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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 코스닥 등록? 안 해!
[머니] 코스닥 등록? 안 해!
  • 이원재
  • 승인 2000.07.0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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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가비실거리고공모가산정까다로워져...등록청구철회업체속출
코스닥은한국에‘벤처기업골드러시’를불러온꿈의금광이다.
미리코스닥에등록한기업들은기대했던것보다훨씬높은공모가로투자를받았고,증자할때마다대대적인성공을거뒀다.


그런기업들가운데일부는넘쳐나는자금을주체못해벤처지주회사노릇을하겠다고나서기도했다.
코스닥주가가무서운오름세를탄지난해말이후벤처기업의사업계획서에는‘코스닥등록계획’이빠지는법이없었다.


그런데최근주가가침체를이어가고높은공모가를부르기가어려워지면서잘나가던코스닥등록시장이흔들리고있다.
자금조달을위해등록신청을해놓고는자진해서이를철회하는기업들이늘어나고있다.
증권사들이 등록주간사 업무를 맡을 때 부쩍 몸을 사리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여름이 깊어가는 이 계절에, 코스닥 등록시장에는 때이른 찬바람이 깃들기 시작하는 것일까? 공모가 놓고 밀고 당기다 등록청구 철회 지난 4월 코스닥 등록 예비심사를 청구했던 서류영상스캐너 생산업체 보임테크놀러지 www.voimtech.com는 6월21일 심사청구를 철회했다.
회사쪽이 공식적으로 밝힌 이유는 ‘시장상황’이다.
재무담당 박천수 차장은 “금융권 구조조정 전망이 여전히 불투명하고 시장이 아직 침체기에 있는 만큼 시장이 호전될 때까지 등록일정을 미루기로 했다”며 “애초 공모자금으로 투자하려고 계획했던 연구개발시설 증설 등도 함께 미뤄지게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보임테크놀러지가 등록청구를 철회한 진짜 배경은 따로 있다는 것이 증권가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업종 분류와 공모가 산정을 둘러싼 주간사와의 의견차이가 컸다는 것이다.
보임테크놀러지의 주력사업은 일본 캐논, 미국 코닥 등 외국업체들의 스캐너 판매다.
물론 수표판독기 등 금융장비와 디지털영상저장장치(DVR, Digital Video Recorder)를 개발해 팔기도 한다.
그러나 지금 코스닥시장에 등록하려면 업종을 도소매로 분류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증권가의 일반적인 분석이다.
이 회사가 코스닥 등록심사를 청구하면서 제시한 희망공모가는 액면가 5천원에 주당 3만9천원이다.
조달한 자금으로 연구개발 및 설비증설에 적극적으로 투자해 디지털영상 저장장치 사업에 본격적으로 진출할 계획이었다.
사실 첨단기술과 큰 상관이 없는 웬만한 제조업체들도 액면가 5천원 기준으로 10만원 이상을 공모가로 부르던 올해 초까지만 해도 전혀 어색할 게 없는 공모가다.
그러나 그때와는 상황이 180도 달라졌다.
신규등록만 했다 하면 열흘 이상 상한가 행진을 벌여 투자자들에게 ‘대박’을 안겨주던 시절은 이미 지났다.
게다가 ‘대장주’를 노리는 첨단기술주도 아니고 도소매 업종이라니. 주간사인 메리츠증권은 시장조성 부담 때문에 공모가를 본질가치인 1만원 이상은 제시하기 어렵 다는 입장을 보였다는 것이다.
1만원과 3만9천원. 건널 수 없는 강이었다.
보임테크놀러지는 디지털영상 저장장치 개발을 통한 첨단기업으로의 도약이라는 물러설 수 없는 목표가 있었고, 메리츠증권은 손해볼 게 뻔한 일을 벌일 수 없다는 생존논리가 있었다.
둘 사이의 갈등은 결국 ‘등록청구 철회’라는 결정으로 막을 내렸다.
6월 심사예정 54개 가운데 12개 되물려 건널 수 없는 강을 목도하는 기업이 보임테크놀러지만은 아니다.
지난 6월에 코스닥 등록 예비심사가 예정돼 있던 기업은 모두 54개였다.
이 가운데 실제로 심사를 받은 기업은 42개사에 그쳤다.
나머지 12개사는 청구를 자진 철회한 것이다.
코스닥 등록청구 철회는 올 들어 계속 증가하고 있다.
1월에는 철회업체가 없었으나 2월 한개를 시작으로 3월 두개, 4월 한개 식으로 서서히 고개를 내밀었다.
그러다 5월 아홉개, 6월 12개로 부쩍 늘었다.
반면 예비심사 청구업체는 2월 90개, 3월 94개에서 4월 19개, 5월 23개, 6월 여섯개에 그쳤다.
수치만으로도 냉기가 전해질 법하다.
