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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과실패] 프리마켓
[성공과실패] 프리마켓
  • 신동호(한겨레기자)
  • 승인 2000.06.2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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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B 온라인 경매 세계시장 선점
부품, 산업기계, 화학약품 등 70개 품목 거래...구매비용 절감 고객만족 실현
피츠버그 하면 제철소가 있는 공업 도시를 연상하게 되지만 실제 모습은 딴판이다.
언덕 사이로 맑은 강물이 굽이치고, 숲과 맞닿은 강가의 풍광은 수려하기만 하다.
아름다운 이 도시 한복판의 ‘프리마켓’www.freemarkets.com 건물에서는 요즘 매일 수백만달러어치의 사이버 경매가 이뤄진다.


50개국 4천여 기업이 공급자로 참여
건물의 컨트롤 룸에 들어서면 시시각각으로 바뀌는 입찰가격이 커다란 비디오 스크린 위에 나타난다.
얼핏 증권사 객장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엄청난 돈이 오가는 현장치고는 아늑하기조차 하다.
이 방에는 경매 과정에서 자문과 통역을 맡은 직원들이 몇사람 있을 뿐, 구매자와 판매자들은 각각 자기 회사의 컴퓨터 앞에서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오늘은 한 자동차 회사가 플라스틱 부품을 경매로 구입했다.
지난해 이 자동차 회사는 74만5천달러어치의 부품을 직접 사들였지만, 올해부터는 구매 비용을 줄이기 위해 경매에 나선 것이다.
입찰에 참가한 회사는 25개. 이들이 경쟁회사보다 낮은 가격을 써낼 때마다 방에서는 “핑”하는 소리가 들리고, 스크린 위에는 검은색 다이아몬드가 나타났다.
경매 제한 시간은 20분. 첫 10분 만에 가격은 61만2천달러로 떨어졌다.
한동안 적막이 감돌았다.
검은 다이아몬드도 더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갑자기 “핑”하는 소리가 팽팽한 긴장을 깼다.
마감시간 30초를 남겨놓고 다시 검은 다이아몬드가 떠올랐다.
막판에 한 회사가 58만5천달러를 써낸 것이다.
마감시간 1분 전에 입찰이 들어오는 경우에는 규정에 따라 마감시간이 1분 늘어난다.
이제 경매는 절정을 치닫는다.
“핑” “핑” “핑” 전자음이 숨쉴 틈 없이 터지면서 13차례나 연장전을 치르고서야 낙찰가가 정해졌다.
51만8천달러. 자동차 회사는 지난해보다 구매비용을 31%나 절감한 셈이다.
프리마켓의 나이는 인터넷 브라우저 넷스케이프와 비슷하다.
5년 전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터넷이란 이름조차 모르고 있을 때 B2B 온라인 경매를 시작했다.
선점의 열매는 달았다.
지난해 프리마켓에서는 27억달러어치의 경매가 이뤄졌다.
구매자들은 평균 15%의 비용을 절감했다.
프리마켓에는 74개의 기업과 정부기관이 구매자로, 50개국 4천개가 넘는 기업들이 공급자로 참여한다.
경매품목도 사출 성형 플라스틱 부품, 산업기계 부품, 화학약품, 인쇄회로기판, 골판지, 석탄, 운송 서비스 등 70개를 넘는다.
'비드웨어’통해 주문사양 경매도 척척 지난해 펜실베이니아 주정부는 라이센스 플레이트와 난방용 석탄을 프리마켓을 통해 사들여 구매비용을 10% 줄였다.
뉴욕주, 텍사스주, 연방기관들도 프리마켓을 통한 물품 구매를 검토중이다.
프리마켓 글렌 미켐(36) 사장은 “2000년 1분기에만 우리는 14억달러어치의 구매를 성사시켰고, 고객들로 하여금 3억달러를 절감하게 했다”며 “우리는 고객에게 가치를 만들어줌으로써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고 있다”고 말했다.
보통 경매에서는 비싼 값을 적어낸 사람이 물건을 차지하게 된다.
하지만 프리마켓에서는 정반대다.
가장 낮은 가격을 써낸 업체가 물건이나 서비스 납품자격을 따낸다.
이를 ‘구매자의 경매’ 또는 ‘역경매’라고 한다.
물론 곡류나 석유, 카본스틸, 플라스틱 레진처럼 교환가능한 기초품목에 대한 경매는 인터넷 등장 이전에도 존재했다.
하지만 이는 ‘공급자의 경매’였다.
프리마켓말고도 현재 이스틸, 메탈사이트, 플래스틱스넷 같은 경매회사들이 철강, 화학제품, 플라스틱 등을 거래하는 글로벌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메탈사이트에서는 철강회사들이 2~3일 동안 경매를 해서 가장 높은 가격을 제시한 업체에 물건을 넘긴다.
모터나 기어, 회로기판 같은 주문품목들은 이런 경매가 가능할까? 이들 물품은 제조업체들마다 요구하는 사양이 다르고 복잡한 과정을 통해 구매결정이 내려지기 때문에 경매가 불가능하다고 생각돼왔다.
