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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불천탑의 고대정원, 운주사(雲住寺)
천불천탑의 고대정원, 운주사(雲住寺)
  • 장한규 자유기고가
  • 승인 2020.08.13 19:55
  •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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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주사, 절이 아닌 거대한 고대 야외 조각공원에 온 듯한 느낌

[이코노미21] [장한규] ‘뭉게구름 내려앉은 깊은 산 속 정원에 펼쳐진 거대한 고대 야외 조각공원’, 구름이 머무는 절이라는 뜻의 운주사(雲住寺)를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이런 느낌일까?

20여년 전 겨울, 운주사를 처음 찾아갔던 날이 지금도 새록새록 기억난다. 황석영의 장편소설 『장길산』에서 읽은 운주사에 대한 강렬한 인상에 자극받아 지도책 하나 달랑 들고 무작정 찾아갔다. 그런데 아뿔싸 길을 잘못 들어 얼음이 꽁꽁언 비포장 고갯길을 넘어 겨우 겨우 찾아갔지만 해는 이미 저물고 절문은 닫혀서 아쉬움을 뒤로 한 채 돌아서 다음날 다시 찾아갔던 기억이 있다. 그날 이후에는 남도여행을 하다가도 운주사가 보고 싶어서 시간나면 한번씩 들르곤 한다.

운주사일주문을 들어서면 절마당에 놓여있는 수많은 탑들과 좌우 야트막한 동산에 놓여있는 수많은 돌부처들을 마주하게 된다. 그 숫자가 너무 많고 생긴 모양도 다양해 다른 절에서 느끼는 엄숙함과 경건함보다는 거대한 고대 야외 조각공원에 들어선 경이로움과 편안함을 느끼게 된다.

운주사가 언제 창건되었고 천불천탑이 언제 만들어졌는지에 대해서는 전해지지 않는다. 현재는 석탑 21기와 석불 93기만 남아 있지만, 1481년에 편찬된 『동국여지승람』에는 “운주사는 천불산에 있다. 절의 좌우 산마루에 석불과 석탑이 각각 1000개씩 있고, 또 석실이 있는데 두 석불이 서로 등을 대고 앉아 있다”고 기록되어 있어 조선시대 초기만 해도 석탑과 석불이 매우 많았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1942년까지만 해도 석탑 30기와 석불 213기가 남아 있었다고 하니 비교적 최근까지도 석탑과 석불이 여전히 많이 남아 있었음을 알 수 있다. 1592년 임진왜란 때 법당과 석탑, 석불이 많이 훼손되고 이후 폐사지로 남아있다가 1918년에 법당을 중건했다고 하니 건물들은 비교적 최근에 지은 것들임을 알 수 있다. 오랜 세월 동안 근처에 사는 사람들이 별 생각 없이 이 곳의 석탑이나 석불을 가져다가 묘지 상석으로 쓰거나, 집을 지을 때 주춧돌, 축대 등 건축자재로 사용하고, 논두렁과 밭두렁의 축석으로 사용하면서 많이 사라져 버린 것으로 보여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여느 절과 달리 운주사에는 석탑과 석불의 숫자가 많기도 하지만 그 형태의 다양함에서 석공들의 창의성을 보는 것 같아 신비로움을 느끼게 한다. 절에서 흔히 보는 탑들은 사각형 모양인데, 여기서는 사각형으로 생긴 것뿐만 아니라 원판형으로 생긴 것도 있고, 주판알 모양으로 생긴 것도 있다. 사각형의 탑들도 탑신에 X◇Ⅲ같은 다양한 형태의 기하학적 문양이 새겨져 있다.

절 마당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보물 제796호로 지정된 9층석탑을 만나게 된다. 이 석탑의 탑신에는 마름모꼴에 사각형 꽃무늬가 장식되어 있다. 그리고 이 탑을 지나면 XX문양이 새겨진 7층 석탑을 만나고 보물 제798호인 원판형7층 석탑도 만날 수 있다. 원판형7층 석탑은 ‘도넛탑’ 또는 ‘호떡탑’이라는 재미난 별명도 갖고 있다. 그리고 대웅전 왼편에 실패 모양의 탑을 볼 수 있고, 대웅전 뒷편을 지나면 주판알을 4개 올려놓은 것 같은 원구형탑과 원판형탑도 만나게 된다. 서편 언덕에서는 거북바위 위에 세워진 X 문양의 7층 석탑을 만날 수 있고, 동편 언덕에서는 삐뚤빼뚤한 돌들을 막 쌓아 올린 일명 ‘거지탑’이라고 불리는 5층 석탑과 세로 문양의 7층 석탑도 만날 수 있다. 보물찾기 마냥 다양한 형태와 문양의 탑들을 찾아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석불군
석불군

석탑을 찾아보는 재미만은 못하지만 석불을 찾아보는 것도 흥미롭다. 대부분 석불들은 깨어지기 쉬운 응회암(중생대 백악기에 화산에서 분출된 화산재와 돌덩이가 켜켜이 쌓이면서 굳어진 암석)으로 만들어졌고 오랜 세월 비바람에 풍화되면서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운 부처상을 하고 있어 솜씨 없는 석공들의 습작품들이 여기저기에 널려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석불은 동편과 서편의 산등성이 자연 암반의 단애면에 6개의 군을 이루며 산재하고 있다.