왜 이런 철회 러시가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등록기업들은 증권사들이 부쩍 까다로워졌다고 불만을 터뜨린다.
하지만 속을 찬찬히 뜯어보면 증권사들이 몸을 사리는 데도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공모가 산정 및 신규등록 과정에서 주간사의 책임이 크게 늘어나는 쪽으로 제도가 바뀌었다는 얘기다.
시장에 냉기를 불러오는 일등공신은 시장조성제도다.
시장조성제도는 신규등록 뒤 일정한 기간 안에 어느 수준 아래로 주가가 떨어지면 등록주간사가 책임을 지고 주식을 사들여 주가를 떠받치게 하는 제도다.
공모가가 높더라도 청약자에게 수익을 보장해 기업의 주식시장 등록을 활성화하기 위해 도입됐다.
이 제도는 지난해 5월 규제완화를 이유로 사라졌다가, 지난 2월 ‘등록 뒤 한달 안에 공모가의 80% 아래로 주가가 떨어지고 해당업종 지수하락률보다도 더 빠졌을 때 주간사가 자율적으로 실시할 수 있다’는 자율선택조항으로 부활했다.
7월부터는 이것이 더욱 강화된다.
증권업협회는 ‘수요예측에 관한 표준권고안’을 마련해 7월부터 유가증권신고서를 내는 신규등록 기업의 주간사는 시장조성 의무를 두달로 연장할 것을 각 증권사에 권고했다.
여기에다 이전에 없던 공모가액유지의무 조항을 신설해, 공모가의 80% 이상은 무조건 유지하도록 했다.
또 종전엔 공모주식의 50% 이상을 매입하면 되던 것을, 공모주식 전체를 매입하는 쪽으로 바꿨다.
가뜩이나 코스닥 주가가 침체기를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에서 이런 조처는 더욱 큰 파괴력을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 5월 한솔창업투자와 한신평정보가 나란히 거래 첫날부터 하한가를 맞았던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일단 시장에 올라오면 종목을 불문하고 며칠간 상한가 행진을 벌이던 이전과 뚜렷하게 달라진 것이다.
한신평정보는 닷새 연속 하한가 행진을 벌였다.
‘차기 대장주’로 꼽혔던 옥션의 상한가 행진마저 나흘 만에 멈췄다.
증권사들도 공모업무 잘못하면 ‘쪽박’ 증권업협회가 지난해 12월 코스닥시장 등록을 위해 공모를 실시했던 48개 기업의 주가를 분석한 결과, 29%인 14개 기업의 주가가 등록 3~4개월 만에 공모가 아래로 떨어졌다.
자칫 공모가가 높게 정해지면 주간사가 ‘대박’은커녕 ‘쪽박’을 차게 될 형편이다.
몸을 사리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기업들의 공모가 욕심은 여전하다.
신규등록 붐에 찬바람이 깃들지 않을 수 없다.
증권사들을 더욱 부담스럽게 만드는 것은 정작 공모가를 정하는 것은 증권사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증권사는 해당 기업과 공동으로 제시공모가를 내놓을 뿐이다.
공모가 결정은 기관투자가들의 수요 예측으로 이뤄진다.
증권사 제시공모가는 단순한 참고자료일 뿐, 최종적으로는 기관투자가들이 내놓은 여러 가지 가격으로 경매와 비슷한 과정을 거쳐 결정되는 것이다.
공모가 쪽박이 언제 터질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더욱 보수적으로 행동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증권사들의 얘기다.
최근 금융감독원이 한화증권에 3개월 인수업무정지라는 제재조처를 내린 것은 움츠린 가슴을 더욱 시리게 한다.
한화증권은 지난해 인터파크의 코스닥시장 등록주간사였다.
그런데 당시 추정했던 수익에 견줘 인터파크의 올해 실적이 지나치게 낮게 나왔다며 당국이 제재에 나섰다.
수익추정은 최초 공모제시가를 내놓는 근거가 된다.
“이제 공모주간사 한번 잘못 맡았다간 쪽박차는 것도 모자라서 업무정지까지 당할 판이다.
어떻게 공격적인 영업을 하겠느냐. 기업가치를 최대한 낮춰 보고, 공모가를 최대한 깎으려고 노력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물론 이렇게 노력한다 해도 뜻하지 않게 높은 공모가가 책정돼 책임을 덮어쓸 여지는 항상 남는다.
” 증권사들의 푸념이 예사롭지 않게 들린다.
증권사들은 이참에 공모가 산정방식을 뿌리부터 뜯어고쳐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목소리는 엇갈린다.
현대증권 이환성 코스닥팀장은 “주간사 제시가격을 없애고 아예 시장에 맡겨 기관투자가들이 스스로 가격을 결정하게 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말한다.
