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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일과 사랑을 함께 ‘벤처 사내커플’이 는다
[문화] 일과 사랑을 함께 ‘벤처 사내커플’이 는다
  • 한정희
  • 승인 2000.11.1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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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가 만나는 곳엔 항상 사랑이 싹튼다.
하물며 남녀가 ‘같이 먹고 같이 자는’ 끈끈한 일터에서는 더 말할 나위가 있을까. 테헤란밸리 젊은 남녀들은 특히 그렇다.
같이 출근하고 같이 일하고 같이 먹고 ‘심지어’ 같이 밤을 보내는 이들이 서로 사랑에 빠지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이렇게 견디다 못해 서로 마음을 내어준 사내 커플이 테헤란밸리의 가을을 붉게(?) 물들이고 있다.


일과 사랑이 함께 있는 ‘벤처기업’ 그동안 사내커플은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았다.
같은 회사 안에서 서로 연애하는 것이 불편하기도 하거니와 이런 사실이 알려지게 될 경우 주위 사람들 시선이 여간 따가운 게 아니다.
어쩔 수 없이 ‘커밍아웃’을 한 다음엔 대부분 둘 가운데 하나가 다른 직장으로 옮겨가는 것이 다반사였다.
하지만 벤처기업은 다르다.
오히려 몇몇 업체들은 연애할 시간도 없이 바쁜 이들에게 사내 연애를 ‘권장’하기도 한다.
인츠닷컴 이진성 사장은 올해 초 “사내결혼을 하는 첫 커플에겐 1천만원의 축의금을 준다”고 약속해 화제가 됐다.
사랑하는 사람과 일하면 능률도 오르고 애사심이 더 커질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이 약속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뒤로 인츠닷컴엔 연애를 시작한 커플이 두 커플이나 늘었다.
첫 커플의 영광은 이미 연애를 하고 있던 개발팀 배태근() 대리와 CR팀 임마리아(·여)씨에게 돌아갈 것 같다.
이 커플은 내년 2월에 웨딩마치를 올린다.
통합메시징시스템(UMS) 전문업체 블루버드소프트도 사내 교제를 장려하는 업체 가운데 하나다.
이장원 사장은 “사내 연애가 딱딱한 사무실 분위기를 부드럽게 해준다”며 “인원을 충원할 때도 배우자도 함께 근무할 것을 권한다”고 밝혔다.
최근 회식자리에서 그는 애인을 회사로 데려올 경우 연봉을 올려주겠다는 약속을 하기도 했다.
벤처기업의 사내 커플들은 과감하다.
예전 같으면 어떡하든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게 연애를 했겠지만 굳이 알아도 문제될 게 없다는 투다.
인터넷 경매 사이트 셀피아 윤지현(31) 과장은 지난 11월 새로 들어온 디자이너 손은정(26·여)씨에게 마음이 끌렸다.
윤 과장은 점심시간이 되면 슬슬 손씨 주위를 맴돌곤 했다.
쉬는 시간에도 틈만 나면 손씨 주위에서 머뭇거렸다.
손씨도 그런 윤 과장이 싫지만은 않았다.
위크숍이나 회식자리에 가면 항상 손씨 자리 옆엔 윤 과장이 있었다.
눈치빠른 동료들이 이를 놓칠 리 없다.
둘의 관계는 한달이 못가 발각됐다.
그들은 지난 10월 마지막 주말에 직장동료들의 부러움과 축하 속에 결혼식을 올렸다.
‘커밍아웃’ 하면 생산성도 높아져요 더욱 노골적으로 연애를 하는 경우도 있다.
나모인터랙티브 문서팀 우아무개씨는 고객지원팀 김아무개를 만난 지 3일 만에 마음이 동했다.
웃는 모습이 너무 예뻐 ‘찜’해 버렸다.
그는 그날부터 치밀한 전략에 들어갔다.
자신보다 두살 많은 김씨 환심을 사기 위해 매일 아침, 6개월 동안 김밥과 도너스를 바쳤다.
김씨에게 눈독을 들이고 있는 몇몇 사내 경쟁자들에게 그의 존재를 확실하게 알리기 위해서였다.
그의 구애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김씨가 팀 회식을 할 때면 자리가 파할 때쯤 근처에 가서 기다리곤 했다.
