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이누카는 회사 사정으로 인해 2001년 4월1일부로 서비스를 중단합니다.
그동안 서비스를 이용해주신 여러분께 깊이 사과드리며 많은 양해 부탁드립니다.
” e삼성을 비롯한 삼성그룹이 투자한 이누카 www.inuca.co.kr는 최근 이런 안내문을 사이트에 띄우며 서비스 중단을 공식 발표했다.
지난해 4월 삼성그룹 구조조정본부 안에 이누카 태스크포스팀이 발족된 이후 꼭 1년 만의 일이다.
개인 메시징관리 및 고객관리(CRM)를 전문으로 하는 이누카는 이건희 회장의 장남 재용(33)씨가 주도한 e삼성 관계사 15개 중의 하나로 e삼성의 첫 실패사례로 기록됐다.
이누카에는 100억원의 자금이 투자됐는데, 지난 2월까지 11억원 가량의 자금을 소진한 상태였다.
벤처 붐이 시들고 타깃으로 삼았던 시장이 성숙되지 않아 사업이 여의치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이누카의 이번 청산 결정은 너무 성급한 게 아니냐는 시각이 대두되고 있다.
이누카 쪽은 “이제 사업을 시작한 단계이며 시장이 성숙되면 성장 가능성이 높다”며 사업을 계속할 것을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애초 3년 정도는 적자를 감수하면서 사업을 추진하기로 해놓고 일방적으로 그런 결정을 내릴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요구는 삼성그룹 상층부에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삼성그룹 쪽은 2월27일 이누카 쪽에 사업을 정리하겠다고 최후통고를 했다.
이누카 청산은 e삼성 구조조정의 서곡 이누카의 사업을 정리하는 과정도 개운하지 않다.
삼성그룹 쪽은 최후통고 바로 다음날인 2월28일까지 퇴직하는 직원들에 대해서만 직원들이 투자한 주식을 매입해주고 그렇지 않으면 보상해주지 않겠다고 했다고 한다.
대부분 2천만~1억원 가까이 투자를 했던 직원들은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서라도 대부분 사표를 제출했다.
또 삼성과 공동으로 이누카 설립에 참여한 블루버드소프트(지분 31%)도 삼성으로부터 거의 일방적으로 회사 청산을 통보받았다고 한다.
삼성의 요즘 움직임을 보면 이누카만 그 대상이 아닌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해외부문 지주회사인 e삼성인터내셔널 산하의 e삼성아시아, e삼성저팬, e삼성차이나를 e삼성아시아로 통합하기로 했고, 국내의 e삼성 관계사들도 대부분 구조조정 대상에 올라 있다.
삼성 구조조정본부는 이와 관련한 <닷21>의 질문에 “e삼성 관련사 중 수익이 될 만한 사업은 계속 가져가고 그렇지 않은 사업은 통폐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구조본 쪽은 “몇개 회사가 남을지는 아직 검토단계에 있다”고 덧붙였다.
e삼성에 관여한 삼성의 한 관계자는 “1월에 그룹 최고의사결정기구인 구조조정위원회에서 e삼성을 구조조정하기로 결정한 것으로 안다”며 “사업성이 있다고 판단되는 몇개 회사는 계속 가져가겠지만 그렇지 않은 기업은 6월 말까지 정리할 계획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지난해 화려하게 막을 올렸던 e삼성이 여지없이 추락하고 있는 것이다.
황급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이렇게 서둘러 e삼성을 정리하는 데는 몇가지 배경이 있다는 게 삼성 안팎의 분석이다.
우선 지난해 하반기 이후 침체하기 시작한 벤처산업이 앞으로도 상당 기간 회복하기 힘든 상황에서 e삼성이 이를 돌파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e삼성은 요즘 위기의식을 느낄 정도로 사업 추진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대부분의 e삼성 관계사들이 현재까지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투자유치도 실패해 자금압박을 받는 곳도 등장했다고 한다.
