주택부문과 건설부문을 합쳐 50~60명의 신입사원을 모집할 예정이며 상반기에 채용실적이 없던 롯데건설은 30~40명의 대졸사원을 뽑기로 했다.
외환위기를 전후해 부실기업으로 낙인찍혀 거의 영업을 하지 못했던 기업들이 회생하면서 새로 신규채용을 시작하는 경우도 있다.
외환위기 이후 채용실적이 전무했던 대우건설은 본격적 영업에 돌입하면서 80~90명을 신규채용하기로 하면서 전반적 분위기 호전에 기여하고 있다.
95년 부도를 낸 뒤 한보에 인수됐다가 97년 한보 부도와 함께 다시 한번 좌초해 법정관리 상태에 들어섰던 유원건설도 비슷한 상황이다.
울트라건설은 지난해 12월 미국 건설업체에 인수돼 울트라건설로 회사 이름을 바꿔 재기의 길에 들어서면서 올해 30명의 신입사원을 채용할 계획을 세웠다.
한편 올 들어 신입사원을 채용했던 대림산업(50명 채용)과 LG건설(22명), 금호건설(15명), 고려개발(33명), 동부건설(13명), CJ개발(신입 20명, 경력 30명), 보성건설(9명) 등은 앞으로는 연말까지 채용계획이 없거나 미정인 것으로 조사됐다.
건설업계에서는 건설경기에 대한 전망이 여전히 엇갈리고 있어 아직 대규모 채용에까지는 이르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건설경기는 관련 기업들의 대규모 투자가 선행돼야 살아날 수 있는데, 전반적 경기가 안정적으로 회복되는 모습을 보여야 이런 대규모 투자가 가능해지고 대규모 고용이 뒤따르게 된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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