기관투자가가 독자적으로 분석하지 않고 증권사 제시가격을 하한선처럼 여기고 가격결정에 참여하는 현재의 시스템은 기형적이라는 얘기다.
그러나 메리츠증권 노기선 기업금융2팀장은 반론을 편다.
노 팀장은 “주간사가 분석한 제시가격과는 완전히 별개로 공모가가 결정되는 시스템이 오히려 기형적”이라고 말한다.
증권사쪽에 더 많은 가격결정 참여권한을 줘야 한다는 얘기다.
증권사의 책임회피 노력으로 시장이 얼어붙는다 문제는 공모가 결정권한을 갖고 있는 쪽과 등록 뒤 주가하락에 따른 책임을 지는 쪽이 별개라는 점에 있다고 대부분의 증권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책임이 너무 무겁다고 느끼는 증권사쪽의 책임회피 노력이 더욱 심해지면 가뜩이나 좋지 않은 시장상황과 겹쳐 자칫 어렵게 피워올린 벤처 열기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는 것이다.
증권사쪽이 공모가 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여지를 강화해주든지, 아니면 증권사 역할을 단순한 인수·중개로 국한하고 투자자들이 가격결정에서부터 투자손실 위험까지 모든 과정을 책임지도록 제도를 개선하라는 목소리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월별 코스닥 등록 청구 철회업체
2월
1개
아코테크
3월
2개
평창정보통신 강남종합유선방송
4월
1개
정진시스템
5월
9개
케이씨아이 한국물류정보통신 피엔케이시스템 태준제약 훠엔시스 알.에프.텍 나다텔 누리데이타시스템
6월
12개
한국CATV 드림씨디 LG석유화학 이앤텍 코미트창업투자 씨엔스 이엔지 아이지텔레콤 엘디케이전자 티엔비 오씨아이정보통신 대양창업투자 대한바이오링크 보임테크놀로지
닷컴 기업 신규상장 찬바람 전세계 공통현상
찬바람은 한반도에만 깃드는 것이 아니다.
첨단기술기업 증시의 맏형격인 미국 나스닥시장도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상장업체 수가 줄고 상장취소나 연기 건수가 늘어나는 시기도 한국 시장과 비슷하다.
그 냉기가 전세계 기업공개 시장에 한파를 드리우고 있다.
미국 증시에서 인터넷 기업의 신규상장(IPO; Initial Public Offering) 건수를 보면 이런 현상이 명확히 드러난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신규상장 인터넷 기업은 지난 1월의 일곱개에서 2월 34개, 3월 33개로 전성기를 누리다가, 4월 14개, 5월 네개로 눈에 띄게 줄고 있는 상황이다.
반면, 상장을 계획했다가 철회하는 인터넷 기업 수는 늘어나고 있다.
1월 네개, 2월 두개, 3월 세개로 거의 찾아보기 힘들었던 상장취소 및 연기 기업 수는 4월 14개, 5월 22개로 뛰어올랐다.
유럽에서도 상황은 비슷하다.
99년 3분기 18억달러 규모였던 인터넷 관련 기업 신규상장 금액은 4분기 59억달러, 올 1분기 126억달러로 껑충껑충 뛰어올랐다.
그러던 것이 2분기에는 5월 말까지 두달 동안 44억달러에 그치고 있다.
미국에서 상장을 연기한 기업 가운데서는 검색엔진 업체인 알타비스타가 눈에 띈다.
그밖에 리눅스케어, 모어닷컴 등의 기업들이 상장계획을 철회했다.
홍콩의 보다폰퍼시픽은 20억달러로 추정됐던 기업공개를, 콜비넷은 13억달러짜리 기업공개를 되물렸다.
“시장은 당신이 앞으로 벌일 사업을 평가하지 않는다.
이미 이룬 사업을 평가할 뿐이다.
‘이제 냄새만 풍기지 말고 스테이크를 내놓아라’고 소리지르고 있는 것이다.
” 영국 런던의 온라인여행사 트래블스토어닷컴 www.travelstore.com의 빌 맥팔레인 이사는 최근 공개기업을 바라보는 증시의 시각변화를 이렇게 전했다.
더욱 중요한 것은 벤처캐피털의 투자원칙이 점점 보수화하고 있는 점이라고 현지 전문가들은 말한다.
불변의 공식으로 보이던 ‘벤처기업 투자-인큐베이팅-기업공개-일확천금’이라는 투자금 회수 스케줄이 더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것이다.
여기에 ‘훌륭한 경영진과 수익모델’이 추가돼야만이 투자회수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고우투닷컴, MP3닷컴 등에 투자한 벤처캐피털 아이디어랩 캐피털파트너즈의 빌 엘커스 이사는 “지난 2년은 영광스런 꿈이었으나, 그때가 아니라 바로 지금이 정상적인 현실”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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