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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리더] 한국벤처캐피털협회장 김영준
[디지털리더] 한국벤처캐피털협회장 김영준
  • 박종생
  • 승인 2000.11.0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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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준
41년 출생
61년 부산고 졸업
66년 부산대 경영학과 졸업
70년 부산대 경영대학원 졸업
69년 금성사(현 LG전자) 입사
83년 LG전자 미국 현지판매법인 사장
88년 LG전자 전기 수출 담당 상무
89년 LG전자 전략기획 담당 전무
90년 LG전자 A/V사업본부장
95년 LG전자 CFO 부사장
96년∼현재 LG벤처투자 사장
98년∼현재 한국벤처캐피털협회 회장

“계곡이 있으면 산이 나오게 마련” >정현준 사건으로 벤처기업인들이 도덕적으로 비난을 받고 있습니다.
이런 분위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여러가지로 곤혹스럽습니다.
이런 상황이 올 걸로 예상은 했습니다.
벤처산업이 너무 급성장하면서 부작용이 나타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거든요. 시기적으로는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빠르게 오긴 했지만…. 저는 벤처기업인들이 정현준씨를 비난하기에 앞서 반성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봅니다.
벤처기업들이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하려면 R&D, 마케팅에 엄청난 투자를 해야 하는데도 돈이 조금 있으면 관련 다각화니 비관련 다각화니 하면서 방만한 투자를 해왔습니다.
벤처캐피털을 만드는 벤처가 있는가 하면, 자회사가 20개니 40개니 하는 벤처들도 있습니다.
>요즘 벤처캐피털들 경영이 어려운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코스닥시장이 장기 침체 국면에 들어가면서 투자회수가 힘들어지고, 투자펀드 조성도 잘 안되기 때문일 텐데요. 어느 정도로 상황이 좋지 않나요? 정확히 파악은 안되지만 상당히 많은 벤처캐피털들이 투자를 하지 못하고 있어요. 작년 4분기부터 올 1분기까지 자본금 100억원 규모의 벤처캐피털들이 많이 생겼는데 이들은 한창 벤처붐이 일 때 경쟁적으로 투자를 했습니다.
지금 투자를 안 하면 기회를 잃을 것처럼 생각했죠. 당시에는 2차, 3차 펀드가 결성될 것으로 보고 투자를 했는데 지금은 재원이 말라붙어 투자를 못합니다.
기존 벤처캐피털들도 투자회수가 안 되니까 재투자를 하지 못하는 실정입니다.
돈이 있는 벤처캐피털들도 지금 투자해서 언제 회수하냐는 생각으로 움츠리고 있죠. >조만간 벤처캐피털들 중에 망하는 회사들도 나올 거라는 얘기도 나돌던데요. 작년 7월에 60여개던 벤처캐피털이 지금은 149개에 달합니다.
협회장으로 할 말은 아니지만, 한 2, 3년 혹은 3, 4년 뒤에 벤처캐피털도 옥석이 가려질 겁니다.
80년대 초반 미국에 벤처캐피털이 800여개 있었는데, 87, 88년 불황기에 절반 가량이 줄어들었다고 합니다.
하나의 산업이 형성돼가는 과정으로 봐야 합니다.
>신생 벤처캐피털들은 그렇다치고, 자금여력이 있는 벤처캐피털들은 이런 때일수록 투자를 해야할 것으로 생각합니다만. 맞습니다.
저는 이럴 때가 오히려 호기라고 봅니다.
저는 IMF가 닥쳤을 때도 직원들을 다 모아놓고 기회가 왔다고 말했습니다.
당시 투자를 한 벤처들이 지금 효자노릇을 많이 합니다.
역사적으로 봐도 경기는 산이 있고 계곡이 있습니다.
지금은 계곡인데,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산봉우리가 반드시 나옵니다.
>벤처투자 시장은 언제쯤 살아날 것으로 보시나요? 두가지 시나리오를 갖고 있습니다.
첫번째는 정부가 구조조정을 잘할 경우입니다.