삼성의 한 관계자는 “소프트뱅크 같은 곳에서도 삼성전자에 관심이 있었지, e삼성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e삼성은 재용씨의 경영권 승계 발판 또 하나의 배경은 재용씨와 관련돼 있다.
재용씨가 e삼성을 경영권 승계의 발판으로 삼으려 했는데, e삼성의 사업이 여의치 않자 이것이 오히려 경영권 승계의 발목을 잡을 것으로 우려했다는 것이다.
한 관계자는 “e삼성이 실패하면 재용씨의 명예에 손상이 갈 것이 뻔하지 않느냐”며 “완전히 실패하기 전에 손을 떼고 싶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삼성 안팎에서는 e삼성을 재용씨의 경영권 승계 수순의 첫단계로 봐왔다.
지주회사격인 e삼성의 기업가치를 높여 경영능력을 인정받은 뒤 삼성에 화려하게 데뷰한다는 의도가 있었다는 것이다.
“지금은 현실성없는 얘기처럼 들리겠지만 처음에는 미국의 아마존처럼 기업가치를 높여보겠다는 꿈을 갖고 있었다.
99년 주식시장에서 인터넷 기업의 시가총액이 우량 전통기업의 시가총액을 추월한 것에서 보듯이 삼성에서도 그것이 가능할 것으로 봤다.
삼성 밖에서 큰 지주회사(e삼성)를 만들어 기업가치를 키운 뒤 오프라인 삼성에 보란 듯이 들어간다는 전략이었다.
” e삼성에 관여한 한 관계자의 말이다.
또다른 관여자는 “모든 것이 재용씨를 위해 움직였다”고 전했다.
재용씨의 e삼성 참여는 경영수업 측면도 있었다.
이건희 회장은 지난해 7월 <월간 조선>과의 인터뷰에서 “재용이가 기업경영에 흥미를 갖고 있고 자질도 있는 것 같지만 지금 당장 경영에 참여하는 것은 아직 이르지 않나 생각한다”며 “다만 젊은 사람으로서 인터넷 사업이나 디지털 경영 쪽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 것 같아 이런 새로운 사업분야에서 가급적 많은 경험을 쌓아보도록 권유하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인터뷰 내용을 뜯어보면 e삼성이 경영수업의 한 과정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재용씨는 이번 삼성전자 상무보 임명을 통해 본격적인 경영수업에 들어갔지만 실제로는 이미 지난해부터 경영수업을 받았다는 얘기다.
e삼성의 현재 모습을 볼 때 재용씨의 경영수업 1단계는 일단 성공적이지 못한 것으로 평가된다.
물론 불과 1년밖에 안 된 사업을 놓고 성패를 논하는 것은 너무 성급한 판단일 수 있다.
그리고 그 원인을 재용씨나 e삼성 경영진에게 전적으로 묻기도 어렵다.
시장 환경이 급격히 악화된 게 큰 요인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e삼성이 다른 인터넷 기업과 비교해볼 때 상당히 부진한 실적을 보인 것도 사실이다.
게다가 사업전략도 치밀하지 못했다는 게 업계의 일반적인 얘기다.
재용씨는 e삼성의 경영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삼성 구조본 쪽도 “재용씨가 대주주로만 활동했지 실제 경영은 e삼성의 전문경영인들이 했다”고 밝히고 있다.
e삼성 경영진들도 “재용씨가 경영에 주도적으로 나서지 않았다”고 증언한다.
그러나 재용씨는 지난해 상반기에 국내에 머물면서 e삼성의 사업모델과 기본전략을 세우는 데 적극적으로 개입했다는 게 관계자들의 얘기다.
그렇다면 사업전략이 제대로 짜여지지 않았다는 것은 재용씨와 관련이 깊다.
무리한 독자노선이 실패의 원인 지난해 상반기 작성된 삼성의 내부보고서를 보면 e삼성의 사업전략은 “기존 삼성 계열사가 행하는 사업영역과는 무관한 신규 벤처에 대한 육성과 전략적인 해외진출을 추진하는 것”으로 정해져 있다.