하지만 프리마켓이 자랑하는 소프트웨어인 ‘비드웨어’는 이런 복잡한 과정을 간단히 할 수 있게 도와준다.
프리마켓은 경매 과정에서 구매자들과 함께 일을 하면서 끊임없이 이 소프트웨어에 다양한 기능을 추가했다.
예컨대 이 소프트웨어는 품질과 기술적 요소가 가격만큼이나 중요할 경우 다중변수 경매를, 여러 나라 회사가 입찰에 참여할 경우에는 다중통화 경매를 할 수 있게 해준다.
비드웨어는 구매자가 업종 등에 따라 29종류의 다양한 양식으로 입찰을 받을 수 있게 해주므로 아무리 까다로운 경매도 처리할 수 있다.
프리마켓은 자신의 법률 서비스를 경매에 부쳐서 로펌을 선정하기도 했다.
비드웨어는 입찰 참여자들이 사용하기 쉽도록 그래픽 인터페이스를 갖고 있다.
이런 소프트웨어를 만들기 위해 프리마켓은 구매자의 견적요구서(RFQ)를 표준화했다.
또한 지금까지는 봉인해서 볼 수 없었던 경쟁자들의 입찰서류를 웹을 통해 서로 훤히 볼 수 있게 했다.
하지만 프리마켓이 소프트웨어로만 가동하는 것은 아니다.
경매는 대개 20~30분이면 끝나지만 경매를 준비하는 과정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프리마켓은 다양한 전문가 집단의 도움을 받아 공급업체들을 선정하고, 이를 데이터베이스로 만들어 구매업체들에게 제공한다.
프리마켓 직원들은 구매자들과 함께 견적요구서를 작성하면서 일종의 구매 컨설턴트 역할까지 한다.
직원 가운데는 30개국 이상의 말을 구사하는 전문가도 있다고 한다.
수수료와 연회비가 주수입원 프리마켓을 세운 글렌 미켐은 모험을 좋아하는 타고난 장사꾼이다.
지난 90년 걸프전이 터지자 하버드 비즈니스스쿨에서 MBA와 ROTC를 하고 있던 그는 전쟁에 자원해 길을 닦고 막사를 짓는 공사를 했다.
그러면서 피엑스를 운영해 7천달러를 벌었다.
94년 제너럴 일렉트릭 구매부서에 들어간 그는 경매를 할 때 수십개의 납품업체들이 모여 북적대는 것을 보고 이를 온라인화하는 생각을 갖게 된다.
그는 이런 생각을 구체화시켜 경영진에게 설명했다.
하지만 관심을 보이지 않자 입사 두달 만에 연봉 13만5천달러의 안정된 직장을 버렸다.
컨설팅 회사인 맥킨지에서 일했던 샘 키니와 함께 사업계획서를 만든 그는 친구와 가족 등으로부터 50만달러를 모아 회사를 차렸다.
보스턴의 새턴애셋 매니지먼트를 찾아가 80명의 투자자들로부터 350만달러라는 거액을 자금으로 확보했다.
사업 첫해인 96년 프리마켓은 2500만달러어치의 경매를 성사시켜 50만달러의 매출을 올렸다.
사업 확장의 결정적 계기는 유나이티드테크놀로지가 구매자로 참여한 것이었다.
이 회사는 140억달러의 구매비용 가운데 6억달러를 줄이기로 하고, 프리마켓에 이 일을 맡겼다.
미국과 유럽의 8개 회사로부터 인쇄회로기판을 구입해온 유나이티드테크놀로지는 98년에도 7400만달러를 지출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프리마켓이 아시아 등지의 29개 기업을 경매에 참여시켜 비용을 4200만달러로 43%나 낮췄다.
온라인 경매의 위력이 나타난 것이다.
이어 제너럴 모터스, 레이더온, 캐터필러, 시너지, 톰슨 등 큰 회사들이 줄줄이 구매자로 참여했다.
프리마켓의 수입원은 경매에 참여하는 기업들이 내는 연회비와 거래액수의 1.5%를 떼는 수수료이다.
지난 1분기 840만달러의 적자를 내는 등 아직 흑자경영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분기마다 매출액이 25~50%씩 증가하고 있다.
주식공개도 큰 성공을 거둬 주가가 370달러까지 치솟기도 했다.
대기업과의 경쟁에서 이길 것인가 프리마켓은 요즘 예전같지 못하다.
올 봄 닷컴 주가 폭락이라는 곤경을 겪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큰 고객이던 제너럴 모터스가 포드, 다임러크라이슬러와 함께 독자적인 B2B 거래망을 만들겠다며 프리마켓을 떠났다.
6월 현재 프리마켓의 주가는 43달러까지 떨어졌다.
대기업들이 잇따라 B2B에 뛰어들면서 프리마켓의 입지는 더욱 좁아지고 있다.
중립적인 e마켓플레이스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프리마켓이 그 틈새에서 얼마나 덩치를 불릴 수 있을지가 앞으로 B2B의 향방을 좌우하는 시금석이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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