그러면 내년 하반기부터 증권시장이 본궤도에 오를 것이고, 경제 시스템이 선순환을 할 것입니다.
두번째는 구조조정을 잘못할 경우입니다.
그러면 경기가 곤두박질칠 것입니다.
저는 그래도 희망을 버리지 않습니다.
한국인들은 나락으로 떨어지면 꼭 끈질기게 기어오릅니다.
고통스런 기간을 1년반이나 2년 정도 거치면 경제가 회복될 것입니다.
2002년 하반기부터는 경기가 살아날 수 있는 것이지요. >벤처캐피털협회에서는 최근에 정부 정책에 대한 불만을 많이 표출했는데 바뀌는 게 좀 있습니까? 그게 어디 쉽게 바뀝니까. 우리가 주장했던 건 우선 벤처기업이 코스닥에 등록한 뒤 일정 기간 동안 지분을 팔지 못하게 하는 LOCK UP 시스템을 벤처캐피털에만 적용하고 있다는 겁니다.
미국도 업계 자율로 LOCK UP을 거는데 기관투자가들 모두를 대상으로 합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은행 투신 증권 등 기관들도 투자를 많이 하는데 벤처캐피털에만 이를 적용하니까 효과가 없는 겁니다.
게다가 벤처캐피털 임직원들이 투자를 못하도록 하는 규정도 문제입니다.
몇몇 사람이 비도덕적으로 해서 문제가 되니까 전부 하지 말라고 한 것이죠. 미국에서는 사실 벤처캐피털리스트들이 투자를 하도록 요구하고 있습니다.
벤처캐피털리스트들도 돈을 대야 열심히 도와줄 거라는 논리죠. 원칙을 중시하는 벤처투자 LG벤처투자 사장인 ‘김영준’에 대한 질문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는 짧은 기간에 이 회사를 국내 주요 벤처캐피털 자리에 올려놓았다.
LG벤처투자는 올해 투자규모가 550억원에 이른다.
투자규모로만 보면 국내에서 5위 안에 든다.
지난해에는 투자규모가 330억원이었는데 벤처투자 시장이 위축된 올해에 오히려 투자규모가 늘었다.
이런 것만 봐도 그의 투자원칙을 짐작할 수 있다.
불황일 때 투자하고 호황일 때 거둬들이라는 벤처캐피털의 불문율을 실행하는 것이다.
그는 어떤 원칙들을 갖고 있을까. >LG벤처투자는 지금도 투자를 열심히 하고 계시는데, 자금관리를 잘하시는 것 같습니다.
저는 회사를 설립하면서 자금운용을 3분법으로 했습니다.
3분의 1은 5년 이후에 투자회수할 기업에, 또 3분의 1은 2, 3년 뒤 투자회수할 기업에 투자합니다.
나머지는 월급이나 여러가지 비용을 감안해 은행예금으로 넣어뒀습니다.
지금은 은행에 넣어둔 돈은 없습니다.
회수한 자금으로 비용을 충당할 수 있었기 때문이죠. 올해도 600억원 정도 회수가 됐는데, 저는 이 범위 안에서는 다시 투자합니다.
비용(연 40억원 정도)은 빼놓고요. 요즘엔 5, 6년 뒤에 회수할 곳에 50, 60%, 2, 3년 내에 회수할 곳에 30% 정도 투자합니다.
나머지는 1년 내에 회수할 곳에 투자합니다.
>LG벤처투자는 미국식의 합리적 투자방식을 많이 도입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LG벤처투자의 강점이 있다면. 우리는 거의 미국 방식을 가져왔습니다.
다만 실정에 맞지 않는 것은 한국식으로 바꿨죠. 무엇보다 의사결정 단계를 줄였습니다.
책임과 파트너 둘뿐이죠. 저도 4명의 파트너 가운데 한명일 뿐입니다.
투자도 사장의 전횡을 막기 위해 투자심의위원회(5명)를 통해서 합니다.
만장일치제죠. 사장이 하고 싶어도 어느 한사람이 반대하면 못합니다.
