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계 벤처캐피털들이 국내 벤처투자 시장의 ‘구원투수’로 등판했다.
올 3월 코스닥 대폭락 이후 국내 벤처캐피털들의 소극적인 태도로 생긴 ‘투자공백’을 이들 외국계 벤처캐피털들이 메우고 있다.
벤처기업 입장에서는 이들의 등판이 매력적이다.
뭉텅이로 투자를 끌어올 수 있는데다, 투자를 받았다는 것 자체로 커다란 이미지 상승효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외국계라는 낯섦 때문에 국내 벤처기업들이 쉽게 접근하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국내에 진출한 외국계 벤처캐피털들은 누구이고, 이들은 주로 어떤 분야에 관심이 있을까. 그리고 이들로부터 투자를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현재 국내에는 굵직한 외국계 벤처캐피털만 해도 20여개가 넘는다.
미국계로 골드만삭스, 체이스H&Q아시아퍼시픽, ADL파트너스, 체이스캐피털아시아테크놀로지(CCAT), GE캐피털, L&H코리아, 호크아이즈벤처캐피털 등이 포진해 있다.
일본계로는 소프트뱅크벤처스코리아, 히카리통신캐피털, 트랜스코스모스 등이 활동하고 있다.
대만계로 CDIB가 있으며, 홍콩계로 아시아넷이 적극적이다.
이들 외국계 벤처캐피털은 엄밀하게 말하면 미국의 클라이너퍼킨스 같은 순수한 벤처캐피털이 아니다.
대부분 투자은행이나 컨설팅 회사들이 자금을 조성해 벤처투자나 기업인수에 나서는 ‘프라이빗 에퀴티’(Private Equity)라고 볼 수 있다.
이들 외국계 벤처캐피털은 한국의 벤처캐피털들과 몇가지 점에서 차이가 있다.
우선 투자규모가 거액이다.
체이스H&Q아시아퍼시픽의 경우 500만달러 이하의 투자금액을 요구하는 벤처기업은 아예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을 정도다.
이 회사는 벤처기업당 1천만달러에서 3천만달러 정도를 투자한다.
다른 회사들도 회사당 투자규모가 보통 50억원을 넘는다.
물론 이들도 최근 벤처투자 시장의 거품이 꺼지면서 투자에 신중을 기하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투자규모를 올 1분기보다 절반 정도 줄이고 있다고 밝혔다.
히카리통신캐피털의 나카야마 신야 한국대표는 “시장이 크게 침체해 있기 때문에 신중한 자세를 취하지 않을 수 없다”며 “그러나 리서치는 계속하고 있어 자신있다고 판단하는 업체에 대해선 선별적인 투자를 계속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투자를 받은 회사가 글로벌 마케팅을 하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것도 외국계 벤처캐피털을 돋보이게 한다.
ADL파트너스 전양우 이사는 “ADL로부터 투자를 받았다고 하면 해외에서 자금을 유치하거나 마케팅을 할 때 유리하다”고 말했다.
인터베스트의 박정목 심사역은 “CCAT의 경우 전세계 600여개 벤처기업에 투자를 한 만큼 이들 회사를 여러가지 면에서 연결시켜줄 수 있다”고 말했다.
외국계 벤처캐피털은 투자심사를 할 때도 국내 회사와 다르다.
이들은 기술력이나 경영진 따위는 기본적으로 챙기고, 기술이나 비즈니스 모델이 외국에 있는 것인지 여부를 꼼꼼이 따진다.
외국에 있는 기술이거나 비즈니스 모델은 그렇게 높게 평가하지 않는다.
독특한 게 있는지를 본다는 것이다.
물론 외국에서 비슷한 비즈니스 모델을 가진 업체의 성장 경로를 참고해, 국내에서도 성장가능성이 있으면 투자를 한다.
이들 외국계 벤처투자 회사들은 심사를 할 때 기본적인 사항은 국내에 있는 벤처캐피털리스트(파트너)들의 판단을 빌리지만, 최종 결정을 할 때는 본사에 있는 벤처캐피털리스트들을 불러들이거나, 본사 투자심사위원회의 심사단계를 밟는다.
그렇기 때문에 국내 업체와 외국 업체들을 비교하는 게 가능하다.
