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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비지니스] 인터넷 실명제의 허상
[e비지니스] 인터넷 실명제의 허상
  • 김상범
  • 승인 2001.03.2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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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작용 막고 유료화 기반 마련이 명분…효용성·정당성 문제 많아
3월15일 인터넷 채팅사이트 스카이러브 www.skylove.com 회원 48만2천만명이 강제 퇴출당했다.
올초 42만명에 이어 올 들어 두번째 단행된 대량 회원퇴출이다.
지난해 13만7천명을 강제 퇴출한 것까지 포함하면 총 100만명에 가까운 회원이 강제로 짐을 싼 것이다.
이틀 앞선 3월13일 포털사이트 드림위즈 www.dreamwiz.com는 회원 3만명의 서비스 이용을 일부 제한하는 조처를 내렸다.
지난 1월10일 7만명의 회원에게 취해진 조치 이후 두번째다.
드림위즈는 오는 5월31일까지 실명 정보를 보내지 않을 경우, 보관돼 있는 모든 개인정보를 삭제할 방침이다.

강제 퇴출된 회원들은 모두 비실명 회원들이었다.
실명이 아닌 가명으로, 또 허위 주민등록번호를 기재한 회원들이었다.
비실명 회원들의 강제 퇴거는 스카이러브나 드림위즈만의 일이 아니다.
동창회 사이트인 다모임 www.damoim.net도 이미 비실명 회원들이 실명으로 전환하지 않을 경우 퇴출시키겠다는 공지를 내려놓은 상태다.
인터넷 경매업체인 옥션은 오는 21일부터 카드실명제를 실시한다.
회원정보와 카드정보가 일치하지 않으면 카드결제를 할 수 없게 된다.
99년부터 실명제를 실시해온 네오위즈와 네띠앙, 지난해 10월부터 실명제를 실시하고 있는 인티즌, 성인정보를 제공하는 인터넷방송국 등 닷컴들의 실명제 도입이 서서히 확산되고 있다.
도입 확산, 우려 목소리도 점증 인터넷 실명제를 실시하고 나선 닷컴들의 이유는 크게 세가지로 요약된다.
익명성의 부작용을 막아 건전한 인터넷 문화를 만들고, 실명 회원을 통해 거품 논란에서 벗어나 기업가치를 높이며, 향후 콘텐츠 및 서비스 유료화에 대비한다는 것이다.
하늘사랑 나종민 사장은 “건전한 채팅공간으로 거듭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며 “인터넷 업체에 회원 규모는 기업가치를 평가하는 중요한 잣대지만 비실명 회원 100명보다 1명의 알짜 회원이 훨씬 소중하다”고 말한다.
드림위즈 역시 “회원들의 인터넷 생활을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한 조처임을 강조한다.
인터넷 실명제 바람의 근원에는 유료화를 위한 사전 포석의 의미가 짙게 깔려 있다.
하늘사랑쪽도 “인터넷 유료화를 위해 회원정보를 깨끗히 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고 밝힌다.
전면 유료화를 선언한 인티즌도 유료화의 사전작업으로 실명제를 내세운 바 있다.
과연 실명제는 건전한 인터넷 문화를 선도하고 수익 창출에까지 기여할 수 있을까. 인터넷 실명제를 도입하는 닷컴들이 하나둘씩 늘어나면서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개인정보 보호를 이유로 반발하고 있는 사회단체들은 물론 인터넷 업계에서도 그 효용성과 가치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이 만만치 않다.
고등학생의 사제폭탄 제조, 자살을 부른 자살사이트, 게임중독 학생의 동생 살해 등 인터넷의 역기능으로 분류될 만한 사건들이 최근 잇따라 터져나오면서 이를 막을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자는 주장은 설득력을 얻었다.
하지만 인터넷 발전의 원동력이었던 익명성을 강제로 제거하면서까지 실명제를 실시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 하는 문제는 좀더 고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실명제를 실시하고 있는 기업들은 효과를 주장한다.
하늘사랑 관계자는 “실명제 실시 전에는 하루에 700~900건의 아이디를 삭제해야 했으나 실명제 실시 이후 그것이 200건으로 대폭 줄었다”고 말한다.