미국 벤처캐피털이 대개 만장일치제입니다.
>만장일치제라도 대개 사장 의견에 따라가는 분위기가 형성되지 않습니까. 그래서 투자를 최종결정할 때 제일 마지막에 의견을 냅니다.
그렇더라도 사장 의도를 짐작하고 자신의 의견을 굽히고 들어올 수 있습니다.
저는 그래서 소신껏 자기 의견을 이야기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고 있습니다.
사장이 인사관리에 거의 권한이 없습니다.
실적 위주로 하죠. 사장이 간여할 수 있는 소지를 아예 없애버린 거죠. 대기업 경험을 벤처기업에 전수한다 그는 자신의 이력을 얘기할 때 고향(경남 남해)에서 중학교에 들어가지 못할 뻔했던 이야기를 빼놓지 않는다.
그는 학교에 가지 말고 농사를 지으라는 부모님 말씀을 어기고 몰래 쌀 두말을 훔쳐서 판 돈으로 시험을 치르러 갔다.
시험을 치른 뒤에도 학교에서 합격 여부를 알려주지 않아 등록마감일에서야 40리나 떨어진 중학교에 직접 가서 확인했다.
돈이 없어 난감한 처지에 빠졌는데, 마침 장에 송아지를 팔러나온 이웃집 아저씨가 돈을 빌려줘 등록을 했다고 한다.
그때 그 아저씨를 만나지 못했으면 아마 지금쯤 농사를 짓고 있었을 거라며 웃는다.
자기는 운이 좋은 사람이란다.
금성사에 입사한 뒤 기획, 공장예산, 감사 업무를 담당하다 80년대 초 미국 현지판매법인 사장으로 발령받을 때도 그랬다.
당시 본부장이 6명이었는데 부장이었던 그가 전격적으로 임명을 받았다.
틈틈이 공부한 영어실력 덕이 컸다.
다른 본부장들은 영어로 의사소통이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그뒤 전략기획본부장, 재경담당 부사장으로 승승장구했다.
96년 그룹에서 벤처캐피털을 만들기로 결정을 한 뒤 그에게 중임을 맡겼다.
>벤처캐피털을 해보라는 지시를 받고 당황스러웠을 것 같은데, 초창기에 어떻게 일을 배웠나요? 처음에는 벤처캐피털이 뭔지 몰라서 국내에 있는 벤처캐피털들을 벤치마킹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할 만한 곳이 딱히 없더군요. 그래서 일본, 실리콘밸리, 뉴욕, 보스턴, 홍콩 등을 돌아다녔습니다.
일본 벤처캐피털 사장은 한 20명 정도 만났을 거예요. 실리콘밸리의 벤처캐피털리스트들도 많이 만났습니다.
다행히 미국에서도 장사를 해서 사람들과 커뮤니케이션이 됐습니다.
이것저것 많이 가르쳐주더군요. >현재 LG벤처투자에서는 주로 어떤 역할을 하십니까. 직접 벤처기업 발굴도 하시나요? 저도 투자심의위원회 멤버로 투자심사를 합니다.
또 벤처 발굴도 하지요. 벤처캐피털은 네트워킹으로 사업을 합니다.
우리나라는 자본가들이 벤처캐피털 속성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사장을 자꾸 바꿉니다.
제가 4년반 정도 되니까 개인적인 네트워킹이 생기더군요. 올해 상반기에 투자한 기업의 3분의 1 정도는 저한테 개인적으로 투자의뢰가 온 기업들입니다.
벤처캐피털은 투자를 한 뒤 풍부한 경험을 살려 이 회사를 키워줘야 합니다.
미국의 대표적 벤처캐피털인 클라이너퍼킨스를 방문해 보니 파트너가 13명이었는데, 이들 파트너들의 CEO 경험이 모두 합쳐서 130년이라고 말하더군요. 이것은 이들이 마케팅, 인사, 자금관리, 기술, 조직관리 등 다양한 경험을 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그러니까 제대로 벤처기업을 키울 수가 있는 겁니다.