이 과정에서 경영진이 투명한지, 투자자와 의사소통은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는지도 따진다.
이들은 스타트업 단계의 초기 벤처보다는 중기나 후기 단계의 벤처기업에 투자를 많이 한다.
이는 국내에 진출한 벤처투자 회사들이 대부분 순수한 벤처캐피털이 아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골드만삭스, 소프트뱅크벤처스코리아, 히카리통신캐피털, 체이스H&Q아시아퍼시픽, GE캐피털 등이 이런 경우에 해당한다.
반면 ADL파트너스, 체이스캐피털아시아테크놀로지 등은 초기 투자를 선호한다.
물론 중기나 후기 투자를 하건, 초기투자를 하건 자금 회수 시기를 장기적으로 잡는 게 보통이다.
이들 외국계 벤처투자 회사는 펀드 자체가 5년, 7년, 10년 등 장기이기 때문에 단기간에 회수를 하지 않는다는 게 관계자들의 얘기다.
체이스H&Q아시아퍼시픽의 이재우 공동대표는 “코스닥에 상장한 뒤 곧바로 투자금을 회수하지 않는다”며 “애초 목표한 만큼 가치가 오를 때까지 보유한다”고 밝혔다.
외국계 벤처투자 회사들은 각자 투자 주력 분야나 강점 등이 조금씩 다르다.
우선 미국계의 골드만삭스는 월가의 대표적인 투자은행이라는 명성이 커다란 강점이다.
골드만삭스는 보수적인 투자로 잘 알려져 있는데다 높은 인지도를 갖고 있기 때문에, 이 회사에서 투자를 받으면 업계 전문가는 물론 일반인들로부터도 인정을 받는 효과를 누릴 수가 있다.
현재 골드만삭스가 투자한 회사는 팍스넷, 리눅스원, 에이아이넷 등 3개사뿐이다.
골드만삭스 민지홍 이사는 “한국 인터넷 시장에서는 분야마다 1, 2등만 살 수 있는 만큼 이런 가능성이 보이는 업체에만 투자한다”고 말했다.
골드만삭스는 무선인터넷, 인터넷 솔루션, B2B(기업간 전자상거래), 교육, 게임 분야에 관심이 많다.
체이스H&Q아시아퍼시픽은 미국 실리콘밸리의 하이테크 및 바이오테크 기업들에 주로 투자한 업체다.
이 회사는 97년 말 고문인 윌리엄 페리 전 미국 국방장관이 “한국은 망하지 않을 나라인 만큼 지금이 투자를 하는 데 호기”라고 조언함에 따라, 98년 7월 한국에 법인을 설립했다.
처음에는 쌍용증권, 동특 등을 인수하다 정보통신 업체에 눈을 돌렸다.
다우기술과 공동으로 통합메시징개발 업체인 큐리오를 설립했으며, 광통신 업체인 G&G네트워크, 인터넷TV네트웍스 등을 인수했다.
또 경영권과 관계없이 지분만 참여한 업체로는 컴퓨터보안 업체인 팬탁시큐리티, 부가통신망 업체인 KSNET, 디지털로 냄새를 보내는 기술을 개발한 E1EDS, 바이오 업체인 유진사이언스 등이 있다.
이 회사는 이동통신과 무선인터넷, 반도체 분야에 관심이 많다.
이 회사 이재우 공동대표는 “벤처기업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는 경험과 글로벌 네트워크를 갖춘 우리가 경영에 참여하는 게 좋다고 본다”며 “경영참가를 허용하고 투명성을 갖춘 벤처기업을 선호한다”고 말했다.
ADL파트너스는 미국의 컨설팅 회사인 ADL이 만든 벤처캐피털이다.
이 회사는 경영과 기술쪽 컨설팅에 강한 회사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이 회사에서 투자를 받으면 경영 및 기술과 관련해 지원을 많이 받을 수 있다고 한다.
특히 통신과 석유화학쪽 기술에 강하다.
이 회사는 현재 인터넷 광고회사인 KT인터넷, 세라믹 전자제품 업체인 서광전자, 바이오 업체인 프라임팜텍, 소프트웨어 업체인 LKFA, 반도체 장비 업체인 이스트테크놀로지, 통신장비 업체인 텔링커 등에 투자했다.