세이클럽이나 네띠앙 등도 실명제로 회원들의 불건전한 활동이 눈에 띄게 줄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실명제가 근본적인 문제해결의 열쇠는 될 수 없다는 주장도 귀담아들을 만하다.
e비즈니스 정보 제공사이트인 아이비즈넷 www.i-biznet.com 김석기 팀장은 “일찍부터 실명제를 실시한 PC통신에서는 통신사기나 불법거래, 언어폭력 등 불건전한 사례가 없었는지 묻고 싶다”며 “10년의 PC통신 역사가 실명제는 역기능 방지와 무관하다는 것을 입증해주고 있다”고 강조했다.
실명제와 유료화는 별개의 문제 실명제가 유료화로 가기 위한 초석, 궁극적으로 수익 창출의 발판으로 거론되는 데 대해서는 더욱 격렬한 반론이 쏟아진다.
실명제와 유료화는 전혀 관계가 없다는 얘기다.
실제로 유료화를 위해 필요한 조치라고 말하는 닷컴들조차 유료화와 관련해 구체적인 효용성을 적시하지는 못한다.
‘정확한 정보니까’, ‘거래가 생기면 실명정보가 필요하니까’ 등의 이유를 드는 게 고작이다.
성과지표를 내보이기도 쉽지 않다.
인터넷 쇼핑몰 인터파크 www.interpark.com 관계자는 고개를 젓는다.
“물건을 구매하고 결제가 필요할 때 실명을 확인하면 된다.
물건을 구경하러 오는 사람들에게까지 신분증명을 요구할 필요는 없는 것 아니냐?.” 지금의 실명제는 백화점 정문에서 일일이 신분증을 확인하려는 것과 같다는 말이다.
회원 실명제와 관련해 다음과 야후코리아의 태도는 주목된다.
이들은 모두 비실명 회원제를 고수하고 있다.
“비실명보다는 휴면 아이디를 더 고민해야 한다.
실명제는 그저 대외적인 마케팅 효과를 노린 것일 뿐이다.
인터넷에서 실명 정보는 중요하지 않다.
실명 회원이 1000만명이면 무엇하나, 오지 않으면 그만인데. 회원보다는 페이지뷰나 방문자 수가 그래서 더 중요하다.
” 다음의 공식 입장이다.
야후코리아도 별반 다르지 않다.
“정화 차원에서 필요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자기가 필요하지 않은 정보를 왜 받는가. 실명 정보는 야후의 서비스에 전혀 필요하지 않다.
” 실명제의 효용성이나 정당성에 대해 문제가 제기되는 이유는 실명제가 안고 있는 부작용 때문이다.
무엇보다 개인정보 유출의 우려가 가장 크다.
유출될 경우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주민등록번호를 정부도 아닌 민간기업들이 대량으로 관리하는 것을 경계하는 것이다.
활용가치가 입증되지 않은 실명 정보를 불건전한 문화를 확산시키는 잠재적 요인이라는 이유로 요구하면서 개인정보 유출이라는 잠재적 재앙은 간과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시민단체들은 물론 업계에서도 우려의 시선을 보낸다.
야후코리아 브랜드마케팅팀의 김병석 대리는 “가장 확실한 개인정보 보호는 개인정보를 아예 받지 않는 것”이라고 잘라 말한다.
아이비즈넷 김석기 팀장도 깊은 우려를 나타냈다.
“현재 많은 닷컴들이 문을 닫고 있다.
과연 이들이 그동안 모아놓은 개인정보를 어떻게 처리했는지 상상해보라.”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먼저 확보돼야 실명제 부작용에 대한 우려는 정부도 겨냥한다.
현재 실명확인 작업은 정보통신부 산하기관인 한국정보통신진흥협회에서 해주고 있다.
조회 건당 20원의 수수료를 부과하고 있는 실명확인 서비스가 1년에 4천만건씩 처리된다.
실명확인 작업을 통해 민간기업들이 대량으로 개인의 주민등록번호를 관리하는 것을 확산시키고 있는 셈이다.