저는 LG에서 30여년 근무하면서 다양한 경험을 갖고 있습니다.
젊은 사람들이 제대로 볼 수 없는 것을 볼 수가 있지요. >골드뱅크가 투자제의를 해온 것을 거절했다는 얘기도 있던데 맞습니까. 골드뱅크 김진호 사장이 저를 찾아와서 투자해달라고 했습니다.
저는 이런저런 고민끝에 투자를 하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아마 당시 투자를했으면 100, 200억원 정도 벌었을 겁니다.
저는 그때 투자를 하지 않은 게 잘한 것인지 잘못한 건지 헷갈렸습니다.
일단 굴러온 복을 걷어찬 격이니까요. 그런데 한 후배가 투자를 안한 것이 잘했다고 하더군요. 투자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LG벤처투자 이미지가 좋아졌다구요. >투자한 기업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어디입니까. 안철수연구소를 꼽을 수 있습니다.
은행에서는 산업은행, 벤처캐피털에서는 우리만 했죠. 97년에 8개 벤처캐피털이 서로 투자하려고 달려들었는데, 제가 안철수 사장과 점심 먹으면서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LG가 들어가도 좋고 안 들어가도 좋으니까 2개 이상은 투자를 받지 마라. 여기저기서 받아놓으면 나중에 회사 키우는 데 장애요인이 되기 때문이죠. 두번째는 당신이 회사를 키우는 데 누가 가장 도움을 많이 줄 수 있느냐를 생각해라. 여기에 집중해서 의사결정을 하라고 했죠. 저는 지금 안철수연구소 이사회 멤버로서 여러가지 조언을 해주고 있습니다.
퓨처시스템과 벤트리도 기억에 남습니다.
개인적으로 어떤 계획을 갖고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은퇴할 날이 머지 않았다고 했다.
은퇴하면 벤처캐피털을 차릴 생각은 없느냐고 물었다.
그는 “지난 4년반이 너무 끔찍했다”고 고백했다.
벤처캐피털리스트가 겉으론 화려해 보여도 엄청난 스트레스 속에 사는 직업이라는 것이다.
자유롭게 살고 싶은 게 지금 심정이라고 했다.
다만 시간에 묶이지 않고 돈을 받지 않는 조건으로 자신의 노하우를 살려 주변 사람들을 도와줄 수는 있다고 했다.
30여년 동안 쌓인 비즈니스 경험을 썩히긴 아깝기 때문일 것이다.
격동의 한국 경제성장기를 온몸으로 살아온 ‘비즈니스맨 김영준’의 노년은 그렇게 살아온 자체만으로 자랑스러워 보였다.
30년 산경험으로 한국식 네트워킹 창조
김영준 회장은 사귐성이 좋다.
만나는 사람을 편하게 해주는 특별한 뭔가가 있다.
얘기를 풀어나가는 솜씨도 그만이다.
이런 사귐성이 지금의 그를 있게 했는지도 모른다.
LG전자에서 미국 현지판매법인 사장으로 갈 때도 어학 실력과 함께 이런 점을 높이 평가받았다고 한다.
LG벤처투자에 와서도 이런 사귐성은 미국의 대표적인 벤처캐피털리스트들과 친분을 두텁게 쌓는 데 도움이 됐다.
한번 만난 뒤에는 꼭 ‘고맙다’ ‘많이 배웠다’고 인사하고, 나중에 ‘한번 만나자’ ‘이것 좀 가르쳐달라’면서 연을 이어간다고 한다.
그는 요즘도 모르는 게 있으면 미국으로 달려간다.
1년에 4, 5번은 실리콘밸리에 간다.
한국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는데 당신이라면 어떻게 할 거냐고 묻는다.
그러면 그들은 나름대로 해답을 준다고 한다.
물론 미국식을 곧이 곧대로 적용하지는 않는다.
김 회장은 30여년의 비즈니스 경험을 통해 미국식을 한국에 맞게 적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고 자신한다.
네트워킹이 중요한 벤처캐피털 세계에 그가 잘 적응한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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