결과만 놓고 보면 기존 삼성 계열사와 무관하게 사업을 추진했던 것이 e삼성의 패착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인터넷 사업은 지난해 상반기까지만 해도 온라인만으로도 사업성이 있는 것으로 인식됐으나, 실제로는 선두 닷컴을 제외하고는 강력한 오프라인 기반이 뒷받침 돼야 성공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e삼성 관계자들은 이미 지난해부터 “벤처처럼 발가벗고 싸워야 했다”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또 재용씨가 주도적으로 나서지 않는 상황에서 이사급 대리인이 말을 해봤자 기존 계열사에 먹혀들지 않았다고 한다.
지난해 8월부터 시작된 공정위의 부당내부거래 조사는 여기에 결정적인 타격을 가한 것으로 분석된다.
삼성 계열사들의 e삼성에 대한 조직적인 지원이 가로막힌 것이다.
해외진출에서도 e삼성의 이런 독자노선 때문에 투자유치에 어려움을 겪었다.
삼성의 한 관계자는 “해외 투자선들은 괜찮은 사업이면 삼성이 하지 왜 남의 돈을 끌어들이려고 하느냐는 반응이었다”며 “여기에 대한 대응논리가 부족했다”고 털어놨다.
e삼성의 사업전략이 너무 안이했다는 얘기다.
e삼성의 독자노선은 SK그룹 최태원 회장이 기존 계열사 중심으로 인터넷 사업을 한 것과 대조된다.
성공작으로 평가받는 SK그룹의 오케이캐쉬백 사업의 경우 (주)SK에서 주도했고, 무선인터넷 사업도 SK텔레콤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SK는 기존 오프라인 기반을 활용해 온라인 사업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물론 최 회장은 SK의 경영권을 거의 장악하고 있는 반면, 재용씨는 아직 경영수업 단계에 있다는 차이점이 있다.
이런 차이가 사업전략을 짜는 데에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삼성은 이번에 재용씨를 삼성전자 상무보로 전격 임명하면서 ‘e삼성과의 단절’을 시도하고 있다.
이는 어쩌면 당연한 수순인지 모른다.
자칫 잘못하다간 e삼성의 나쁜 결과가 재용씨의 발목을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삼성 구조본은 “재용씨는 앞으로 e삼성에 관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삼성전자에서 맡은 일만 하기도 바쁜데 벤처까지 신경쓸 여유가 없다는 것이다.
삼성은 재용씨가 지난해 e삼성에 관여한 것도 인터넷 붐을 타고 삼성의 우수 인력들이 이탈하려 하자 이를 막기 위한 차원이었다고 해명하고 있다.
재용씨가 하버드대에서 e비즈니스를 전공하고 있다는 얘기도 잘못 알려졌다고 한다.
그의 전공은 인터넷이 아니라 컴퓨터 쪽이라는 것이다.
그가 제출한 박사학위 논문도 ‘컴퓨터산업의 전후방 연관효과’라는 게 삼성의 얘기다.
그는 국내 전자산업의 대미 의존도가 높을 뿐만 아니라 삼성전자의 사업구조가 반도체, LCD 등 컴퓨터 관련 분야에 쏠린 점을 감안해 컴퓨터 산업을 주 연구분야로 선정했다고 한다.
그러면 지난해에는 왜 이렇게 말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는 당시에는 인터넷 붐이 한창 일었고 굳이 인터넷 전문가로 알려지는 것이 나쁘지 않아서 놔뒀다고 해명했다.
재용씨는 “솔직하게 말하면 나중에 언론이 알아줄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렇지만 그가 e삼성과 완전히 단절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많다.
일단 그는 400여억원을 e삼성에 투자해 대주주의 자리에 있다.
삼성그룹 차원에서도 1천~2천억원을 쏟아부었다.
e삼성이 완전 실패작이 된다면 그 책임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거꾸로 구조조정을 통해 e삼성이 변신에 성공한다면 그것은 재용씨 공으로 돌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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