운주사 입구 안내판에는 석불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이들 불상은 대개 비슷한 양식을 보여주고 있는데 평면적이고 토속적인 얼굴 모양, 돌기둥 모양의 신체, 어색하고 균형이 잡히지 않은 팔과 손, 어색하면서도 규칙적인 옷주름, 둔중한 기법 등은 운주사에 있는 불상만의 특징이다. 이러한 특징은 고려시대에 지방화된 석불상 양식과 비슷한 경향을 보여주고 있어서 흥미롭다. 아마도 석인상을 제작하던 석공들이 대거 동원되어 만든 고려 석불상이라 하겠다.”

절 마당의 중간에는 『동국여지승람』에서 운주사의 대표주자로 소개하고 있는 보물 제797호인 석조불감이 있다. 불감이란 불상을 모시기 위해 만든 집이나 방을 뜻하는데 운주사의 석조불감은 절 내에 산재한 다양한 형태의 석탑과 석불의 중심부에 위치하여 야외 불당의 주존불 역할을 하고 있다.

석조불감
석조불감

이러한 거대한 석조불감과 불감 내에 등을 맞댄 쌍배불상은 우리나라 다른 절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특이한 양식이라고 한다. 미륵전 뒷편 왼쪽 계단으로 올라가면 절 전체를 내려다보고 있는 마애불이 있는데 나무에 가려서 꼼꼼히 살펴보지 않으면 놓치기 쉽다. 그리고 서편 언덕 와불 아래에 석불 입상이 있는데, 이 석불을 와불 아래쪽 바위에서 떼어낸 흔적이 있어 와불을 지키는 부처라는 의미에서 ‘시위불’ 또는 ‘머슴부처’라 불린다. 나무에 가려서 온전한 모습을 보긴 어렵지만 서편 언덕와불에서 내려오는 길에 칠성바위가 있다. 칠성바위는 북두칠성을 상징하는 7개의 둥근 바위가 산 중턱에 놓여 있는 것을 말하는데 북두칠성의 위치와 밝기에 따른 크기를 표시하고 있고 다른 절에는 없고 이 절에만 있는 독특한 유적이다.

운주사의 천불천탑을 다 보지 않더라도 꼭 봐야 되는 것이 서편 언덕에 있는 거대 와불 2기이다. 이 와불은 아래쪽의 좌상 불상과 위쪽의 입상 불상2기로 이루어져 있다. 두 불상 사이와 다리쪽에 불상을 떼어내려고 했던 흔적으로 보이는 틈이 있어 두 불상을 일으켜 세우려다 만 미완성의 불상으로 여겨지면서 운주사 설화의 중심 역할을 하고 있다.

와불
와불

가장 널리 퍼져 있는 설화는 도선국사와 관련된 풍수비보설(風水裨補說)이다. 도선은 우리나라의 지형을 배의 형상으로 봤는데 배의 가운데에 해당되는 곳이 운주사이고 영남 쪽에 산이 많고 호남 쪽은 적으므로 배가 동쪽으로 기울어 땅의 정기가 일본으로 흘러 나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그래서 정기가 흘러가는 것을 막기 위하여 하늘에서 내려온 천여명의 석공들의 도움을 받아 하루 만에 천불천탑을 쌓기로 약속을 하고, 도술을 부려 해를 일봉암이라는 바위에 묶어두고 석공들을 여러 날 부려먹었다. 석공들이 천불천탑을 다 쌓고 마지막 와불을 일으켜 세우려는 순간 일하기 싫어한 동자승이 꾀를 내어 꼬끼오라고 닭울음 소리를 내는 바람에 날이 샌 줄 알고 와불을 세우지 못하고 하늘나라로 돌아갔다고 한다. 이러한 비보설화 때문에 운주사를 배를 운행한다는 뜻의 運舟寺라고부르기도 한다.

