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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귀하게 커온 BT, 황량한 벌판으로
[영국] 귀하게 커온 BT, 황량한 벌판으로
  • 김정원 통신원
  • 승인 2000.11.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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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P용 전화선 사용료 정액제로 변경 ‘수익 급감’…회사 분할 등 극약처방 검토 영국 야당인 보수당의 그림자 내각(섀도 캐비닛)에서 경제 부총리를 맡고 있는 마이클 포틸로는 최근 “영국 정보통신 인프라의 비효율성으로 영국의 e비즈니스가 다른 유럽연합 국가에 비해 갈수록 뒤처지고 있다”면서 “더 늦기 전에 정치인들이 나서 필요한 조처를 취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의 요구는 새삼스럽지는 않았지만 상당한 주목을 받았다.
영국 인터넷 서비스 제공업체(ISP)들 사이에 형성되고 있는 반-브리티시텔레콤(BT) 기류가 폭풍으로 발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BT의 경쟁업체인 알타비스타와 버진넷을 비롯한 주요 ISP들은 올 들어 무제한 접속 서비스와 ADSL 서비스 제공 계획을 완전히 포기했거나 무기한 연기했다.
이들은 그에 대한 책임을 BT와 영국 정부의 통신사업 감사기구인 정보통신국(OFTEL)에게 떠넘기고 있다.
영국의 전화회선과 교환기를 독점하는 BT의 이용료 정책이 화근이었다.
전화교환기 대여사업이 전체 수익의 50% BT는 OFTEL의 명령에 따라 이들의 전화선과 교환기 이용료를 다른 ISP들로부터 받고 있다.
처음에는 전화선 이용시간과는 상관없는 정액제로 운영하기로 했다.
그러나 BT는 지역교환기와 이를 연결하는 전화선에만 이 요금제도를 적용하고, 지역교환기와 각 가정의 전화를 연결하는 전화선에는 이용시간에 비례하는 이용료를 부과했다.
OFTEL의 감독을 믿고 ADSL 서비스와 무제한 접속 서비스를 추진하던 다른 ISP들은 예상치 못한 BT의 전략에 뒤통수를 맞은 셈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덤터기를 쓰게 된 쪽은 BT가 책정하는 ‘결코 싸지 않은’ 서비스 이용료를 지불해야 하는 영국 네티즌들이다.
유럽 의회는 소비자 피해를 막기 위해 재빠르게 BT 전략을 ‘독점 행위’로 간주하고, 10월 초 이를 규제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 법안에 따르면 기술적인 어려움이 따르지 않는 한 BT는 2001년 1월부터 지역교환기와 각 가정의 전화를 연결하는 전화선 이용료를 정액제로 받아야 한다.
그래도 ISP들은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다.
이들은 BT가 안하무인 격으로 정액제를 늦출 경우 새로 제정된 법안을 바탕으로 즉각적인 제소에 나설 작정이다.
영국의 정치권도 새로운 법안을 환영하면서 BT의 실천 여부를 지도할 OFTEL의 각성을 촉구하고 나섰다.
이에 대답이라도 하듯 OFTEL은 BT의 모든 도소매 전화선 이용료를 점검하고, 일반 전화 사용자에게 부과하는 전화 이용료 역시 불필요하게 많이 부가됐음을 지적하면서 전화요금 인하를 명령했다.
그동안 전화교환기 독점사업으로 엄청난 수익을 올린 BT는 이번 법안으로 회사 존립이 흔들릴 수 있는 위기에 빠졌다.
BT의 전체 수익 중 50%가 전화교환기 이용료 수익으로 채워진 만큼 이 수익을 포기할 경우 BT 주가는 40% 이상 하락하게 될 것으로 경제전문가들은 분석한다.
BT는 이 때문에 몇개의 독립된 회사로 조직을 분리하는 최악의 상황까지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전화교환기 무료 공급으로 경쟁할 경우 이미 몸집이 커져버린 BT로서는 도저히 승산이 없다는 판단이 지배적이다.
이는 BT 최고경영진들도 암암리에 인정하는 것이다.
세계 최대 규모의 전화통신 사업자로 귀하게만 자라온 BT가 이제 살벌한 전쟁터로 내몰리고 있다.
앉아서 해온 장사를 포기하고 영악한 경쟁자들과 끊임없는 혈전을 치러야 한다.
머리 위를 덮고 있던 보호막도 엷어지고 있다.
요즘 영국 네티즌들은 BT의 운명을 게임처럼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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