그리곤 집까지 바래다줬다.
그렇게 해서 결국 김씨 마음을 사로잡았다.
문서팀에 근무하는 그는 요즘도 고객지원팀으로 내려가 애인과 점심을 같이 한다.
문서팀에서는 ‘서자’ 취급을 받고 있지만 그의 얼굴에선 웃음이 그치지 않는다.
벤처기업의 사내 커플들은 굳이 사귀는 일을 비밀로 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비밀로 하려고 해도 컴퓨터에 능통한, 집요한 동료들이 그냥 눈감아주지 않는다.
ㄴ개발업체 사내커플인 류아무개(25)씨와 김아무개(25·여)씨는 동료들의 집요한 뒷조사 때문에 그들의 관계를 털어놓아야 했다.
동료들은 벤처에서 즐겨 사용하는 설문조사와 데이터 분석방법을 동원했다.
설문조사란 전혀 눈치채지 못하게 이들을 따로 만나 지난 주말 본 영화와 먹은 음식을 ‘슬그머니’ 조사하는 것이다.
동료들은 그들의 대답이 똑같은 점을 여러번 확인했다.
결정적이었던 것은 로그인 분석을 통해 출퇴근 시간을 체크한 거였다.
지난 몇달간 두사람의 로그인 시간을 비교한 결과 두사람의 출퇴근 시간이 대부분 일치했던 것이다.
둘은 꼼짝없이 커밍아웃했다.
사내커플의 커밍아웃이 회사에서 그들 생활에 특별히 변화를 주는 것은 아니다.
동료들이 편하게 대해줄 뿐만 아니라 그들 스스로도 일과 연애가 서로 충돌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서로 가까운 곳에서 항상 볼 수 있고, 생활하는 사람들이 서로 같기 때문에 그만큼 이해의 폭도 넓고 이야기할 거리가 많다고 말한다.
그래도 사람 사이인데 서로 싸우거나 기분이 상할 때가 있지 않을까. 네이버 디자인팀 이진경씨와 기술팀 강석호씨는 이렇게 말한다.
“사실 별로 싸울 일이 없어요. 혹 토라져도 5분, 10분을 넘지 못해요.” 거기엔 개인들 성향 탓도 있지만 또다른 이유가 있다.
바로 커플들이 많이 이용하는 인스턴트 메일 덕분이다.
인스턴트 메일은 같은 회사 다른 공간에 있는 이들이 언제 어디서든 사랑의 밀어를 나누는 좋은 수단이기도 하지만, 서로 의견이 상충했을 때 오해를 풀어주는 합리적 대화통로이기도 하다.
얼굴을 보지 않으면서 실시간 채팅을 하는 것이니, 이성적 사고로 서로의 의견을 주고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사내커플들이 일의 효율을 높이고 있다는 판단 때문인지 나모에서는 지난 8월 부부를 동시에 채용했다.
김지원(28)씨와 김미현(25·여)씨 부부가 그들이다.
두사람은 미국에서 유학생활을 하던 중 만나 98년 1월 결혼했다.
올 6월 귀국한 김지원씨는 친구 권유로 나모에 원서를 냈다.
그 자리에서 김지원씨는 아내인 김미현씨를 적극 추천했다.
두사람은 8월2일 동시에 입사했다.
서로가 일 욕심이 많은 그들은 늦게까지 일해도 전혀 부담이 없다.
굳이 집에 꼭 가야 할 이유도 없다.
집에 안 들어가면 어떤가? 어차피 둘은 같이 있는데…. 그들은 그런 삶이 안정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실용적이고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생각하는 결혼은 안정이라기보다는 열정이에요. 부부라기보다는 동지라는 생각이 들어요.” 두 사람은 회사 배려로 옆자리에 나란히 앉아 일한다.
가까이에 당신의 연인이 있다 벤처기업에서 사내커플은 실보다 득이 많은 것 같다.
게다가 사랑하는 사람끼리 일하는 것이 생산적이라고 판단하는 한 업체에서는 이를 지원하고 적극 장려할 분위기다.
이 얼마나 꿩먹고 알먹는 일인가. 깊어가는 가을날 옆구리도 허전한데, 테헤란밸리 젊은이들이여! 결코 멀리서 찾지 말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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