이 회사 전양우 이사는 “다른 외국계 벤처투자 회사들이 중기나 후기 단계의 벤처 투자를 선호하는 반면 우리는 스타트업 단계의 초기 벤처 투자를 선호한다”고 말했다.
체이스맨해튼은행 계열의 투자회사인 체이스캐피털아시아테크놀로지는 최근 국내 벤처캐피털인 인터베스트와 공동으로 ‘인터베스트 인터넷펀드’를 만들었다.
이 회사는 인프라, 솔루션, 포털, 전자상거래 등에 집중적으로 투자할 계획이다.
이 회사 박정목 심사역은 “전략적인 지원을 통해 기업가치를 올리는 데 주력할 것”이라며 “특히 체이스캐피털아시아테크놀로지가 하이테크 기술에 강한 인도쪽에 투자를 많이 해온 만큼 이들과 국내 업체를 연결해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에서 들어온 소프트뱅크벤처스코리아는 지난해 말부터 한국의 벤처기업에 공격적인 투자를 해왔다.
그러나 최근에는 모기업인 일본의 소프트뱅크가 경영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다소 주춤한 상태다.
소프트뱅크벤처스코리아는 현재 보안 업체인 시큐어소프트, 홍콩 및 중국과의 B2B 무역 서비스 제공 업체인 알리바바코리아, 무선통신 기술과 음성인식 기술을 결합한 헤이아니타코리아, 웹전문가 양성 업체인 소프트뱅크웹인스티튜트, 전자상거래 인증 서비스 업체인 한국전자인증, 철강 및 비철금속 뉴스 사이트인 애니스틸, 의약 관련 B2B 업체인 메디온메디써비스 등에 투자했다.
소프트뱅크는 경영불간섭 원칙으로 잘 알려져 있다.
히카리통신캐피털은 올해 들어서만 7개 벤처기업에 280억원을 투자했다.
이 회사는 아직까지 초기 단계의 벤처에는 투자하지 않고 있으며, 중기나 후기 단계의 기업에 투자를 하고 있다.
투자업체는 옥션, 네오웨이브(통신업체), 라이코스코리아, 뉴C&C(통신업체), 하늘사랑, 이지오스(ASP업체), 팍스넷 등이다.
이 회사는 앞으로 B2B사이트, 무선인터넷 및 IMT-2000 관련 솔루션, 전자상거래 관련 솔루션 분야에 주로 투자할 예정이다.
나카야마 신야 한국대표는 “B2C의 경우 한국 업체들이 일본보다 발전했다고 생각한다”면서도 “그러나 과도한 경쟁 때문에 수익성있는 비즈니스 모델을 갖춘 벤처기업이 적어 투자안건은 많지만 자신있게 투자할 수 있는 회사는 적다”고 말했다.
그는 또 B2B와 관련해 “벤처기업의 B2B보다는 대기업에 연계된 회사간의 제휴에 의해 구축되는 B2B에 더 관심을 갖고 있다”며 “한국의 특수한 세력인 재벌은 일본의 대형 상사에서 찾아볼 수 없는 자금력이 있어 성공할 확률이 높다”고 덧붙였다.
CDIB는 대만의 최대 투자은행이자 최대 벤처캐피털이다.
국내 20개 업체에 1억달러 정도를 투자했다.
이 회사는 반도체 장비, LCD 장비, 무선통신 솔루션 및 장비, 인터넷 장비 등에 주로 투자를 하고 있다.
이 회사 김형근 이사는 “한국은 반도체, LCD, 무선통신 분야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고 있다”며 “거품논쟁도 있지만 우리나라 벤처기업의 기술력도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다”고 말했다.
외국계 벤처캐피털이라고 해서 접근하는 데 망설일 필요는 없다.
대개 국내법인에 있는 벤처캐피털리스트들은 한국인이거나 재미동포, 재일동포가 대부분이어서 의사소통이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는데다, 이들도 한국의 가능성있는 벤처기업을 찾는 데 적극적이기 때문이다.
투자를 받으려면 이들 회사에 전화를 하거나, 이메일을 통해 사업계획서를 보낸 뒤 약속을 잡고 만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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