또 다른 설화로는 미륵신앙과 관련된 것이다. 운주사 불상들의 파격적이고 민중적인 이미지에서 연상하여 이 곳을 반란을 일으킨 노비와 천민들이 미륵이 도래하는 용화세상을 꿈꾸며 신분해방운동을 일으켰던 해방구로 만들어서 그들의 염원을 담아 천불천탑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와불이 일어서는 날 미륵이 도래하고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는 것이다.

운주사에 가거든 꼭 시간을 내어 발품을 팔아서라도 대웅전 뒤쪽에 있는 불사바위로 올라가 보기를 권한다. 미륵전 오른쪽으로 돌아서 100미터 정도 오르면 도선국사가 천불천탑의 공사를 감독했다는 자그마한 불사바위(공사바위라고도 함)가 있다. 이 바위에 오르면 절 전체 풍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데 천불천탑의 야외정원이 발 아래 아늑하게 펼쳐져 있다. 불사바위에 가만히 앉아 있노라면 석공들의 돌 다듬는 정소리와 용화세상을 꿈꾸며 왁자지껄 웃고 떠드는 민중들의 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불사바위에서 바라본 운주사 전경
불사바위에서 바라본 운주사 전경

운주사 여행을 마치고 시간이 나거든 바로 근처에 있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화순고인돌 유적에 가 보아도 좋다. 승용차로 20분 거리에 있는 화순고인돌 유적은 고인돌 유적지 중에서 고창∙강화와 더불어 남한에서 가장 큰 고인돌 유적으로서 5㎞ 길이에 달하는 지역에 596기의 고인돌이 분포되어 있다.

프랑스의 노벨문학상 수상작가(2008년 수상)인 르 클레지오가2001년 가을에 운주사를 방문하고 쓴 시를 소개한다. 함께 운주사로 가는 시세계로 여행을 떠나 보자. [이코노미21]

<운주사,가을비>

흩날리는 부드러운 가을비 속에

꿈꾸는 눈 하늘을 관조하는

와불

구전에 따르면, 애초에 세분이었으나 한 분 시위불이

홀연 절벽쪽으로 일어나 가셨다.

아직도 등을 땅에 대고 누운 두분 부처는

일어날 날을 기다리신다.

그날 새로운 세상이 도래할 거란다.

 

서울거리에

젊은이들, 아가씨들

시간을 다투고 초를 다툰다.

무언가를 사고, 팔고

만들고, 창조하고, 찾는다.

운주사의

가을단풍 속에

구름도량을 바치고 계시는

두분 부처님을

아뜩 잊은채

(중략)

기다리고 나이를 먹고 비가 온다.

운주사에 내리는 가랑비는

가을의 단풍잎으로 구르고

길게 바다로 흘러

시원의 원천으로 돌아간다.

두 와불의 얼굴은 이 비로 씻겨

눈은 하늘을 응시한다.

한세기가 지나는 것은 구름 하나가 지나는 것.

부처님들은 또 다른 시간과 공간을 꿈꾼다.

눈을 뜨고 잠을 청한다.

세상이 벌써 전율한다.

(번역 : 최미경-이화여대통번역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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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지 2020-08-20 13:25:41
늘 절에 가면 그 안에 놓인 석탑과 석불이 주는 은은한 웅장함을 좋아하곤 했는데, 운주사는 글만으로도 그 깊이가 느껴지는 듯 합니다. 운주사에 깃든 설화는 꼭 어릴 적 할머니께 옛날 이야기를 듣는 듯한 향수에 잠기게 하네요. 언젠가 한 번 꼭 다녀오고 싶단 다짐을 하고 갑니다. 좋은 글 감사해요 :D

심재헌 2020-08-19 20:50:16
불교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하지만, 제가 알던 절들과는 다른 독특한 느낌의 절인거 같네요.
천개의 석불과 천개의 석탑이 있을 수 있었을까 라는 호기심과 더불어 와불의 웅장함, 운주사만의 아름다운 절경 등이 기대되는 곳이기도 하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파라 2020-08-18 02:17:57
기고자님의 글을 읽다 보니 몇년전 겨울에 운주사를 간 기억이 떠오르며 다시한번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저절로 드네요.. 앞으로도 좋은 정보 글 부탁드려요..

심충섭 2020-08-17 22:58:22
기고자님의 글을 읽으니 운주사의 정취가 눈에 보이는 듯 합니다. 또한 운주사의 유구한 역사를 느낄수 있었고, 단순한 사찰이기만 한게 아니라는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꼭 한번 가보고 싶네요.

김미진 2020-08-17 20:44:11
문화유산 답사기 읽는 느낌입니다. 가보고 싶은 마음이 새록새록 드네요. 꼭 가봐야 겠네요. 좋은 정보 감사드리고 앞으로도 좋은 곳. 좋은 글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