정보가 유출돼 국민이 피해를 봤을 때 정부가 과연 책임을 질 것인지, 닷컴이 폐업했을 때 회원 데이터베이스를 회수하는 방안은 있는지에 대해선 최소한의 안전장치도 없다.
한국정보통신진흥협회는 이를 ‘기우’라고 일축한다.
송윤철 팀장은 “가입조건이 까다로운데도 개인정보 보호가 미흡한 기업은 강력히 제재하고 있다”며 “기업들의 요구로 인터넷 실명제를 법제화하는 문제를 정부에서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드림위즈나 네띠앙도 정부에서 실명확인 작업을 좀더 쉽게 지원해주겠다는 약속을 받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정작 정보통신부의 반응은 조심스럽다.
정보이용보호과 홍성완 사무관은 “구체적으로 법규를 준비하지는 않고 있다”며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원하고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진다면 정부 차원에서 검토할 수는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최근 인터넷 기업과 사회단체 대표들이 모여 비공개 회의를 가진 바 있는데 대부분 찬성하더라”고 귀띔한다.
국내 닷컴들 가운데는 주민등록번호를 포함해 과도한 양의 정보를 요구하는 곳이 많다.
일단 많이 받아두면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이러한 생각은 주민등록번호가 생활 전반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우리 사회의 현실을 반영한 결과다.
그러나 오프라인을 지배했던 주민등록번호를, 더구나 금융정보의 열쇠로 사용되는 주민등록번호를 온라인에서도 그대로 접목해 유일무이한 식별번호로 가져가려는 움직임은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신경제의 첨병들이 구경제의 유산이라 할 주민등록번호를 실명제라는 이름으로 도입하려는 태도는 안타깝다.
주민등록번호 꼭 필요한가?
많은 사이트들이 회원으로부터 주민등록번호를 받아야 하는 이유로 꼽는 것 중 하나가 CRM(고객관리) 강화다.
고객에게 일대일 마케팅을 하기 위해선 고객을 구별하는 것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선 주민등록번호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CRM 전문가들은 꼭 그런 것만은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고객성향을 분석하는 데 주민등록번호가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기업들이 CRM을 위해 개인정보를 많이 받으려 하는 것은 오히려 또다른 이유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온라인 CRM 기획자들은 대부분 오프라인 마케팅 경험자들이다.
오프라인에서는 구매정보 이외에는 수집할 수 있는 고객정보가 없었다.
백화점 CRM 담당자였다면 고객이 매장의 어디에 관심을 가졌는지를 알 수 없다.
단지 무엇을 샀는지만 알 수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고객을 분석하기 위해선 개인정보를 따로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인터넷에서는 고객이 사이트 안에서 어떤 것에 관심을 가지고 돌아다녔는지 웹로그를 통해 정보를 수집할 수 있다.
이 로그정보가 따로 받은 개인정보보다 고객분석에 훨씬 유의미하다.
결국 오프라인에서 해온던 관행을 그대로 인터넷에 끌고들어와 불필요한 정보를 받고 있는 셈이다.
만일 정보가 더 필요하다면 그 때마다 단계별로 조금씩 정보를 요구하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이 정보를 주게 되면 어떤 혜택을 받게 되는지 고객이 충분히 알 수 있도록 이해시키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런 자세가 CRM의 기본이다.
” 이씨마이너 전용준 이사는 전자상거래를 위해 주민등록번호가 필요하더라도 전자상거래를 하는 그 순간에 받아야지 일단 받아놓고 보자는 태도는 문제가 있다고 말한다.
전문가들은 인터넷의 기본사상이 CRM에도 배어 있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익명성이 보장되는 것이 인터넷이기 때문에 CRM에도 ‘고객이 실제로 누구’인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떤 행태를 보이는 고객’인지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아마존에서도 쿠키를 통해 익명 사용자의 관심을 추적해 책을 추천한다.
익명 사용자를 어떻게 분석할까가 요즘 CRM의 핵심과제이다.
” 씨씨미디어 김기수 이사는 연령이나 성별보다는 사이트 안에서 보이는 회원의 태도를 읽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내 마음 나도 모른다’는 게 네티즌의 생리인만큼, 주는 정보보다는 보이는 정보를 분석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김윤지 기자 yzkim@dot21.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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